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를 찾아서 / 김화영 / 문학동네 / 2011


1. 『어린 왕자』, 한 불행한 사내의 비유적 자서전


어떤 글이든 쓰는 사람의 삶과 마음이 투영되기 마련일 것이다. 생택쥐베리의 『어린 왕자』역시 그러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비행사, 비행사가 추락한 사막, 어린왕자의 목에 감긴 바람에 날리는 스카프, 어린왕자와 장미의 관계, 어린왕자와 비행사의 회고 속에 등장하는 ‘어른’들의 모습 속에서 저자 생택쥐베리의 실제 삶을 보게 된다.


심지어 생의 마지막 순간조차 『어린 왕자』의 마지막을 닮은 생택쥐베리. 그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누이들 사이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부재는 이후에 겪게 되는 남동생의 죽음과 겹쳐 그의 마음속에 상처로 남았다. 비행사가 된 후에는 사막 한가운데서 근무하며 절대고독과 직면하기도 했으나 그는 도리어 그 사막과 절대고독을 사랑했다. 남미 출신의 콘수엘로와 결혼했으나 그 자신의 계속되는 염문과 아내와의 소통부재로 인해 그녀에 대한 책임감과 미안함을 늘 안고 살았다. 진정 사랑하고 마음으로 의지하면서도 그녀와 제대로 마음을 나누는 데 서툴렀던 탓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한가운데에서 드골의 자유 프랑스와 비씨정권 그 어느 곳에도 속하고 싶지 않아 했던 탓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붕 뜬’ 신세가 되어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작가로서 세속적인 명성을 얻었고 겉으로는 화려한 삶을 누렸지만 그의 내면은 행복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자본주의가 가속화되고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돈과 숫자로 모든 것이 재단되고 인간성이 사라져 가는 시대상은 그에게 현실 사회에 대한 거부감을 더욱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그는 유년 시절, 순수와 고독의 세계로 회귀하고 싶어했다. 가시 네 개로 자신을 지키려 했던 장미꽃은 그가 사랑한 아내 콘수엘로이기도 했지만 또한 생택쥐베리 자신이기도 했다.


한 편의 문학을 통해 그 저자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글을 통해 한 인간의 삶이 세상에 완전히 다 드러나고 세월이 흘러도 두고두고 알려진다는 점에서 문학이란 참 무서운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2. 나이들수록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울림


『어린 왕자』는 환유, 즉 비유로 가득차 있다. 원래 크리스마스 시즌을 염두에 둔 어린이책으로 기획되었다고 하지만 이 책은 어린이보다는 오히려 어른들에게 더 강렬한 울림을 주는 책이다. 나이가 들수록 작품 속에 녹아든 비유를 볼 수 있게 되고 자신에게 대입하며 동감할 여지가 더 넓어지기 때문이다. 어린왕자와 장미의 관계, 여우가 일깨워준 ‘길들인다’는 것의 의미, 우물을 감춘 사막의 아름다움 등을 어린 세대는 단순히 하나의 아름다운 우화처럼 느낄 뿐 더 이상 깊은 감흥을 받기는 어렵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세파에 부딪치고, 사람에 상처받고, 그렇게 세상을 이해하는 눈이 깊어진 후에 읽는 『어린 왕자』는 어린 시절에 읽은 것과는 또다른 큰 감동을 준다.


문학에는 정답이 없다.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만큼 문학 속에 숨은 의미들이 보인다. 따라서 같은 작품을 읽더라도 사람마다 느끼고 깨닫는 것이 다 다르다. 읽는 사람의 삶이 작품에 투영되어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것이 문학의 특징이자 본질이다.


3. 그리고 또다른 이야기


마지막으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돈과 수치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어른들’을 보며 질문해 본다. 과학이란 이름의 수치 데이터가 과연 세상을 보는 전부일까? 답은 ‘아니다’. 과학 실험을 할 때 조건이나 변수, 대입하는 데이터를 조금만 바꿔도 산출되는 결과는 모두 달라지기 마련이다. 한때 진리라고 했던 과학 이론이 나중에 뒤집힌 적도 많다. 과학 데이터에 대한 맹신은 위험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던 『어린 왕자』의 한마디는, 눈에 보이는 ‘딱 떨어지는’ 데이터를 맹신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by 해피의서재 2012. 5. 19. 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