짤방과 드립에 담긴 한국 대중 여론의 흐름, 그리고 그 여론이 형성되는 배경이 된 사회상에 대해 매체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책.
‘심영물’을 주제로 한 저자의 석사학위논문을 대중서적의 성격에 맞게 보충하여 쓴 책이다. 인터넷 문화 확산 초창기의 ‘아햏햏’ 문화부터 ‘빠삐놈’, 심영물, 각종 인용 유행어(목차에 나온 소제목들을 보면 대충 감이 올 것이다) 등 시대를 풍미했던 주요 인터넷 밈을 정리하여 소개하고, 해당 밈이 인기있던 당시 시대상과의 연관성도 다루었다.
키치함과 B급 감성에서 우러나는 해학과 웃음을 추구하는 인터넷 밈은 갈 곳 잃은 청년 세대의 좌절과 우울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그 좌절한 청년들을 정치적 여론전에 이용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퍼뜨려지는 혐오 정서의 파급 수단이 되기도 한다.
매체가 세상을 읽는 수단이 되기도 하지만 세상을 왜곡하는 프레임이 되기도 하기에, 오늘날 인터넷 밈이 현실사회에 미치는 유해성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자극성을 재화와 등가교환하는 ‘관심경제’가 대세가 된 지금, 빠르고 뜨거운 반응만을 의도하는 극도로 자극적이기만 한 혐오성 밈이 사회적 상식을 파괴하고 개개인에게 일방적인 폭력을 자행하는 흉기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터넷 밈의 존재와 영향력을 마냥 부정하고 터부시할 수만도 없으며 그래서도 안된다는 것이 저자의 의견이다. 유머와 풍자로 세태를 비판하는 수단으로서의 인터넷 밈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그 가치를 지키고 가꾸는 것은 밈을 소비하고 퍼뜨리는 사회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사유와 행동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메시지다.
인터넷 극우 콘텐츠발 혐오성 밈의 확산이 중대한 사회 문제로 논의되고 있는 요즘 시기에 한번쯤 꼭 읽어볼 만한 책. 여담으로, 서브컬처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책 곳곳에서 등장하는 유명 밈 인용 문장에 피식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매체로 인해 우리 삶이 확장되기는커녕 뒤흔들리고 있는, 우리가 보지 못한 우리의 심연을 보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매체가 우리의 상황을 결정한다는 전제가 더 설득력이 있는 듯하다.” (36쪽)
“우리가 즐긴 놀이가 사실은 혐오나 차별 등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는 패악질에 불과할 수 있다. 순간적으로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인터넷 밈은 현실적으로 깊게 생각해야 하는 사안도 증발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132쪽)
“그러나 드립을 태생부터 문제적 수사라며 죄악시하고 금지한다면 우리는 인터넷 밈을 마음 편히 쓰지 못한다. 오히려 드립과 그에 기반하는 인터넷 밈이 공공적인 놀이 문화가 될 수 있도록 중화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147쪽)
“전용을 사용한 인터넷 밈은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여러 부조리를 드러내고 고발하는 수단이 된다. 비판적 사고를 좌파라고 낙인찍고 억압하려는 한국 사회에서 인터넷 밈의 역할은 중요하다. 비판적 사유를 심되, 그것을 밈이라는 형식에 감출 수 있어서다. 인터넷 밈이 마땅히 이루어져야 할 비판을 유머로 무마하듯이, 그 반대로 유머를 통해 비판적인 인식을 드러내는 것도 가능하다.” (169쪽)
“일부 밈은 성소수자 혐오를 재생산하는 데 일조했고, 여러 고인에 대한 모독을 놀이로 소비하며 극우화되기 시작했다. 이처럼 인터넷 밈을 정치적으로 소비하면서 놀이문화로서 인터넷 밈은 사라지고 정치적 밈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202~203쪽)
“담론의 외주화에 익숙해진 이는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생각하며 정치적으로 깨어 있다고 자신하지만, 타인의 정보를 접하면서 자기 안에 타자와 충돌하는 몽타주를 만들어낼 의지가 없다. 그저 주어진 이미지에 자신을 숨기거나, 주어진 이미지를 아무 곳에서나 남발하면서 자기가 할 말만 하기 때문이다.” (216쪽)
“디시에서 비롯된 인터넷 밈이 왜곡된 능력주의와 결탁해 나타난 재미지상주의가, 혐오 발화를 농담으로 치부하고 혐오를 재생산하게 방조했다는 것이다.” (217쪽)
“관종은 좋아요와 댓글을 얻고자 더욱더 자극적인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약자 혐오와 같이 금기시된 주제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대중의 반응을 자아낸다. 드립은 관종이 추천글에 오르려 하는 욕구에 의해서 남발되지만 한편으로는 극우의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하는 수단으로도 작동하는 것이다. 관종은 또 다른 관종을 낳고, 그들에 의해서 혐오가 확대 재생산된다. 개개인이 주체적으로 생각하지 않는 한 밈화는 타인을 혐오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219쪽)
220쪽
“인터넷 밈이 사유의 부재로 우익에 의해 전유될 것이라는 공포는 가득한데, 왜 반대로 시민 사회가 다 함께 인터넷 밈을 전유할 가능성은 상상하지 않을까? 유머는 타인과 나 사이의 대화이자 미메시스다. 추천 수와 좋아요로 내 자존감과 지갑을 채우려는 나르시시즘적인 욕망은 상대방을 진정으로 웃기겠다는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유머를 이기지 못한다.” (220쪽)
오늘날 형식적 민주주의는 전세계에 걸쳐 많이 보편화되었지만, 정작 민주주의 본연의 취지와 정신을 잃고 사실상 전제주의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 세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 책은 2016년 미국 대선 전후의 정계와 여론 동향을 중심으로 민주주의가 어떻게 변질되고 있는지, 그래서 어떻게 내부에서 붕괴하고 있는지를 상세히 들여다보고 있다. 1930년대의 독일과 스페인, 1960~70년대의 칠레와 1990년대의 베네수엘라, 2010년대의 터키 등의 사례도 주요 반면교사로서 비중있게 언급된다.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소득과 지위, 심지어 태생에 따라 사회가 양극화되고 이로 인한 대중의 불만이 가중되는 가운데 권력을 잡기 위해 정당과 정치인들조차 상호 관용과 존중보다 혐오와 폭력을 더 선호하게 되고 이를 양분삼아 독재적 성향의 포퓰리스트가 독버섯처럼 자라 사회를 장악하는 일련의 프로세스가 이 책에 잘 설명되어 있다. 이 책이 지적하고 있는 문제는 전세계 민주주의 국가가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 책에서 꾸준히 강조하고 있는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우리 정치 지형과 여론 행방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부터 돌아보는 일이 먼저 시급할 것 같다. 비난과 복수와 일명 '사이다'라 불리는 날선 워딩에 열광하는 와중에 우리 사회는 이미 저 규범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 버린 것은 아닌지 무척 걱정스럽다. 민주주의 본연의 정신이 우리 사회에서 부식되어 사라지지 않도록 이제부터라도 정계를 비롯하여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유의해야 하지 않을까.
극단적 정치 분열은 민주주의 규범에 위협이 된다. 정치판이 세계관의 차이를 넘어 사회적, 인종적, 종교적 갈등으로 배타적인 진영으로 분열될 때 그 사회는 관용의 규범을 유지하기 힘들다. (...) 정치 집단이 서로 간 공존이 불가능한 이념으로 분열될 때, 특히 구성원끼리 교류가 부족하고 고립이 심해질 때 정상적인 정당 경쟁이 사라지고 적대적인 투쟁이 시작된다. 상호 관용이 사라지면서 정치인들은 자제의 규범까지 저버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승리하려는 유혹에 굴복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전면 부정하는 반체제 집단이 등장한다. 상황이 이러한 국면으로 접어들면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를 맞는다. - 148쪽
시, 소설, 수필, 서간… 세상에는 참으로 다양한 글이 있고 지금도 도처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글이 탄생한다. 예로부터 사람들은 자신이 보고 듣고 직접 겪으며 통과해 온 시대를 자기 각자의 지식과 감성으로 해석한 글을 남겨 왔다. 이렇게 태어난 글들은 출판사의 편집자와 장정가를 만나 정갈하게 교정된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어 서점을 거쳐 세상에 나오고, 독자 대중을 만나 서로 교감하는 가운데 점점 더 강한 생명력을 얻어 마침내 수십 수백 년을 살며 다음 세대에 계속해서 지난 세대를 증언하게 된다.
이 책은 한국의 20세기, 즉 일제강점기부터 1980년대 사이에 쓰여지고 출판된 문학책 15권을 가려 뽑아 이들의 초판본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작품의 집필과 초간 출판 과정, 그리고 당시의 시대적 풍경을 고풍스런 어투로 전하고 있다.
엄혹한 일제강점기 한복판에서 가난에 시달리면서도 한국 고유의 정서와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지키고자 했던 시인 소월과 영랑의 마음을, 도시화와 산업화가 정신없이 몰아치던 격동의 시대를 혼란하고도 고독하게, 또 처절하게 살았던 개인들의 내면을 감각적인 소설로 기록한 젊은 작가들의 마음을, 숨막히는 독재정권 치하의 모순 가득한 사회를 바라보며 ‘사람은 진정으로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를 이야기한 당시 시대의 어른들의 마음을 고스란히 품은 열다섯 책들의 초판본 이야기가 여기 있다.
표지, 목차, 간기면까지 사진으로 훑어보며 이들의 출판과정과 시대적 가치에 주목하고 있는 이 책을 어느 분야로 분류할지 묻는다면 대중이 읽기 쉽게 쓴 서지학 또는 출판학 도서로 분류하면 될 듯하다.
1974년 민음사에서 발간된 문화평론가 김병익의 평론집 <지성과 반지성>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나온다.
오늘의 우리 지식 사회에 있어 가장 우울한 현상은 압도적인 ‘지식기능인‘의 수와 힘에 비해 ’지성인‘은 너무나 적고 미력하다는 점이다. 물론 지식계층의 인구는 많다. 대학교수, 학자, 언론인, 작가, 예술인 등 마땅히 지성의 위력에 의하여 존경받아야 할 지식인은 도처에 있다. 그러나 계층이, 입장이 지식인의 면모를 지녔다 해서 결코 지성인이 될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현대 한국의 문학계와 지성계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 도서들의 출판 내력을 소개한 서지학 도서 <김기태의 초판본 이야기>(2022)에서 이 문장을 접했다. 저자 김기태 교수는 이 문장을 인용하면서 ‘(이와) 같은 (김병익) 선생의 판단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21세기 지식인들 또한 얼마나 될 것인가’라고 한탄했다. 나 또한 같은 생각이다.
아래의 글은 1961년 2월 5일 정향사에서 발행된 최인훈의 소설 <광장> 초판본에 수록된 ‘저자의 말’에 이은 추기(推記) 일부를 옮겨 적은 것으로, <김기태의 초판본 이야기> (김기태 지음, 새라의숲, 2022) 92~93쪽에서 발췌한 글임을 알립니다.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 표범의 가죽으로 만든 징이 울리는 원시인의 광장으로부터 한 사회에 살면서 끝내 동료인 줄도 모르고 생활하는 현대적 산업구조의 미궁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시공을 달리 하는 수많은 광장이 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인간은 밀실로 물러서지 않고는 살지 못하는 동물이다. 혈거인의 동굴로부터 정신병원의 격리실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공간을 달리 하는 수많은 밀실이 있다.
사람들이 자기의 밀실로부터 광장으로 나오는 골목은 저마다 다르다. 광장에 이르는 골목은 무수히 많다. 그곳에 이르는 길에서 거상의 자결을 목도한 사람도 있고 민들레 씨앗의 행방을 쫓으면서 온 사람도 있다. 그가 밟아 온 길은 그처럼 갖가지다. 어느 사람의 노정이 더 훌륭한가라느니 하는 소리는 아주 당치 않다. 거상의 자결을 다만 덩치 큰 구경거리로 밖에는 느끼지 못한 바보도 있을 것이며, 봄 들판에 부유하는 민들레 씨앗 속에 영원을 본 사람도 있다. 어떤 경로로 광장에 이르렀건 그 경로는 문제 될 것이 없다. 다만 그 길을 얼마나 열심히 보고 얼마나 열심히 사랑했느냐에 있다.
광장은 대중의 밀실이며 밀실은 개인의 광장이다. 인간을 이 2가지 공간의 어느 한쪽에 가두어 버릴 때 그는 살 수 없다. 그럴 때 광장에 폭동의 피가 흐르고 밀실에서 광란의 부르짖음이 새어 나온다.
우리는 분수가 터지고 밝은 햇빛 아래 뭇 꽃이 피고 영웅과 신들의 동상으로 치장이 된 광장에서 바다처럼 우람한 합창에 한 몫 끼기를 원하며 그와 똑같은 진실로 개인의 일기장과, 저녁에 벗어 놓은 채 새벽에 잊고 간 애인의 장갑이 얹힌 침대에 걸터앉아서 광장을 잊어 버릴 수 있는 시간을 원한다.”
경제학은 한정된 재화를 어떻게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확장할 것인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어느 순간 돈 불리기 그 자체만이 목적인 학문처럼 이미지가 굳어져 버렸지만.
한때 의사였던 저자는 재산도 환경도 받쳐 주지 못해서 제 몸 건강 하나 챙길 상황이 못 돼 유기되고 방치되어 있는 시골 저소득층 사람들의 현실을 목도하고 과감히 삶의 진로를 경제학자로 틀었다. 책의 서두에 언급된 대로, 전적으로 각자 능력에 따라 개인의 삶의 질이 좌우된다는 능력주의는 사실 허상이며 각 개인의 삶을 결정하는 가장 큰 조건은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가정적-사회적 환경이라고 저자는 자각하고 있다. 더 많은 사람을 살리고 그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운영하는 사회복지 제도가 국민의 실제 삶에 피부로 와닿는 효과를 낼 수 있도록, 그러면서도 세수 부담에 발목 잡히지 않고 그 제도가 지속 가능할 수 있도록 세밀하게 설계하여 실행하는 게 중요하다는 게 이 책에 담긴 저자의 주된 생각이다.
저자는 그동안 경제학자로서 세계 여러 국가를 대상으로 다양한 주제에 대하여 사회 지표 조사 분석과 자체 사회실험을 진행하며 얻어낸 데이터들을 토대로 저출생, 여성 경력단절, 노인부양, 실직과 소득보장 등 현재 한국이 직면한 가장 중대한 사회문제들에 대한 나름의 의견을 풀어놓는다. 선의만으로는 현실적으로 제 기능을 해내는 복지사회를 만들 수 없고 오히려 역효과가 일어나는 사례도 많기에 성급한 정책 추진보다는 신중한 접근과 철저한 사전 연구를 선행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일견 타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너무 데이터 만능주의에 경도되어 있는 것 아닌가 하는 비판적 시선도 갖게 되지만, ’데이터로 사회를 분석하고 경제학적 접근으로 지속가능한 복지국가 체제를 정립하여 개개인의 삶의 질이 보장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제의식에만큼은 전적으로 찬성하는 바다.
한국 공공도서관 운영의 현주소를 살펴보고, 도서관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고찰을 여러 통계자료 및 현장 사례 인용과 함께 정리한 칼럼들을 모아 엮은 책이다.
도서관의 건축, 운영 주체 선정(지자체 직영/민간위탁 등), 사서인력 충당과 처우 문제부터 도서관 장서 구성(구입도서 선정 및 장서폐기 문제)과 프로그램-독서모임 운영까지 공공도서관 현장 실무의 각 분야를 세밀히 살피며 문제의식을 제기하고 개선 방안을 모색한 것이 특징.
공공도서관이 제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선 도서관에 대한 정계의 이해와 일관된 정책, 도서관 종사자들의 철학과 신념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주장이 책 곳곳에서 강하게 묻어난다.
책 속에 제시된, 도서관 장서 구성을 사실상 유행에 내맡기다시피 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희망도서바로대출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나, 도서관이 책과 ‘쌍방향 독서 프로그램’을 매개로 민주주의 교육과 구현의 장으로서 기능해야 한다는 ‘사회적 독서론’ 등이 특히 신선하게 다가온다. 현직 사서 및 도서관장, 그리고 더 나아가 문헌정보학 교수들과 정부의 도서관 정책 입안자들도 업무시 곁에 두고 수시로 참고할 필요가 있는 자료.
벌써 몇 달째 미 연방준비이사회(FRB)의 금리 인상 얘기로 금융계가 들썩이는지 모르겠다. 코로나 시대에 어떻게든 경기를 떠받쳐 보겠다고 돈을 최대한 시장에 풀던 양적완화와 초저금리 시대도 이제는 끝을 향해 가는 양상이다.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심화되는 가운데 그새 한국은 이미 국가 기준금리를 0.25% 더 올렸다. 앞으로 더 오를 거란 전망이 우세한 실정이다.
이제부터 이야기하려는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딱 1년 전에 출간된 책이다. 금융을 움직이고 나아가 세상의 부의 흐름을 결정하는 것은 단연 돈의 가치를 나타내는 금리라고 이 책은 단언한다. 그래서 제목부터 당당하게 ‘금리를 알면 부의 미래가 보인다’고 적어 놓았다. 글쎄, 정말 금리가 뭔지 알면 나도 부의 미래를 볼 수 있는 것인가? 한 번 읽어나 보기로 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꼭 그렇다고 볼 순 없을 것 같다. 돈과 금리에 대한 여러 개념을 차분히 정리해 주면서 한국 경제의 현 상황을 함께 짚어주는 정도의 기능을 가진 책이다. 만약 집중해서 읽을 시간이 없으면 각 챕터의 시작 페이지마다 요약글이 있으니 그걸 읽어도 된다.
책에서 설명하는 돈과 금리의 속성은 다음과 같다.
돈은 그 자체로 가치 교환과 저장 기능을 가지며, 돈을 빌려주고 빌려쓰는 과정에서 생기는 일종의 조달 수수료이자 대여료가 바로 금리라고 볼 수 있다. 명목상의 금리에서 물가상승률을 뺀 것이 실질금리이며, 이 실질금리가 높을수록 저축에 유리하고 낮을수록 대출에 유리하다. 그리고 오늘날 전세계가 초저금리 상황을 유지 중인 것은 저축 대신 대출과 소비의 활성화를 유도해 경기 부양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각국의 통화 정책의 산물이나, 이 넘치는 유동성은 화폐 가치의 하락을 초래해 되려 부동산 시장을 뒤흔들거나 검증도 안 된 가상화폐의 가격 폭등 같은 부작용을 낳기도 한다. 그리고 이 책이 출간된 지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그 모든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고, 생필품 물가마저 최소 3% 이상 급속히 오르는 인플레이션에까지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이젠 정말 기준금리 인상과 유동성 감소가 불가피한 시점에 왔다고 할 수 있겠다.
이 책에 따르면 저출생과 노령화에 따른 내수시장 정체, 산업 성장 동력 상실 등 한국 경제의 내부 경쟁력 약화로 인해 초저금리 추세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며, 따라서 채권 투자는 제로금리짜리 은행 정기예금 예치와 다를 게 없을 것이며 고수익을 노린다면 신흥국 주식시장을 주로 노려야겠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고위험 저수익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개인 투자자 입장에선 상당히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자,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일단 금리의 고저에 따른 돈의 흐름의 특성에 대해선 어느 정도 파악은 했다. 그런데, 그래서 이제 앞으로 우린 뭘 해야 하나? 책은 그에 대한 모범답안까지 명확히 제시해 주진 않는다. 기껏해야 다가오는 폭풍우를 주의하라는 것 정도. 이제 앞으로 내 재산, 내 재화를 어떻게 지키고 불릴 것인가에 대한 판단은 오로지 독자만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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