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는 책을 집어삼킬 것인가 / 김성우, 엄기호 / 따비 / 2020

사회학자 엄기호(대표작: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 <교사도 학교가 두렵다> 등)와 언어학자 김성우(대표작: <단단한 영어 공부>, <어머니와 나> 등)가 우리 사회의 문화 리터러시에 대해 나눈 대화를 정리한 대담집.

현재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세대/계층 간 언어-문화의 괴리와 소통 부재의 문제가 어디서 기원한 것인지, 왜 사람들이 보고 읽는 것은 많아지면서도 맥락을 파악하고 깊이 있게 쓰는 능력은 떨어져 가는 건지, 그렇게 떨어진 사회 전체의 문화 리터러시가 사회 통합과 민주주의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 이 문제를 극복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담겨 있다.

다소 학술적인 성격의 책이라 가볍게 읽기엔 좀 어려운 면이 있다. 하지만 좀 어렵더라도 여러 사람이 모여 일종의 독서회를 조직해 함께 공부하면서 읽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특히 미디어, 교육, 사회학, 정책 입안 관련 종사자들이 이 책을 읽고 토론할 기회를 많이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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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결혼을 성립시키고 관계를 단절하며 법안을 통과 시키고 사랑을 공표하며 전쟁을 시작한다. 혐오 발언은 비합리적 증오의 행위이며 고맙다는 말은 감사의 실천이다. ‘그저 말일 뿐인 말’ 따위는 없는 것이다.”(10쪽)

“개인이 음식을 섭취하여 몸을 만들어 가듯, 우리가 접하는 매체는 사고와 정서의 뼈대를 만든다. 그렇기에 이 시대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은 세계를 인식하고 지식을 구성하며 자신의 정체성과 관계 맺기의 양상을 구성하는 방식의 거대한 변화다. 읽고 쓰기의 풍경 또한 빠르게 바뀌고 있다. 문해력의 추락에 대한 우려가 커져 간다.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 도도한 흐름을 이해하고 지혜롭게 항해 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듯하다.”(12쪽)

“자신의 삶과 유리된 글은 누구도 쉽게 읽을 수가 없거든요. 제게 법학자가 쓴 논문을 주고 읽으라고 하면 굉장히 힘들어 할 것이고 못 읽어내는 부분도 많을 거예요. 텍스트라는 것이 객관적이고 공평한 난이도를 갖고 있고 훈련을 받으면 모두가 읽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사실 삶과 권력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거죠. 어떤 텍스트로 평가를 하느냐는 권력의 문제예요.”(47쪽)

“리터러시를 아는 것 자체가 삶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삶의 리터러시이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삶의 리터러시, 즉 삶을 읽어내는 리터러시는 완전히 무시되는 거죠. 권력화된 방식의 리터러시에서는 반대로 권력자들의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을 문해력이 없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리터러시는 백성을 계몽하고 민주주의를 운용하는 도구가 아니라 오히려 문화자본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 권력을 공고히 하고 백성들을 배제하는 방식이 됩니다.”(50쪽)

“나는 리터러시란 응답할 줄 아는 역량이라고 생각한다. 이 대담에서 우리가 정리한 것처럼, 바벨탑 쌓기가 아니라 다리 놓기로서의 리터러시란 홀로 표현하고 선포하는 것을 넘어 응답할 줄 아는 역량이다. 응답과 응답이 끊이지 않고 순환함으로써 서로 배움을 부추기고 발생하게 하는 것, 이게 새로운 배움의 방법론이자 조사연구의 방법론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292쪽)

by 해피의서재 2020. 11. 9. 22:10

당신의 밤을 위한 드라마 사용법 / 김민정 / 작가 / 2020

국내에 드문 본격 드라마 리뷰 에세이 북. 비평보다는 리뷰라는 표현이 좀 더 어울리는 책이다. 다루는 작품은 한국 드라마가 다수이지만 외국 드라마도 여럿 포함되어 있다. 당초 생각만큼 분량이 많거나 내용이 깊지는 않아 아쉬운 감이 있지만 대중예술의 한 장르로서 드라마를 조망하고 작품의 행간을 적극적으로 읽어 나가며 작가가 전하고자 하는 주제의식과 메시지에 대하여 들여다보고자 한 시도는 긍정적인 작업이라고 여겨진다.

<이 책에 실린 드라마 목록>

<워킹데드>
<동백꽃 필 무렵>
<지정생존자> (미국 오리지널 버전)
<굿 플레이스>
<드라마월드>
<밴더스내치>
<뷰티 인사이드>
<눈이 부시게>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별나도 괜찮아>
<열혈사제>
<휴먼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하늘에서 내리는 일억 개의 별>
<미스터 션샤인>
<사의 찬미>
<라이프>
<스케치>
<보좌관>
<모두의 거짓말>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by 해피의서재 2020. 10. 18. 09:09

코로나 사피엔스 / 정관용 외 / 인플루엔셜 / 2020

코로나19는 한순간에 우리 사는 세상을 완전히 바꿔 놓았다. ‘우리는 코로나 이전 시대로 돌아갈 수 없다’던 여러 전문가들의 소견은 이미 현실이 되었다. 기존의 사회 질서는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생태환경, 경제, 법 체계, 문화, 교육, 무엇 하나 예전과 같을 수 없다. 모든 것이 혼돈 속에 놓인 가운데 앞으로의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어떤 형태로 사회 체제를 정비하고 디자인해야 할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격변의 시점을 우리는 살고 있다.

여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6명의 석학이 있다. 생태, 경제, 과학, 정치사회, 철학, 심리학 이렇게 여섯 분야의 권위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CBS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대담이 이 한 권의 책에 모여 엮였다. 포스트 코로나, 뉴노멀 시대를 살아나가기 위해 앞으로 한국 사회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저마다의 시점에서 역설한 이들의 메시지를 한 문장으로 아래와 같이 정리해 보았다.

(이하 책 속 서문(8~10쪽) 일부 인용)

최재천- 공장식 축산과 인구 밀집, 무차별 개발 등 인류의 무분별한 자연 침범을 멈추고 자연과의 공존과 친환경 생활을 추구하는 생태백신과 행동백신이 필요하다.

장하준- 우리가 가야 할 길은 경제체제의 주객전도 현상을 바로잡고 시민권에 기반한 보편적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것이다.

최재붕-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비대면 경제/문화 체제가 본격적으로 뿌리내리기 시작한 이상, 디지털화와 스마트 기기, AI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에 기반한 새로운 사회-경제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다.

홍기빈- 시장근본주의를 극복하고, 포용적이고 효율적인 민주주의를 구축하며, 약자에 대한 사회적 방역과 욕망에 대한 질서 부여, 도시적 공간 집약화의 해소만이 인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길이다.

김누리- 위기 대응의 공공인프라를 초토화해 온 신자유주의는 더 이상 당연시되지 않을 것이며, 강자의 약자 무한착취를 기반으로 돌아가는 야수 자본주의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극복해 내야 한다.

김경일- 기존 사회가 강요하는 무한 욕망과 서로간의 파괴적인 경쟁으로 점철된 세상이 아닌, 각 개인의 뜻대로 각자의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다양성이 공존하는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by 해피의서재 2020. 10. 13. 19:18

사람에 대한 예의 / 권석천 / 어크로스 / 2020

경력 30년차 기자가 그동안 언론계에 몸담으면서 보고 듣고 겪었던 사건들과 사회 이슈들, 그리고 기자이자 직장인으로서 살아 왔던 궤적을 돌아보며 써내려간 칼럼들을 한 편의 책으로 엮었다. 유명한 영화를 인용해 글을 풀어가기도 하고, 가상의 인물이나 사건, 정당을 내세운 짧은 소설이나 가상의 편지 형식으로 쓴 글도 있다. 기존의 칼럼 양식을 최대한 배제한 자유로운 형태의 글쓰기를 추구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정도면 괜찮은 인간인 줄 알았던 나 자신’이 사실은 이 뒤틀려가는 한국 사회 앞에 얼마나 하찮고 비겁한 존재였는지를 토로하며, 온갖 사회 병리 속에 각처에서 인간성이 무참히 짓밟히는 2020년대 한국 사회의 암울한 일면들을 선명하게 지적한다. 책 속 곳곳에 현재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이 진지하게 귀기울여야 할 중요한 진언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형식적 파격에 신경쓴 나머지 그래서 결론이 뭔가 싶은 글도 몇 편 있지만, 그 외에는 거의 손색이 없는 좋은 사회 에세이집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일독할 수 있길 기원한다.

<책 속 문장들>

누가 대신 책임져 주느냐는 반문이 사회 윤리로 굳어지면 힘 있는 자가 모든 걸 먹어치우는 약육강식의 세렝게티 초원이 펼쳐진다. 누가 미끼에 걸려 피해를 입었을 때, 그 책임을 당사자가 지라는 것은 부당할 뿐 아니라 잔인한 요구다. 그 요구는 사회적 구조의 문제점을 교묘하게 은폐시킨다.
불행이 엄습했을 때, 범죄와 혐오의 대상이 됐을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책하는 것이 아니다. 피해자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다. 불행과 범죄와 혐오에 맞서 싸우는 것이다. (32쪽)

악의 낙수 효과는 현실이다. 위에서 물이 넘치면 아래로 내려가듯이 악은 계속해서 피라미드 계단 아래로 흘러내린다. 직장 상사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는 상사에게 되돌아가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그 아래에 있는 부하에게 내려간다. 스트레스 질량 보존의 법칙일까. 갈 곳을 찾지 못한 스트레스는 거리로 쏟아져 나온다. 대상은 눈앞의 불특정 다수다. (...) 거리에서 분노를 풀 용기조차 없는 자들은 아내와 자녀에게 푼다. 한국 사회에 가정 폭력과 아동 학대가 넘쳐나는 이유 중 하나다. 학대받은 아이들은 다시 학교에서 분노를 배설한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폭력에 면죄부를 주자는 게 아니다. 폭력의 배경에 무엇이 있는지 보자는 것이다. (41쪽)

‘너를 위해’ 이데올로기는 위험하다. 진심으로 ‘너를 위한 것’일지라도 자칫 너에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변질되기 쉽다. 자식에 대한 관심이 집착과 학대로, 사랑이 스토킹으로 변하는 건 순간이다. 너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얼마든지 무례해지고 잔인해질 수 있는 게 인간이다. 어떤 관계든 서로를 인격체로 존중할 수 있는 적정 거리는 반드시 필요하다. (50쪽)

사회적 기억은 보다 정밀한 조작의 대상이 되곤 합니다. 이른바 ‘가짜 뉴스’가 겨냥하는 게 바로 사회적 기억입니다. 가짜 뉴스들이 쌓이고 쌓이면 진실이 뒤틀리고, 뒤틀린 진실들이 모이면 역사가 됩니다. 그래서 정치 세력들은 사회적 기억을 놓고 치열하게 갈등하고 대결합니다. (63쪽)

평범한 사람들의 작은 악이 거악을 떠받치고 있는 건 아닌가. 거악은 한두 사람의 악인이 아니라 선량한 시민들의 작은 악들이 모인 결과가 아닌가. (127쪽)

우리가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믿는 것들이 주변의 영향에서 얼마나 자유로울까. 사무실에, 나와 내 친구들 사이에 공기처럼 떠다니는, 크고작은 편견의 미세먼지들이 뭉치고 뭉쳐서 내 가치관이 되고, 신념이 된 것은 아닐까. 그 가치관과 신념이 얼마나 균형감각 있고, 상식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142쪽)

나는 “법전에 있는 대로 헌법이 지켜지고 있다”고 말할 자신이 없다. 헌법이 제대로 지켜지고 있다면 힘이 있다는 이유로, 돈이 많다는 이유로, 그 무수한 ‘갑질’이 왜 일어나는가. ‘유전무죄’와 전관예우, 그리고 금수저/은수저/흙수저의 계급은 또 무엇인가. (166쪽)

폭력의 위력은 단지 통증에 그치지 않는다, 스스로의 인격에 모멸감을 갖게 한다. 자신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는 취약한 존재이고, 언제라도 무릎 꿇을 수 있는 인간이라는 자각은 자존감을 무너뜨린다. 폭력은 아무 수식어도 필요 없다. 그 자체로 절대적이다. (206쪽)

한국에는 자신이 의식하든 못 하든, 유능한 공포 기획자들이 많습니다. 공부 잘하고, 좋은 대학 나오고, 번듯하게 차려입은 그들이 저마다의 자리에서 공포를 생산하고 유통하며 우릴 지옥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더 섬뜩한 것은 그들에게 악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악의도 없이, 그래서 망설임도 없이 근면 성실하게 성공의 사다리를 기어오를 뿐입니다. (244쪽)

폭력은 결코 ‘인간적인 반응’이라고 부를 수 없어. 인간적인 반응이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반응이니까. 좋은 일이 있을 때 기뻐하고,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고, 다른 누군가의 고통에 슬퍼하고, 남의 행복에 즐거워할 수 있어야 인간은 인간이 되는 거야. (306쪽)

법 논리와 법 감정은 서로 연결돼 있고, 함께 진화해야 한다. 법 감정은 앞서 가는데 법 논리가 제자리걸음을 한다면 그 사회는 불안해질 수밖에 없다. 법 논리는 어떻게든 법 감정을 설득해 편차를 줄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 (318쪽)

정의는 머리 좋고 공부 잘하는 자들의 독점물이 아니다. 피해자나 그 가족이 완전하지 않다고, 결함이 있다고, 그들을 조롱하거나 비켜가서는 안된다. ‘순수한 피해자’라는 도식은 피해자의 발언권을 박탈하려는 수작이다.
정의는 늘 불완전하고 삐걱거리지만 사람들 마음 속에 살아 숨쉰다. 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인간이 불완전한 정의를 추구하는 것이다. 우리가 향해야 하는 건 결과로서의 정의가 아니라 과정으로서의 정의다. (320쪽)

by 해피의서재 2020. 8. 9. 20:53

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 / 존 허스트 / 위즈덤하우스 / 2017

유럽 세계의 형성과 각 국가별 역사적 변화 양상을 최대한 간단하게 추려 정리한 책. 중간중간에 지도와 도표도 들어 있어 마치 이해하기 좋게 잘 집필된 역사 교과서 같은 느낌도 준다. 제목으로는 세계사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이 책은 더도 덜도 말고 딱 유럽의 이야기만을 담고 있다. 차라리 ‘세상에서 가장 짧은 유럽사’라고 제목을 정하는 게 나을 뻔했다.

정말 최소한도의 요약 내용만 빨리 읽을 생각이라면 1장 부분만 읽어도 충분하다. (애초에 이를 염두에 둔 구성을 하고 있다) 2장은 1장의 내용을 좀 더 구체화하여, 여러 가지 주제어로 세분화된 각 챕터 안에서 연대기적 서술로 유럽 사회의 복합적인 변화를 정리하고 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집필 계기에서 알 수 있듯 사실상 학교 수업 교재와 같은 성격의 책으로, 유럽 역사의 개괄적 이해에는 큰 도움이 되는 반면 세밀한 역사 서술이나 보다 깊이있는 역사적 통찰을 발견하고 싶은 독자에게는 맞지 않는 책.

<목차>

서문

1부. 단숨에 정리하는 2,000년 세계사
1. 고대와 중세: 모든 것은 그리스와 로마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기독교의 탄생│게르만족의 등장│그리스­로마 세계와 기독교의 융합│게르만족과 기독교│유럽의 중세
2. 근대: 세계를 제패한 유럽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르네상스: 유럽의 세속화│종교개혁: 기독교 교회의 붕괴│근대과학과 진보│계몽주의: 이성의 발견│낭만주의와 민족주의│근대 유럽의 그림자
*쉬어 가기: 고전은 어떻게 최고가 되었나

2부. 조금 더 꼼꼼히 들여다본 세계사
1. 침략과 정복: 이민족과의 전쟁이 만든 기독교 세계
게르만족의 침입과 로마의 흥망│무슬림의 침입│바이킹의 등장│유럽의 팽창
2. 그리스와 로마의 정치: 군대와 세금에서 시작된 정치
그리스의 민주정치│로마의 민회와 집정관│로마공화정│로마제국과 황제
3. 중세와 근대의 정치: 민주주의를 향한 긴 여정
중세 시대의 봉건 군주│절대군주의 등장│잉글랜드의 의회정치│프랑스혁명
4. 황제와 교황: 종교와 정치가 공생하는 법
프랑크왕국의 분열과 그 이후│교황과 황제의 권력투쟁│근대 이후 종교와 정치
5. 언어: 살아 있는 송장, 라틴어
로마제국과 라틴어│이민족의 침입과 언어의 변화│라틴어가 유럽에 미친 영향
6. 서민: 묵묵히 역사를 지탱해 온 보통 사람들
유럽 서민의 삶과 농업│농노제 이후의 변화
*쉬어 가기: 유럽은 어떻게 근대성을 획득했는가

3부. 세계를 뒤흔든 사건들
들어가기 전에: 유럽을 파괴한 두 개의 힘
1. 산업화와 혁명: 참정권을 가진 노동자의 등장
잉글랜드와 차티스트운동│프랑스의 체제 변화│독일제국의 등장│러시아혁명
2.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위기가 만들어 낸 괴물
제1차 세계대전│패배 이후 독일│히틀러와 나치│제2차 세계대전│전쟁 이후 새로운 유럽연합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by 해피의서재 2020. 8. 6. 00:27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 정지우 / 한겨레출판 / 2020

지금 당장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꼭 한 번씩 읽어봐야 할, 증오와 분노가 만연한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있게 한 근본적인 문제와 그 해결 방안을 찾아가는 열쇠가 되어 줄 책.

총 3개 장에 걸쳐 청년, 여성, 공동체 문제에 관한 글들을 각각의 장에 모아 엮은 형태의 책이다.

타자혐오와 온갖 종류의 폭력으로 가득 찬 한국인의 일상을 30대 연령층의 생활인 입장에서 들여다보고 이 모든 병리현상들이 어디로부터 기원했는지에 대해 고찰한 끝에 내린 나름의 결론과 신념들을 저자는 나직하고 담담한 어조로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고 오직 생존만이 삶의 지상과제이자 지향점이 되어 버린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 절망이 서로를 공격하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저자의 진단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법 조항 몇 가지 뜯어고치고 사법부 판사 몇 명 징계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권위적이고 반인권적이며 폭력적인 각 사회조직의 구조와 이를 부추기는 교육-경제 체제부터 하나하나 세심하게 바꿔 나가고서야 오늘날 한국 사회 전체를 망가뜨리고 있는 이 모든 병폐를 해결할 실마리가 보일 것이라는 메세지를, 이 책은 조용하면서도 힘있는 어조로 전하고 있다.

by 해피의서재 2020. 7. 21. 14:45

아무도 알려주지 않은 도서관 사서 실무 / 강민선 / 임시제본소 / 2018

나름의 포부와 의욕을 가지고 사서교육원을 거쳐 한 민간위탁 공공도서관의 사서로 취업했으나, 4년간의 사서 생활 동안 현장의 온갖 부조리에 직면하며 좌절과 절망감 속에 도서관을 떠난 저자가 남긴 우울한 사서일지 혹은 도서관 실무자 잔혹사 고발기. 책 앞표지의 자료실 가구 배치도가 책의 맨 뒷장에서 아무 것도 없이 텅 빈 채 걸어잠긴 모습으로 재등장하는 편집 디자인이 책의 주제를 가장 선명하게 잘 보여주고 있음과 동시에 저자의 절망감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주어 독자의 안타까움을 더욱 증폭시킨다.

by 해피의서재 2020. 6. 29. 11:01

“우리개와 함께 살아온 삶 속에서 발견한 그들의 삶은 너무나 고귀했고 황홀했으며 날 부끄럽게 했고 그래서 때로는 너무나 슬펐다.”

(강하고 현명하고 자상한) 우리개 이야기 / 김종규 / 잼난인연 / 2019

30년간 천도농장에서 진돗개를 위시한 한국 토종견을 전문적으로 길러온 저자가 그간 길렀고 지금도 기르고 있는 견공들과의 에피소드를 쓴 글을 엮은 책이다.

제 짝을 해친 삵을 기어이 찾아내 잔혹하게 복수한 수캐 이야기, 자신이 평생 좋아하고 따르던 할아버지가 죽자 아무도 알려준 적 없는 할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 스스로 숨을 거둔 개 이야기, 산 속에서 조난당한 사람에게 마을로 가는 길을 안내해 준 개 이야기, 아픈 주인을 위해 나름 먹을 것을 챙겨준다고 쥐를 잡아 가공(?)까지 해서 주인의 방 앞에 갖다 준 개 이야기 등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견공들의 실제 이야기가 민담처럼 또는 동화처럼 구수하게 펼쳐진다.

오랫동안 개를 지켜봐 온 저자는 말한다. 개, 특히 자생적으로 태어나고 성장하고 사람들과 교감하며 살아온 우리개들은 엄연한 자의식을 가진 주체로서 대해야 할 존재들이라고. ‘믿어주는 만큼 자라고, 아껴 주는 만큼 여물고, 인정받는 만큼 성장하는 법’이라는 코이의 법칙은 당연히 개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평생을 우리개에게 바친 만큼 개들을 향하는 시종일관 애틋하고 따스한 저자의 시선은, 애견인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조언들과 함께 책의 곳곳에 잘 스며들어 있다.

by 해피의서재 2020. 6. 26. 20:49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 이수정, 이다혜 / 민음사 / 2020

네이버 오디오클립을 통해 공개되어 네티즌들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은 동명의 팟캐스트 방송 내용을 글로 옮긴 책.

한국을 대표하는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경기대 교수와 함께 동서고금의 주요 범죄 스릴러 영화 속 범죄와 범죄자들을 전문가의 시선으로 분석하고,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문제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방송 스크립트를 그대로 옮긴 대화체로 쓰여 있어 매우 쉽고 편하게 읽히나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다.

가정폭력과 성범죄, 디지털 범죄 및 각종 혐오범죄에 대한 안일한 대처로부터 대형 강력범죄의 상당수가 촉발되는 것을 이 책 속에서 영화 이야기와 함께 제시되는 다양한 실제 사례에서 선명히 볼 수 있다.
슬럼화된 지역과 하위 계층에서 일어나는 여성 및 아동 청소년 대상 범죄에 법과 공권력과 정계가 무심한 사이, 여전히 수많은 사회적/물리적 약자들이 범죄의 위험과 신변의 위협에 노출되고 있음을 이 책은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 책이 촉구하는 것은 무분별한 엄벌주의의 주장이나 자극적인 여론 형성이 아닌, 사회 구성원들 간의 연대와 사회 전반의 인권 감수성 확립 그리고 입법-사법-수사 기관의 합리적인 기능 수행이다.
개인은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범죄에 대한 경계의식을 늘 가지고 피해자와 연대하며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하며, 국가와 기관은 빠르게 변해 가는 시대에 자신들의 속도를 맞춰 가며 무엇보다 약자와 피해자의 인권에 우선하여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제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적인 메시지다.

하루가 멀다 하고 흉흉한 사건이 계속 일어나는 요즘, 어느 때보다 지금 정말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수정 교수가 이 방송에 나선 이유가 이 책의 주제를 충분히 함축한다.
“우리는 연대하기 위해 이 방송을 하고 있다.”

<책 속의 주요 문장>
한국에선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집을 나가야 해요. 그런데 상식적으로 봐도 때린 사람이 집을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42쪽)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대등한 관계에서만 성립할 수 있습니다. 너의 인격과 나의 인격을 서로 인정해 주고, 용인하고, 약점은 약점대로 수용하는 것이 정말 성숙한 사랑이죠. 한 사람은 모든 것을 제공하고 다른 한 사람은 혜택 안에서 안주하는 것은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51쪽)

형사 사법 기관 종사자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갖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80쪽)

태어날 때부터 잔혹한 가해자인 사람은 없습니다. 대부분 어린 시절에 지속적인 폭력 피해를 당하다가 이런 폭력적인 경험이 나의 일상이구나, 내가 이렇게 당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강자가 될 수밖에 없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본인이 가해자가 되는 지경에 이릅니다. (101쪽)

사실 피해자 입장을 생각해 보면 양심의 갈등 이전에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분명하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용기가 없던 사람도 용기를 낼 수도 있습니다. (126쪽)

힘없는 여성들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힘없는 남자들입니다. 하층 계급은 상층 계급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폭행은커녕 접근조차 쉽지 않기 때문에 대신 만만한 하층 계급을 향해 화풀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240쪽)

경찰력과 자본을 어떻게 잘 분리할 것인가는 사실 정부에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242쪽)

규범의 바탕이 되는 도덕성은 슬픔이라는 정서를 기반으로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슬픔도 있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이타적인 슬픔도 있지요. 슬픔은 고도화된 정서고, 이를 느낄 수 있어야 동정심이나, 공감, 또는 죄의식 등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270쪽)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 사람이 지배 계층이라도 그들을 공격할 수 없으니 만만한 쪽으로 눈을 돌려 자기방어력이 낮은 여성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이들은 여성에게 무시를 당했다고 주장하는데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는지를 찾아보면 별로 없어요. 일종의 피해 의식이자 망상인 것입니다. (...) 인셀이란 백인 남성에 한정되기보다 사회로부터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피해 의식을 가진 대다수의 사람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272쪽)

인권은 중요하지만 누구의 인권도 절대 가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결코 한쪽만 옳고 한쪽만 틀리는 일은 없습니다. 결국 정부는 공동체가 안전하게 함께할 수 있도록 상호간의 양보를 이끌어내고 갈등을 조정해야 합니다. (279쪽)

남성 조사관이라도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고 공감 능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이런 태도를 취하며 피해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별보다 고통에 대한 이해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더 중요합니다. (354쪽)

강간은 피해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를 주목하는 태도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 절제를 못하는 가해자의 욕망이 문제지, 피해자가 어떻게 생겼느냐, 피해자가 어떤 특성을 가졌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355쪽)

특히나 지금은 인터넷 등 기술 관련 범죄가 많은데요. 범죄 수사는 사실 체력보다 기술이 관건이다 보니 당연히 다양한 범죄에 대응할 수 있는 수사 인력 확충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수사 방식이 과학화될수록 성별은 더욱 중요하지 않을 테고요. (356쪽)

사람을 사고파는 일이 만연한 사회에 미래는 없습니다. (381쪽)

어느 나라나 성범죄는 발생합니다. 하지만 피해자의 인권을 중히 여기고 아이를 찾아 나서는 국가는 그 점에서 선진국입니다. 그저 일부 아이들의 불행이고, 부모가 아이를 돌보지 못해서 생긴 일이니 너희의 불행은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사회가 과연 선진국일 수 있을까요. (382쪽)

이런 피해를 입는 아이들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 일이라고 생각해야 그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사회 전체가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런 피해를 입었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고요. (389쪽)

부당한 일에 대한 분노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안다. (399쪽)

by 해피의서재 2020. 6. 24. 13:15

“이토록 문학적이며 잠언적인 물리학 에세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카를로 로베리 / 쌤앤파커스 / 2019

아인슈타인과 스티븐 호킹의 뒤를 잇는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로 통한다는 카를로 로베리 교수의 이 책은 그 외양부터가 예의 온갖 수학 공식과 계산으로 도배된 이론물리학 도서와 완전히 다르다. 작고 아담한 사이즈와 가벼운 무게, 복잡한 계산식들 대신 고금의 철학자와 문학가들 그리고 옛 고대 종교 이야기까지 인용한 지극히 인문적인 글쓰기 하며 ‘직선적이고 절대적인 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지금 현재 우리 자신이 어떻게 움직일지 선택하기에 달렸다’는, 차라리 동양철학의 중심 사상에 가까운 결론에 이르기까지.

포맷도, 내용 전개도, 주제도 과학도서답지 않게 파격적이리만치 감성적이고 문학적인 이 물리학 책을 읽다 보면, 단순히 우주와 시간에 대한 과학적 호기심의 영역을 넘어 나와 세상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고찰까지 하게 되기에 이른다. 과학을 한다는 건 곧 세상의 이치를 알아가는 일, 철학의 목적 또한 그러하기에 과학과 철학이라는 두 학문은 결국 다시 서로 통할 수밖에 없는 한 몸같은 존재인가 보다.

by 해피의서재 2020. 5. 29. 1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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