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저자
헤르만 헤세 지음
출판사
부북스 | 2013-01-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이 소설은 1919년에 처음으로 출간되는데, 그 시기는 세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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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함께 일하는 친구에게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넌지시 꺼낸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 공부 때문에 이 책을 읽었으며, 보통의 고전이 그렇듯이 어렵고 공감하기 힘든 책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접했을 때의 나 또한 그랬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다시 이 책이 읽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다시 펴든 『데미안』은 그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오랫동안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에 빠져 지냈다. 지금도 오르한 파묵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이 내게 던져 주는 주요 화두가 바로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다. 

지금도 기억나고는 한다. 파묵의 소설 『검은 책』에 나왔던 이 말. 


"난 나 자신이 되어야 해." 

"우리 중 누구도 우리 자신이 아니야."


전혀 다른 시기를 살았고 또 살아가는, 국적도 다른 두 작가 사이에서 비슷한 화두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역시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에밀 싱클레어는 사회가 '승인한' 밝고 도덕적이며 모든 것이 정갈하게 재단되어 있는 첫 번째 세상에만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첫 번째 세상과 상반된 어둡고, 음침하며, 난잡하며 혼란스럽지만 분명히 실재하는 두 번째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날것의 세상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정갈함의 이면에 있는 날것스런 세상은 각 개인의 마음 속에도 오롯이 실재한다. 

그러나 보통의 사회는 세상의 날것스런 이면을 굳이 외면하고 쳐다봐서도 안된다고 가르친다.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세상을 이해하고 날것의 세상에서 스스로의 성숙을 이루는 길에 대해 알려 주지 않는다.

자신의 진짜 내면을 찾기 위해 정신적인 방황을 거듭하는 싱클레어에게, 위에 언급한 문제에 대한 답을 주는 이가 바로 막스 데미안이다. 

알을 깨고 나오는 새매의 환상과, 완벽한 모신(母神)의 현신처럼 묘사되는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의 존재는 

싱클레어가 끝내 다다르기를 원하는 이상적인 자신,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것을 인정하고 끌어안으며 어떤 세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자유의지대로 살아가는 

성숙한 자아를 의미하는 일종의 은유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아무리 읽어도 이 책이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면 이 책의 프롤로그 부분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이 책의 주제가 바로 프롤로그 부분에 이미 다 나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추구하는 자였고 여전히 그러하다. 하지만 이젠 별과 책에서 추구하지 않고 내 안에서 내 피가 흐르는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나의 이야기는 유쾌하지 않다. 자신을 속이는 짓을 더는 하지 않으려는 모든 사람의 삶이 그러하듯이, 나의 이야기는 부조리와 혼란의 맛, 광기와 꿈의 맛을 낸다. 

모든 사람 하나하나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길이다. 한 번 나서 본 길, 어렴풋한 경로다. 돌이켜보면 사람은 누구나 온전히 자기 자신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신이 되려 애쓴다. 누구는 둔하고 무겁게, 누구는 더 가볍게, 각자 할 수 있는 대로. (중략) 그러나 모든 각자는 자연이 사람이라는 목표를 향해 던진 존재다. 그리고 다들 같은 곳에서 기원한다. 우리 모두는 어머니들에게서, 똑같은 심연에서 나온다. 하지만 심연에서 기원한 시도요 던져진 존재인 각자는 자기 나름의 목표로 나아간다. 우리는 서로를 납득할 수 있지만, 해석은 각자 자신에 대해서만 할 수 있다.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길을 가는 것(p.66)인데,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자신과 하나였던 적이 없기에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서로에게 달아난다고 했다(p.183).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은 죄악이며, 사람은 거북처럼 자기 안으로 완전히 기어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p.90)고 했던가.

자연이 인간을 매개로 의지하는 바는 이런저런 패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각각의 개인과 그들의 삶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p.185)고 

데미안은 말한다.


이념이나 조직의 질서 같은 것에 자신을 일치시키고 사는 사람들이 이 사회의 대다수인 가운데 

우리 중 우리 스스로의 의지대로 사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물론 그렇게 살려면 필연적으로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의 삶은 다른 이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법이다. 

훗날 내 삶을 돌아보았을 때 그 삶이 어쨌든 내 의지대로 온전히 살아낸 것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다면 

적어도 돌이킬 수 없는 내 지난 삶에 대한 후회가 조금이라도 덜하지 않을까.

아울러 내 삶이 그러하듯 다른 이의 삶도, 다른 이의 존재도 있는 그대로 중하다는 것을 안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사람을 경시하는 풍조가 조금이나마 줄어들지 않을까.


소설의 중간에 니체가 잠시 언급되기는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키에르케고르의 '신 앞에 선 단독자'를 연신 떠올렸다.

우린 모두 하나의 개인, 그 자체로 가치있는 신 앞에 선 단독자가 되어야 한다.


깨어난 사람의 의무는 이것 하나뿐이다. 다른 의무는 전혀, 그 어디에도 전혀 없다. 자기 자신을 추구하기, 내적으로 견고해지기, 끝이 어디이든 자기 자신의 길을 더듬어 나아가기, 이것이 유일한 의무다. (중략) 그 사람의 몫은 아무 운명이나가 아니라 자기 고유의 운명을 발견하고 그 운명을 내면에서 온전히, 꿋꿋이, 또한 끝까지 사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은 반쪽이요 달아나려는 시도요 뒤돌아 대중의 이상으로 도피하기, 순응이요 자기 자신의 내면을 두려워하기다. (중략) 나는 자연이 내던진 존재, 불확실성을 향해 던져진 존재, 어쩌면 새로운 것에, 어쩌면 무에 이를 존재였다. 그리고 깊디깊은 심연에서 비롯된 이 던지기가 실현되게 하기, 이 던지기의 의지를 내 안에서 느끼고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기, 오직 이것이 나의 직분이었다. 오로지 이것만이! (p.173)


by 해피의서재 2014. 8. 18. 2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