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한 일도 없는데 한 해가 훌쩍 가 버렸다. 

지난해의 나는 내내 무기력했다. 만사에 의욕도 없었고, 그래서 책도 거의 읽지 않았다. 글쓰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올해는 작년보단 그래도 좀 더 활기있게 보내고 싶다. 사 놓기만 하고 묵혀 놨던 책도 한 권씩 차분히 꺼내 읽으려고 한다. 


사실 작년에 아예 책을 놓아 버렸던 건 아니다. 몇 권 읽기는 했다. 하지만 거의 정리를 안 했다. 간단한 메모만 따로 해 두었을 뿐이다. 

그 기록을 아무데나 방치해 두었다가 잊어버릴 것이 두려워져서, 이 블로그에 간단하게 메모 형식으로나마 정리해 두려고 한다. 

그래야 나중에 내가 이 책을 읽었고 그게 무슨 내용이었었구나 라고 다시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아서. 


1. 고찰명 : 중국 도시 이야기 / 신경진 / 문학동네


중국을 대표하는 25개 도시의 과거와 현재를 한 권에 담은 책. 

아득한 물안개 너머 수양버들 흩날리는 정경과 화려한 마천루들의 향연이 공존하는 중국의 도시들을 들여다보면

황제의 치세-열강의 각축장-격동의 근현대사-초고속 성장으로 이어지는 중국사의 흐름이 보인다. 


2. 하우스 스캔들 / 루시 워슬리 / 을유문화사


중세 시대에서 20세기까지의 유럽 가옥의 내부구조와 가구들의 변천사를 통해 본 서양 생활사. 

시대의 변화와 기술의 발전에 따라 개인의 생활 패턴, 사회생활의 방식도 바뀌었고 

그에 따라 집의 구조와 각 방의 역할도 계속 변화해 왔다는 것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다. 

한마디로 '집과 가구의 변천사를 보면 역사의 흐름이 보인다'는 이야기. 

이 책을 읽으며 가장 흥미로웠던 건, 중세 유럽의 주택 구조가 처음에는 중앙홀, 심플한 형태의 침대 등 단순한 구조를 띠고 있다가 

시대를 거쳐 보다 복잡한 형태로 변화했고, 그러다 현대 사회에 이르러서는 

거실의 존재, 원룸 스타일의 확산, 단순한 침구 등 다시 중세 시대의 모습과 흡사한 형태로 돌아왔다는 이야기였다. 

이런 걸 보면 과연 역사는 정말 돌고 도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3. 동네 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 / 이소이 요시미쓰 / 펄북스


일본의 한 평범한 샐러리맨이 시작한 이래 곧 전국적인 붐으로 이어진 동네도서관운동을 소개하는 책. 

'마찌 라이브러리'라 불리는 동네도서관운동은 시민들이 자택과 가게 등 각자의 공간을 작은도서관으로 꾸며 지역 사회에 개방하고 

이웃과 함께 책과 모임과 대화의 공간으로 꾸려나가는 일종의 작은도서관 운동이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출입하며 책을 통해 모두 하나 되는" 동네 도서관에서 

단절되어 가는 이웃간의, 사람 간의 소통을 회복해 나가는 일본인들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던 책이다.


4. 고전의 시작 : 사회과학 편 / 황광우, 홍승기 / 생각학교


정독이라기보단 개인적으로 이끌리는 부분을 중심으로 훑듯이 읽었지만 그렇게 읽는 것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었던 책이다. 

경제, 정치, 법, 심리학, 인문학으로 크게 섹션을 나누어 각 분야에 해당되는 고전들을 배치하고 그 내용을 간단히 정리한 책으로, 

고전을 읽기 전에 가이드 격으로 활용하면 좋을 서적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모든 책은 그 저자가 처한 시대상을 반영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새삼 다시 느꼈다. 

저자가 살았던 시대가 어떤 시대이며, 저자가 어떤 경험을 하고 어떤 사회상을 보았으며 그 시대에 어떤 사건과 사상이 있었는지, 

여기에 저자가 답한 기록이 오래도록 살아남아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이 바로 고전이 아니겠는가. 

이 책에 소개된 고전들 중에는 내가 아는 책도 있었지만 모르는 책들도 있었다. 

그로티우스의 『전쟁과 평화의 법』, 베카리아의 『범죄와 형벌』, 예링의 『권력을 위한 투쟁』, 

페르낭 브로델의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등이 그 책들이다. 

이 책들의 존재를 지금이나마 알게 해 주었다는 점에서 『고전의 시작』은 내게 더욱 감사한 책이다. 


5. 슈퍼 라이브러리 / 신승수 외 / 사람의무늬


영국과 네덜란드의 도서관 건축과 인테리어를 다룬 이 책은 "현대의 도서관은 도시의 거실이다" 이 한마디로 요약이 가능하다. 

이 말은 두 국가의 도서관 운영 방침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말이기도 하다. 

도서관에 지역 커뮤니티의 중심지 역할을 부여한 영국과, 문화예술의 복합공간을 추구하는 네덜란드의 도서관 정책을 이야기하는 이 책엔

"현대인이 기꺼이 찾아올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고민에 대한 힌트가 담겨 있다. 

도서관이 위치하는 도시와 그 도시를 살아가는 시민들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먼저이고, 

그러고서야 도서관이 그 도시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감을 잡게 되며, 

그 다음에 비로소 가장 적합한 공간구성과 서비스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도서관 공간구성에 관한 많은 이야기와 사례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공통적인 특징은 바로 '공간이 스스로 말하고 일하게 하라'는 것. 

도서관 공간을 어떻게 설계하고 주변과 어떻게 연계하느냐에 따라 더 많은 정보와 사람과 세상을 품을 수 있음을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역설하고 있다. 

더불어 오늘날의 공공도서관은 점점 고대 그리스의 아고라나 원형극장과 같은 역할을 요구받고 있는 것 같다. 

도시의 거실, 모두에게 열린 공간, 문화와 지식의 시장,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광장. 

책 속에 등장하는 공공도서관에는 이런 역할이 부여되고 있었다. 


이것은 여담이지만, 책을 읽으며 내가 생각한 도서관의 역할을 이 자리에 적어 보자면...

이제 도서관 측에서 시민들에게 일일이 뭔가 챙겨주고 베푸는 시대는 지난 듯하다. 

뜻있는 시민들이 모여 자신들에게 필요한 지식과 공간을 먼저 찾아나서고,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따라 뭔가를 직접 기획하고 실행하는 패턴이 많아지고 있는 추세에서, 

도서관은 이 시민들을 위해 공간을 내어주고 자료지원과 물리적 후원을 해 주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도서관이 이전의 전통적인 역할과 다른 새로운 역할을 요구받는 지금, 

우리 도서관의 공간과 시설, 장서, 콘텐츠, 서비스 등은 어떤 것으로 채우고 어떻게 운영되어야 하는 걸까. 


이 책은 도서관 신축 프로젝트를 앞둔, 또는 이미 추진중인 지자체 행정 담당자들과 도서관 관계자들에게 꼭 정독을 권하고 싶다. 

보다 넓고 포괄적인 시선으로 도서관 공간을 설계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본다. 

아울러 도시에 새로운 기능을 부여해서 죽어가는 도시의 활기를 되살리는 '도시재생'이 화두가 되고 있는 시점에서 

도서관이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훌륭한 오브제로도 떠오르고 있는 만큼(이 책에서도 그 점을 중요하게 다루고 있다)

도시재생 관련 종사자 분들께도 꼭 일독을 권하고 싶다. 


6.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 현실 편 / 채사장 / 한빛비즈


"세상에 알아선 안 될 것이란 없다"는 문장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책. 

이 책에선 "역사의 흐름은 모두 경제의 변화를 따라 움직여 왔으며 정치 또한 결국은 어떤 경제체제를 선택하느냐에 대한 논의"

라고 말하고 있다. 

생산수단의 변화(석기, 땅, 공장)에 의하여 빈부와 신분이 나뉘었고, 

공장을 생산수단으로 하는 산업혁명의 확산과 함께 자본주의가 태동했으며, 

획기적인 생산량 증가로 인해 공급과잉의 문제가 나타났고, 여기서 제국주의와 열강의 식민지 경쟁이 필연적으로 일어났으며,

그 종착역이 바로 1,2차 세계대전이었다는 식으로 경제와 정치, 역사의 전개 과정을 간결하게 정리해 주고 있다. 

책 중간에 간단한 그림까지 첨부되어 있어 지식의 뼈대를 세우는 데 꽤 도움이 된다. 

세상을 보다 쉽게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이는 책이다. 

그동안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며 많은 사랑을 받을 이유를 알 것 같다.

만약 정말 시간이 부족해서 이 책을 다 읽을 시간이 부족하다면, 289~292쪽만 집중해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역사, 경제, 정치의 주요 핵심 내용들이 그 4페이지 안에 아주 잘 요약되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을 인용하며 이 포스팅을 마친다.


세계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개별적 사례들을 분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는 기본적인 구분의 틀인 보수(시장 중시 신자유주의)와 진보(정부기능 중시 수정자본주의)의 개념에 의해 양분되고 결정되므로, 이 틀을 이해해야 한다. - 238쪽


by 해피의서재 2016. 1. 2. 09: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