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 / 존 허스트 / 위즈덤하우스 / 2017

유럽 세계의 형성과 각 국가별 역사적 변화 양상을 최대한 간단하게 추려 정리한 책. 중간중간에 지도와 도표도 들어 있어 마치 이해하기 좋게 잘 집필된 역사 교과서 같은 느낌도 준다. 제목으로는 세계사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이 책은 더도 덜도 말고 딱 유럽의 이야기만을 담고 있다. 차라리 ‘세상에서 가장 짧은 유럽사’라고 제목을 정하는 게 나을 뻔했다.

정말 최소한도의 요약 내용만 빨리 읽을 생각이라면 1장 부분만 읽어도 충분하다. (애초에 이를 염두에 둔 구성을 하고 있다) 2장은 1장의 내용을 좀 더 구체화하여, 여러 가지 주제어로 세분화된 각 챕터 안에서 연대기적 서술로 유럽 사회의 복합적인 변화를 정리하고 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집필 계기에서 알 수 있듯 사실상 학교 수업 교재와 같은 성격의 책으로, 유럽 역사의 개괄적 이해에는 큰 도움이 되는 반면 세밀한 역사 서술이나 보다 깊이있는 역사적 통찰을 발견하고 싶은 독자에게는 맞지 않는 책.

<목차>

서문

1부. 단숨에 정리하는 2,000년 세계사
1. 고대와 중세: 모든 것은 그리스와 로마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기독교의 탄생│게르만족의 등장│그리스­로마 세계와 기독교의 융합│게르만족과 기독교│유럽의 중세
2. 근대: 세계를 제패한 유럽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르네상스: 유럽의 세속화│종교개혁: 기독교 교회의 붕괴│근대과학과 진보│계몽주의: 이성의 발견│낭만주의와 민족주의│근대 유럽의 그림자
*쉬어 가기: 고전은 어떻게 최고가 되었나

2부. 조금 더 꼼꼼히 들여다본 세계사
1. 침략과 정복: 이민족과의 전쟁이 만든 기독교 세계
게르만족의 침입과 로마의 흥망│무슬림의 침입│바이킹의 등장│유럽의 팽창
2. 그리스와 로마의 정치: 군대와 세금에서 시작된 정치
그리스의 민주정치│로마의 민회와 집정관│로마공화정│로마제국과 황제
3. 중세와 근대의 정치: 민주주의를 향한 긴 여정
중세 시대의 봉건 군주│절대군주의 등장│잉글랜드의 의회정치│프랑스혁명
4. 황제와 교황: 종교와 정치가 공생하는 법
프랑크왕국의 분열과 그 이후│교황과 황제의 권력투쟁│근대 이후 종교와 정치
5. 언어: 살아 있는 송장, 라틴어
로마제국과 라틴어│이민족의 침입과 언어의 변화│라틴어가 유럽에 미친 영향
6. 서민: 묵묵히 역사를 지탱해 온 보통 사람들
유럽 서민의 삶과 농업│농노제 이후의 변화
*쉬어 가기: 유럽은 어떻게 근대성을 획득했는가

3부. 세계를 뒤흔든 사건들
들어가기 전에: 유럽을 파괴한 두 개의 힘
1. 산업화와 혁명: 참정권을 가진 노동자의 등장
잉글랜드와 차티스트운동│프랑스의 체제 변화│독일제국의 등장│러시아혁명
2.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위기가 만들어 낸 괴물
제1차 세계대전│패배 이후 독일│히틀러와 나치│제2차 세계대전│전쟁 이후 새로운 유럽연합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by 해피의서재 2020. 8. 6. 00:27

올해 중국에 ‘크리스마스 금지령’이 내렸다는 뉴스가 포털에 떴다. 지난해 가을 국가주석이 ‘자국 문명의 부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이후부터 지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 한다. 전세계에서 소비되는 크리스마스 소품의 60% 가량이 중국산이라는데 정작 그 생산국에선 크리스마스 트리가 철거되고 흔한 전구장식이나 선물 교환도 볼 수 없단다. 자국 문화 부흥 운운하면서 원래 널리 퍼져 있던 문화마저 말살하는 행태. 이게 무슨 신 위정척사 운동인가 싶지만 지금 중국은 그러고 있다.

지금 시점에서 중국의 지식인과 위정자들이 오형규의 ​<경제로 읽는 교양 세계사>(2016, 글담출판)를 읽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지금 너희들이 하는 짓은 필히 몰락을 부를 것’이라는 경고가 곳곳에 가득한데 말이다.

사실 이 책은 현대 중국을 비판할 목적이 담겨 있는 책은 아니다. 그저 인류의 등장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먹고살기 위해 고안하고 발명해 낸 수많은 기술과 제도, 그에 기초해 변화해 온 사회 구조와 세계 각국의 흥망성쇠 과정을 통사적으로 서술한 경제 중심 세계사책일 따름이다. 2년 전에 쓰여진 이 책에서 저자는 오히려 선전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일어난 중국의 스타트업 열풍을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며 대다수의 젊은이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 위한 시험 공부에 매달리는 한국의 현실을 걱정한다.

그러나 갈수록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이념과 권력의 이름으로 통제하기에만 골몰하는 중국에서 과연 혁신이라는 것이 계속해서 가능할까? 개방성과 유연성을 잃고 폐쇄적인 성향으로 돌아선 국가는 필히 쇠망했다고 이 책은 말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로 명나라 이후 해금령을 내리고 외부 세계와 단절한 중국과 이념의 장벽 너머에 자신을 가둔 소련을 들면서 말이다.

올해로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이했다는 중국. 그 40년 동안 깨달은 것이 그저 거대한 시장과 자본 하나 믿고 그 힘 하나로 뭐든 주무를 수 있다는 오만이라면 중국의 미래는 심히 암울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책 속 문장들>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은 정치이념이나 도덕이 아니다. 생산수단, 생활수준의 발전은 일과 생활 방식은 물론 사람들의 생각까지 바꾼다. (...) 현대 경제사는 국가와 기업, 개인들이 효율적인 생산수단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서는 경제적 자유가 필수다. 경제적 자유는 정치적 자유가 전제되어야만 한다. 시장경제하에서는 가격 외에 만든 사람의 인종, 종교, 피부색 등을 따지지 않는다. 따라서 시장경제는 필연적으로 민주주의로 귀결하게 된 것이다. -6~7쪽

공산주의는 사유재산과 시장을 인정하지 않고 생산수단의 거래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시장가격이 형성될 수 없는 구조다. 가격을 모르는 상태에서 국가가 세운 계획경제가 타당한지, 손익은 어떤지를 판단할 방법이 없다.(...) 공산주의 실험이 끝내 실패한 것은 인간의 본성인 이기심과 자생적 질서인 시장을 부정한 결과였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여건을 개선하고 싶어하고, 남는 것을 부족한 것과 교환하려는 본성을 가졌다. 이는 흐르는 강물이나 중력처럼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공산주의는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제도를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국민을 감시하고 사상 교육을 강요해야만 했다. 소련의 KGB, 동독의 슈타지 등은 나치스 독일의 게슈타포와 전혀 다를 게 없었다. 그런 점에서 히틀러와 스탈린은 이란성 썽둥이나 마찬가지였다. -322쪽

실패한 나라들은 폐쇄성과 외부에 대한 단절, 억압이란 공통점이 있다. 집단 논리로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 나치스 독일과 소련, 북한이 바로 그런 사례다. 경제적 자유가 없어 개인의 창의성을 극대화하지 못하는 체제에 미래가 있을 리 없다. 감시와 억압 없이는 오래 존속할 수도 없다. -358쪽

by 해피의서재 2018. 12. 25. 11:54


아시아 역사

저자
아서 코터렐 지음
출판사
지와사랑 | 2013-05-10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아시아를 알면 세계가 보인다!이 책은 현재의 이라크 남부에서 발...
가격비교


"세계의 중심으로 몰려드는 아시아의 잠룡들에 맞서 세계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들의 기호와 기대에 부응하는 것뿐이다. 세계화 시대에 그 어떤 대륙도 독불장군처럼 행동하면서 살아남을 수는 없다. 

우리의 미래는 서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역사』 中, 763쪽)


800쪽에 육박하는 방대한 분량. 이 책을 다 읽는 데만 꼬박 3주가 걸렸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을 시작으로 중국의 황하 문명과 인도의 인더스 문명을 거쳐 

중국-한국-일본의 동아시아, 베트남-타이-캄보디아(크메르)-인도네시아(스리비자야)-말레이시아 등의 동남아시아, 

실크로드 일대의 중앙아시아 지역, 이란-아라비아-터키 일대의 서아시아 등 아시아 곳곳의 역사를 

시대/지역별로 챕터를 나누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인데,

그 서술이 마치 거대한 강의 도도한 흐름을 따라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느 정도 익숙한 중국과 인도, 중동의 역사는 물론 

우리가 상대적으로 잘 알지 못했던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의 각 국가가 거쳐간 흥망성쇠를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던 책. 


특히 책 속에 펼쳐지는 중세 이후의 아시아 역사, 특히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역사는 유럽 열강의 식민사로 점철되어 있다. 

아울러 오늘날 중동 지역이 화약고가 된 이유도 영국의 잘못된 식민 정책에서 유래했음을 

객관적인 사실 서술의 힘을 빌어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탐욕과 폭력으로 점철된 식민사가 인류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겼는가를 생각하게 해 주는 대목이다. 


동아시아의 중국, 남아시아의 인도, 동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 서아시아의 터키가 장차 세계를 이끌어갈 것이라고 

아서 코터렐은 예측하고 있다(2011년 기준). 

지금 시점에서 볼 때 이 예측이 현실과는 다소 어긋나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세계의 중심이 다시 아시아로 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아시아의 역사를 통해 아시아의 오늘을 읽고, 더 나아가 세계의 내일을 보는 비전을 갖게 해 주는 책이었다.


by 해피의서재 2014. 2. 1. 12:49

 


터키에서 읽는 로마사

저자
곽영완 지음
출판사
애플미디어 | 2012-09-03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로마의 마지막 1000년 이야기!330년 콘스탄티노플 수도 이전...
가격비교

 

  로마는 서기 476년에 게르만 족의 침입으로 멸망했다. 그렇게 로마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학창시절 세계사 교과서에 나와 있는 대로라면 그렇다. 그러나 사실 로마는 그때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후기 로마 제국은 넓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제국을 동서로 분할하고 동서별 황제와 그 부관격인 부제(副帝)를 각각 따로 두었다. 때로는 합쳐지고 때로는 다시 분할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들 모두 로마였다. 오늘날로 따지면 일종의 연방 제도처럼 제국을 운영했던 셈이다.


  476년에 멸망한 것은 서로마였다. 동로마 제국은 여전히 건재했고, 이후 천 년 동안 세계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동쪽으로는 각자 흥망성쇠를 거듭한 이슬람 세력을, 그리고 서쪽으로는 뒤늦게 국가로서의 자리를 잡은 여러 이민족 국가들과 교황을 위시한 로마 가톨릭 교회 세력을 상대하며 오랜 세월을 버텨낸 국가였다. 그리고 서로마 지역이 이민족의 약탈과 파괴로 그간 쌓아 온 문화적 전통을 모조리 잃은 상황에서 유일하게 로마의 문화를 보존하고 지켜 온 국가였다. 동로마 제국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갖고 있었던 로마의 문화 유산과 지적 자산들이 서유럽으로 전파될 수 있었고 이슬람의 확장으로부터 유럽 기독교계 문화를 지킬 수 있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잘 알지 못했고 기억하지 못했던 동로마 제국의 세계사적 가치를 설파하고 있다. 아울러 동로마 제국을 둘러싼 중동 지역과 서유럽의 민족들과 국가들의 역사적 부침(浮沈)까지도 세세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가족과 함께 터키를 여행하며 동로마와 그 주변 지역의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띠고 있는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역시 5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천 년간의 역사를 자세하게 풀어 준다는 점이다. 이슬람의 기원과 각 왕조의 탄생 및 쇠퇴 과정, 서유럽의 혼돈기와 각 나라의 형성기, 십자군의 등장 배경과 활동 과정 및 역사적 영향, 이 시기 동로마 제국의 대처 등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유럽과 소아시아의 중세사를 간편하게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종교와 권력, 그리고 물욕이 인간을 얼마나 흉포하고 추하게 만들 수 있는가’라는 점이었다. 종교적 광기에 사로잡혀 발디디는 곳마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무고한 시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십자군의 흉포한 행태와, 오직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러한 십자군의 횡포를 방조하고 부추긴 교황 세력에 대하여 분노를 참기 어려웠다. 무지한 십자군의 무자비한 파괴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슬람 세력의 위협 속에서 기울 대로 기울어진 국운을 힘겹게 이어가는 동로마 제국의 고군분투는 그들과 관련 없는 국가에서 현대를 사는 나조차 안타깝게 했다.


  역사는 현대를 비추는 거울이라 했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이 책 속에 기록된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종교와 민족을 명분으로 테러가 자행되고 전쟁이 발발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핍박과 죽음을 면치 못하고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파괴되는 일들이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그 역사를 읽고 예전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오늘의 세계는 언제쯤 피와 고통으로 점철된 역사책들의 교훈을 따라, 옛사람들이 저질렀던 과오들을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까.

by 해피의서재 2013. 9. 21. 09:46

(세계사의 운명을 바꾼) 해도 / 량얼핑 / 명진 / 2011




일전에 올린 지도에 관한 책 리스트(http://readinghappy.tistory.com/19) 중에 있던 책 중의 한 권을 최근에 구입해서 읽게 되었다.
3월에 감명깊게 보았던 KBS 다큐 <지도, 문명의 기억>과 겹치는 부분도 있어서 읽기에 더욱 흥미로웠던 책이기도 하다.

책을 모두 읽고 느낀 점이라면, 해도가 세계사의 운명을 바꾸었다기보다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고 세계사의 운명을 바꾸어 가는 과정을 해도가 증언한다고 보는 게 더 이치에 맞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새로운 지리 정보를 담은 해도가 계속 새로이 만들어지면서 사람들이 더 먼 바다로, 그 바다 건너의 새로운 대륙으로 나아갈 발판을 제공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사의 운명을 바꾼 주체는 다름아닌 인간이었으며, 해도를 비롯한 모든 지도는 인간이 나아가고 세상을 인식한 딱 그 만큼씩 그려져 왔으므로. 희망봉을 발견하기 이전 제작된 지도에 아프리카 남부가 다른 대륙과 서로 붙어 있다고 표시되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책의 목차는 크게 10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은 전반적으로 '지구'에 대한 인간의 인지가 점차 확대되어가는 과정 순으로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1장 '고리 모양 물길에 둘러싸인 대륙'에는 바빌로니아 점토판 지도와 TO 지도 등 고대와 중세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지도들이 모여 있다. 바빌로니아 지도에서는 바빌론이 세상의 중심이고, TO 지도 속 세계에선 동쪽에 아시아, 북서쪽에 유럽, 남서쪽에 아프리카 대륙이 자리한 가운데 예루살렘이 세상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아직 관념적인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당대인들의 지리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고대에 이미 상당한 지리학 지식과 현대에 가까운 구대륙(유럽+아프리카 및 아시아 일부) 지도를 남긴 프톨레마이오스와 그리스의 지리학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2장 '얽히고설킨 세계와 나침반'부터 본격적인 해도와 항해, 그리고 탐험 이야기가 등장한다. TV에서 본 덕에 눈에 익숙한 폴리네시아의 막대 지도와 프라마우도 세계 지도 등을 다시 지면에서 볼 수 있어 반가웠다. 3장부터 7장까지는 각각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로 향하는 항로의 발견과 개척, 신대륙 아메리카의 발견, 세계 일주 항해와 경도의 발견,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발견에 관한 이야기가 다양한 지도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유럽 각국의 해상 진출 배경과 그 성과, 그리고 탐험에 나선 인물들과 국가의 이후 행보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르네상스가 도래하면서 중세 시기 동안 묻혀 있던 고대의 자연과학이 주목을 받고, 이슬람 세계에서 아랍어로 번역된 유럽의 과학 지식이 유입되고, 나침반이 도입되고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항해술이 발전하는 등, 세상을 객관적-과학적으로 인식하고 보다 멀리 항해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배경이 갖추어지면서 유럽은 대항해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이 부분을 읽고 있는데 마냥 재미있게만 읽어나가기엔 왠지 입맛이 썼다.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그리고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이 탐험가를 후원하고 대규모 함대를 파견하며 열심히 새로운 항로를 개척한 의도가 씁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을 게다. 물론 그 시대에는 그것이 최선이었을 것이고, 그 시대에 유럽 각국이 식민지를 설립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이유도 없었으며, 탐험가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인간이 TO 지도 같은 막연한 관념에서 벗어나 실재하는 세계와 마주할 수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당대 유럽의 '항로 개척'이 더 많은 자원과 부를 얻기 위한 '욕망의 여정'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울러 유럽의 입장에서 이것은 '개척과 정복'이었지만 그들의 함대를 맞이하는 원주민들의 입장에서 이것은 엄연히 '침략과 착취'였다는 것 또한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유럽인들이 상세하게 그린 아프리카 서부 해안선 지도의 이면에 이 해안선을 따라 오가는 노예무역선에 실려갔던 아프리카 흑인들의 핏빛 역사도 배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세계사에 남은 유명한 해전과 해협들, 그리고 극지방의 발견에 관한 이야기가 관련 지도들과 함께 언급된다. 지도가 그려질 당시의 국제 정세를 풍자적으로 표현한 '캐리커처 지도'도 따로 한 챕터에 모여 있다. 마치 신문 만평을 보는 듯했다. 아울러 지도 속에 이렇게 세상의 이야기가 다 들어 있구나. 하고 새삼 와닿았다. 따지고 보면 지도는 그 시대의 모든 것을 담고 있었던 것 같다. 지도에 표시된 지역에 대한 설명을 나타낸 삽화들이 곁들여져 있던 고지도들이 함께 뇌리에 떠오르면서 든 생각이다.

이제 요즘 사람들은 구글이나 포털사이트의 지도 섹션을 통해 지리 정보를 접한다. 5대양 6대주가 모두 표시된 완성된 지구본이 학교마다 비치되어 있고 비행기와 배는 GPS와 위성 신호의 안내를 받아 가며 전세계를 누빈다. 종이 위에 그려지는 지도이든 컴퓨터를 통해 작성되고 열람되는 전자 지도이든, 현대의 지도와 지리 정보가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인류의 상생을 위해 기능하기를 기원해 본다. 대항해 시대 유럽이 행했던 침략과 착취의 행보를 넘어선, 진정한 상생의 여정을 여는 도구가 되어 주기를.

by 해피의서재 2012. 4. 12.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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