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쾌(冊儈)는 조선시대에 책을 팔던 사람을 말한다. 요즘으로 치자면 도서 외판원쯤 될 것이다. 생계가 막막해진 몰락양반 중에 책쾌로 나서는 이들도 있었다고 한다. 책을 팔려고 하는 사람들이나 서사(오늘날의 서점)에서 책을 구해서 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이윤을 남겨 파는 것이 이들의 업무였다.

고서점의 문화사 / 이중연 지음 / 혜안 / 2007

나는 '책쾌'라는 단어를 『고서점의 문화사』를 통해 알았다. 이 책은 조선 후기의 책쾌부터 1970년대의 동대문 고서점 거리에 이르기까지, '옛 책들의 유통 과정과 고서점의 역사, 그리고 그 의미'를 다루고 있다. 이 책의 앞부분을 요즘 읽고 있는데, 여기서 나오는 '책쾌 조생' 이야기에 마음이 끌려 여기에 잠시 끄적여 보고자 한다.

"내 비록 책은 없지만, 아무개가 어떠어떠한 책을 몇 년 소장하고 있는데 내가 그 책의 일부를 판 것이오. 그 때문에 그 뜻은 모르지만 어떤 책은 누가 지었으며, 누가 주석을 달았고, 몇 권 몇 책인지 다 알 수 있다오. 그런즉 세상의 책이란 책은 다 내 책이요, 세상에 책을 아는 사람도 나만한 사람이 없을 것이오. 세상에 책이 없어진다면 나는 달리지 않을 것이요, 세상 사람이 책을 사지 않는다면 내가 날마다 마시고 취할 수도 없을 것이오. 이는 하늘이 세상의 책으로 나에게 명한 바이라, 내 생애를 책으로 마칠까 하오."
                                                                                   -『고서점의 문화사』 p. 39, 49 中

책쾌라는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진다. 책을 파는 일 자체를 즐거워했다는 일화와 온갖 종류의 책에 대해 막히지 않고 얘기하는 모습이 '박아(博雅)한 군자' 같았다는 평(위의 책, p. 49)에서 조생의 전문가, 프로페셔널의 자부심과 치열함이 묻어나는 듯하다. 

사실 책쾌란 직업은 사회에서 그리 환영받는 직업이 아니었다. 조생은 '가난한 집안에서 싸게 책을 떼어다가 비싼 값에 팔아 이윤을 챙기는 장사치'라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고, 한때는 책쾌라는 직업군 자체가 일명『명기집략』사건(조선의 왕실을 모독한 내용의 책이 책쾌들을 통해 유통된 사건으로, 이때 몇몇 책쾌들은 효시형을 당하기도 했다)의 여파로 아예 범죄집단처럼 취급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조생은 명기집략 사건 이후에도 여전히 꿋꿋하게 책쾌 활동을 계속했고, 정약용과 유만주 등 당대 지식인들과도 자주 교류하며 책 유통 전문가로서의 자신의 전문성과 역량을 숨김없이 발휘했다.

그가 얼마나 자신의 일에 열심이었고 또 일을 얼마나 즐겼는지는 그가 일했던 방식에서 엿볼 수 있다. 먼저 나와 있는 국내외의 서적목록을 참고하여 판매할 서적목록과 실제 거래할 수 있는 목록을 미리 작성해서 늘 가지고 다녔고, 거래하는 사람들에게 목록을 보여주고 납품할 책이 정해지면 바로 구입절차에 들어갔다. 다른 사람들이 어려워했던 큰 거래도 능숙하게 성사시켰다. 일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쉽지 않을 일이다. 그와 거래했던 지식인들의 기록 속에 존재하는 이 이야기들은 '조선 시대에 이토록 열정적으로 살았던 전문 직업인이 있었다'는 점에서 내게 묘한 감동을 주었다.

조생의 이야기를 기록한 이들은 조생의 실제 이름이 무엇인지, 정확한 생몰연대가 언제인지까지는 적지 않았다. 『고서점의 문화사』에서는 그의 본명을 이런저런 다른 문헌들을 기초로 하여 나름대로 추정하고 있지만 그건 내게 그렇게까지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다만 비록 이름없이 살다갔을지언정 그 열정과 전문성으로 다른 이들의 기억 속에, 그리고 기록 속에 남겨진 사람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 싶어졌을 뿐이다. 이는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살다간 조선시대의 모든 이름없는 직업인들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by 해피의서재 2012. 3. 18. 2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