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KBS에서 방영한 <문명의 기억, 지도>라는 다큐멘터리를 흥미롭게 보았다.
지도에 대해 크게 관심을 기울인 적이 없었는데 이 다큐를 보고 나서 새삼 '지도'라는 매체에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내친김에 '지도'를 본격적으로 다룬 책을 정리한 목록을 한 번 만들어 보았다. 
나중에라도, 누구에게라도 이 목록이 작으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도박물관 / 제러미 블랙 외 / 웅진지식하우스 / 2007

역사상 중요한 방점을 찍은 지도 100개를 선정해 시대순, 주제별로 분류하여 정리하였다. ‘박물관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각 목차의 소제목은 전시실로 되어 있고 고대 점토판 지도부터 대항해시대를 함께한 해도, 근대 군사지도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지도를 한 권의 책에 수록했다.

 

(세계사의 운명을 바꾼) 해도 / 량얼핑 / 명진 / 2011

100여 장의 고지도와 해도를 통해 인류의 항로 개척 과정과 세계 역사의 흐름을 고찰한 역사서.

 

지도, 살아 있는 세상의 발견 / 존 레니 쇼트 / 작가정신 / 2009

지도란 무엇인가를 총체적으로 알고 싶다면 이 책을 통독할 것을 추천. 축척과 투영도법, 방위, 지도에 쓰이는 기호 등 지도학의 기초부터 각 시대의 지도, 측량과 지도 제작술의 역사, 현대 사회에서 지도가 갖는 기능과 의미에 대해 망라하여 서술하고 있다.

 

세계 지도의 역사 / 제러미 블랙 / 지식의숲 / 2006

각 시대의 지도 제작에 얽힌 에피소드와 지도에 반영된 당대의 세계관, 정치성에 대한 탐구가 담긴 책.

 

지도와 거짓말 / 마크 몬머니어 / 푸른길 / 2005

지도에 포함된 정보는 중립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하나 사실은 기술적 한계, 혹은 지도 제작자의 세계관과 의도에 따라 왜곡된 정보를 포함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지도의 허와 실, 한계에 대한 깨달음과 함께 지도를 능동적으로 읽을 필요성을 느끼게 해 주는 책.

 

지도, 권력의 얼굴 / 제러미 블랙 / 심산 / 2006

투영법과 세계관, 사회/경제 문제의 지도화, 정치의 지도화, 국경, 전쟁 등의 소주제를 중심으로, 지도 제작과 정치의 관계에 대해 서술한 책이다.

 

지도를 만든 사람들 / 발 로스 / 아침이슬 / 2007

정화, 항해왕 엔리케, 메르카토르, 전장의 스파이들, 필리스 페어설 등 지도의 역사에 영향을 미친 인물들을 중심으로 지도의 역사와 의미를 조명한 책.

 

우리 옛 지도와 그 아름다움 / 한영우 / 효형출판 / 1999

우리 선조들이 남긴 우리의 고지도에 관한 책이다. 우리 옛지도의 발달과정과 시대별 특성, 회화 미술과의 관계 등이 수록되어 있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 한국본 여지도에 관한 글도 실려 있다. 학술 서적의 성격이 강하다.

 

조선의 지도 천재들 / 이기봉 / 새문사 / 2011

조선 시대의 지도 제작 과정과 제작자들의 노력을 조명한 책. 조선의 지리학과 지리 정보 관리가 얼마나 체계적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by 해피의서재 2012. 3. 16. 01:51

검은 책 /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7


이 책은 난해하다. 독자에게 불친절하다. 사실 이 책은 다른 사람에게 읽히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전적으로 작가 자신을 위해 쓴 것 같다. 소설 속에 기억의 정원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책은 작가 오르한 파묵 자신의 기억의 정원을 재현하는 데 충실했다. 그의 기억 속 어린 시절 경험과 그 때 보았던 풍광들, 읽고 접하고 상상했던 것들을 허구의 세계에 고스란히 재구성하여 되살려 놓은 파묵의 기억 속 박물관. 그래서인지 소설 속 배경이나 등장하는 설정들 중 상당수가 작가의 자전적 성격이 강하다. 어떤 때는 자서전 <이스탄불>의 허구 버전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소설의 배경이 된 1980년대 터키의 대중문화와 이스탄불의 겨울 거리 풍경도 생생히 그려져 있어 정말 기억의 박물관 같은 느낌을 준다.

소설의 구성도 독특하다. 1권이 19, 2권이 1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홀수 장은 소설 속 사건의 진행 상황을 보여준다면 짝수 장은 오롯이 제각각 독립된 한 편의 글들이다. 좀 더 명확히 말하자면, 홀수 장은 주인공 갈립이 사라진 아내 뤼야와 그의 배다른 오라비이자 자신의 사촌형인 제랄을 찾아 나서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룬 메인 이야기이고, 짝수 장은 갈립이 찾아다니는 제랄이 신문 <밀리예트>에 연재하는 칼럼들이다. 갈립이 제랄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로 여기는 것이 이 칼럼들이며 칼럼 속의 내용은 소설 곳곳에서 출몰하며 메인 이야기의 전개에 영향을 미친다. 이 칼럼 속에, 또 홀수 장의 메인 이야기 속에 나오는 다양한 비유는 옛 이슬람 문학에서 따온 것이 많아 이쪽에 사전 지식이 별로 없으면 책을 가까이 대하기가 더욱 어려울 수도 있다. 물론 나 또한 그쪽 지식은 거의 없다시피 한다. 다만 역자 주와 책의 맨 뒷부분에 나오는 역자 후기에 기대어 그럭저럭 넘기듯이 이해하며 읽었다.

어쨌든 난해한 책인 건 맞는 것 같다. 쉽게 읽히고 이해가 잘 되는 책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이 책은 묘한 마력이 있다. 안 읽힐 것 같은데 자기도 모르게 계속 빠져 읽게 하는 매력이 있다. 몽환적인 매력마저 느껴지는 소설 속 제랄의 칼럼(‘보스포루스의 물이 빠져나갈 때왕자 이야기는 정말 백미다)과 눈 내리는 이스탄불의 을씨년스러운 겨울 풍경 묘사, 사라진 아내와 사촌 형(때로 우상처럼 여기던)을 찾아 헤매는 갈립의 꿈꾸는 듯한 여정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하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듯
, 이 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함께 사라진 아내와 사촌 형을 찾아나선 한 변호사의 이야기다. 그다지 화목하다고 할 수 없는, 어딘지 뭔가 결핍되어 있는 듯한 분위기의 대가족 틈에서 자란 변호사 갈립에게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촌형 제랄과, 제랄의 아버지이자 갈립의 큰아버지가 나중에 재혼해서 얻은 딸인 사촌누이 뤼야가 있다. 터키는 사촌간의 결혼이 자연스러운 모양인지, 세월이 흘러 갈립과 뤼야는 부부가 되어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제랄은 재혼한 아버지와 가정 주변을 겉돌다가 신문사 칼럼니스트가 된 후 어느 순간 완전히 독립을 한 듯 하고, 소설의 주 배경이 된 시점에서는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모처에 숨어 살다시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많은 팬을 보유하고, 사회적으로도 꽤 영향력 있는 인기 칼럼니스트인 제랄은 갈립에게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다.

어느 날 뤼야가 한 장의 쪽지만을 남긴 채 집을 나간다. 어디로 갔는지도, 왜 나갔는지도 알 수 없다. 그 즈음 사촌 형 제랄도 며칠째 신문사에 출근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갈립은 곧 알게 된다. 평소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듯했던 두 사람이 동시에 행방이 묘연해지자 갈립은 두 사람이 함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자신의 글 속에 자신만의 코드를 은근슬쩍 숨겨 놓는 특징이 있는 제랄의 칼럼 속에서 두 사람이 가 있을 곳에 대한 힌트가 있을지 모른다고 추리한 갈립은 이제 제랄의 칼럼 속에 숨은 코드들을 따라 온 이스탄불을 헤매고, 제랄이 읽었을 신문과 잡지, 스크랩을 모조리 뒤지며 제랄의 인생을, 제랄의 머릿속 기억의 정원을 파헤쳐 나가기 시작한다.

제랄이 썼던 칼럼, 그 칼럼의 소재가 되었던 사람들과 사건들, 칼럼에 인용했던 다른 사람의 문구들, 칼럼 속에 은밀히 담겨 있었던 정치적 사상이나 종교에 대한 이야기, 제랄의 집에서 발견된 스크랩 속 제랄의 관심사들, 이런 여러 텍스트를 따라 갈립이 도달한 제랄의 실체는 갈립이 기억하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부실하고 처량하다. 갈립이나 또다른 제랄의 팬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제랄은 그리 대단하고 엄청난 사람이 아니었다. 때로는 자신의 과거를 남의 이야기 하듯 냉소적으로 칼럼에 쓰고, 때로는 다른 사람의 글을 자기 것처럼 제 칼럼의 일부에 태연하게 따서 썼으며, 자신이 탐닉하던 세계에 대한 환상을 은밀히 담은 글로 사람들의 열광을 이끌어냈던 칼럼니스트 제랄의 인생. 결국 제랄도 자신이 발붙이고 사는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현학적인 텍스트의 세계로 도피하거나 혹은 매몰되어 버린 불쌍한 인생일 뿐이었던 셈이다. 갈립이 제랄의 글과 스크랩을 보고 눈물짓다가 분노의 감정을 품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이라고 보았다. 나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해.’라고 되뇌는 제랄과 갈립, 후에 우리들 누구도 우리 자신이 아니다라고 분노어린 말을 내뱉는 갈립의 모습에서 느낀 바가 그랬다.

그러고 보니 《검은 책》 속 에피소드들은 모두 이야기라는 화두로 결부되는 듯하다. 제랄의 칼럼, 당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터키와 할리우드의 영화들, 제랄이 탐닉했던 후루피주의(문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종단) . 사람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읽고 보고 영향을 받는다. 소설의 후반에 등장하는 <왕자 이야기>에서 오로지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자기에게 영향을 미칠 만한 모든 책과 사물을 없애 버리는 왕자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도 어쨌든 아주 사소한 것에서조차 자아에 영향을 받는다.

글을 읽는 것이 다른 사람의 기억을 서서히 취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 <검은 책> 제2권, p. 127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없음에도
, 사람들은 여전히 이야기를 끊임없이 쓰고 읽으며, 또 그러기를 원한다.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인생에서 도피하거나, 혹은 이야기로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안달하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신을 속박하는 몸과 영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속임수였다. 하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또다른 이야기를 얻는 방법이었다.
                                                                                                             - <검은 책> 제2권, p. 45


심하면 이야기 속 세계를 진실로 믿게 되어 현실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 그 환상이 깨어지면서 깊은 절망에 잠긴 나머지 격렬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이야기에 집착하고 탐닉한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더하다. 때로는 속칭 어그로를 끌려고, 때로는 남들에게 초라해 보이지 않으려고, 때로는 외롭지 않으려고, 때로는 자신의 신세를 이해받으려고.

읽을 때마다 새롭게 난해하고 새로이 매력적인 이 책에 대해 밤낮으로 계속 생각하다 보니 이 책은 결국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문장이 그렇게 끝나는 게 아닐까. 인생만큼 경이로운 것은 없다. 오직 글쓰기를 제외하고는.’ 이건 글쓰기가 인생보다 더 경이롭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제랄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의 생각과 정체성을 은연중에 감추어 암호처럼 포장한 글을 주고받으며 세상과 벌이는 두뇌게임. 파묵에게 글쓰기란 끝없는 자기고백이고, 혹은 세상과의 밀당게임이며, 혹은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을 기어이 말하고 싶은 사람의 하나뿐인 해방구일지도 모르겠다.

by 해피의서재 2012. 3. 1. 10:00

최근 이광주의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한길아트, 2001)이라는 책을 읽고 있다. 
중세~근대 시대의 출판과 독서 문화에 대한 여러 편의 글을 엮은 책인데 제법 흥미롭다.
종교에 경도되어 있던 중세 유럽인의 정신 세계에 대한 설명에서부터 '호화 시도서'에 대한 귀족들의 탐닉, 유럽의 도서관과 고서점, 구텐베르크의 활판인쇄 발명, 17~18세기 귀부인들의 독서 편력, 유명 작가와 출판인들의 일화 등 책과 유럽 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재미를 느낄 만한 이야기들이 많이 들어 있다.
그 중에서도 내게 와닿은 문장이 하나 있어 여기 소개한다.
《에세》의 저자인 미셸 드 몽테뉴가 한 말이다.

"나 자신의 것이 분명한 책은 타인일 수밖에 없는 친구나 숙녀와의 정분과는 달리 언제나 내 곁에 있으며 원할 때에는 언제나 나를 즐겁게 해 준다. 귀찮은 근심에서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나는 오직 책으로 향한 것만으로 족하다. (중략) 도처에서 나는 평안을 찾았으나 어디에서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하였다. 책이 있는 한쪽 구석을 제외하고는." (《아름다운 지상의 책 한 권》, p. 132)

최근 인간 관계에서의 회의를 느끼고 있던 차에 이 문장을 접한 탓인지 더욱 공감이 갔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 사이에 둘러싸여 때로는 의례적인 인사를 주고받고, 때로는 마음 통하는 사람을 만나 허심탄회하게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 적도 있었지만 그렇게 행복을 맛보는 시간은 항상 그리 길지 않았다. 말 좀 통한다 싶은 사람들은 오래지 않아 어떤 방식으로든 내 곁을 떠났고(그것이 자의이든 타의이든) 내가 다시 만나고 싶다 해서 만나지는 것도 아니었다. 때로는 나도 모르는 새에 전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말 몇 마디로 상처를 주고받고 그러다가 허무하게 인연이 끊어져 버리는 일도 있었다. 그리고 그 끊어진 끈을 돌이킬 수 있는 방법은 내 수준에서는 도저히 찾을 수도 없었고 실행할 수도 없었다.

인간관계 이야기는 이쯤 해 두고서라도, 사실 도처에 책 외에도 즐길거리는 많다. 술, 음식, TV, 스포츠 등. 그러나 그것 역시 지속적으로 내 마음을 달래주진 못했다. 찰나의 즐거움만 남기고 사라지는 허무한 존재. 그 스쳐간 자리에는 항상 공허감만이 남았다. 내가 지금껏 뭘했나 하는 그런 기분.

방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책 속에서 때로는 나의 무능과 어리석음을 책망하는 글을, 때로는 나의 약해진 마음을 따스히 보듬어주는 글을, 때로는 내가 부여잡고 고민하던 풀리지 않는 의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만나고는 했다. 책은 내가 버리지 않는 한 항상 책장 한 구석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내가 찾으면 언제든 그 자리에 있고, 내게 와서 내가 만나길 원했던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그런 책들을 잔뜩 품은 책장을 멍하니 마주하고 있다 보면 마치 그 책장이 과묵하고 속깊은, 내가 기대기 좋은 듬직한 사람처럼 느껴지곤 한다.

책은 내게 그런 존재다. 세상에서 가장 속깊고 지혜로운 친구.

먼 길을 돌고 돌아 나는 결국 다시 내 방 한켠에 마련된 책들의 마을에 안착했다.
by 해피의서재 2012. 2. 19. 1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