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 / 강민선 / 임시제본소 / 2018

나름의 포부와 의욕을 가지고 사서교육원을 거쳐 한 민간위탁 공공도서관의 사서로 취업했으나, 4년간의 사서 생활 동안 현장의 온갖 부조리에 직면하며 좌절과 절망감 속에 도서관을 떠난 저자가 남긴 우울한 사서일지 혹은 도서관 실무자 잔혹사 고발기. 책 앞표지의 자료실 가구 배치도가 책의 맨 뒷장에서 아무 것도 없이 텅 빈 채 걸어잠긴 모습으로 재등장하는 편집 디자인이 책의 주제를 가장 선명하게 잘 보여주고 있음과 동시에 저자의 절망감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주어 독자의 안타까움을 더욱 증폭시킨다.

by 해피의서재 2020. 6. 29. 11:01

“우리개와 함께 살아온 삶 속에서 발견한 그들의 삶은 너무나 고귀했고 황홀했으며 날 부끄럽게 했고 그래서 때로는 너무나 슬펐다.”

(강하고 현명하고 자상한) 우리개 이야기 / 김종규 / 잼난인연 / 2019

30년간 천도농장에서 진돗개를 위시한 한국 토종견을 전문적으로 길러온 저자가 그간 길렀고 지금도 기르고 있는 견공들과의 에피소드를 쓴 글을 엮은 책이다.

제 짝을 해친 삵을 기어이 찾아내 잔혹하게 복수한 수캐 이야기, 자신이 평생 좋아하고 따르던 할아버지가 죽자 아무도 알려준 적 없는 할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 스스로 숨을 거둔 개 이야기, 산 속에서 조난당한 사람에게 마을로 가는 길을 안내해 준 개 이야기, 아픈 주인을 위해 나름 먹을 것을 챙겨준다고 쥐를 잡아 가공(?)까지 해서 주인의 방 앞에 갖다 준 개 이야기 등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견공들의 실제 이야기가 민담처럼 또는 동화처럼 구수하게 펼쳐진다.

오랫동안 개를 지켜봐 온 저자는 말한다. 개, 특히 자생적으로 태어나고 성장하고 사람들과 교감하며 살아온 우리개들은 엄연한 자의식을 가진 주체로서 대해야 할 존재들이라고. ‘믿어주는 만큼 자라고, 아껴 주는 만큼 여물고, 인정받는 만큼 성장하는 법’이라는 코이의 법칙은 당연히 개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평생을 우리개에게 바친 만큼 개들을 향하는 시종일관 애틋하고 따스한 저자의 시선은, 애견인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조언들과 함께 책의 곳곳에 잘 스며들어 있다.

by 해피의서재 2020. 6. 26. 20:49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 이수정, 이다혜 / 민음사 / 2020

네이버 오디오클립을 통해 공개되어 네티즌들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은 동명의 팟캐스트 방송 내용을 글로 옮긴 책.

한국을 대표하는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경기대 교수와 함께 동서고금의 주요 범죄 스릴러 영화 속 범죄와 범죄자들을 전문가의 시선으로 분석하고,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문제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방송 스크립트를 그대로 옮긴 대화체로 쓰여 있어 매우 쉽고 편하게 읽히나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다.

가정폭력과 성범죄, 디지털 범죄 및 각종 혐오범죄에 대한 안일한 대처로부터 대형 강력범죄의 상당수가 촉발되는 것을 이 책 속에서 영화 이야기와 함께 제시되는 다양한 실제 사례에서 선명히 볼 수 있다.
슬럼화된 지역과 하위 계층에서 일어나는 여성 및 아동 청소년 대상 범죄에 법과 공권력과 정계가 무심한 사이, 여전히 수많은 사회적/물리적 약자들이 범죄의 위험과 신변의 위협에 노출되고 있음을 이 책은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 책이 촉구하는 것은 무분별한 엄벌주의의 주장이나 자극적인 여론 형성이 아닌, 사회 구성원들 간의 연대와 사회 전반의 인권 감수성 확립 그리고 입법-사법-수사 기관의 합리적인 기능 수행이다.
개인은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범죄에 대한 경계의식을 늘 가지고 피해자와 연대하며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하며, 국가와 기관은 빠르게 변해 가는 시대에 자신들의 속도를 맞춰 가며 무엇보다 약자와 피해자의 인권에 우선하여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제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적인 메시지다.

하루가 멀다 하고 흉흉한 사건이 계속 일어나는 요즘, 어느 때보다 지금 정말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수정 교수가 이 방송에 나선 이유가 이 책의 주제를 충분히 함축한다.
“우리는 연대하기 위해 이 방송을 하고 있다.”

<책 속의 주요 문장>
한국에선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집을 나가야 해요. 그런데 상식적으로 봐도 때린 사람이 집을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42쪽)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대등한 관계에서만 성립할 수 있습니다. 너의 인격과 나의 인격을 서로 인정해 주고, 용인하고, 약점은 약점대로 수용하는 것이 정말 성숙한 사랑이죠. 한 사람은 모든 것을 제공하고 다른 한 사람은 혜택 안에서 안주하는 것은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51쪽)

형사 사법 기관 종사자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갖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80쪽)

태어날 때부터 잔혹한 가해자인 사람은 없습니다. 대부분 어린 시절에 지속적인 폭력 피해를 당하다가 이런 폭력적인 경험이 나의 일상이구나, 내가 이렇게 당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강자가 될 수밖에 없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본인이 가해자가 되는 지경에 이릅니다. (101쪽)

사실 피해자 입장을 생각해 보면 양심의 갈등 이전에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분명하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용기가 없던 사람도 용기를 낼 수도 있습니다. (126쪽)

힘없는 여성들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힘없는 남자들입니다. 하층 계급은 상층 계급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폭행은커녕 접근조차 쉽지 않기 때문에 대신 만만한 하층 계급을 향해 화풀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240쪽)

경찰력과 자본을 어떻게 잘 분리할 것인가는 사실 정부에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242쪽)

규범의 바탕이 되는 도덕성은 슬픔이라는 정서를 기반으로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슬픔도 있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이타적인 슬픔도 있지요. 슬픔은 고도화된 정서고, 이를 느낄 수 있어야 동정심이나, 공감, 또는 죄의식 등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270쪽)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 사람이 지배 계층이라도 그들을 공격할 수 없으니 만만한 쪽으로 눈을 돌려 자기방어력이 낮은 여성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이들은 여성에게 무시를 당했다고 주장하는데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는지를 찾아보면 별로 없어요. 일종의 피해 의식이자 망상인 것입니다. (...) 인셀이란 백인 남성에 한정되기보다 사회로부터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피해 의식을 가진 대다수의 사람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272쪽)

인권은 중요하지만 누구의 인권도 절대 가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결코 한쪽만 옳고 한쪽만 틀리는 일은 없습니다. 결국 정부는 공동체가 안전하게 함께할 수 있도록 상호간의 양보를 이끌어내고 갈등을 조정해야 합니다. (279쪽)

남성 조사관이라도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고 공감 능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이런 태도를 취하며 피해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별보다 고통에 대한 이해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더 중요합니다. (354쪽)

강간은 피해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를 주목하는 태도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 절제를 못하는 가해자의 욕망이 문제지, 피해자가 어떻게 생겼느냐, 피해자가 어떤 특성을 가졌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355쪽)

특히나 지금은 인터넷 등 기술 관련 범죄가 많은데요. 범죄 수사는 사실 체력보다 기술이 관건이다 보니 당연히 다양한 범죄에 대응할 수 있는 수사 인력 확충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수사 방식이 과학화될수록 성별은 더욱 중요하지 않을 테고요. (356쪽)

사람을 사고파는 일이 만연한 사회에 미래는 없습니다. (381쪽)

어느 나라나 성범죄는 발생합니다. 하지만 피해자의 인권을 중히 여기고 아이를 찾아 나서는 국가는 그 점에서 선진국입니다. 그저 일부 아이들의 불행이고, 부모가 아이를 돌보지 못해서 생긴 일이니 너희의 불행은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사회가 과연 선진국일 수 있을까요. (382쪽)

이런 피해를 입는 아이들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 일이라고 생각해야 그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사회 전체가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런 피해를 입었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고요. (389쪽)

부당한 일에 대한 분노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안다. (399쪽)

by 해피의서재 2020. 6. 24. 13:15

“이토록 문학적이며 잠언적인 물리학 에세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카를로 로베리 / 쌤앤파커스 / 2019

아인슈타인과 스티븐 호킹의 뒤를 잇는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로 통한다는 카를로 로베리 교수의 이 책은 그 외양부터가 예의 온갖 수학 공식과 계산으로 도배된 이론물리학 도서와 완전히 다르다. 작고 아담한 사이즈와 가벼운 무게, 복잡한 계산식들 대신 고금의 철학자와 문학가들 그리고 옛 고대 종교 이야기까지 인용한 지극히 인문적인 글쓰기 하며 ‘직선적이고 절대적인 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지금 현재 우리 자신이 어떻게 움직일지 선택하기에 달렸다’는, 차라리 동양철학의 중심 사상에 가까운 결론에 이르기까지.

포맷도, 내용 전개도, 주제도 과학도서답지 않게 파격적이리만치 감성적이고 문학적인 이 물리학 책을 읽다 보면, 단순히 우주와 시간에 대한 과학적 호기심의 영역을 넘어 나와 세상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고찰까지 하게 되기에 이른다. 과학을 한다는 건 곧 세상의 이치를 알아가는 일, 철학의 목적 또한 그러하기에 과학과 철학이라는 두 학문은 결국 다시 서로 통할 수밖에 없는 한 몸같은 존재인가 보다.

by 해피의서재 2020. 5. 29. 16:24

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 / 박근영 / 나무수 / 2010

이번에 새로 좋아하게 된 한 배우의 무명 시절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인터뷰집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도서관에서 찾아내 읽은 책.

내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아프고 치열하게 고뇌하고 도전한 삶의 궤적이 느껴져 그 배우가 더 좋아졌다.

여기 그를 비롯한 11명의 청춘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다. 인터뷰어의 따듯한 시선과 더불어. 통상적인 삶의 경로와 다른, 자신만의 생각과 신념과 꿈을 따라 남들이 가지 않은 거칠고 불안한 길을 걸어가기를 기꺼이 택한 아름다운 청춘들의 이야기가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반짝이고 있다.

이 책이 출판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또 어떻게 반짝이고 있을까. 최근 한 인기 드라마에서 비중 있는 역할로 나타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그 배우처럼 다른 이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그렇게 찬란하게 빛나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또 실제로도 지금 그렇지 않을까. 꼭 그러기를 바란다. 그 젊은 날의 꿈과 고뇌와 신념을 바탕으로 더욱 성숙하고, 그래서 더 아름답게 빛나는 사람들이 되어 있기를.

<목차>

여는 글
01 포토그래퍼 하덕현 : 상처 받은 자는 걷는다
02 패션 디자이너 문성지 : 아름다움은 아름답다
03 연극배우 김주헌 : 끝까지 부딪치고 넘어본다
04 화가 김민희 & 이근희 : 바람 불어오는 쪽으로 가라
05 영화감독 이종필 : 지루한 삶에 불.을.지.펴.라.
06 인테리어 잡지 에디터 임상범 : 삶은 바다로 가는 여행이다
07 만화가 김풍 : 끝까지 즐겁게 사는 게 이기는 거다
08 뮤지션 이지린 : 음악은 소소한 일상이다
09 여행작가 변종모 :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10 건축가 백지원 & 인테리어 디자이너 정연진 : 도시라는 정글을 유쾌하게 건너다
11 시인 김일영 : 슬픔도 고이면 단단해진다
맺는 글


by 해피의서재 2020. 4. 10. 12:50

역사 드라마, 상상과 왜곡 사이 / 주창윤 / 역사비평사 / 2019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사극들에는 우리가 살았던 그때의 현실과 욕망이, 그리고 시대 정신이 스며 있다. 고로, 당대의 인기 사극은 사극 속 시대의 재연이라기보다, 오히려 제작-방영 당시 시청자들의 삶을 비추는 은유의 거울이다.”

이 책의 메시지를 한 문단으로 요약하라면 아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제목만 들어도 익숙하고 반가운, 시대를 풍미한 사극들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석한 7편의 논문을 엮은 책이 지금부터 이야기할 이 책, <역사 드라마, 상상과 왜곡 사이>이다.

논문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인기 TV사극이라는 친숙한 내용을 다루고 있고 글 자체도 쉽게 쓰여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특히 일명 ‘드덕(드라마 덕후)’이라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책의 말미에는 광복 이후 2018년까지 방영된 모든 TV사극들의 목록이 첨부되어 있어 ‘한국 사극의 역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역사드라마의 정의에 대한 고찰에 관한 글을 시작으로, 역대 인기 사극에서 주로 다루어진 인물과 소재의 변천사, 시대에 따른 작법과 연출의 변화, 사극에 반영된 각 시대별 사회적 특징을 다룬 글들이 이어진다.

중국의 동북공정 논란이 한창일 때 양산되었던 고구려/고조선/발해 관련 드라마, 일본의 계속되는 역사부정에 대한 반발과 분노가 녹아든 항일 사극, 당대의 정치 양상을 과거 역사에 투영하여 표현한 정치사극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눈여겨 볼 만하다.

오늘날에 가까워질수록 거대담론보다 여성, 서민, 일상사, 생활문화, 개인의 인권을 중시하고 강조하는 경향의 사극이 많아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극은 현 시대의 반영’이라는 이 책의 주제의식은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다.

한 편의 드라마를 예시로 하여 집중 분석한 글도 있다. 예시로 제시된 작품은 바로 2018년도 최고 화제작 <미스터 션샤인>. 이 글 안에 현대 사극의 주요 특징이 모두 축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이 만약 한 장의 음악 앨범이라면 이 글은 타이틀곡쯤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시대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레퍼런스의 확장(1902~1907년 배경의 드라마에 1870~1930년대 문화 아이템을 폭넓게 사용),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들을 허구의 인물과 상상된 이야기와 한데 엮어 자연스럽게 변주한 줄거리 전개, 그 속에서 강렬하게 표현된 ‘이름 없이 용기있게 싸우다 간 위대한 이들의 단심’이라는 주제, 성격은 서로 다르지만 본질은 같은 세 남자의 순애보와 사랑 대신 대의를 선택하는 강인한 여성상을 제시한 새로운 인물상까지.

함께 실린 스틸컷 사진들이 흑백으로 인쇄되어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게 다가온다.

한국 대중문화, 특히 드라마의 변화 양상에 대해 한 걸음 더 깊이 사유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by 해피의서재 2020. 3. 12. 13:13

도서관 지식문화사 / 윤희윤 / 동아시아 / 2019

이 책은 크게 두 파트로 구분이 가능하다.

전반 파트(1~3장)에서는 세계 각국 도서관의 역사를 고대/중세/근대/현대 시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으며 중국, 일본, 아랍 지역 그리고 한국의 도서관사를 현대 시점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기술해, 이 한 권만으로도 세계의 도서관사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후반 파트(4~7장)에는 오늘날의 공공도서관들이 처해 있는 난관들과, 그 난관을 극복하기 위하여 세계 곳곳의 도서관들이 새로운 시도에 도전한 사례들, 그 장단점과 풀어야 할 과제들에 대해 논한 글들이 모여 있다.

책의 전체 내용을 꿰뚫는 하나의 주제는 이것이다.
“도서관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습득하고 활용하며 기억해야 할 지식을 정제하여 보존하고 전달하는 본질에 충실해야 하며, 단순히 시대의 유행만을 따르거나 피상적으로 겉모습의 변화에만 치중해서는 존재 의미의 상실과 도태를 피할 수 없다”는 것.

실제로 비슷한 성격의 다양한 문화기관과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는 공공도서관들이 자신들의 입지를 지킬 수 있는 길은 역시 다른 기관에는 없는 도서관만의 차별화된 성격을 지키는 것밖에 없으며, 그 길은 바로 책을 위시한 정제된 지식의 축적과 제공에 심혈을 기울여 보유한 정보의 공신력을 확보하는 데 있을 것이다.

세계 각국의 역사와 함께해 온 도서관의 과거와 오늘날의 도서관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 제기, 그리고 도서관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기본 철학 등 도서관인에게 꼭 필요한 전언들을 한데 모아 놓은 중요한 책이다. 곳곳에 각국 주요 도서관들의 외관과 내부를 찍은 컬러 사진들도 들어 있고 편집도 가독성 있게 잘 되어 있다.

다만 아무래도 학술서적에 가까운 성격의 책이라 대중적으로 많이 읽히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
<목차>
프롤로그 5

1장 고대 도서관, 신화와 역사의 경계에서
1. 도서관의 시원 17
2. 고대 문명 속의 도서관 21
3. 고대 그리스·로마의 도서관 41
4. 고대 동아시아의 도서관 56

2장 중세 도서관, 유럽 수도원부터 이슬람 모스크까지
1. 중세에 대한 오해와 편견 73
2. 수도원과 도서관 77
3. 유럽의 수도원 도서관 85
4. 이슬람 모스크와 지혜의 집 107
5. 해인사 장경판전 119

3장 근대 도서관, 혁명은 가까이에 있다
1. 중세의 가을과 근대의 봄 131
2. 인류 최고의 걸작, 인쇄술 136
3.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157
4. 근대 도서관의 파노라마 172

4장 현대 도서관, 지식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1. 공공도서관의 시작 197
2. 영미 공공도서관의 태동 200
3. 중일 공공도서관의 성립 219
4. 한국 공공도서관의 역사 243

5장 도서관의 에토스·파토스·로고스
1. 도서관의 진화와 변용 265
2. 도서관의 가치와 편익 269
3. 도서관 위기론과 해법 279
4. 도서관의 에토스·파토스·로고스 296

6장 도서관이 움직인다
1. 도서관의 고답적 정체성 315
2. 시류와 혁신의 아이콘 320
3. 장소로서의 도서관 337
4. 도시 재생과 도서관 360

7장 책과 도서관에 바치는 헌사
1. 도서관의 모태와 은유 381
2.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화 384
3.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야만적 선동 389
4. 도서관의 절대성과 상대성 400
5. 도서관의 변용 405
6. 책과 도서관의 학살 416
7. 책과 도서관에 바치는 헌사 438

주 445
찾아보기 469

by 해피의서재 2020. 2. 14. 09:14

“예술은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의 포착이다.”
“경험과 기억의 덩어리가 삶인 것이다.”

최근(9.20~10.3) 총 4부에 걸쳐 KBS1에서 방영된 실크로드 문화기행 다큐 <매혹의 실크로드>에서 가장 인상깊게 기억된 문장들이다.

길 위의 몸짓(춤), 소리(음악), 재주(기예) 이렇게 세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실크로드 문화를 다룬 이번 다큐에서 춤 테마는 무용가 차진엽이, 음악 테마는 작곡가 원일이, 기예 테마는 밥 장이 맡아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옛 신라 수도 경주에서 중국 북서부 신장위구르 자치구와 북인도를 거쳐 중동 한복판에 자리한 옛 페르시아, 즉 현재의 이란에 이르는 여정을 거치면서 세 예술가는 ‘길’과 ‘교류’를 통한 문화의 전파와 융합에 대해 이야기하고, 여행을 마친 후 여기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각자 나름대로의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냈다. 다큐의 마지막 장면, 경주 황룡사지 유적 위에서 펼쳐진 원일의 음악 <바람의 길>과 차진엽의 춤은 4부작짜리 다큐의 대미를 장식하는 가장 아름답고 장엄한 단상으로 남았다.

일러스트레이터 밥 장은 비록 무거운 곤봉을 직접 휘두르거나, 서커스를 하거나, 말을 타고 격구나 마상무예를 직접 할 수는 없지만 대신 그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섬세한 선과 강렬한 색으로 화폭에 구현해 냈다. 이 기록을 엮어 출간된 책이 바로

여행, 작품이 되다 / 밥 장 / 시루 / 2019.09.16




세월은 흐르고 옛 영화는 스러졌으며 번화했던 도시는 사막같은 폐허로 변했지만 한때 그 영광스런 시간 속에서 함께 반짝이던 ‘가장 찬란하던 한순간의 포착’, 예술만큼은 시공을 넘어 공기 속에 스며든 채 오늘까지 그 빛을 내고 있다. 이 책과 다큐가 바로 그에 대한 기록이자 증거가 아닐까 한다.

원일의 <바람의 길>을 들으며 이 책을 읽으면 다큐를 보면서 느꼈던 그 감동을 다시 불러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곡은 음원이 나올지 안 나올지 감이 안 온다...


by 해피의서재 2019. 10. 19. 21:31

역사의 쓸모 / 최태성 / 다산초당 / 2019

스타 역사 강사 최태성이 역사 속 수많은 사람들의 일생과 선택을 들여다보며 깨달은, 진정으로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지침과 교훈들을 22개의 이야기 속에 녹여 엮은 책이다.

각자 다르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한국사 속의 여러 결정적인 장면들이 읽는 이에게 깊은 통찰과 울림을 준다.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이런 말을 전하고 있다. 역사는 과거의 박제가 아니라 여전히 우리 삶 속을 흐르고 있는 현재라고. 현재 처한 세상의 부조리에 지레 포기하지도, 눈앞의 이익에 쉽게 자신을 팔지도 말라고. 자신의 존엄함을 지키며 자신과 세상을 진정으로 가치있게 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그런 삶이 비록 당사자에겐 지난하고 보는 이에겐 어리석어 보일지도 모르나 역사는 결국 그런 이들의 편이었고 끝내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해 갔노라고. ​

역사를 찬찬히 살펴보면요, 그 갈망의 힘으로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한 시대의 꿈이 이루어져서 다음 시대가 와요. 이걸 알게 되면 굉장히 설렙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꿈은 뭘까?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언제 오게 될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역사학자 E.H.카의 유명한 말처럼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미리 벽을 세워버려요. 역사 속 인물은 과거의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이름을 외우고 업적을 외우는 게 끝이죠. 하지만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면 과거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32~33쪽

역사 속에서 위인으로 평가받는 사람들은 정상에서 배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날 줄 알고, 잘 내려온 사람들이지요.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내려오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를 통해 나의 존재, 나의 격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59쪽

창조나 창의력을 말하면 사람들은 자꾸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해요. 그러나 아무리 새로워도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으면, 열광하지 않으면 널리 쓰이지 않습니다. 저는 소수를 위한, 소수의 권익을 대변하는 기술은 역사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자유의 확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어요. 폭발력을 지닌 창조적 발명은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수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진정한 창조인가 생각해 봐야 할 때입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자유로워지고 편안해질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고민을 바탕으로 한 창조만이 오랜 시간 생명력을 가지고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세상을 바꿔나갈 테니까요. -116~117쪽

저는 사람들이 명사가 아닌 동사의 꿈을 꾸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지요. 그 꿈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자신만의 자리를 발견하길 바랍니다. 그 힘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거든요. -214쪽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습니다. 한 번뿐인 인생, 한 번뿐인 젊음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역사라는 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어요? 저는 늘 사람들에게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말자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앞선 시대의 사람들에게 선물을 받은 만큼 뒤이어 이 땅에서 살아갈 사람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해 주고 싶어요. 그리하여 훗날 눈을 감는 순간,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에 일생으로 답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26쪽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살아낸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세부적으로는 다를지 몰라도 그 궤적은 같아요. 자기만의 중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나갔던 사람들이거든요. (...)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돈이 많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일 수는 없어요. 아무리 가진 게 많은 사람이라도 인격이 부족하고 그 사람만의 무언가가 없으면 진정한 ‘인싸’가 되지 못합니다. 손에 쥔 것이 없어지면 전부 사라질 인기이고 인연인 것이죠. -240쪽

시민의식이 다른 게 아닙니다. 불의에 저항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추구하는 정신, 법과 도덕을 준수하며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태도를 이릅니다. 될 대로 되라고 포기한다면, 권리만 찾고 의무는 나 몰라라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도 정치에 참여히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에게 시민의 자격이 있는 것일까요? 시민사회가 탄생한 지 100년, 이제 시민으로서 우리의 자세를 돌아볼 시간입니다. -282쪽

by 해피의서재 2019. 8. 30. 16:13

사라진 여성 과학자들 / 펜드리드 노이스 / 다른 / 2019



인류 과학 문명의 발달에 기여한 여성 과학자 16명의 일생과 그들의 업적을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의 형태로 정리하여 엮은 책.

책은 중세 프랑스 궁정에서 일하며 임상 산부인과 의학을 발전시킨 루이제 부아지에 이야기로 시작된다.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불리는 어거스타 에이다 바이런 러브레이스의 파란만장한 일생과, 라듐을 발견한 최초의 여성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마리 퀴리의 신산했던 삶, ‘등불을 든 천사’ 이미지에 가려진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공중보건학자이자 의료행정가로서의 진면목이 이어서 펼쳐지고, 근세의 천문학자 마리아 쿠니츠, 대다수의 여성이 과학과 학문으로부터 괴리되어 있던 근세 시대에 직접 ‘여성을 위한 쉬운 화학책’을 쓴 마리 뫼르드라크, 미국 해군 소속 장교로서 컴퓨터 언어 번역 프로그램인 컴파일러의 고안과 발달을 이끈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 2차대전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원자핵의 베타붕괴 반응을 실험으로 입증한 우젠슝, 수많은 항암제와 백혈병 치료제를 개발해 내며 많은 이들의 생명을 살린 거트루드 벨 엘리언에 이르기까지 아직 대중들에게 낯선 여러 여성 과학자들의 이름들이 세심한 설명과 함께 소개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청소년 교양도서에 적합한 성격의 책으로, 여성 지성사와 더불어 물리학/수학/화학/의학의 발전사도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 과학자들의 이름 중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이름도 있고, 다소 낯선 이름도 있다. 비록 책의 제목대로 ‘사라진’ 혹은 흔적도 없이 ‘지워진’ 적은 없지만. ‘잊혀진’ 혹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한’ 이름들이 이토록 많았다는 점은 반성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제부터라도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과학자들의 업적이 적극적으로 발굴되고 기억되며 널리 회자되게 하는 것이,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정진하여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여한 그녀들에 대한 합당한 대우일 것이다.

PS.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lara1020&logNo=130169405047
마리아 쿠니츠의 일대기에 대한 블로그 포스팅 주소. 추가 참고자료로 올려 본다.

by 해피의서재 2019. 8. 19.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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