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그리는 무늬

저자
최진석 지음
출판사
소나무 | 2013-05-06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소크라테스와 한나절만 보낼 수 있다면...스티브 잡스는 인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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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 책과 비슷한 내용과 성격의 책을 다룬 포스팅을 올렸던 기억이 나는데, 

그 책의 내용과 궤를 같이 하면서도 좀 더 강하고 직설적인 어조의 책을 발견하여 여기에 한 번 간단하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지금, 당신만의 무늬를 그리고 있습니까'라는 메시지가 워낙 강하게 다가오기도 했고. 


다른 대중인문학 책에서도 본 얘기지만, 인문(人文)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 즉 인간의 본성과 본질을 뜻한다. 

'사람'이란 존재가 가진 날것의 기질과 본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것을 굳이 억압하거나 포장하기보다 그 날것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길을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인문학의 존재 이유이자 가치일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인문학의 가치', '인문학의 존재 이유'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 간다. 

인문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왜 인문학을 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과 나름의 답변이 이 책의 주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앞에 서술한 바와 같이, 책은 "인문이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 행복해지기 위한 학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인문학을 통해 "자유롭고 관용적인 사고의 소유자, 나 자신에 충실하며 후회없이 사는 사람"이 될 것을 권한다. 

글줄 좀 읽었다고 그 지식에, 이념에, 관습에 자신과 남의 인생을 우겨넣을 것을 강요하는 사람은 인문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책의 저자는 '교조주의에 물든' 사람을 경계한다. 그것은 가짜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날것'으로 태어나 어디까지나 '날것'일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온갖 속박을 가하고 자유로운 본성을 누를 것을 강요하는 인문학은 

절대 살아있는 인문학일 수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EBS 인문학 특강'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저자가 강의해 온 내용을 엮어 정리한 이 책에서 꾸준히 이야기하는 '인문적인 인간'이란 

이 자리에서 정리해 보건대 바로 이런 사람이 아닐까 한다. 


"애써 정의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사람. 

나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고 남의 주체성 역시 존중하는 사람. 

맹목적인 사람이 아닌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 

나에게도, 남에게도 달리 생각할 자유를 인정하는 사람. 

앵무새가 아닌 자신만의 언어와 질문을 가진 사람."


그 어떤 이념이나 물리적 속박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신만의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을 펼치며 원하는 삶을 사는 것. 
그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살면서, 마찬가지로 다른 이의 '있는 그대로' 역시 기꺼이 인정하는 것. 
'지식'보다 '행동'을, '추상'보다 '현실'을 중시하고 기꺼이 그쪽을 먼저 선택하는 것.
한마디로 남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을 가지고 나 자신의 주인으로 사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자신만의 무늬를 그리는' 행위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야말로 진정으로 '인문적인' 사회일 것이다. 

나 자신에게 물어 본다. 
나는, 지금 나만의 무늬를 그리고 있는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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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marks>
"상상력이란 것도 별반 다른 게 아니에요. 즉 인간이 움직이는 동선의 방향이 어디로 움직일지 꿈꿔 보는 능력이지요. (...) 인문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 혹은 결이라고 했지요? 다른 말로 하면 바로 인간의 동선입니다. (...) 우리가 인문학을 배우는 목적은 무엇인가요? 바로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지요.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를 독립적으로 알아내기 위해서 인문학을 배우는 것입니다." (62~63쪽)

"지속적인 성공을 하려면 자기를 지배하던 이전의 성공 기억을 벗어나서 새로운 상황을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를 보고 싶은 대로 봐서도, 세계를 봐야 하는 대로 봐서도 안됩니다. 오직 텅 빈 마음을 가지고 보이는 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념이나 가치관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신으로 하여금 세계를 봐야 하는 대로 보게 하는 강제성도 강해지지요. 이념가들이 변화하지 못하다가 실패하는 이유 역시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념가들이 선명성 경쟁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요." (66쪽)

"한국 사회는 걱정하지 마세요. 간곡히 말하건대, 제발 그러지 마세요. 자기는 자기 일만 잘 해결하면 돼요. 자기만 잘하면 됩니다. 그러면 한국 사회는 저절로 잘 되게 되어 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자기 욕망을 들여다보지 않고 왜 스스로를 사명의 완수자가 되어야 하는 존재로 규정하는지요?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가 중심이 되어서 움직여야 합니다. '자기'가 없는 곳에서는 어떤 성취도 이룰 수 없습니다. '자기'의 자리를 '사회'나 '국가'에 양보하면 안 됩니다. 각자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튼실한 개인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진 사회라야 건강합니다. 사회를 위해서 자기 욕망을 소외시키는 개인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결국 부조화스럽고 비틀어집니다." (75쪽)

"자신이 하는 일과 자신의 욕망 사이의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사람은 더 헌신적이고 더 창의적일 수 있습니다. 윤리적 힘도 바로 거기서 나옵니다." (78쪽)

"욕망은 '이곳'에 있는 자기를 '저곳'으로 끌고 가려는 힘이고 의지이며 충동이고 생명력이에요. 욕망이 거세된 인간은 '내'가 아닙니다. '내'가 아닌 인간은 사람이 아니에요! '나'를 '우리'라는 우리에 가두지 마세요! 그것이 인문적 태도가 여러분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82쪽)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사실 버릇없어지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거에요. 익숙한 것, 당연한 것, 정해진 것들에 한번 고개를 쳐들어 보는 일이에요. 왜? 익숙하게 하는 것, 편안하게 하는 것들은 자기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럼 무엇이냐? 관습이거나 이념이거나 가치관이거나, 뭐, 그런 것들이죠." (103쪽)

"철학은 사실 인간이 신을 벗어난 사건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인간의 독립과 관계되지요. 철학은 신화를 벗어나는 일입니다. 믿음을 벗어나서 생각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입니다. 신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인간의 세계로 진입하는 일입니다." (105쪽)

"독립적 주체의 확립 없이 창의성은 불가능합니다. 창의성은 주체가 대상을 외압 없이 독립적으로 대면했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독립적 주체가 확립되었을 때만이 창의성과 같은 차원에서 작동되는 인격적 성숙, 미학적 삶, 행복, 자유 등도 가능합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일반'이 아니라 '개별'로써의 자아에게만 확인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116쪽)

"우리가 인문적 통찰을 한다는 것은 뭡니까? 시멘트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있는 상태를 부드러운 상태로 볼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입니다. 명사적으로 세계를 보는 습관을 동사화하는 거지요. 점점 굳어가면서 명사화되어 가는 자신을 율동감이 있는 동사로 되살리는 거에요. (...) 이념 따위는 잘근잘근 씹은 다음에 과감히 뱉어 버리세요. 이념 같은 딱딱한 명사들이 목울대에 걸려 있는 한 말캉한 동사들이 입을 통해 나오기 어렵습니다. 몸속에 들끓는 욕망의 꿈틀거림이 이념과 개념의 필터에 막혀 터져 나오지 못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이념 따위의 명사들을 몸 밖으로 뱉어 버리세요. 핏발 서린 이념의 눈빛은 얼마나 촌스러운지요?" (121쪽)

"자기가 가지고 싶은 만큼, 가질 수 있는 만큼 잡고 빠져 나가는 것은 포기하고 손에 남겨진 것을 생각의 형태로 저장한 것, 이것이 바로 개념이에요. 그러니까 개념은 출발부터 세계를 전면적으로 반영하기에 부족한 것이고, 출발부터 소유적 상태이고, 출발부터 제한된 상태이고, 출발부터 딱딱한 거에요. (...) 개념은 실재하는 세계와 살아 움직이는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마름 같은 것인데, 이 마름이 오히려 실재하는 세계를 제어하거나 '나'를 규정한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나'가 주인의 자리를 다시 회복하는 것, 바로 이것이 중요합니다." (122~123쪽)

"이념이 강하면 강할수록 사회는 경색되고, 이념 간에 무한충돌을 빚을 수밖에 없어요. 이념은 항상 순교자를 원하니까요. 철저한 수행자만 원하니까요. 순교자와 수행자에게 타협이란 없습니다. 이념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간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습니까? 경화된 이념과 신념은 우리를 억압합니다. 그리고 광기와 폭력을 부릅니다. 이 광기와 폭력의 가장 근본적인 지점에 개념이 있습니다. 세계를 개념으로 파악하는 데 익숙한 인간의 습관과 더불어 그 개념과 세계의 진상을 관련시킬 능력을 상실한 점이 인간을 나약하게 합니다." (130~131쪽)

"세계를 발전시키고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이론가들이 아니라 실천가들이고 행동가들입니다. 전문가들이 자기만의 경색된 이론 틀로 실천가와 행동가들의 발목을 잡으면 아 ㄴ됩니다. 지식으로 무장한 이론가들이 쉽게 지위가 높아져서도 안 됩니다. 전문가들은 행동가와 실천가들에게 사용되고 이용되어야 합니다. 실천가나 행동가들은 사건에 집중해요. 수준 높은 이론가들이 나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준 높은 행동가, 수준 높은 실천가들이 나오는 겁니다. 세계는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합니다. 그래서 '내공'있는 실천가와 행동가들이 역사에서는 더욱 중요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식인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면서 미래 지향적으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46쪽)

"지식과 이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지식인은 예측을 할 수 없고,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150쪽)

"우리가 세계를 하나의 기준으로 구분하는 순간 세계는 자기한테 반쪽밖에 안 열립니다. 나머지 반쪽은 자기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처음부터 배제되어 버리는 거지요. 우리가 이 반쪽의 세계만 가지고 만족하면 다행인데, 그렇지를 않아요. 반쪽의 세계를 가진 다음에는 다른 반쪽을 비난하고 억압하지요. 나머지 반쪽을 자기와 다른 것 혹은 자기가 의존해 있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잘못되거나 비진리인 것으로 치부합니다. 심지어는 악으로 규정해 버립니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규정해 버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자신의 불행이 시작될 뿐만 아니라 사회의 혼란도 커집니다." (155쪽)

"여러분은 지식이 증가하고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서 더 유연해졌습니까? 왜 유연해지지 못합니까? 지식에 제한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경험을 관념으로 가두기 때문에 그래요. 이것을 벗어나서 자기 안에서만 비밀스럽게 활동하는 생명력, 욕망, 충동을 살려내야 합니다. 이 충동이 여러분을 인문적 통찰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156쪽)
"지식은 무엇을 이해하는 데 머물러 있는 것이 되어선 안 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지식은 '아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모르는 것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까지여야 합니다.

아는 것을 근거로 하여 우리에게 아직 열려 있지 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지식은 우리에게 뿌리로 기능하지 않고 날개로 기능할 것입니다.

한 곳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날아갈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지식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세계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기 때문입니다." (147쪽)


by 해피의서재 2014. 2. 1. 1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