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중독사회 / 김태형 / 한겨레출판 / 2020


2020년에 출간된 이 책의 저자는 10여 년 전 저술한 <불안증폭사회>를 비롯해 <자살 공화국>, <트라우마 한국사회>, <싸우는 심리학>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사회에 적체된 각종 병리가 어떻게 한국인의 삶을 황폐화시키는지 고찰하고 분석해 왔다.

극도로 세분화되고 하층으로 쉽게 추락하기 쉬운 위계 질서에 갇혀, 개개인이 모두 파편화된 채 남에게 짓밟히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돈과 지위에 집착하고 정신적 여유와 기본적 사회성까지 상실하고 있는 현 시대의 한국인들. 20세기 말 이후 몰아닥친,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강자독식형 정글자본주의의 정신적 인질이 되어 능력주의로 포장된 자기착취 가스라이팅에 빠진 채 자기혐오와 약자혐오 속에서 ‘사회적 생존을 위해 영원히 지속해야 하는 불안한 고지전’을 치르며 자신의 우위를 끊임없이 확인받고자 하는 정신병리에 갇혀 있는 것이 바로 현재 시점의 한국인들이라고 저자는 진단하고 있다. 그나마 1980년대 이전까진 적어도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끼리는 서로 돕고 다독이고 소통하며 지냈으니 정 힘들어지면 도와 주는 이들이 있을 거란 최소한의 심리적 안정감이라도 있었으나 이젠 그마저도 없이 모두가 적이자 경쟁자일 뿐인, 소득수준과 보유 자산에 따라 세밀하게 위계가 쪼개지고 그 위계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권리와 대우의 차이가 너무나 커져 버린 사회에서 자기계발이란 이름의 자기학대와 남보다 뒤처져선 안되고 반드시 우위에 서야 한단 강박에서 유래된 나르시시즘 및 자기과시, 갑질이 횡행하는 것은 필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불리는 데 집착하며 SNS에 명품 구입 인증 사진 등 과시성 포스팅을 올리는 세태,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악용하여 범죄를 자행하는 사람들의 끝없는 출몰, 사는 집의 규모에 따라 어린이들이 서로 멸칭을 부르며 따돌리는 작태,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확인받는 데 집착하는 자들의 터무니없는 갑질에 홀로 고통받다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사연이 속출하는 것 또한 근본적 원인이 여기에 있다.

저자는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 중 하나로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과 정착을 제시한다. 기본소득 지급을 통해 개인의 생존불안을 획기적으로 경감시키는 것만으로도 소모적인 생존경쟁에서 벗어나 좀더 각자의 적성에 맞는 자유롭고 생산적인 활동에 나서도록 유도할 수 있고 이웃간의 동질감을 회복시켜 사회공동체의 복원도 가능할 것이며 덩달아 사회 신뢰도도 올라가니 저신뢰 사회에서 사기 등을 피하기 위해 지출해야 하는 온갖 시간과 금전적 비용도 절약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의 정신건강 문제와 직결되는 문제이자, 한 국가의 지속가능성과도 연관되는 사안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끊임없이 서로를 경계하고 물어뜯고 최후의 1인만 남을 때까지 사생결단을 내도록 강요하는 정글사회는 종국엔 지력을 다한 농경지처럼 아무도 살 수 없는 폐허로 남을 것이 자명하다. 한국전쟁이 남긴 오랜 트라우마 때문에 쉽진 않겠지만, 이제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상상하고 실현해야 할 때가 왔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by 해피의서재 2023. 10. 9. 11:23

국가란 무엇인가 / 유시민 / 돌베개 / 2011(초판), 2017(개정판)


2011년 초판되어 많은 사랑을 받은 후 다시 2017년에 개정판이 출간된 유시민의 ‘국가학개론’.

국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입을 여는 이 책은 ‘힘으로 대내외 치안을 통제한다’에 방점을 둔 국가주의와 ‘국가 내부 거주자의 모든 자유를 보장한다’에 방점을 둔 자유주의 국가관을 먼저 설명한다. 뒤이어 ‘억압받는 자에게 국가 따윈 무의미하다’는 취지의 마르크스주의와 여기서 파생되는 국가에 대한 냉소주의에 대해서도 논한다. <월든>으로 유명한 조지 데이비스 소로의 ‘시민 불복종’에 대한 언급도 등장한다.

저자는 앞서 논한 여러 이론들을 바탕으로 하여 현대 국가와 정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점들을 피력한다. 수많은 분쟁과 유혈사태를 거치며 확립된 현대 국가의 의무사항을 현 대한민국 헌법을 읽어내려가며 설파하고, 무턱대고 신념만을 내세우며 무리하고 독선적인 행보를 보이기보다 정치행위의 결과를 중시하는 책임윤리를 견지할 것을 정치 지도자에게 요구한다. 이때 반면교사로 제시된 사례가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이다.

스스로를 ‘진보자유주의자’라 칭하는 저자는 오늘날의 대한민국 정치인과 시민들에게 ‘국가다운 국가 만들기’를 위해 다음을 요구한다. 정치인에게는 법을 제 도구처럼 휘두르지 말고 법이 명시한 권한 한도에서 책임있게 정치활동을 하며 정직하게 시민과 소통할 것을, 시민에게는 자기 자신은 물론 동료 시민에게도 동등한 존엄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시대에 늘 깨어 있으며 기꺼이 타인과 연대하여 행동할 것을 말이다.

by 해피의서재 2022. 12. 31. 21:13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 / 전혜원 / 서해문집 / 2021


노동은 신성시의 대상도 혐오와 기피의 대상도 아니다. 신분 구별의 근거는 더욱 아니다. 노동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거나 필요한 일을 해 주고 그 대가로 생활 자금을 받는 모든 종류의 일을 의미한다. 여기에 그 이상의 의미를 굳이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노동을 도외시하는 행위다.

로봇과 드론, AI기술이 무서운 속도로 발달하면서 인간의 노동력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일하지 않으면 생활비를 확보할 수 없다는 인식 아래 취업준비자들의 무한경쟁은 더 심해지고 사용자들은 얼마 안 되는 일자리 TO를 인질 삼아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일한 만큼 버는 것, 안전한 작업환경을 제공받는 것 등)를 무시하고 노동자 사용하길 마치 일회용 소모품 쓰듯 한다. 여기에 노동의 형태도 특수고용, 하청, 일회성 계약 등 다각화되어 노동자들이 한 목소리로 제 권리를 주장하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뿌리깊은 사농공상 의식에 따른 직업 및 직위 귀천 따지기, 여기에서 기인한 현장직 천대와 소위 ‘사짜’ 직업 및 학벌에 대한 집착도 한국 노동자들의 권익 신장을 시민 스스로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책은 사용자이자 노동자인 자영업자와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플랫폼 일자리,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일자리 소멸, 시험만능주의라는 뒤틀린 공정주의로 대표되는 노동자들 간 계층 분화와 상호 반목, 끊이지 않는 산업재해, 현행 임금 책정 방식의 문제점 등 한국 노동현장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는 주요 문제를 상세히 살펴보고 기록한다.

소수의 자본가를 제외하고 우리 사회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모두 남의 사업체에서 일을 하고 임금을 급여받는 노동자들이다. 우리 자신의 문제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마냥 남의 일처럼 치부했던 노동 문제에 대하여 이참에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어떨까. 어느 순간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라 다름아닌 나 자신의 일상, 내가 처해 있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by 해피의서재 2022. 12. 27. 14:57

불확실성의 시대, 노동자의 삶은 어디로 - https://readinghappy.tistory.com/m/109

불확실성의 시대, 노동자의 삶은 어디로

코로나19 사태가 일어난 지 반 년이 훌쩍 넘었다. 국내 감염자는 누적 기준 1만 명을 넘어섰고, 이 백신도 치료제도 전무한 감염병에 전세계의 모든 일상이 결박당했다. 분주하던 공항은 적막 속

readinghappy.tistory.com


2년 전, 노동의 종말과 노동자의 예정된 궁핍에 대해 심란한 심정을 감추지 못해 위와 같은 글을 쓴 일이 있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최근, 한 공공도서관에서 이런 북큐레이션 컬렉션을 만났다.

아무리 세상의 변화가 가속화되고 노동의 입지가 약화되고 있어도 여전히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각처에서 땀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의 손길이고 이들의 권리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아울러 노동의 형태 역시 다양해지고 또 변화무쌍해지고 있는 만큼 변한 세태에 대응하여 노동자의 권리를 찾는 것 역시 어렵고도 중한 일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한 답을 찾는 이들에게 사진 속 책들이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by 해피의서재 2022. 10. 7. 20:34
제각기 다른 개인들의 개별성과 자유를 존중하고 다른 입장의 사람들과 합리적으로 타협할 줄 알며 개인의 힘만으로는 바꿀 수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들과 연대 하는 사회. 개인주의, 합리주의, 사회 의식이 균형을 이룬 사회. 이것이 헌법이 지향하는 사회이고, 이런 사회를 지탱하는 사고 방식이 법치주의이다.


최소한의 선의 / 문유석 / 문학동네 / 2021


전직 판사 출신인 문유석 작가가 헌법과 법치주의를 소재로 우리 시대 사회의 선의와 정의, 공정과 평등, 자유 등의 담론을 돌아보며 쓴 책이다. 헌법에 담긴 민주주의와 인권수호의 정신을, 쉽고 친근한 문법을 구사하여 풀어쓴 에세이로, 혐오와 폭력이 만연한 지금 이 시기에 특히 꼭 새겨 기억해야 할 문장들이 책 곳곳에 보석처럼 박혀 있다.

법은 개개인의 자유와 인권을 보장하고 서로의 자유가 충돌하여 침해당하는 것을 방지하며, 그리하여 모든 사람들이 평화롭고 안전하며 행복하게 공존하며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존재한다. 저자가 법을 일컬어 ‘최소한의 선의’라 정의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인간을 존엄하게 대하는 사회는 제도 만으로 건설 할 수 없다. 밥은 굶지 않게 최소한의 먹을 것은 국가가 지급하고 있지 않느냐, 뭘 더 바라느냐 감사할 줄 알아야지. 이런 마음이 지배하는 사회는 아무리 사회 복지 제도가 잘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 수급자들을 동냥하는 걸인으로 취급하는 사회다.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는 헌법상 기본권이다. 당연한 권리를 행사 하는 기본권의 주체로 보느냐, 남들의 동정을 받는 대상으로 취급하느냐는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 - 74쪽

대중 민주주의 사회에서 다수의 변덕과 횡포로부터 소수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정치 권력 뿐 아니라 시민들 사이에도 법치주의에 기반한 사고 방식이 뿌리내려 있어야 한다. 이제 법치주의는 단순히 제도여서는 안 된다. 사고 방식이어야 하는 것이다. 법치주의는 법이면 뭐든 다 할 수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누구든 권력을 함부로 행사하지 말고 항상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생각을 시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사회가 진정한 법치주의 사회다. - 82쪽

답답하고 지루한 법치주의가 사망한 곳에는 속 시원하고 화끈한 파시즘이 독버섯처럼 피어 나기 마련이다. 그리고 파시즘이 득세한 곳에 개인의 자유가 설 자리는 없다. 법치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지켜 주는 최후의 보루인 것이다. - 89쪽

타인에게 불가능에 가까운 도덕적 염결성을 요구하기보다는, 각자 최소한의 규칙은 엄수하기, 각자의 밥그릇을 존중하며 타협하기, 건전한 무관심, 그리고 최소한 사악해지지는 말자는 자기성찰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런 사회에서 비로소 개개인 최후의 성역, 생각의 자유와 사생활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이다. - 109쪽

왜 법이 범죄자들에게 관대하냐는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렇다. 법은 범죄자들에게 관대한 것이 아니다. 법이 인간에게 관대하게 만들어지다 보니 범죄자들이 반사적 이익을 누리게 된 것이다. (…) 법치주의 시스템은 ‘인간의 존엄성’을 근본이념으로 한다. ‘인간의 존엄성’이란 결국 쉽게 말하면 인간을 특별히 귀한 존재로 취급하겠다, 특별 대우를 하겠다는 이야기다. (…) ‘인간’을 존엄한 존재로 보는 인본주의 헌법 질서하에서 모든 인간은 필연적으로 특별대우를 받게 된다. - 144쪽

법이 인간 사이에 필요한 ‘최소한의 선의’라면 형벌은 사회 운영에 필요한 ‘최소한의 악의’인 것이다. - 150쪽

우리의 법치주의 시스템은 인간을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 대중의 무지를 탓하기 전에 법조 엘리트들이 먼저 인간에 대한 스스로의 무지를 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 159쪽

목적이 정당하고, 방법 면에서 매우 효과적이라 할지라도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조치는 필요 최소한이어야 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과잉금지 원칙은 개인들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 174쪽

결국 ‘선의’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할 필요가 있다. 사회에는 법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정치도 필요하고, 윤리도덕도 필요하다. 각자가 자기 역할을 하는 사회가 건강한 사회다. 그중에서 법은 융통성 있고 발빠른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 않다. 법은 엑셀러레이터가 아니라 브레이크 쪽이다. 개별 사건에서 정의로운 결론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결론은 철저히 국민의 대표가 제정한 법 안에서, 해석으로 가능한 범위 내에서 도출해야지, 이를 넘어서면 국회의 역할을 대신하는 것이다. - 177쪽

현실에서 정의를 찾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헌법이, 그리고 롤스의 <정의론>이 제시하는 방향은 분명히 있다. 더 많은 자유와 창의, 혁신을 보장하고 장려하는 것이 우리 헌법 질서의 근본이다. - 204쪽

자유가 사회를 견인하되, 그 속도가 누군가를 낙오시켜 쓰러지게 만들지 않도록 평등이 제어하는 것. 무조건 달려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직은 시기가 아니라면 잠시 멈출 줄도 아는 것. 어쩌면 그 망설임의 순간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어려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일지도 모르겠다. - 205쪽

법은 종교도 아니고 이데올로기도 아니다. 법은 타협의 기술이다. - 249쪽

헌법은 결국 공존을 위한 최소한의 선의다. - 253쪽
by 해피의서재 2022. 4. 4. 21:40

지금 여기, 무탈한가요? : 괜찮아 보이지만 괜찮지 않은 사회 이야기 / 오찬호 / 북트리거 / 2020

by 해피의서재 2021. 5. 19. 09:29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좋다고 말하려면 최소한 다음 두 질문에 긍정적인 답을 하는 사람이 많아야 한다. 첫째, 누구나 대단한 꿈을 꿀 수 있고, 노력하면 목표를 이룰 수 있는 사회인가. 둘째, 대단한 꿈을 꾸지 않는 누구라도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가.” - 본문 167쪽 중


지금 여기, 무탈한가요? : 괜찮아 보이지만 괜찮지 않은 사회 이야기 / 오찬호 / 북트리거 / 2020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책. 이 책에 담긴 모든 이야기들이 바로 지금 현재 대한민국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와 그 본질에 관한 것이다. 오늘의 대한민국이 어떤지, 지금 우리 사회는 왜 이다지도 강퍅한지, 그리고 켜켜이 쌓인 작금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지금 이 책을 완독할 것.

나쁜 사회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첫째, 노력해도 목표를 달성할 수 없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가난을 극복하고 한 단계 위로 올라 가려고 해도 거대한 천장에 가로막힌다. 둘째, 천장을 뚫고 올라 가지 못한 이들이 단지 그 이유로 인간다움을 보장 받지 못한다. 힘들다고 하소연해도 ‘노력하지 않았기에 정당한 결과’라는 가혹한 평가만이 부유한다. 만약 지금의 한국 사회에서 천장이 계속해서 견고해지고 있다면 우리는 무엇을 고민해야 할까? 한 사람의 고통을 그저 개인의 문제로만 바라보면서 좋은 사회를 꿈꿀 수 있을까? - 168쪽
친숙한 것을 낯설게 보자. 내게 친숙한 것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자. 익숙하지 않다고 외면하지 말자. 좋은 이야기에 도취되지 말자. 불편한 이야기를 무작정 거부하지 말자. 아름다운 말 속에 무엇이 감춰졌는지 따져보자.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즐기자. 마지막으로, 나는 사회 ‘안’에서 살아감을 잊지 말고,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사회가 달라져야 함을 명심하자. - 226쪽


by 해피의서재 2021. 5. 19. 09:25

친절한 트렌드 뒷담화 2021 / 권정주 외 / 싱긋 / 2020

날이 갈수록 한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세상이 되어 가고 있다. 각 기업들은 어디로 흘러갈지 모를 이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살아나갈 틈을 확보하기 위해 치열하게 세태를 분석하고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상품과 콘텐츠를 준비한다. 이 책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온라인, 비대면, 개인주의 성향이 더욱 가속화된 한국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소비자들의 성향을 각 소주제별로 정리하여 보고하고 있다. 작게는 사업을 열거나 투자하기 좋은 아이템에 대한 정보를 얻는 데, 크게는 지금 이 시대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그 흐름을 이해하는 데 나름 요긴하게 참고할 만한 실용서적이다. 다만 이 책의 효용가치는 딱 거기까지다. 여기서 더 나아가 왜 이런 세태가 형성되고 있고 앞으로의 변화 양상은 어떠할지, 그것이 사회 구성원들에게 궁극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그렇게 촉발된 변화가 과연 더 나은 것일지 하는 질문과 같은, 한층 더 깊은 인문적 사유의 여지까지 제공하진 않는다. 전적으로 현장의 마케터와 사업자들을 위한 보고서로서의 임무에 충실한 책.



by 해피의서재 2021. 2. 7. 10:25

혐오의 시대, 철학의 응답 / 유민석 / 서해문집 / 2020

모든 언어는 힘을 가지고 있다. 아울러 그 언어를 쓰는 사람 또는 세력의 사회적 위치와 권력이 더해지면 사회에 미치는 그 언어의 힘은 더욱 강력해진다.
세상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지고, 더 나아질 기미도 보이지 않는 시점에서 나보다 더 만만하다 여겨지는 자에게 불만과 분노를 퍼붓고 끝내 짓밟음으로써 자기 내면의 화를 해소하는 것이 세계적인 경향으로 굳어버린 시대에, 혐오발언은 세상에 만연하다 못해 이젠 이 시대에 가장 손쉬운 돈벌이 수단 중 하나로 활발하게 사용되는 지경이 되었다.
이 책은 철학과 언어사회학의 관점에서 이 혐오발언의 발동기제, 그리고 이를 무력화하기 위해 개인 관점에서 또는 사회 전체 관점에서 취할 방도를 고찰하고 있다. 실제 뉴스에 보도되어 독자들에게 익숙한 여러 사례를 제시하고 있어 독자들이 내용을 이해하기 쉬운 편이다. 책은 독자 개개인의 각성을 넘어, 혐오폭력으로부터 개인이 안전할 수 있는 사회는 궁극적으로 어떤 사회여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까지 화두를 이어 간다.
자신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는 ‘을’을 향한 통제를 위해, 자신이 속한 세력의 서열 과시를 위해, 자신의 우월감 확인을 위해, 단순한 유희를 위해, 심지어는 돈벌이를 위해 무분별하게 혐오를 쏟아내는 자들에 의해 무참히 부서지고 스러져 가는 이들이 더 이상 늘어 가지 않도록, 개인 혹은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하고 행동해야 하는 시점이다.

by 해피의서재 2021. 1. 24. 19:03

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 김성우, 엄기호 / 따비 / 2020

사회학자 엄기호(대표작: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등)와 언어학자 김성우(대표작: <단단한 영어 공부>, <어머니와 나> 등)가 우리 사회의 문화 리터러시에 대해 나눈 대화를 정리한 대담집.

현재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세대/계층 간 언어-문화의 괴리와 소통 부재의 문제가 어디서 기원한 것인지, 왜 사람들이 보고 읽는 것은 많아지면서도 맥락을 파악하고 깊이 있게 쓰는 능력은 떨어져 가는 건지, 그렇게 떨어진 사회 전체의 문화 리터러시가 사회 통합과 민주주의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이 문제를 극복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담겨 있다.

다소 학술적인 성격의 책이라 가볍게 읽기엔 좀 어려운 면이 있다. 하지만 좀 어렵더라도 여러 사람이 모여 일종의 독서회를 조직해 함께 공부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특히 미디어, 교육, 사회학, 정책 입안 관련 종사자들이 이 책을 읽고 토론할 기회를 많이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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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결혼을 성립시키고 관계를 단절하며 법안을 통과 시키고 사랑을 공표하며 전쟁을 시작한다. 혐오 발언은 비합리적 증오의 행위이며 고맙다는 말은 감사의 실천이다. ‘그저 말일 뿐인 말’ 따위는 없는 것이다.”(10쪽)

“개인이 음식을 섭취하여 몸을 만들어 가듯, 우리가 접하는 매체는 사고와 정서의 뼈대를 만든다. 그렇기에 이 시대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세계를 인식하고 지식을 구성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관계 맺기의 양상을 구성하는 방식의 거대한 변화다. 읽고 쓰기의 풍경 또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문해력의 추락에 대한 우려가 커져 간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 도도한 흐름을 이해하고 지혜롭게 항해 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듯하다.”(12쪽)

“자신의 삶과 유리된 글은 누구도 쉽게 읽을 수가 없거든요. 제게 법학자가 쓴 논문을 주고 읽으라고 하면 굉장히 힘들어 할 것이고 못 읽어내는 부분도 많을 거예요. 텍스트라는 것이 객관적이고 공평한 난이도를 갖고 있고 훈련을 받으면 모두가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삶과 권력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거죠. 어떤 텍스트로 평가를 하느냐는 권력의 문제예요.”(47쪽)

“리터러시를 아는 것 자체가 삶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삶의 리터러시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삶의 리터러시, 즉 삶을 읽어내는 리터러시는 완전히 무시되는 거죠. 권력화된 방식의 리터러시에서는 반대로 권력자들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을 문해력이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리터러시는 백성을 계몽하고 민주주의를 운용하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문화자본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권력을 공고히 하고 백성들을 배제하는 방식이 됩니다.”(50쪽)

“나는 리터러시란 응답할 줄 아는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이 대담에서 우리가 정리한 것처럼, 바벨탑 쌓기가 아니라 다리 놓기로서의 리터러시란 홀로 표현하고 선포하는 것을 넘어 응답할 줄 아는 역량이다. 응답과 응답이 끊이지 않고 순환함으로써 서로 배움을 부추기고 발생하게 하는 것, 이게 새로운 배움의 방법론이자 조사연구의 방법론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292쪽)

by 해피의서재 2020. 11. 9.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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