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엄청나게 가깝지만 놀라울 만큼 낯선 / 스위즈 / 애플북스 / 2016

왠지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이라는 소설이 연상되는 제목을 달고 있는 이 책은 2016년 현재 싱가포르에서 대학 교수로 재직중인 저자가 역사, 사회학적 관점에서 중국인의 내면적 특성을 분석해 본 결과를 정리한 것이다.

20세기 초에 루쉰이 아Q정전 등의 저작을 통해 당대 중국인들을 향한 거침없는 비판을 퍼부었던 때로부터 약 100년이 흘렀는데, 이 책 속에 나타나는 현대 중국 사회에 만연한 문제들은 그때 제기되었던 것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신중국’이 세워지고 새로운 이념이 사회에 덮어씌워지고 경제 규모가 거대해지는 등 수십 년의 시간을 관통하며 중국의 겉모습은 많이 변했지만 그 속을 살아가는 중국인들의 내면은 조금도 성장하지 않았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저자가 지적하는 중국인들의 문제는 대략 아래와 같이 요약된다.

2천 년간 중국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해 온 유교적 권위주의와 토대로 쌓아올려진 관본위(지위와 권력의 크기를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가치관) 사회에서 공고해져 버린 체면-인맥중심의 사회 시스템으로 인해 사회 각계에서 활발하게 일어나야 할 자유로운 혁신적 사고와 창작이 실종되는 문제가 첫번째.

과학기술보다 문학이 더 강조되고 발달했던 고전문화 풍토에서 비롯된 이성적 사고의 부재와 그로 인해 차분하고 논리적인 사고 없이 감정적으로 쉽게 휘둘리는 군중심리가 두번째.

제대로 된 민주 의식 및 가치관 교육의 전무로 인해 시민의식이 자리해야 할 곳을 대신 차지하고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도는 물론 국가의 신뢰도까지 추락시키고 있는 기회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세번째.

이외에도 중국이 앞으로 나아지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여전히 너무도 많고 심지어 해결도 난망하다.

사실 책에서 제시한 문제 중 상당 부분은 한국이 겪고 있는 문제와도 많이 겹친다. 어떤 대목에선 이게 중국이 아닌 한국을 분석한 글인가 싶을 정도.

어쩌면 한국이 이 문제들을 앞서 해결할 수 있다면 그 해결책이 중국에도 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예상도 하게 된다.

그리고 그 해결책은 아마도 개개인의 이성적 사고 능력을 끌어올리고 모두가 진정으로 동의할 수 있는 신념, 바로 개인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과 공동체 의식을 널리, 깊이 심어 주는 데서 출발하지 않을까 한다.

<책 속의 인상적인 문장들>

​높은 관리 앞에서 중국인은 생각이 멈춰 버린다. 보통 사람이 관리를 만나거나 하급 관리가 고위 관리 앞에 서면 독립적 판단력이 자동으로 사라지고, 무조건 고개를 끄덕이며 따른다. 이처럼 아첨하며 떠받드는 것이 관본위 사회의 특징이다. 유교 문화는 질서를 강조한다. 이 질서를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중국인은 가혹한 대가를 치렀다. 즉 수많은 사람들이 독립적인 사고를 스스로 포기하거나 강권에 의해 빼앗기고 만 것이다. 유학자들이 강조하는 ‘왕은 왕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임금은 신하의 모범이 되고, 아비는 자식의 모범이 된다’의 본질은 개인의 독립적 사고 권리를 빼앗는 것이다. ... 자신감이나 자아의식이 부족하다 보니 언제든 권위에 복종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다. 이같은 중국인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사회가 전반적으로 활력을 잃어버렸다. 일상생활 속의 처세는 사회 발전에 좋지 않고, 학술계의 아첨은 학문의 발전을 방해한다. 이 두 가지 현상은 결국 진리를 추구하는 정신이 부족하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모두 중국인이 반성해야 할 문화 현상이다. -132~133쪽

​한 무리에서 체면의 총량은 정해져 있어 한 사람이 높아지면 다른 이들은 작아진다. 다들 체면을 따지는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게 바람직할까? 해결책 중 하나는 다른 사람의 체면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 중국 역사를 보면 민족 내부의 폭력으로 말미암아 대재난을 맞이한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문화혁명이 바로 그 생생한 증거다. 이런 재난에는 공통된 특성이 있다. 바로 체면이나 명예가 없는 사람들이 들고일어나 명망 높은 사람들을 모욕하고 해를 가한다는 것이다. 문화혁명 때도 그랬다. 그 당시에 지위높은 학자들이나 체면을 중히 여기는 사람들은 각종 굴욕을 당했고, 이를 견디다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람들도 많았다. 누군가가 숙청 대상자를 꼭 집어 말하지 않아도 주변 분위기에 휩쓸린 대중은 알아서 자신이 공격할 목표를 찾아냈다. 중국 문화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과 반성 없이 모든 책임을 소수의 야심가에게만 전가한다면, 문화혁명 같은 대재난은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240~241쪽


1. 유교 사상에는 평등 관념이 부족하다. 유교 사상은 중국을 수천 년간 통치해온 주류 사상으로,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바로 평등 사상이다. 사회에서는 물론 가정 내부에서도 성별과 나이에 따라 수많은 등급으로 나뉜다. ... 그렇다 보니 보통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깔보게 되면서 서로 무시하고 차별하는 사회 현상이 일어나게 되었다.

2.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소농의식이 강하다. 오랫동안 내려온 농경문명으로 형성된 사상과 의식은 이미 뼛속까지 새겨져 있다. ... 소농의식에 사로잡히면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눈앞의 이익에 급급해 큰 것을 놓친다.

3. 전체 민족을 통합하는 신앙이 없다. ... 정신적으로 함께 추구하는 것이 없는 중국인은 세속화되거나 물질적으로 변하기 쉽다. 특히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로 사람을 나누다 보니, 다들 돈에 대한 집착이 강한 편이다.

4. 인구가 많다. ... 인구가 많다 보니 서로간의 친밀감도 약하다. 또 ‘네가 한 술 더 먹으면 내가 한 술 적게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어서 서로 방어하고 경계하는 마음이 강하다. -246~247쪽

​2천 년 동안 지속된 봉건적 전제주의는 중국인의 독립정신은 물론이고 민주의식까지 사라지게 만들었다. 특히 땅이 기본 조건인 중국인은 일단 나고 자란 땅을 떠나면 아주 낯설어한다. 무엇을 해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주인의식도 사라져 모래알처럼 흩어져 버린다. 역사를 돌아보면, 중국인에게 다음의 특징이 나타난다. 바로 노예처럼 죽은 듯이 살거나, 참다 안되면 일어나 부숴버리는 것이다. 계약과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의 권리를 찾는 공민의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261쪽

서양 사회에서는 ‘절대적 높이’의 올림픽 정신을 숭상하지만, 중국인 사회에서는 ‘상대적 높이’의 병적인 경쟁이 빈번하게 일어난다. 이같은 병적인 경쟁은 개인의 발전을 저해하고, 사회 전체를 퇴보시킨다. ... 병적인 경쟁 사회에서는 뛰어난 사람이 가장 쉽게 상처를 받는다. ... 자연히 사람들은 마음 편히 살기 위해 평범한 삶을 선택한다. -268쪽

by 해피의서재 2019. 4. 22. 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