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증폭사회 / 김태형 / 위즈덤하우스, 2010


1년 전 읽었던 이 책을 새삼 다시 꺼내 든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우리 사회의 정신적 병리를 심리학자의 시선으로 살핀 이 책의 내용을 나름대로 간략히 정리하자면
지금 이 사회, 그러니까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한국사회가 이 책의 제목처럼 '불안증폭사회'가 되어 있다는 것과,
그 불안은 기득권층이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유포시키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불안을 깨고 새로운 탈출구를 찾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스스로 신명을 찾아야 한다는 것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불안증폭사회>는 우리 사회가 심각한 정신병에 걸렸다고 진단한다. 책에 따르면 그 근본적인 원인은 이 한 마디로 정의내릴 수 있다.
"이게 다 IMF 때문이다!"라고.
IMF를 기점으로 신자유주의 기조가 쓰나미처럼 한국 사회를 강타하면서,
가뜩이나 사회안전망도 마뜩찮고 학벌주의 등 기저에 상당한 사회병리적 증상이 깔려 있던 우리 사회가
더욱 극심한 상황으로 밀려들어갔다는 것이다.

고용안정 등 그나마 존재하던 사회적 안전장치가 하나 둘 풀려나갔다.
기업이 문을 닫고 실업자가 넘쳐나는데 정부는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다.
건실한 노동에 따른 소득보다 월스트리트로 대변되는 '돈 놓고 돈 먹기'식 금융투자에 따른 소득을 강조하는 신자유주의 치하에서
돈이 있는 부자들은 주식과 부동산으로 부를 더욱 축적해 갔고, 그럴 여력이 못 되는 중산층은 급속도로 서민층으로 급강하했다.
'돈 놓고 돈 먹는 경제'에 고용이 늘어날 리가 없다.
대기업의 무차별적인 사업 확장을 제한하고 기업과 부자들에게 세금을 더 거두어 사회적 부의 분배를 추구하는 정책은
시장경제에 배치된다 하여 제대로 이루어지지도 못한다.
이와중에 그 권력을 제한받지 않는 대기업들은 동네 상권까지 무차별적으로 접수하고,
중소기업과 자영업은 대기업의 물량공세에 무참하게 무너져 내린다.

직장도 쉽게 얻을 수 없고, 어렵게 얻은 직장도 언제 잘릴지 모르고,
실업자가 되었을 때 생계와 재취업에 도움을 줄 공신력 있는 기관의 존재도 기대하기 어려우며,
돈이 없으면 사람 취급조차 받지 못하고,
부와 권력을 쥔 자와 그에 연줄을 댄 자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Winner takes it all'의 사회에서,
게다가 이런 아수라장을 극복해 보겠다고 나섰던 정치인이나 사회적 명사들이
좌절하거나 변절하거나 원래 그들과 이(利)를 같이하는 사람들임이 드러나는 것을 수 차례 목격한 시민들은,
이제 세상의 변화 같은 것은 처음부터 아예 기대하지 않고 오직 자기들의 힘만으로 이 정글같은 세상을 헤쳐가려 한다.
맞벌이를 뛰고, 미친듯이 재테크에 열을 올리고,
자식이 명문대에 들어가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어려서부터 입시학원을 2~3군데씩 보내고...
그러나 그 삶이 결코 행복할 리 없다.
이렇게 쫓기듯이 살아도 결국 얻게 되는 것은 빚을 동원해 가며 겨우 확보한 작은 아파트 한 채와 고학력 실업자가 된 자녀뿐이다.
평생 아등바등 살았건만 주어지는 소득은 그 사력에 가까운 노력에 비하면 너무나 못 미치는 것이 아닌가.
아니, 이미 한국인들의 삶 자체가 소박한 행복이나 순수한 욕망의 충족 같은 건 생각할 틈이 없는, 
오직 생존을 위한 사투로 점철된 것이 아닐까.
오직 돈만이 자신을 지켜줄 수 있는 유일한 '갑옷'인 시대에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사회안전망도, 약자에 대한 배려도 없는 살벌한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절박한 의식 때문에.
마치 값비싼 노스페이스 점퍼를 걸쳐야 왕따를 피할 수 있다고 믿는 청소년들처럼 말이다.
저자는 이런 한국인들의 심리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보고 있다.
생존 트라우마에 갇혀 사는 한국인...쯤으로 정리할 수 있을까.

하루하루가 언제 나락으로 추락할지 모르는 공포의 나날.
한 번 추락하면 다시는 올라오지 못하는, 패자부활전이 전혀 없는 사회.
좌절하는 사람들은 늘어만 가는데 이들을 다시 일으켜 세울 방도가 없다.
맨정신으로 살아갈 자신을 잃은 사람들은 술이나 사이비 종교 등에 중독되거나, 혹은 차라리 자살을 택한다.
가정불화와 강력범죄가 증가하고 덩달아 성정이 강퍅해진 아이들 사이에서도 폭력이 독버섯처럼 자란다.
비틀린 사회가 온갖 사회적 병리 현상의 온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팍팍한 삶과 살벌한 사회에 지친 사람들은 더 이상 아이를 낳지 않는다. 
이제 대한민국은 선진국들의 모임이라는 OECD 중에서 최악의 자살율과 최저의 출산율을 자랑하는 국가가 되어 버렸다.
<불안증폭사회>의 저자는 이것이 한국인 멸종의 전조라는 무시무시한 말도 서슴지 않는다.
있던 사람들은 죽어가고, 새로 태어나는 생명이 없다면,
한국인의 인구는 줄어들 것이고, 종국에는 멸종으로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멸종위기'에 처한 한국인이 살아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저자는 이런 살인적인 사회 환경을 바꾸지 않는 한 멸종을 막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 사회를 바꾼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채 풀죽어서 환경에 순응하며 살고 있는데,
그것은 '먹고살기 바빠서 세상을 바꿀 생각을 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며,
'먹고살기 바쁜' 것은 그렇게 살지 않으면 언제 최하 빈민층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감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불안을 부추기는 것은 다름아닌 '승자독식'과 신자유주의를 강요하는 사회 기득권층과 그들에게 장악된 언론들이다.

시민들이 불안과 좌절의 노예로 살며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며 산다면,
그들은 자기들의 이익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당에 자포자기성 표를 던지고,
막장드라마를 욕하며 보는 것으로 자신의 불안하고 초라한 현실을 애써 잊고,
생활고에 서로 눈치 보여 남편은 남편대로, 부인은 부인대로 성적 일탈을 감행하고,
아주 어려서부터 집단생활을 시작하며 정작 부모의 따스한 사랑을 독차지할 시간을 얼마 누리지 못한 아이가
어느 날 히키코모리나 학원폭력 가해 학생이 되어 TV뉴스에 등장하는 우울한 일들이 사회 곳곳에서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개선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불안증폭사회>의 저자는 이런 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존재는 시민들뿐이라고 말한다.
기득권층이 자신들에게 절대 유리한 이 체제를 스스로 버릴 리가 없기 때문이다.
80년대에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를 되찾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폭발시켰던 경험이 있는 만큼
현재의 시민들에게도 충분히 그만한 저력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불안증폭사회'의 해결책으로 저자는 서로의 마음 속에 들어앉은 불안을 떨쳐내고 새로운 희망과 용기를 얻기 위한 건강한 공동체를 만들고 활동할 것을 제시하고 있다. 한동안 사회적 화두였던 '연대'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다.

책의 내용과 표현 등이 상당 부분 과격한 면이 있다. 사족같은 부분들도 종종 보인다. 
민족 얘기나 한국인의 멸종 같은 표현은 하지 않는 게 더 나았을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그만큼 절박했음을 나타내는 지표이기도 하다.
불안에 잠식당하는 사회를 바라보는 저자의 내면 역시 만만치 않게 불안이 깊었던 모양이다. 

책이 처음 출판된 시기가 2010년 11월이다. 나는 이 책을 발행 3개월만인 작년 1월에 처음 읽었다.
그리고 다시 1년이 지나 같은 책을 다시 읽으며 우리 사회를 다시 생각해 본다.
이 책의 저자가 울분에 가까운 문장을 토해내던 그 때로부터, 우리 사회는 얼마나 많이 달라졌을까.
by 해피의서재 2012. 2. 13. 20: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