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비행

저자
신지수 지음
출판사
책으로여는세상 | 2011-10-1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대한항공 A330 조종사가 3만 피트 하늘 위에서 들려주는 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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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들어 비행기와 조종사에 관한 이야기에 부쩍 관심이 생겼다. 여행과 일탈을 향한 열망 탓일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이유로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늘 떨치기 힘들기에, 그 열망을 해소하기 위해 ‘여행’그것도 ‘먼 여행’의 상징인 비행기와 공항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비행기에 관한 책도 몇 권 구해 읽었다. 물론 전문적인 책은 아니고, 일반 대중을 상대로 비행기와 항공 종사자에 대해 이야기한 책들이다. 항공에 관심 많은 젊은 네티즌들이 블로그에 올린 글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해서 발견하게 된 책 중의 한 권이 바로 이 ‘나의 아름다운 비행’이었다.


  책은 한 민항기 조종사가 비행 생활 중에 겪은 에피소드를 적은 9편의 에세이를 엮은 것이다. 각각 ‘눈(Snow)’ ‘기억’ ‘타깃’ ‘뺑뺑이’ ‘사냥’ ‘배달’ ‘위기’ ‘고통’ ‘어머니 대자연’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다. 눈 오는 날의 이륙 준비(눈), 훈련생 시절 조종사 자격 심사비행을 하던 때의 기억(타깃), 악천후 속의 어려운 착륙(뺑뺑이), 화물기 운항에 얽힌 에피소드(배달), 조종석에서 갑자기 찾아온 극심한 고통 속에서 한때 잃었던 초심을 떠올린 이야기(고통) 등 조종사로 살면서 보고 겪어 온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그리고 생동감 있게 글 속에 풀어냈다.

 
  저자는 2013년 기준으로 입사 16년차를 맞이한 대한항공 소속 기장이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조종사를 꿈꾸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대학도 비행기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경영학과로 진학했고, 역시 비행기와 관련 없는 육군으로 병역을 마쳤다. 모 대기업의 사무직 직원으로 취직도 했다. 그런 그가 27세 때 자신이 있던 곳을 과감히 뛰쳐나와 대한항공 직영 제주비행훈련원(현재는 폐지되었다고 한다)으로 들어간다. 이제까지 다른 이(특히 가족)들이 지정해 준 길을 벗어나, 정말로 자신의 적성에 맞고 자신이 진정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찾아 나서기로 결심하고 그 결심을 실천에 옮긴 것이었고, 그 길이 바로 비행기 조종사라는 직업이었던 것이다. 이후 긴 훈련 기간을 거쳐 그는 30세가 되던 해 대한항공의 정식 부기장이 되었고, 현재 에어버스 A330이라는 비행기를 조종하는 기장이 되어 세계의 하늘을 날고 있다.


  ‘비행은 나를 찾아 떠난 여행이었다’고 그는 책에서 고백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가 비행을 통해 진정한 자신과 삶의 의미, 그리고 세상의 이치를 끊임없이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비행기의 모험(비행)과 귀환(착륙)에서 ‘우린 결국 원래의 나로 돌아가기 위한 긴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해 준 ‘타깃’편이라든가, 거대한 자연 앞에 인간과 그의 피조물이란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자연의 위대함과 자비 앞에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 ‘어머니 대자연’편이 그 좋은 예라 할 것이다.


  보통 민간 제트 여객기의 순항 고도가 3만 9천 피트 대인데, 이 정도 높이의 상공에선 산소는 희박하고 기압도 매우 낮으며 기온은 영하 50도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이 척박하기 짝이 없는 높은 하늘 위에서, 조종사들은 이 거대한 하늘에 비하면 더없이 자그마한 일엽편주 같은 비행기를 이끌고 고독한 비행을 하는 것이다. 한순간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기에 매년 건강검진과 엄격한 조종능력 심사를 거쳐야 하며, 끊임없이 철저한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때로는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하며, 갑자기 비행기를 ‘사냥’하는 자들의 타깃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개중에는 정말 목숨을 잃은 조종사들도 있다. 그들을 위한 글도 이 책에 실려 있다. ‘앞서 간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는 ‘기억’편의 마지막 문장이나, ‘인간은 비행기를 사냥해선 안 된다. 죽이기 위한 사냥은 더욱 용서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은 ‘사냥’편을 읽으면서 마음 한 켠이 무거워졌다.
(부연하자면 ‘기억’편은 1999년에 중국에서 일어났던 화물기 사고를, ‘사냥’편은 2001년 9.11 테러 당시 또다른 피랍기로 오인받았던 한 비행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렇듯 조종사의 삶과 애환, 그리고 4만 피트 상공의 하늘이 말해준 가르침들을 항공 전문 지식들과 버무려 감성적인 필치로 써내려간 저자는 책의 가장 마지막 에피소드인 ‘어머니 대자연’ 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내 비행기를 너무나 사랑하고, 내 동료들을 절대 믿으며, 내 승객들의 아름다운 미래를 존경한다.’

 

  그 마음을 잃지 않는 한, 그의 비행은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늘 아름다울 것이다.

 

<Remarks>

비행의 의미는 ‘나를 찾는 것’이었으며 착륙은 ‘나에게, 원래의 내 모습으로, 바로 그 자리에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다. 나의 타깃은 거울에 비친 내 솔직한 모습이었으며, 나를 찾을 수 있다면 언제든 다시 아름다운 세상을 찾아 새 출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76쪽)

비행은 늘 마지막에 낮은 곳을 조준한다. 미래와 정상보다는 과거와 집을 지향한다. 이미 높은 곳을 마음껏 날은 비행기는 집으로 그리고 원래의 자기로 돌아가는 것을 꿈과 모험의 피날레로 여긴다. (79쪽)
나는 내 삶을 살기 위해 안간힘 써 왔지만 그것은 사실 내 삶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내 가족과 함께 사는 내 모습이, 내 동료와 내 친구와 함께 사는 내 모습이, 그리고 내 자연 속에 있는 모든 것들과 함께 사는 내 모습이 내 삶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228쪽)
고통은 나쁜 것이 아니다. 나에게 외치는 나의 울림이다. 집 떠난 내 영혼이 그 소리를 듣고 나에게로 다시 찾아오는 것이다. (229쪽)
모든 개체는 자연 앞에서 동등하다. ‘날개 달린 기계’역시 내 형제요, 내 친구다. 결국 당신과 다르지 않은 존재다. 알고 보면 세상에 특별한 것은 없다. (257쪽)


by 해피의서재 2013. 9. 21. 09: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