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생이 온다 / 임홍택 / 웨일북스 / 2019

​서기 105년에 발명된 종이는 지금까지 2000년 가까이 인류와 함께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동서를 막론하고 일부 지식층과 권력층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이들은 오랜 기간 동안 책을 일반인들에게 감추려 노력해 왔다. 쓰고 읽는 것이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서 독점되는 시대에는 진실이 숨겨지고 거짓된 이야기와 근거 없는 신화가 판을 쳤다. (...) 이후 인쇄술의 발달로 인하여, 인류는 점차 책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

구텐베르크의 발명으로 대중화된
​깊이 읽기의 관행은 점차 사라지고, ​소수의 엘리트만의 영역이 될 가능성이 크다. 다시 말해 우리는 역사적인 표준으로 되돌아가게 될 것이다. 노스웨스턴 대학교 교수 그룹은 2005년 <Annual Review of Sociology>에서 우리의 독서 습관에 있어 최근의 ​​변화들은 ​‘대중적인 독서의 시대’가 우리 지적 역사에 있어 짧은 ‘예외’였음을 암시한다고 썼다.​ 대중적인 ​독서는 예전의 사회적 기반, 즉 독서 계층이라 부를 수 있는 소수의 것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장대익 서울대 교수가 2017년 국회에서 발표한 <독서와 시민의 품격>에서도 이와 비슷하게 사람의 뇌는 본래 독서에 적합하게 진화하지 않았다고 하였다. 독서는 비교적 최근에 생겨났기 때문이다. (92-96쪽)

종이책 한 권을 통독하는 것보다 모바일 화면으로 짧은 웹문서나 SNS 포스팅, 동영상을 검색해서 빠르게 보는 것이 익숙하다는 90년대생들. 일단 위에 언급한 책에서는 이러한 취지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있고, 어제 맞던 정보가 오늘은 틀린 사실이 되는 일이 비일비재해진 현대 세계에서 한 권의 종이책을 진득하게 완독한다는 게 어쩌면 참 쓸데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빠르게 최신 정보를 찾아내고 곳곳에 퍼진 조각난 정보들을 모아 재구성하는 게 요즘 사람들에게 가장 요구되는 능력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하나의 주제에 관한 정보를 유기적으로 정리하고 그 체계와 논리를 완성도 있게 구성한 책을 집중해서 완독하는 경험 또한 충분히 이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 긴 글을 집중해서 읽고 쓰며 논리의 유기성을 살피고 따져보는 경험이 충분치 않다면 짧게 조각난 정보 한두 가지만 보고 쉽게 경솔한 판단을 내리는 실수가 증가할 가능성이 늘어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불어 대다수의 대중들의 ‘깊이 읽는 능력’이 저하되는 가운데 소수의 엘리트들에 한해 이런 능력이 이어지며 이게 또다른 지식 권력으로 사용되는 상황으로 흘러간다면 그것 역시 미래 사회에 또다른 문제를 야기하게 되지 않을까.

​‘문서에 대한 유연하고 빠른 이동에는 익숙해졌지만 문서에 대한 집중력은 약해졌다. 특히 검색엔진은 종종 우리가 찾는 내용과 연관이 있는 문서의 일부분이나 키워드를 보여주며 우리의 관심을 끌지만, 저작물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만한 근거는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 그러니 웹에서 검색을 하면 숲을 보지 못한다. 심지어 나무조차도 보지 못한다. 잔가지와 나뭇잎만 볼 뿐이다.’ (89쪽)


by 해피의서재 2019. 3. 24. 20: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