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작가 자신의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다. 한 작가의 저작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비록 허구의 이야기라지만 결국 작가가 실제로 보고 겪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재구성한 것임을 알 수가 있다. 파울로 코엘류의 <연금술사>만 해도 작가 자신의 젊은 시절 정서적 방황과 연금술에 심취했던 과거와 맞닿아 있고, 오르한 파묵의 책들은 작가 자신의 가족사와 그의 고향 이스탄불에 상당 부분을 기대고 있다. 파묵 얘기가 나온 김에, 요즘 내가 한창 빠져 있는 ‘이스탄불 작가오르한 파묵에 대한 내 단상을 이 글에 어설프게나마 적어 보려고 한다

 자서전 <이스탄불>에서 그가 밝힌 바와 같이, 그는 어린 시절 이스탄불 어딘가에 또다른 오르한이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공상을 쭈욱 해 왔는데 이것이 그의 여러 저작에서 핵심 키워드로 자주 등장하는 것이다. <하얀 성>만 해도 서로 외양이 똑 닮은 오스만 제국의 호자와 베네치아 인 노예의 정서적 교감과 정체성의 혼란을 그리고 있고, <검은 책>에 등장하는 가족과 아파트, 그리고 그 아파트 주변의 풍경은 실제 파묵이 살았던 이스탄불의 니샨타쉬 일대를 소재로 한 것이다. 이것은 <순수 박물관>에도 그대로 이어지고, 오스만 시대를 소재로 한 <내 이름은 빨강>에는 그의 어머니와 형, 그리고 자신의 이름이 등장한다. 여주인공 셰큐레의 이름이 바로 실제 오르한 파묵의 어머니 성함이고, 그녀의 큰아들 셰브케트 역시 실제 파묵의 형인 셰브케트 파묵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막내아들 오르한은 더 볼 것도 없이 실제 작가의 분신이고

작가가 무언가를 그토록 쓰고 싶어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누구라도 좋아. 내 이야기를 들어줘.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왜 이렇게 살 수밖에 없었는지를 좀 들어줘.’

글을 쓰는 사람들은 어쩌면, 그 스스로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의식하고 있든 의식하지 못하든, 결국 그런 마음을 가지고 글을 쓰는 게 아닐까. 그래서 자신의 살아온 시간들이 고스란히 그들의 글 속에 녹아들고, 그래서 읽는 사람들의 머릿속과 마음속에 자신이란 존재를 각인시키고 싶어하는 것이 아닐까. 혹은 현재와 다른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살고 싶은 욕구를 글로 해소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서 오르한 파묵은 항상 또다른 자신새로운 인생이라는 키워드를 화두로 안고 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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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의서재 2012. 1. 30. 11: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