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명 : 늑대를 구한 개

저자 : 스티븐 울프

출판사 : 처음북스

출판연도 : 2014

 

한 중년 남자의 좌절과 재기를 담담하게 적은 이 수기의 제목이 왜 늑대를 구한 개가 되었냐 하면

이 수기의 내용이울프라는 성씨를 가진 한 남자가 한 마리의 개를 통해 새 삶을 되찾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개의 이름은 혜성이라는 뜻의 카밋’.

그레이하운드 종으로, 원래 경주견으로 태어나고 길러졌다가 중도에 도태된 친구다.

 

개와 만나기 전 울프 씨의 사정도 이 개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허리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건실하게 잘 살던 이 미국인 변호사는

그동안 앓던 허리 상태가 어느 날 순식간에 크게 악화되면서 일어나 걷는 것조차 버거운 지경이 되고,이 때문에 결국 직장마저 잃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깊은 절망에 빠져 있던 그는 어느 날 거리에서 웬 우아하고 당당한 자태의 그레이하운드 한 마리를

목격한 뒤 그와 같은 반려견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경주견 시장에서 도태된 그레이하운드의 복지를 위해 노력하는 단체를 통해 카밋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허리 통증으로 인해 운신이 거의 불가능하다시피 한 울프 씨를 위해

카밋은 금세 문고리에 걸린 긴 끈을 물어 당겨서 문을 여는 법을 익히고,

울프 씨의 휠체어를 직접 끌고 공항을 누비기도 하며,

나중에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견 품종이라는 한계를 넘어

본격적인 장애미 도우미견으로 인정도 받는다.

 

울프 씨가 카밋을 키우는 건지 카밋이 울프 씨의 시중을 드는 건지

알쏭달쏭해 보이기까지 한 이 두 동물(어쨌든 인간도 동물이므로)의 동거는

울프 씨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던 모양이다.

우울하고 끔찍한 과거를 지나 왔음에도 기꺼이 사람을 따르고

우아함과 평정심을 잃지 않는 이 의젓한 개를 지켜보면서

울프 씨는 지난날의 자신의 삶과, 더 나아가 인생이란 것의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 생각들을 모아 정리한 글이 바로 이 책인 것이다.

 

책 속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울프 씨가 카밋을 보며 쓴 글이다.

 

카밋을 보면서 배운 사실이 하나 있었다. 때론 의연하게 예전의 모습을 조금씩 버려야 한다는 거다. 그날 그날 새롭게 찾아오는 일들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 삶에선 원래 자기가 선택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목표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한다. 실패가 아니다. 그것이 인생이다.”

 

이 책의 주제는 이 한 문단으로 요약이 가능할 것 같다.

울프 씨는 이 문단대로 카밋과 함께 자신의 변화된 모습과 새로운 나날들을 온전히 긍정하고 받아들이며 견뎠다.

카밋이 천수를 다하고 세상을 떠난 후에도 울프 씨는 카밋이 남겨 준 그 가르침을

삶의 위로이자 힘으로 삼으며 또 꿋꿋이 살아가고 있을 터이다.

.

그리고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by 해피의서재 2017. 12. 3. 10:45

최근들어 영화에 이끌리기 시작했다언제부터 갑자기 영화에 마음이 동하고, 영화를 찾아다니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날 우연히 SNS에서 어느 영화 속 흥미로운 한 장면의 스틸컷을 보게 된 것이 본격적인 시초였던 것 같기는 하다. 어쨌든 그 이후로, 정확히는 2016년도 들어서부터 나름 영화팬 흉내를 내기 시작하고 있다.

 

최신 영화도 보지만 예전에 나온 영화들 중 네티즌들이 추천하는(SNS에서든, 블로그에서든) 영화도 조금씩 뒤적여 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보게 된 영화가 톰 포드 감독의 <싱글맨>이었다.

작년에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로 전국을 뒤흔들어 놓았던 영국 배우 콜린 퍼스가 주연한 영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살아갈 의지마저 놓아 버린 채 겨우 삶을 버티고 있는 한 남자의 무거운 하루를 말없이, 묵묵히, 오직 그 남자의 표정과 시선, 그리고 그 시선 속에 들어오는 색채만으로, 아주 감각적이고 관능적으로 표현해 낸 영화였다. 영상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는 처연하면서도 아찔한 바이올린 음악까지 얹히고 나니 그야말로 영화 속 그 아득한 슬픔의 정서에 함께 빠져들기 충분했다. 나 역시 하루하루 버티기가 너무나 힘겹고 고통스럽다고 여기고 있던 차에 이 영화를 보게 되니 실로 영화가 나를 위로하는 듯한 느낌이 크게 들었다. 이후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곧 도서관에서 동명의 원작 소설을 찾아냈다.

 

영화 속 배경이 1960년대인 이유는 바로 그 원작이 쓰여진 시기, 그리고 그 원작이 배경으로 삼은 시기 역시 1960년대이기 때문이다. 58세의 소설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는 마치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자신의 동년배인 동성애자 대학 교수 조지를 내세워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냉전이 한창인 시대, 건강한 활기와는 어딘지 거리가 있는 것만 같은 캠퍼스, 별 의욕도 없이 별 볼 일 없는 강의를 듣는 학생들과 아닌게아니라 정말 별 볼 일 없어진 것만 같은 영문학이라는 학문, 조지의 집 옆에서 요란스럽게 놀며 끊임없이 소음을 유발하는 아이들, 조지를 은근히 경멸하거나 동정하는 이웃들. 그 사이에서 그나마 조지에게 유일한 삶의 활력이자 의지였던 짐은 이제 죽고 없다.

 

여기까지는 소설과 영화가 거의 일치한다. 그런데 삶을 대하는 조지의 태도와 그 분위기는 두 작품이 서로 좀 많이 달랐다. 둘 다 관조적인 인상이 강한 작품이지만, 소설 쪽이 좀 더 날것스러우면서도 강인한 느낌을 준다. 영화는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출신 감독이 연출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소설보다는 다소 처연하고 여린 느낌이 강하다.

 

소설 속 문장은 하루 동안 조지가 하는 행동과 생각들을 그냥 주욱 기술해 나아간다. 출근길 고속도로를 달리며 동성애자를 경멸하고 혐오하는 이들을 향해 조지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테러를 벌이는 자신을 상상하고, 캠퍼스에서 테니스를 치는 청년들을 바라보며 욕망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고, 체육관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순간 그래 나는 미쳤어. 그리고 앞으로 더 미칠 생각이야라고 되뇌는 조지.

 

영화 속 조지보단 소설 속 조지가 좀 더 삶에 대한 의지가 더 강해 보인다. 짐이 없는 세상에서도, 고립된 세상 속에서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채 홀로 하루하루 겨우 버텨가는 삶이라도(그래도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한 케니가 그의 앞에 등장하긴 한다), 이제 전신의 세포가 죽고 육신이 쓰레기가 되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누구에게나 예정된 바로 그 순간이 오기 직전까지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작년에 이어 올해도, 그래도 어떻게든 삶을 버텨 갈 거라고, 조지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영화보다 좀 더 남성적이고 힘있는 인상의 이 소설에서, 나는 내 삶을 다시금 돌아본다. 누구에게나 삶은 버거울 수밖에 없다. 조지처럼, 혹은 지금의 나처럼 그 버거움이 더욱 남보다 배로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버거움과 고독, 힘겨움을 진정으로 나눠 가질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조지에겐 짐이 있었을지 모르나 이제 그는 짐 없이 살아야 한다.

 

우린 어쨌거나 제각각 다른 존재일 수밖에 없다. 정말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 일생을 함께 할 수도 있겠지만 늘 그랬듯 언젠가는 그 사람을 떠나보내고 다시 홀로 남아야 한다. 언젠가는 홀로 남겨진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른다오직 홀로 자신의 삶을 오롯이 견뎌야 하는 싱글맨, 싱글우먼.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도 어떻게든 끝까지 견뎌 볼 생각이다. 소설 속의 조지가 그렇듯이. “그래 나는 미쳤어. 그리고 앞으로 더욱 미칠 생각이야라고 그를 따라 되뇌이면서.

 

by 해피의서재 2016. 8. 20. 10:29

강창래의 본격 북 에세이 <책의 정신 : 세상을 바꾼 책에 대한 소문과 진실>376쪽에 달하는 두꺼운 책이지만, 한 번 책을 집어들면 무섭게 책에 빠져들게 하는 마력을 갖고 있다.

 

메타북이라는 자평이 의미하듯 이 책은 책에 관한 책이다.

물리적으로 책은 글자가 인쇄된 수백 장의 종이를 엮어 만든 종이뭉치일 뿐이지만

그 속에는 한 시대를 있게 한 수많은 이야기들과 그 시대의 공기가 담겨 있다.

이 책의 흡인력은 바로 그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풀어나가는 데서 나온다.

 

프랑스 대혁명을 앞둔 시점, 파리 시내에 유행했던 야한 연애소설들이

어떻게 대혁명을 촉발시키는 매개채로 작용했는가에 대한 이야기부터

너무 어려워서 아무도 읽지 않았으나 오히려 그래서 더 유명해진 책들의 이야기,

고전이라 불리는 책들이 과연 언제부터 고전이었는가에 관해 다소 발칙한 시선으로 바라본 글들,

20세기 본성론양육론이라는 각각의 이데올로기의 강화에 기여하며

간접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비극을 부른 온갖 학설들의 이야기,

그리고 권력의 흥망성쇠 속에서 속절없이 불타 없어진 책들에 관한 이야기까지,

<책의 정신>은 이렇게 다섯 종류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 다른 독립성을 띠면서도 그 책들과 학설들이 대세를 타던 시대,

그리고 그 시대들이 이어지고 이어져 만들어 온 인류의 역사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는 데서

그 공통성을 가진다.

 

서로 다른 다섯 가지 이야기를 관통하는 주제는 사실 의외로 일관적이다.

책을 읽을 때, 어떤 이데올로기가 대세를 타는 것을 볼 때, 무엇에 유의하며 무엇을 읽어내야 하는지

늘 주의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일관된 주장이다.

 

책은 예로부터 세상을 바꾸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해 왔다.

새로운 이론과 사상을 담은 책부터 야한 이야기책에 이르기까지,

어떤 종류가 되었건 책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순간부터

알게 모르게 사회를,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을 발휘해 왔다.

따라서 때로는 금기시되기도 했고,

아예 불태워지는 수난을 겪기도 했으며,

권력자들의 프로파간다로 왜곡되어 이용당하기도 했다.

 

이렇듯 강력하고 때로는 위험했던 책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저자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든 객관적인 시선과 비판적인 시야를 언제나 견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러 이름난 책과 명사들의 일화를 인용하는 가운데,

진실과 이름값은 서로 일치하지 않을 수 있으므로 특정인의 명성에 함몰되지 말 것과,

책을 비롯한 어떤 정보든 모든 판단은 전적으로 자신의 몫이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다른 이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기만 해서야 정말 옳고 맞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볼 수 있을 리 없지 않나.

 

이 책의 제목이 책의 정신인 것은 책에 담겨 있는 주장과 이론을 늘 의식해야 한다는 뜻으로 지어진 것일 게다.

아무 생각 없이 맹목적으로 읽는다면 책의 정신에 지배당하는 결과를 부를 것이다.

따라서 책은 나의 정신으로, 책의 정신을 분석하면서 읽어야 한다.

 

책을 읽을 땐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

 

이 책이 말하고 싶은 바를 한 문장으로 줄이면 아마 이런 문장이 나올 것이다.

 

by 해피의서재 2016. 7. 3. 10:57

살아 있는 한, 그리고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 한, 어떤 것도 한 인간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는 없다.”

 

악명 높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가 살아남은 유대인 정신과 전문의 빅터 프랭클은

자신이 수용소에서 겪은 일들과 자신의 내면의 변화를 한 권의 책으로 펴낸다. 

그 책이 바로 그 유명한 『죽음의 수용소에서』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단순한 강제수용소 생존자의 수기를 넘어 극한의 상황 속에서의 인간의 내면정신의학적 관점에서 고찰했다는 점에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미래도 희망도 보이지 않는 수용소에서의 삶이라는 현실을 어떻게 견딜 수 있었는가에 대한 자기 고백과 더불어, 극한의 환경에 처했을 때 사람의 내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전문가의 시선으로 서술한 것이다.

또한 이 책은 수용소에서 해방된 후 프랭클이 정립한 정신과 치료 기법인 로고테라피에 대한 소개와 함께 인간 실존의 문제에 대한 철학, 그리고 기존의 정신의학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던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사상에 대한 비판까지 담고 있어 본격적인 심리학이나 정신의학 도서로서의 기능도 갖고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답변으로 프로이트는 , 아들러는 권력을 들었다.

반면 프랭클은 의미에 방점을 둔다.

야스퍼스, 하이데거 등의 실존주의 철학자와 궤를 같이 하는 이 주장의 핵심적인 내용인즉,

사람은 이미 그 자체로 하나의 의미이자 실존이며 삶 자체로부터 끊임없이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을 받고 그에 대답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질문은 강제수용소 수감과 같은 극도로 절망적인 환경에 처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들어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질문에 어떤 식으로 답할 것인가는 전적으로 각 개인의 마지막 자유의지에 달려 있으며,

자신의 삶을 끝까지 책임지겠다고 스스로 결심한다면 그 책임의식에 기대어 자신의 삶을 직시하고 의연하게 시련에 맞설 수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죽음 앞에서조차도.

프랭클은 다름아닌 자신의 수용소 수감 경험에서 그 증거를 찾는다.

 

자유를 빼앗긴 순간에 맛보게 되는 경악과 절망,

그 후에 오는 만사에 대한 무관심과 무감각함,

자유를 되찾은 직후에 겪게 되는 멍한 감정과 당황스러움,

그리고 한참 후에 갑작스레 찾아오는 벅찬 감동 등

자신이 겪은 감정의 변화에 대한 저자의 솔직한 고백은 읽는 이의 마음까지도 함께 공명케 하고 기꺼이 공감하게 만든다.

아울러 책 속에서 일관되게 전하는, 담담하면서도 힘있게 전달되는 인간 본성에 대한 희망적인 메시지는

살아갈 의미를 찾고, 살아야 할 이유를 놓지 않는 한 나는 절대 부서질 수 없다.

이 책을 읽는 이들에게 살아가는 순간마다 두고두고 힘이 되어 줄 것이다.

by 해피의서재 2016. 7. 3. 10:51



페스트

저자
알베르 까뮈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1-04-03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카뮈는 살아 있을 때 그렇게도 벗어나고자 했던 바로 그 주춧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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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프랑스령 알제리의 도시 오랑. 평화롭다 못해 따분한 나날 속을 살던 이 도시의 거리에 죽은 쥐들의 시체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쥐들의 죽음은 곧 사람들의 연이은 죽음으로 이어지고, 사망자의 수는 무서운 속도로 늘어만 간다. 전염을 막기 위해 외부 세계와 차단되어 고립된 도시는 거대한 무덤처럼 변해 간다. 죽음의 도시가 되어 버린 오랑 안에서도 사람들은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아가며 버티고, 의사 베르나르 리유를 비롯한 몇몇 사람들은 보건대를 조직해 페스트라는 이름의 이 소리없는 학살자와 싸워 나간다.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 중 하나로 일컬어지는 장편소설 『페스트』의 대략적인 줄거리이다.


기자 레이몽 랑베르가 남긴 기록을 바탕으로 베르나르 리유가 정리한 비망록의 형태를 취한 이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건조한 문체이다. 본시 작가 카뮈의 대표적인 특징 중 하나가 바로 그 건조한 문체다. '습기가 없는 마른 바람 같'다는 평론이 있을 정도로. 촉촉한 물기라곤 단 1mm도 느낄 수 없는 그의 글투는 이 소설에서 전염병 앞에 무너져 가는 한 도시의 처참하고 비극적인 모습을 역설적으로 더 강렬하게 드러낸다. 아울러 그 습기 없는 문체로 묘사된 각 등장인물들의 내면 묘사와 심경 변화, 그들 각자의 신념은 작가 카뮈가 이 작품을 통해 정말로 말하고 싶었던 가치, 즉 "인간에의 희망"을 힘주어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결국 이러한 질문에 도달하게 된다. 

죽음 앞에서 인간이란 무엇일까. 인간의 본질이란 무엇일까.

페스트가 수그러들었어도 도시 곳곳에 여전히 페스트 균이 남아 있을 것임을 알기에 마냥 안심할 수 없고, 여전히 불안 속에서 일상을 영위해야 하는 도시의 앞날을 암시하는 결말 부분에 맞닥뜨리게 되면, 우린 결국 이런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끝없이 이어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위협과 불안 속에서, 그들에 맞서 끊임없이 흔들리고 갈등하며, 그럼에도 끝까지 싸워 나가야 하는 숙명과 그 숙명을 기꺼이 감당할 의지를 가진 존재."

by 해피의서재 2015. 6. 14. 22:10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느티나무도서관. 

2000년에 설립돼 어느새 개관 15년차를 넘기고 있는 사립 공공도서관이다. 

오늘을 사는 시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자유'와 '공공성'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도서관이라는 생각에 

개관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느티나무도서관.

공립 도서관보다 상대적으로 운신이 자유로운 '사립'이라는 이점을 가지고 

느티나무도서관은 공공도서관 본연의 역할을 보다 충실히 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해 왔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바로 '도서관계의 실험실'. 


그렇게 느티나무도서관이 해온 실험들과 그간의 성과,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 방안에 대한 고민 등을 담은 책들이 이제 꾸준히 나오고 있다. 

박영숙 관장이 다른 도서관에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그간의 활동 내용을 정리하여 책들을 펴내기 시작했는데 

『꿈꿀 권리』를 시작으로 『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에 이어 이제 『이용자를 왕으로 모시진 않겠습니다』라는 세 번째 책이 나왔다.



이용자를 왕처럼 모시진 않겠습니다

저자
박영숙 지음
출판사
알마 | 2014-07-17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도서관의 기본가치인 공공성과 지적 자유는 삶 속에서 어떻게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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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매우 인상적이다. 

보통은 공공기관이건 기업이건 심지어 작은 동네 가게를 가든 요새는 '손님이 왕이다'라는 말이 철칙으로 여겨지는 상황인데 

이 책은 과감하게 '이용자를 왕처럼 모시진 않겠다'고 선언해 버린다. 


사실 바꿔 말하자면 이것은 이용자의 능동성과 자유를 존중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용자가 원하는대로 일일이 다 떠먹여 주는 것, 더 나아가 이용자의 마음 속을 먼저 다 알아채고 시종일관 따라다니며 시중을 드는 것, 

이것이 과연 실제로 이용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까?

공공도서관은 시민들이 스스로 지식을 찾고 생각을 하며 자기만의 삶을 찾아 가꿔 나갈 수 있도록 돕는,

말 그대로 '능동적인 시민을 키워내는 곳'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는 느티나무도서관에게 

위와 같은 '이용자를 왕처럼 모시기'란 도서관의 존재 가치와 배치되는 행동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은 직접 이용자를 모시고 섬기기보다, 책(과 서가, 공간의 구성)을 가지고 무언의 말을 걸면서 

이용자, 아니 시민이 스스로 도서관으로 걸어들어와 도서관에 알게모르게 자신의 손길을 보태며 함께 어우러지도록 이끈다. 


위와 같이 다양한 컬렉션을 운영하며 책을 매개로 '소리 없는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거나 


이용자들이 읽고 놓아둔 책을 서가 군데군데 모아두어 은연중에 '함께하는 책 전시회'를 유도하는 센스 등.


이외에도 다른 공공도서관에서도 참고해도 좋을 법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책 곳곳에 가득하다. 

'도서관은 책으로 말해야 한다'는 신념에 따른 장서 구성과 운영부터 도서관 건물 내부 각 공간의 배치에 관한 설명,

그리고 도서관 간 협력과 시민을 대상으로 한 도서관 교육에 대한 이야기까지. 

공공도서관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곁에 두고 계속 참고해도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실제 느티나무도서관의 현판 디자인. 이 현판 하나만으로도 이 도서관의 설립 목적과 비전을 선명하게 잘 알 수 있다.

by 해피의서재 2014. 11. 17. 22:18



데미안

저자
헤르만 헤세 지음
출판사
부북스 | 2013-01-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이 소설은 1919년에 처음으로 출간되는데, 그 시기는 세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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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함께 일하는 친구에게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넌지시 꺼낸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 공부 때문에 이 책을 읽었으며, 보통의 고전이 그렇듯이 어렵고 공감하기 힘든 책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접했을 때의 나 또한 그랬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다시 이 책이 읽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다시 펴든 『데미안』은 그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오랫동안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에 빠져 지냈다. 지금도 오르한 파묵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이 내게 던져 주는 주요 화두가 바로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다. 

지금도 기억나고는 한다. 파묵의 소설 『검은 책』에 나왔던 이 말. 


"난 나 자신이 되어야 해." 

"우리 중 누구도 우리 자신이 아니야."


전혀 다른 시기를 살았고 또 살아가는, 국적도 다른 두 작가 사이에서 비슷한 화두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역시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에밀 싱클레어는 사회가 '승인한' 밝고 도덕적이며 모든 것이 정갈하게 재단되어 있는 첫 번째 세상에만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첫 번째 세상과 상반된 어둡고, 음침하며, 난잡하며 혼란스럽지만 분명히 실재하는 두 번째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날것의 세상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정갈함의 이면에 있는 날것스런 세상은 각 개인의 마음 속에도 오롯이 실재한다. 

그러나 보통의 사회는 세상의 날것스런 이면을 굳이 외면하고 쳐다봐서도 안된다고 가르친다.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세상을 이해하고 날것의 세상에서 스스로의 성숙을 이루는 길에 대해 알려 주지 않는다.

자신의 진짜 내면을 찾기 위해 정신적인 방황을 거듭하는 싱클레어에게, 위에 언급한 문제에 대한 답을 주는 이가 바로 막스 데미안이다. 

알을 깨고 나오는 새매의 환상과, 완벽한 모신(母神)의 현신처럼 묘사되는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의 존재는 

싱클레어가 끝내 다다르기를 원하는 이상적인 자신,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것을 인정하고 끌어안으며 어떤 세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자유의지대로 살아가는 

성숙한 자아를 의미하는 일종의 은유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아무리 읽어도 이 책이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면 이 책의 프롤로그 부분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이 책의 주제가 바로 프롤로그 부분에 이미 다 나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추구하는 자였고 여전히 그러하다. 하지만 이젠 별과 책에서 추구하지 않고 내 안에서 내 피가 흐르는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나의 이야기는 유쾌하지 않다. 자신을 속이는 짓을 더는 하지 않으려는 모든 사람의 삶이 그러하듯이, 나의 이야기는 부조리와 혼란의 맛, 광기와 꿈의 맛을 낸다. 

모든 사람 하나하나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길이다. 한 번 나서 본 길, 어렴풋한 경로다. 돌이켜보면 사람은 누구나 온전히 자기 자신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신이 되려 애쓴다. 누구는 둔하고 무겁게, 누구는 더 가볍게, 각자 할 수 있는 대로. (중략) 그러나 모든 각자는 자연이 사람이라는 목표를 향해 던진 존재다. 그리고 다들 같은 곳에서 기원한다. 우리 모두는 어머니들에게서, 똑같은 심연에서 나온다. 하지만 심연에서 기원한 시도요 던져진 존재인 각자는 자기 나름의 목표로 나아간다. 우리는 서로를 납득할 수 있지만, 해석은 각자 자신에 대해서만 할 수 있다.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길을 가는 것(p.66)인데,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자신과 하나였던 적이 없기에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서로에게 달아난다고 했다(p.183).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은 죄악이며, 사람은 거북처럼 자기 안으로 완전히 기어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p.90)고 했던가.

자연이 인간을 매개로 의지하는 바는 이런저런 패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각각의 개인과 그들의 삶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p.185)고 

데미안은 말한다.


이념이나 조직의 질서 같은 것에 자신을 일치시키고 사는 사람들이 이 사회의 대다수인 가운데 

우리 중 우리 스스로의 의지대로 사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물론 그렇게 살려면 필연적으로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의 삶은 다른 이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법이다. 

훗날 내 삶을 돌아보았을 때 그 삶이 어쨌든 내 의지대로 온전히 살아낸 것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다면 

적어도 돌이킬 수 없는 내 지난 삶에 대한 후회가 조금이라도 덜하지 않을까.

아울러 내 삶이 그러하듯 다른 이의 삶도, 다른 이의 존재도 있는 그대로 중하다는 것을 안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사람을 경시하는 풍조가 조금이나마 줄어들지 않을까.


소설의 중간에 니체가 잠시 언급되기는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키에르케고르의 '신 앞에 선 단독자'를 연신 떠올렸다.

우린 모두 하나의 개인, 그 자체로 가치있는 신 앞에 선 단독자가 되어야 한다.


깨어난 사람의 의무는 이것 하나뿐이다. 다른 의무는 전혀, 그 어디에도 전혀 없다. 자기 자신을 추구하기, 내적으로 견고해지기, 끝이 어디이든 자기 자신의 길을 더듬어 나아가기, 이것이 유일한 의무다. (중략) 그 사람의 몫은 아무 운명이나가 아니라 자기 고유의 운명을 발견하고 그 운명을 내면에서 온전히, 꿋꿋이, 또한 끝까지 사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은 반쪽이요 달아나려는 시도요 뒤돌아 대중의 이상으로 도피하기, 순응이요 자기 자신의 내면을 두려워하기다. (중략) 나는 자연이 내던진 존재, 불확실성을 향해 던져진 존재, 어쩌면 새로운 것에, 어쩌면 무에 이를 존재였다. 그리고 깊디깊은 심연에서 비롯된 이 던지기가 실현되게 하기, 이 던지기의 의지를 내 안에서 느끼고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기, 오직 이것이 나의 직분이었다. 오로지 이것만이! (p.173)


by 해피의서재 2014. 8. 18. 20:56



동양고전이 뭐길래

저자
신정근 지음
출판사
동아시아 | 2012-05-23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우리 시대 대표적 인문학자 신정근 교수의 원칙적이면서도 새롭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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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시작하는 동양고전 핵심 명저 25"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논어, 맹자, 주역, 대학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양 고전들을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춰 해석한 본격 동양 고전 해설서라고 보면 될 듯하다.

동양고전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사서삼경'을 떠올리지만 

이 책의 저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제자백가의 책들까지 더하여 "팔경(八經) 오서(五書) 십이자(十二子)"로 분류하여 제시했다. 

팔경과 오서와 십이자에 포함되는 책들은 각각


팔경=주역, 시경, 서경, 예기, 춘추, 악경(음악), 이아(사전류), 효경

오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 소학

십이자(제자백가)=관자(관중), 묵자, 노자, 장자, 순자, 손자, 한비자, 상군서(상앙), 전국책(종횡가), 공손룡자(개념의 구분), 양주(자아중심주의), 추연(음양오행)


이며, 이 책들을 순차적으로 하나하나 소개하고 책들의 내용과 탄생 배경 등을 풀어내는 방식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다. 
책의 맨 뒷부분에는 각 고전의 관계를 정리한 상관도(圖)와 간략한 요약문도 있어 읽는 이의 이해를 돕는다. 

저자는 아래의 자평(自評)을 통해 고전들이 저술된 시대적 배경에 대해 이렇게 피력하고 있다.
"본서는 중국 고대의 사상사이자 고대 철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시도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시도는 여느 철학사와 달리 학파의 분류보다는 사상가의 분류에 따라서 서술되고 있다. 고대 철학이 집단적 대응의 측면도 있지만 개인적 분투가 경쟁적으로 이루어지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 분투가 제자백가라는 말처럼 선진 시대의 사상계를 풍요롭게 만들었던 것이다." (352쪽)

이 책에 따르면 팔경, 오서, 십이자의 성격은 다음과 같다. 


먼저 팔경은 고대 중국의 '현왕 시대'를 배경으로 가장 이상적이고 근본적인 사물(또는 세상)의 이치, 치국의 도리 등을 정리한 책들이다.

그래서 '세상이 움직이는 이치와 방식'을 풀어 쓴 주역이 책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그 다음으로 사회 유지를 위해 지켜야 할 질서를 다룬 예기를 제시했으며, 순수한 인간의 감정 표출을 다룬 시경(문학)과 악경(예술, 음악), 서경(현왕들의 치세를 정리한 일종의 행정문서), 춘추(법률, 역사), 효경(윤리), 이아(언어, 사전)를 '팔경'으로 묶어 정리한 것이다. 


중국 서주 시대 후기에 들어서면서 군웅할거로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관중 등 학자관료를 중심으로 보다 현실적인 내용을 다룬 책들이 등장했는데 이 도서군(群)이 바로 오서이다.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소학의 다섯 도서 중, 사실 대학과 중용은 팔서 중 하나인 예기의 일부에 있던 부분이 따로 떨어져 나와 독립한 것이다. 이 오서는 유학의 대표적인 도서들로 남아 국가 이념 정립과 통치 철학에 관한 지식을 후세 왕조에 꾸준히 공급하며 오랜 시간 그 생명력을 보여 주었다. 


한편 춘추전국시대, 오서가 확정되기 이전에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던 수많은 사상들을 담은 책들이 바로 십이자에 해당하는 제자백가의 도서들이다. 상대적으로 잊혀진 주장과 사상이 되었지만 위 인용에 나온 대로 이 사상들은 선진 시대의 사상계, 나아가 중국의 지식 세계를 풍요롭게 만들었던 존재들이다. 그러니 이 사상을 만들어 내고 널리 퍼뜨리고자 애썼던 그 수많은 '지적 투사'들은 마땅히 잊혀지지 않고 계속 세상에 기억될 권리가 있다. 


세상을 이해하고 경영하기 위한 다양한 사상과 지식, 그리고 사례(역사 속의 다양하고 날것인 인간군상 포함)를 한데 모아 놓은 이 명저들에 대해 배워 보니, 오랜 세월 동안 동아시아 학자와 관료들이 이 책들을 항상 가까이 두고 읽어야 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by 해피의서재 2014. 5. 23. 22:18



인간이 그리는 무늬

저자
최진석 지음
출판사
소나무 | 2013-05-06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소크라테스와 한나절만 보낼 수 있다면...스티브 잡스는 인간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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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이 책과 비슷한 내용과 성격의 책을 다룬 포스팅을 올렸던 기억이 나는데, 

그 책의 내용과 궤를 같이 하면서도 좀 더 강하고 직설적인 어조의 책을 발견하여 여기에 한 번 간단하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지금, 당신만의 무늬를 그리고 있습니까'라는 메시지가 워낙 강하게 다가오기도 했고. 


다른 대중인문학 책에서도 본 얘기지만, 인문(人文)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 즉 인간의 본성과 본질을 뜻한다. 

'사람'이란 존재가 가진 날것의 기질과 본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것을 굳이 억압하거나 포장하기보다 그 날것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길을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인문학의 존재 이유이자 가치일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인문학의 가치', '인문학의 존재 이유'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 간다. 

인문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왜 인문학을 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과 나름의 답변이 이 책의 주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앞에 서술한 바와 같이, 책은 "인문이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 행복해지기 위한 학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인문학을 통해 "자유롭고 관용적인 사고의 소유자, 나 자신에 충실하며 후회없이 사는 사람"이 될 것을 권한다. 

글줄 좀 읽었다고 그 지식에, 이념에, 관습에 자신과 남의 인생을 우겨넣을 것을 강요하는 사람은 인문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책의 저자는 '교조주의에 물든' 사람을 경계한다. 그것은 가짜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날것'으로 태어나 어디까지나 '날것'일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온갖 속박을 가하고 자유로운 본성을 누를 것을 강요하는 인문학은 

절대 살아있는 인문학일 수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EBS 인문학 특강'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저자가 강의해 온 내용을 엮어 정리한 이 책에서 꾸준히 이야기하는 '인문적인 인간'이란 

이 자리에서 정리해 보건대 바로 이런 사람이 아닐까 한다. 


"애써 정의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사람. 

나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고 남의 주체성 역시 존중하는 사람. 

맹목적인 사람이 아닌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 

나에게도, 남에게도 달리 생각할 자유를 인정하는 사람. 

앵무새가 아닌 자신만의 언어와 질문을 가진 사람."


그 어떤 이념이나 물리적 속박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신만의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을 펼치며 원하는 삶을 사는 것. 
그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살면서, 마찬가지로 다른 이의 '있는 그대로' 역시 기꺼이 인정하는 것. 
'지식'보다 '행동'을, '추상'보다 '현실'을 중시하고 기꺼이 그쪽을 먼저 선택하는 것.
한마디로 남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을 가지고 나 자신의 주인으로 사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자신만의 무늬를 그리는' 행위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야말로 진정으로 '인문적인' 사회일 것이다. 

나 자신에게 물어 본다. 
나는, 지금 나만의 무늬를 그리고 있는가?

.
.
.

<Remarks>
"상상력이란 것도 별반 다른 게 아니에요. 즉 인간이 움직이는 동선의 방향이 어디로 움직일지 꿈꿔 보는 능력이지요. (...) 인문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 혹은 결이라고 했지요? 다른 말로 하면 바로 인간의 동선입니다. (...) 우리가 인문학을 배우는 목적은 무엇인가요? 바로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지요.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를 독립적으로 알아내기 위해서 인문학을 배우는 것입니다." (62~63쪽)

"지속적인 성공을 하려면 자기를 지배하던 이전의 성공 기억을 벗어나서 새로운 상황을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를 보고 싶은 대로 봐서도, 세계를 봐야 하는 대로 봐서도 안됩니다. 오직 텅 빈 마음을 가지고 보이는 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념이나 가치관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신으로 하여금 세계를 봐야 하는 대로 보게 하는 강제성도 강해지지요. 이념가들이 변화하지 못하다가 실패하는 이유 역시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념가들이 선명성 경쟁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요." (66쪽)

"한국 사회는 걱정하지 마세요. 간곡히 말하건대, 제발 그러지 마세요. 자기는 자기 일만 잘 해결하면 돼요. 자기만 잘하면 됩니다. 그러면 한국 사회는 저절로 잘 되게 되어 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자기 욕망을 들여다보지 않고 왜 스스로를 사명의 완수자가 되어야 하는 존재로 규정하는지요?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가 중심이 되어서 움직여야 합니다. '자기'가 없는 곳에서는 어떤 성취도 이룰 수 없습니다. '자기'의 자리를 '사회'나 '국가'에 양보하면 안 됩니다. 각자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튼실한 개인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진 사회라야 건강합니다. 사회를 위해서 자기 욕망을 소외시키는 개인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결국 부조화스럽고 비틀어집니다." (75쪽)

"자신이 하는 일과 자신의 욕망 사이의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사람은 더 헌신적이고 더 창의적일 수 있습니다. 윤리적 힘도 바로 거기서 나옵니다." (78쪽)

"욕망은 '이곳'에 있는 자기를 '저곳'으로 끌고 가려는 힘이고 의지이며 충동이고 생명력이에요. 욕망이 거세된 인간은 '내'가 아닙니다. '내'가 아닌 인간은 사람이 아니에요! '나'를 '우리'라는 우리에 가두지 마세요! 그것이 인문적 태도가 여러분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82쪽)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사실 버릇없어지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거에요. 익숙한 것, 당연한 것, 정해진 것들에 한번 고개를 쳐들어 보는 일이에요. 왜? 익숙하게 하는 것, 편안하게 하는 것들은 자기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럼 무엇이냐? 관습이거나 이념이거나 가치관이거나, 뭐, 그런 것들이죠." (103쪽)

"철학은 사실 인간이 신을 벗어난 사건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인간의 독립과 관계되지요. 철학은 신화를 벗어나는 일입니다. 믿음을 벗어나서 생각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입니다. 신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인간의 세계로 진입하는 일입니다." (105쪽)

"독립적 주체의 확립 없이 창의성은 불가능합니다. 창의성은 주체가 대상을 외압 없이 독립적으로 대면했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독립적 주체가 확립되었을 때만이 창의성과 같은 차원에서 작동되는 인격적 성숙, 미학적 삶, 행복, 자유 등도 가능합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일반'이 아니라 '개별'로써의 자아에게만 확인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116쪽)

"우리가 인문적 통찰을 한다는 것은 뭡니까? 시멘트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있는 상태를 부드러운 상태로 볼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입니다. 명사적으로 세계를 보는 습관을 동사화하는 거지요. 점점 굳어가면서 명사화되어 가는 자신을 율동감이 있는 동사로 되살리는 거에요. (...) 이념 따위는 잘근잘근 씹은 다음에 과감히 뱉어 버리세요. 이념 같은 딱딱한 명사들이 목울대에 걸려 있는 한 말캉한 동사들이 입을 통해 나오기 어렵습니다. 몸속에 들끓는 욕망의 꿈틀거림이 이념과 개념의 필터에 막혀 터져 나오지 못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이념 따위의 명사들을 몸 밖으로 뱉어 버리세요. 핏발 서린 이념의 눈빛은 얼마나 촌스러운지요?" (121쪽)

"자기가 가지고 싶은 만큼, 가질 수 있는 만큼 잡고 빠져 나가는 것은 포기하고 손에 남겨진 것을 생각의 형태로 저장한 것, 이것이 바로 개념이에요. 그러니까 개념은 출발부터 세계를 전면적으로 반영하기에 부족한 것이고, 출발부터 소유적 상태이고, 출발부터 제한된 상태이고, 출발부터 딱딱한 거에요. (...) 개념은 실재하는 세계와 살아 움직이는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마름 같은 것인데, 이 마름이 오히려 실재하는 세계를 제어하거나 '나'를 규정한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나'가 주인의 자리를 다시 회복하는 것, 바로 이것이 중요합니다." (122~123쪽)

"이념이 강하면 강할수록 사회는 경색되고, 이념 간에 무한충돌을 빚을 수밖에 없어요. 이념은 항상 순교자를 원하니까요. 철저한 수행자만 원하니까요. 순교자와 수행자에게 타협이란 없습니다. 이념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간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습니까? 경화된 이념과 신념은 우리를 억압합니다. 그리고 광기와 폭력을 부릅니다. 이 광기와 폭력의 가장 근본적인 지점에 개념이 있습니다. 세계를 개념으로 파악하는 데 익숙한 인간의 습관과 더불어 그 개념과 세계의 진상을 관련시킬 능력을 상실한 점이 인간을 나약하게 합니다." (130~131쪽)

"세계를 발전시키고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이론가들이 아니라 실천가들이고 행동가들입니다. 전문가들이 자기만의 경색된 이론 틀로 실천가와 행동가들의 발목을 잡으면 아 ㄴ됩니다. 지식으로 무장한 이론가들이 쉽게 지위가 높아져서도 안 됩니다. 전문가들은 행동가와 실천가들에게 사용되고 이용되어야 합니다. 실천가나 행동가들은 사건에 집중해요. 수준 높은 이론가들이 나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준 높은 행동가, 수준 높은 실천가들이 나오는 겁니다. 세계는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합니다. 그래서 '내공'있는 실천가와 행동가들이 역사에서는 더욱 중요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식인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면서 미래 지향적으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46쪽)

"지식과 이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지식인은 예측을 할 수 없고,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150쪽)

"우리가 세계를 하나의 기준으로 구분하는 순간 세계는 자기한테 반쪽밖에 안 열립니다. 나머지 반쪽은 자기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처음부터 배제되어 버리는 거지요. 우리가 이 반쪽의 세계만 가지고 만족하면 다행인데, 그렇지를 않아요. 반쪽의 세계를 가진 다음에는 다른 반쪽을 비난하고 억압하지요. 나머지 반쪽을 자기와 다른 것 혹은 자기가 의존해 있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잘못되거나 비진리인 것으로 치부합니다. 심지어는 악으로 규정해 버립니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규정해 버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자신의 불행이 시작될 뿐만 아니라 사회의 혼란도 커집니다." (155쪽)

"여러분은 지식이 증가하고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서 더 유연해졌습니까? 왜 유연해지지 못합니까? 지식에 제한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경험을 관념으로 가두기 때문에 그래요. 이것을 벗어나서 자기 안에서만 비밀스럽게 활동하는 생명력, 욕망, 충동을 살려내야 합니다. 이 충동이 여러분을 인문적 통찰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156쪽)
"지식은 무엇을 이해하는 데 머물러 있는 것이 되어선 안 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지식은 '아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모르는 것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까지여야 합니다.

아는 것을 근거로 하여 우리에게 아직 열려 있지 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지식은 우리에게 뿌리로 기능하지 않고 날개로 기능할 것입니다.

한 곳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날아갈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지식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세계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기 때문입니다." (147쪽)


by 해피의서재 2014. 2. 1. 13:25


아시아 역사

저자
아서 코터렐 지음
출판사
지와사랑 | 2013-05-10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아시아를 알면 세계가 보인다!이 책은 현재의 이라크 남부에서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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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중심으로 몰려드는 아시아의 잠룡들에 맞서 세계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들의 기호와 기대에 부응하는 것뿐이다. 세계화 시대에 그 어떤 대륙도 독불장군처럼 행동하면서 살아남을 수는 없다. 

우리의 미래는 서로 거미줄처럼 얽혀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역사』 中, 763쪽)


800쪽에 육박하는 방대한 분량. 이 책을 다 읽는 데만 꼬박 3주가 걸렸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문명을 시작으로 중국의 황하 문명과 인도의 인더스 문명을 거쳐 

중국-한국-일본의 동아시아, 베트남-타이-캄보디아(크메르)-인도네시아(스리비자야)-말레이시아 등의 동남아시아, 

실크로드 일대의 중앙아시아 지역, 이란-아라비아-터키 일대의 서아시아 등 아시아 곳곳의 역사를 

시대/지역별로 챕터를 나누어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책인데,

그 서술이 마치 거대한 강의 도도한 흐름을 따라가는 듯한 느낌을 준다. 

어느 정도 익숙한 중국과 인도, 중동의 역사는 물론 

우리가 상대적으로 잘 알지 못했던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의 각 국가가 거쳐간 흥망성쇠를 자세히 알 수 있어서 좋았던 책. 


특히 책 속에 펼쳐지는 중세 이후의 아시아 역사, 특히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역사는 유럽 열강의 식민사로 점철되어 있다. 

아울러 오늘날 중동 지역이 화약고가 된 이유도 영국의 잘못된 식민 정책에서 유래했음을 

객관적인 사실 서술의 힘을 빌어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탐욕과 폭력으로 점철된 식민사가 인류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남겼는가를 생각하게 해 주는 대목이다. 


동아시아의 중국, 남아시아의 인도, 동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 서아시아의 터키가 장차 세계를 이끌어갈 것이라고 

아서 코터렐은 예측하고 있다(2011년 기준). 

지금 시점에서 볼 때 이 예측이 현실과는 다소 어긋나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세계의 중심이 다시 아시아로 오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아시아의 역사를 통해 아시아의 오늘을 읽고, 더 나아가 세계의 내일을 보는 비전을 갖게 해 주는 책이었다.


by 해피의서재 2014. 2. 1.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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