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비행

저자
신지수 지음
출판사
책으로여는세상 | 2011-10-15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대한항공 A330 조종사가 3만 피트 하늘 위에서 들려주는 짜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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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들어 비행기와 조종사에 관한 이야기에 부쩍 관심이 생겼다. 여행과 일탈을 향한 열망 탓일지도 모르겠다. 이런저런 이유로 실제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는 생각은 늘 떨치기 힘들기에, 그 열망을 해소하기 위해 ‘여행’그것도 ‘먼 여행’의 상징인 비행기와 공항에 대한 탐구를 시작한 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비행기에 관한 책도 몇 권 구해 읽었다. 물론 전문적인 책은 아니고, 일반 대중을 상대로 비행기와 항공 종사자에 대해 이야기한 책들이다. 항공에 관심 많은 젊은 네티즌들이 블로그에 올린 글들이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렇게 해서 발견하게 된 책 중의 한 권이 바로 이 ‘나의 아름다운 비행’이었다.


  책은 한 민항기 조종사가 비행 생활 중에 겪은 에피소드를 적은 9편의 에세이를 엮은 것이다. 각각 ‘눈(Snow)’ ‘기억’ ‘타깃’ ‘뺑뺑이’ ‘사냥’ ‘배달’ ‘위기’ ‘고통’ ‘어머니 대자연’이라는 소제목을 달고 있다. 눈 오는 날의 이륙 준비(눈), 훈련생 시절 조종사 자격 심사비행을 하던 때의 기억(타깃), 악천후 속의 어려운 착륙(뺑뺑이), 화물기 운항에 얽힌 에피소드(배달), 조종석에서 갑자기 찾아온 극심한 고통 속에서 한때 잃었던 초심을 떠올린 이야기(고통) 등 조종사로 살면서 보고 겪어 온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그리고 생동감 있게 글 속에 풀어냈다.

 
  저자는 2013년 기준으로 입사 16년차를 맞이한 대한항공 소속 기장이다. 사실 어린 시절부터 조종사를 꿈꾸었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대학도 비행기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경영학과로 진학했고, 역시 비행기와 관련 없는 육군으로 병역을 마쳤다. 모 대기업의 사무직 직원으로 취직도 했다. 그런 그가 27세 때 자신이 있던 곳을 과감히 뛰쳐나와 대한항공 직영 제주비행훈련원(현재는 폐지되었다고 한다)으로 들어간다. 이제까지 다른 이(특히 가족)들이 지정해 준 길을 벗어나, 정말로 자신의 적성에 맞고 자신이 진정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찾아 나서기로 결심하고 그 결심을 실천에 옮긴 것이었고, 그 길이 바로 비행기 조종사라는 직업이었던 것이다. 이후 긴 훈련 기간을 거쳐 그는 30세가 되던 해 대한항공의 정식 부기장이 되었고, 현재 에어버스 A330이라는 비행기를 조종하는 기장이 되어 세계의 하늘을 날고 있다.


  ‘비행은 나를 찾아 떠난 여행이었다’고 그는 책에서 고백한다.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가 비행을 통해 진정한 자신과 삶의 의미, 그리고 세상의 이치를 끊임없이 찾아가고 있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비행기의 모험(비행)과 귀환(착륙)에서 ‘우린 결국 원래의 나로 돌아가기 위한 긴 여행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해 준 ‘타깃’편이라든가, 거대한 자연 앞에 인간과 그의 피조물이란 한낱 미물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자연의 위대함과 자비 앞에 항상 겸손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 ‘어머니 대자연’편이 그 좋은 예라 할 것이다.


  보통 민간 제트 여객기의 순항 고도가 3만 9천 피트 대인데, 이 정도 높이의 상공에선 산소는 희박하고 기압도 매우 낮으며 기온은 영하 50도까지 내려간다고 한다. 이 척박하기 짝이 없는 높은 하늘 위에서, 조종사들은 이 거대한 하늘에 비하면 더없이 자그마한 일엽편주 같은 비행기를 이끌고 고독한 비행을 하는 것이다. 한순간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기에 매년 건강검진과 엄격한 조종능력 심사를 거쳐야 하며, 끊임없이 철저한 자기관리를 해야 한다. 그럼에도 때로는 사고의 위험에 노출되기도 하며, 갑자기 비행기를 ‘사냥’하는 자들의 타깃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개중에는 정말 목숨을 잃은 조종사들도 있다. 그들을 위한 글도 이 책에 실려 있다. ‘앞서 간 이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는 ‘기억’편의 마지막 문장이나, ‘인간은 비행기를 사냥해선 안 된다. 죽이기 위한 사냥은 더욱 용서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담은 ‘사냥’편을 읽으면서 마음 한 켠이 무거워졌다.
(부연하자면 ‘기억’편은 1999년에 중국에서 일어났던 화물기 사고를, ‘사냥’편은 2001년 9.11 테러 당시 또다른 피랍기로 오인받았던 한 비행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렇듯 조종사의 삶과 애환, 그리고 4만 피트 상공의 하늘이 말해준 가르침들을 항공 전문 지식들과 버무려 감성적인 필치로 써내려간 저자는 책의 가장 마지막 에피소드인 ‘어머니 대자연’ 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내 비행기를 너무나 사랑하고, 내 동료들을 절대 믿으며, 내 승객들의 아름다운 미래를 존경한다.’

 

  그 마음을 잃지 않는 한, 그의 비행은 지금까지 그래 왔던 것처럼 늘 아름다울 것이다.

 

<Remarks>

비행의 의미는 ‘나를 찾는 것’이었으며 착륙은 ‘나에게, 원래의 내 모습으로, 바로 그 자리에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다. 나의 타깃은 거울에 비친 내 솔직한 모습이었으며, 나를 찾을 수 있다면 언제든 다시 아름다운 세상을 찾아 새 출발을 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76쪽)

비행은 늘 마지막에 낮은 곳을 조준한다. 미래와 정상보다는 과거와 집을 지향한다. 이미 높은 곳을 마음껏 날은 비행기는 집으로 그리고 원래의 자기로 돌아가는 것을 꿈과 모험의 피날레로 여긴다. (79쪽)
나는 내 삶을 살기 위해 안간힘 써 왔지만 그것은 사실 내 삶을 부정하는 일이었다. 내 가족과 함께 사는 내 모습이, 내 동료와 내 친구와 함께 사는 내 모습이, 그리고 내 자연 속에 있는 모든 것들과 함께 사는 내 모습이 내 삶의 진정한 모습이었다. (228쪽)
고통은 나쁜 것이 아니다. 나에게 외치는 나의 울림이다. 집 떠난 내 영혼이 그 소리를 듣고 나에게로 다시 찾아오는 것이다. (229쪽)
모든 개체는 자연 앞에서 동등하다. ‘날개 달린 기계’역시 내 형제요, 내 친구다. 결국 당신과 다르지 않은 존재다. 알고 보면 세상에 특별한 것은 없다. (257쪽)


by 해피의서재 2013. 9. 21. 09:51

 


터키에서 읽는 로마사

저자
곽영완 지음
출판사
애플미디어 | 2012-09-03 출간
카테고리
역사/문화
책소개
로마의 마지막 1000년 이야기!330년 콘스탄티노플 수도 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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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는 서기 476년에 게르만 족의 침입으로 멸망했다. 그렇게 로마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학창시절 세계사 교과서에 나와 있는 대로라면 그렇다. 그러나 사실 로마는 그때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후기 로마 제국은 넓은 영토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제국을 동서로 분할하고 동서별 황제와 그 부관격인 부제(副帝)를 각각 따로 두었다. 때로는 합쳐지고 때로는 다시 분할되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들 모두 로마였다. 오늘날로 따지면 일종의 연방 제도처럼 제국을 운영했던 셈이다.


  476년에 멸망한 것은 서로마였다. 동로마 제국은 여전히 건재했고, 이후 천 년 동안 세계사의 중심에 서 있었다. 동쪽으로는 각자 흥망성쇠를 거듭한 이슬람 세력을, 그리고 서쪽으로는 뒤늦게 국가로서의 자리를 잡은 여러 이민족 국가들과 교황을 위시한 로마 가톨릭 교회 세력을 상대하며 오랜 세월을 버텨낸 국가였다. 그리고 서로마 지역이 이민족의 약탈과 파괴로 그간 쌓아 온 문화적 전통을 모조리 잃은 상황에서 유일하게 로마의 문화를 보존하고 지켜 온 국가였다. 동로마 제국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갖고 있었던 로마의 문화 유산과 지적 자산들이 서유럽으로 전파될 수 있었고 이슬람의 확장으로부터 유럽 기독교계 문화를 지킬 수 있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잘 알지 못했고 기억하지 못했던 동로마 제국의 세계사적 가치를 설파하고 있다. 아울러 동로마 제국을 둘러싼 중동 지역과 서유럽의 민족들과 국가들의 역사적 부침(浮沈)까지도 세세하게 펼쳐 보이고 있다.


  가족과 함께 터키를 여행하며 동로마와 그 주변 지역의 역사 이야기를 들려주는 형식을 띠고 있는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역시 5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천 년간의 역사를 자세하게 풀어 준다는 점이다. 이슬람의 기원과 각 왕조의 탄생 및 쇠퇴 과정, 서유럽의 혼돈기와 각 나라의 형성기, 십자군의 등장 배경과 활동 과정 및 역사적 영향, 이 시기 동로마 제국의 대처 등을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유럽과 소아시아의 중세사를 간편하게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종교와 권력, 그리고 물욕이 인간을 얼마나 흉포하고 추하게 만들 수 있는가’라는 점이었다. 종교적 광기에 사로잡혀 발디디는 곳마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무고한 시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한 십자군의 흉포한 행태와, 오직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러한 십자군의 횡포를 방조하고 부추긴 교황 세력에 대하여 분노를 참기 어려웠다. 무지한 십자군의 무자비한 파괴와 끊임없이 이어지는 이슬람 세력의 위협 속에서 기울 대로 기울어진 국운을 힘겹게 이어가는 동로마 제국의 고군분투는 그들과 관련 없는 국가에서 현대를 사는 나조차 안타깝게 했다.


  역사는 현대를 비추는 거울이라 했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이 책 속에 기록된 일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종교와 민족을 명분으로 테러가 자행되고 전쟁이 발발하며 수많은 사람들이 핍박과 죽음을 면치 못하고 소중한 문화유산들이 파괴되는 일들이 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를 기록하는 것은 그 역사를 읽고 예전의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하는 일이 아니겠는가. 오늘의 세계는 언제쯤 피와 고통으로 점철된 역사책들의 교훈을 따라, 옛사람들이 저질렀던 과오들을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을 수 있을까.

by 해피의서재 2013. 9. 21. 09:46

 


염철론

저자
환관 지음
출판사
현암사 | 2007-11-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중국 고대 지성인들의 치열한 토론이 담긴 경제논쟁서 염철론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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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한 시대, 한 소제(昭帝)의 조정에서 소금과 철의 전매제를 둘러싸고 현직 관료들과 재야의 학생들 사이에 한바탕 설전이 벌어졌다.

시작은 단순히 전매 제도를 지속할 것이냐 폐지할 것이냐에 대한 논의였지만

화제는 점점 확대되어 한 제국의 경제와 국방 정책, 세금 문제, 치안 문제는 물론

나중에는 국가의 통치 이념과 위정자의 도덕성 문제로까지 이야기가 번졌다.

어느 편도 쉽게 물러서려 하지 않았고 서로에 대한 다소 공격적인 언사가 오가기도 했다.

그러나 그냥 막말만 주고받은 것은 절대 아니었다.

고대 중국의 여러 역사적 일화와 고전 속 명문들이 수시로 인용되는 가운데 관료들과 학생들은 치열한 토론을 이어갔다.

이 토론은 훗날 환관이라는 인물에 의해 염철론이라는 책으로 기록되어 후대에 전해져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마치 고대 중국판 ‘100분 토론을 보는 듯한 이 책은 화제별로 소제목을 나누어 양측의 의견을 교대로 서술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하나의 의제에 대하여 대부(현직 고위 관료)가 먼저 정부측의 입장을 말하면,

그 다음에 현량과 문학(재야의 유생들)이 정부의 의견에 반박하는 방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법가 사상에 기초한 현실적, 실용적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진 대부와

유가 사상에 기초하여 치국의 기본부터 점검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진 현량-문학 간의 논리 대결이 흥미롭게 펼쳐진다.

 

먼저 소금과 철의 생산과 유통을 국가가 전적으로 통제하는 염철 전매제를 찬성하는 대부의 입장부터 살펴보자.

그들은 흉노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막대한 국방비가 필요하며

그 국방비를 조달하기 위해서는 국고에 충분한 예산이 비축되어 있어야 하므로 염철 전매제를 실시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들은 상공업의 발전을 중시하고 장려하는데, 이것 역시 유통을 발달시키고 백성의 부를 축적시켜

충분한 세금을 확보하고 군비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한마디로 경제 부양을 통해 국가가 충분한 돈을 확보하여 국방을 튼실히 해야

외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가 평화롭고 백성들도 두루두루 잘먹고 잘살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이들의 사상적 기반은 한비자, 상앙 등이 주창한 법가 사상에 있다.

 

유가 사상의 영향을 받은 현량과 문학은 이러한 의견에 반대한다.

관료들의 무리한 계획경제 정책과 상공업 장려가 백성들 간의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고,

인간성이 돈에 밀려 소외되는 사회 풍조를 조장하며,

정부에서 소금과 철을 전매하고 계획경제 정책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부패한 관료들이 백성들을 착취하여

백성들의 생활을 도탄에 빠뜨리고 나라의 도덕적 기강까지 무너뜨리고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그래서 이들은 유가 사상의 기본으로 돌아가 위정자의 도덕적 문제부터 바로잡고,

백성들에게는 농업과 자급자족을 권장하여 혼자서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게끔 생계를 안정시키고,

국가는 전매제를 폐지하고 민간에게 경제적 주도권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역설한다.

한마디로 괜히 백성들의 삶에 개입해서 폐 끼치지 말고 백성들이 각자 할 일을 하며 평화롭게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라는 것이다.

 

전혀 상반된 생각을 가진 두 집단은 토론 내내 계속 날선 대립을 이어간다.

대부는 현량과 문학을 현실을 모르는 이상주의자라고 비판하고

현량과 문학은 대부를 윤리를 무시하고 물질만을 좇는 탐욕주의자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어쨌든 두 집단 사이에 오간 대화는 매우 진지하고 품격있는 것이었으며,

내세우는 실질적 방법은 서로 달랐지만 국가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양측 모두를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애초에 그런 진지한 고민이 있었기에 조정에서 관료와 유생이 한데 모여 토론하는 이러한 자리가 마련될 수도 있었으리라.

 

이 토론을 책으로 정리한 환관은 이때 토론에 참여하였던 문학의 이야기를 듣고 그에 기초하여 정리를 했다고 한다.

그 자신 또한 문학의 편에 가까웠으니, 사실 염철론은 현량과 문학의 의견에 좀 더 기울어져서 서술되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책을 읽다 보면 문학의 날카로운 비판에 대부가 당황하거나 아무 말도 못하는 장면이 몇 군데 나온다.

그러나 대부의 말에 문학이 말을 잃었다는 부분은 없다.

서술자가 완전한 공평을 기하지는 못했다는 점을 유념하고 읽을 필요가 좀 있을 것 같다.

 

by 해피의서재 2013. 7. 15. 17:26

 


오르한 파묵

저자
이난아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3-04-22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2006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묵의 작품은 국내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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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영광의 중심에 있었으나 점차 그 옛 명성을 잃고 역사의 뒤안길로 퇴락해 간 침잠의 도시 이스탄불에서 태어나,

세상의 변방에서 살아가는 분노와 우울을 딛고 마침내 문학의 힘으로 그의 도시를 세상의 중심으로 옮겨놓은

터키 문학의 거장 오르한 파묵의 삶과 작품 세계를 정리한 책'.

 

국내에서 그의 작품을 전담 번역해 온 터키 문학 전문가 이난아의 시선으로,

그의 팬이자 전담 번역가이자 연구가이자 사적인 친구로서 지켜본 오르한 파묵의 모든 것이 이 한 권의 책에 담겨 있다.

그가 걸어온 삶의 여정, 그의 각 작품들에 대한 탐구, 창작에 임하는 자세와 철학, 번역가 이난아와의 인터뷰와 또다른 사적인 면모 등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와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해 한 번에 답을 얻고 싶다면

이 책이 어느 정도 그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 명의 작가에 대해 그의 생애와 그의 모든 작품들을 모두 정리한 책 자체도 사실 그리 많지 않은 편인데

그 점에서 이 책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온다.

 

책은 오르한 파묵의 생애에 대한 개관부터 시작하여

그의 데뷔작(제브데트 씨와 아들들)부터 최신작(순수 박물관)까지 7편의 소설과 1편의 에세이(이스탄불)를 각 챕터별로 상세히 다루고 있고

후반부는 최신작 <순수 박물관>의 집필 과정과 실제로 이스탄불에 세워진 박물관의 개관 준비 과정을 다루었으며,

마지막으로 파묵과 그의 고향 이스탄불의 관계에 대하여 정리하는 글과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문인 <아버지의 여행가방>에 대한 이야기로 책을 마무리하고 있다.

 

'바늘로 우물 파듯', 매일 아침부터 매일 저녁까지 한 자리에 앉아 마치 부지런한 직장인처럼 늘 부지런히 글을 쓰는 그는,

'글을 쓰는 그 자체가 행복이자 위안이어서, 그리고 글쓰기가 곧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어서' 쓴다고 말한다.

그래서 평생 수도승처럼 하루종일 방 한 구석에서 글만 쓰면서 살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작가.

문학에 대한 파묵의 철학을 알고 싶다면 책의 중반부 '검은 책'에 대한 인터뷰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더 좋을 것 같다.

 

"문학이 화염 속 세계를 구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나는 문학 속에서 심오한 어떤 것과 휴머니즘을 찾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휴머니즘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휴머니즘을 받아들이는 것이 바로 문학이지요. 하지만 나는 문학이 세계를 구한다는 문제에 대해서는, 그 실효성에서 보았을때, 사실 다소 회의적으로 생각하는 편입니다. (중략) 문학은 그 사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연구하는 예술이라고 할 수 있어요. (중략) 하지만 내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 자신이 문학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 깊이에 빠지고 싶고, 그 세계에 살고 싶어한다는 것입니다. (중략) 나는 그저 문학을 통해, 또 내가 쓰는 소설을 통해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고 싶을 뿐이지요."(p.97-98)

 

<안나 카레니나> 등 19세기 소설의 영향을 받은 사실주의 가족소설에서 출발한 파묵의 작품 세계는,

이후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성향을 받아들여 다양한 장르(세밀화, 신문칼럼, 시, 연극 등)와의 콜라보레이션과

기존 소설 구성의 해체(챕터마다 제각각의 화자가 제각각 말을 하는 <고요한 집>, <검은 책>, <내 이름은 빨강> 등),

이슬람 고전문학과의 퓨전(<검은 책>에서 현대 문학의 포맷 안에 이슬람 고전문학을 각색하여 접목한 것) 등

파격적인 형식적 실험들을 도입한 작품들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런 파격적인 실험의 틀 속에 담겨 있는 파묵의 이야기는 그가 살아온 이스탄불의 역사와 현대 사회상을 그대로 담고 있으며,

<고요한 집>과 <새로운 인생>, <눈> 등의 작품에서 격동과 혼란의 터키 역사와 사회상의 변화를 캐치해 녹여넣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그 시대에 대한 담담한 관찰 외에 그 시대에 대한 연민과 비판의식도 함께 들어 있다.

그래서 파묵의 소설 대부분은 '환상적이고 유희적이면서도 동시에 현실적이고 역사적이다'(p.114).

 

"소설은 모든 사람들에게 낙관적인 형태로 열려 있고, 세상을 질책하기보다는 인정하며,

의심하기보다는 삶의 경이로움에 동참하라고 호소합니다." (p.132)'

 

책의 뒷표지에는 이 책의 본문 일부가 프린트되어 있다. 여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변방에 살면서 느끼는 고독과 과거에 대한 굴욕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주변에 대한 분노가 가끔 우리를 우리가 아닌 다른 존재로 변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때 주변의 폐허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채 존재하고 있을 한 권의 책을 가능케 한 것은, 책이 영원히 존재할 것이며, 책 속의 이야기를 통해 그 이야기를 지은 존재는 행복했으며,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찬사와 영광 속에서 기억될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스스로를 변방보다 더한 집필실의 고독과 영감으로 유폐시킨 작가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한 고향의 역사와 오늘을 문학의 힘을 빌어 기록함으로써

자신이 보고 기억하는 모든 것을 영원히 이세상에 남기고 싶어한 작가 파묵의 내면을 잘 표현한 글이라고 생각한다.

 

by 해피의서재 2013. 7. 15. 17:09


인문내공

저자
박민영 지음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2012-08-3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뜬구름 같은 인문학을 내 것으로 만들어주는 공력, 공감, 공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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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인문학이 죽어간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인문학 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같은 존재를 놓고 정반대의 말들이 나오니 혼란스럽다.

공공과 민간을 막론하고 여러 기관에서 인문학 콘서트같은 강연 행사를 수시로 열고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며 들으러 가는 것을 보면

인문학 붐이 이는 것 같기도 하고,

대학의 인문학 계열 학과들이 여전히 침체일로를 걷는 것이나 서점가에서 제일 잘나가는 도서들이 

역시나 자기계발서나 실용서 중심인 것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 이 시대가 인문학이나 인문 정신에 목말라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그 기술에 기댄 온갖 상품과 놀잇거리들이 쏟아지면서 생활은 편리해지고 즐길거리도 넘쳐나지만

이것들이 정신의 공허함까지 채워 주지는 못하고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이며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것이 나와 우리, 그리고 사회를 위해 맞는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그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온갖 정보들 속에서 우리는 가치 있는 것들을 얼마나 건져내고 있으며

가치 있는 것의 기준은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가.

아니, 지금 내가 사는 이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제대로 직시하고는 있는 것인가.

그렇기에 요즘이야말로 인문 내공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박민영의 인문 내공》, 이 책이 특별하게 와닿은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책에 따르면 인문(人文)사람의 무늬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범이나 개, 양 등의 무늬와는 다른, 사람만이 갖고 있는 그 무늬를 연구하는 것이 인문학이라 한다.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사회 현상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거시적으로 통찰하는 힘이 바로 인문 내공이라 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동등하게 존엄한 가치를 가졌다는 것을 아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지만 사실 인문학이야말로 삶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학문이기도 하다.

문학과 철학과 사학은 모두 뭔가를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일이다.

굳이 문학, 철학, 사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게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은 항상 뭔가를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일들의 연속이다.

그리고 우리가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이거나 혹은 특별한 사건들에 관한 일이다.

왜 아까부터 저 사람은 보기에도 사용한 지 한참 된 물건을 들고 와서 가게 주인에게 환불해 달라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것인가

하는 생각부터,

왜 요즘 뉴스는 주말 캠핑문화 소개 같은 신변잡기적인 기사들만 자꾸 방송하는가같은 종류의 의문들까지.

여기서 한 꺼풀 더 깊이 들어가,

저 사람은 왜 그런 억지를 부리게 되었나혹은

어쩌다가 방송국에서는 저런 류의 뉴스만 주로 내보내게 되었나

하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들을 탐구해 나가는 것이 바로 인문학적 사고일 것이다.

 

인문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는 현실에 관심과 의문을 갖고,

 ‘?’라는 질문을 던지며 현실에 말을 거는 것에서 인문학은 출발한다.

주변의 평범한 경험을 강렬하게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에서 인문학은 시작된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던 헬렌 켈러가 물펌프에서 쏟아지는 물을 온몸으로 흠뻑 느낀 뒤

자기 주변의 모든 사물들에 관심을 보이고 이름을 묻기 시작한 것처럼.

 

내공을 쌓기 위해서는 수련이 필요하다.

책은 인문 내공을 쌓기 위한 기술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한 번쯤 들어 봤을 세 단어, 다독다작다상량이 이 책에도 등장한다.

인문학적으로 생각하고(다상량), 인문학적으로 읽고(다독), 인문학적으로 쓰는(다작) 방법, 혹은 기술에 대한 소개가 차례로 이어진다.

지금 자신이 직면한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답을 줄 수 있는 종류의 책부터 읽기 시작할 것,

번역서는 저자에 대한 애정이나 경의를 갖고 있는 사람이 성심껏 번역한 책으로 고를 것,

읽고 있는 책과 관련된 책을 함께 읽어나갈 것,

최대한 간단명료한 문장을 사용해 객관적이고 선명한 근거를 앞세운 글을 쓸 것 등

무엇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을까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들이 나와 있으니

이와 관련된 질문을 갖고 있던 분들이라면 이 책을 참고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가장 우려하고 걱정하며 강조하는 바에 대해 정리하며 갈음하고자 한다.

이른바 요즘 ‘인문학의 부흥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시각이 책의 여러 곳에 담겨 있다.

인문학 콘서트등의 이름으로 (주로 기업을 중심으로) 대중에게 공급되는 인문학이

과연 참된 인문학인가에 대한 의문이 책 속 여기저기에서 표출된다.

현재의 인문학이 자본을 가진 대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기능하는 소위 기업인문학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과 함께,

인문학이 자본과 기업의 시녀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주제를 가장 잘 압축한 부분이라 여겨지는 책의 서문을 통해 저자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환경과 문화의 힘은 압도적이며, 여기에 매몰되어 진짜 자신을 잃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읽고 쓰고 사유하며 자신만의 인문 내공을 키워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동안 쌓여 온 온갖 지식과 문화가 만들어낸 거대한 환경이다. 여기에 매몰되지 않고 독서를 통해 자신만의 힘으로 세상을 읽고 통찰하는 내공을 키우는 이들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는 더욱 인문적이고 인간다운 사회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by 해피의서재 2013. 5. 28. 18:39


트렌드 코리아 2013

저자
김난도 지음
출판사
미래의창 | 2012-11-21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김난도의 2013년 트렌드 키워드는 '코브라 트위스트(COB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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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아픈 청춘들'을 위로한 책『아프니까 청춘이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로 유명한 김난도 교수. 사실 그의 본업은 소비자 트렌드 분석과 연구이다. 이 포스팅에서 다룰『트렌드 코리아 2013』은 김 교수가 몸담고 있는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에서 올해 소비시장의 주류로 떠오를 키워드를 예측, 정리한 책이다. 매년 '트렌드 코리아 20**'이라는 제목을 달고 출간되는 시리즈물인데, 그 해의 간지(刊支)에 해당하는 동물을 소재로 메인 키워드를 제시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예 : '용의 해'였던 2012년의 키워드는 'DRAGON BALL'이었다) '뱀의 해'인 올해는 '뱀'과 관련된 단어인 'COBRA TWIST'를 메인 키워드로 제시했다. 책에서 제시한 10가지 키워드의 맨 앞 이니셜을 따서 지은 워딩인데 왠지 억지스런 느낌도 있긴 하지만 각 이니셜의 앞부분을 들어보면 이해가 갈 법도 하다.

 

City of hysterie 날 선 사람들의 도시

OTL Nonsense 넌센스의 시대

Bravo, Scandimom 스칸디맘이 몰려온다

Redefined ownership 소유냐, 향유냐

Alone with lounging 나홀로 라운징

Taste your life out 미각의 제국

Whenever U want 시즌의 상실

It's detox time 디톡스가 필요한 시간

Surviving burn-out society 소진사회

Trouble is welcomed 적절한 불편

 

정리를 해 놓고 보니 이 키워드들을 관통하는 정서가 있다. 단순히 'COBRA TWIST'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느낀 정서와도 비슷하다.

그것은 바로 "불안"이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온통 날을 세우고 주변을 경계하다가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것이 발견되면 바로 공격 태세를 취하는 것이나, 끝장을 보고 완전히 나가떨어질 때까지 일에 미치고 노는 데 미치는 것이나, 그렇게 육체적-정신적 에너지가 전소되고 피로가 밀려들고 삶의 독성에 지쳐드는 자신을 치유하고 달래고자 자신만의 휴식 공간과 디톡스(해독) 방식을 찾는 것이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건이 빈번히 일어나는 현대 사회에서 감성과 찰나적 센스에 기댄 개그, 오감 중 가장 감각적이라는 미각에 열광하며 현실을 잠시 잊는 것이나 모두 현대 사회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에서 파생되는 현상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쿨함과 똑똑함으로 대변되는 현대 소비자들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세상에 대한 불신과 빡빡한 삶에 대한 피로, 그리고 위로가 필요한 텅 빈 마음.

소비 트렌드라는 게 결국 현재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어떤 생각과 요구를 가지고 살아가는가를 대변하는 것임을 생각해 볼 때

이것은 비단 기업의 상품기획 부서들뿐 아니라 우리 사회 각 기관들이 함께 심각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고려할 문제인 것 같았다.

 

책에서 제시한 트렌드 중에는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하는 키워드도 있었다.

스칸디맘에 대한 부분이나 '소유'에 대한 의식 변화, DIY 등 소비자 자신의 직접적인 참여를 중시하고 선호하는 면 등이 그것이다.

'나도 자녀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추구하며 자녀와의 정서적 교감과 인성교육을 중시하는 '북유럽식 육아법'을 따르는 '스칸디맘' 세대의 등장,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빌려 쓰거나, 내가 쓰지 않는 물건을 다른 이에게 빌려 주고 함께 공유하며 합리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증가, 가만히 앉아서 모든 것을 공급받기보다 스스로 무언가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직접 해 보면서 자신의 삶과 주변에 대한 주인의식을 키워가는 세태의 확산.

세상은 여전히 불안정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아내며 각자 가진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책의 서두에 저자는 이런 말을 했다.

책표지의 메인 컬러인 노란색과 '코브라 트위스트' 모두 우리 사회에 상존하고 있는 불안과 위기를 상징하고 있다고.

그러나 그 속에서도 소비자들과 기업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이 불안과 위기에 맞서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나가고 있고

그 결과 세상에는 새로운 생활 스타일과 유행이 명멸하고, 또 사회는 그 영향으로 조금씩 변화한다.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그 움직임들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나타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 바로 이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이다.

 

말의 해인 내년엔 '트렌드 코리아 2014'가 또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질 것이다.

그 책에서는 2013년을 어떻게 반추하고, 2014년의 전망을 어떻게 예측할까.

부디 그 책에는 올 한 해와 내년 한 해가 모두 희망적이고 밝은 내용으로만 가득 채워져 있었으면 좋겠다.

by 해피의서재 2013. 3. 1. 11:17

 


철학이 필요한 시간

저자
강신주 지음
출판사
사계절 | 2011-02-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아파도 당당하게, 두려움 없이!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철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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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는 순간이 또 다가왔다.

들뜨기는커녕 되려 괜히 공허해지는 마음을 달래고자 이 책을 집어들었다.

 

이 책의 69페이지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인문학은 주어진 현실과 인간의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꿈꾸려는 학문이다.

 

인문학이 그토록 강조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는 왜 살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또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보다 명징하고 가치있는 삶이 될 수 있으며, 우리가 사는 이 사회도 보다 인간적이고 자유로운 곳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문학 그 자체 못지 않게 인문학을 읽고 해석하는 방식도 매우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책의 초반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참된 인문 정신과 거짓 인문 정신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좋든싫든 현실에 안주하고 뭐가 잘못되었는지 따질 것 없이 그저 순종하는 나약한 삶을 살게 만드는 것이 거짓 인문 정신이라면,

참된 인문 정신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정직하게 대면하고 문제의 원인을 스스로 치유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라 한다.

전자가 위로를 앞세운 도피에의 권유라면, 후자는 문제의 근원과 정정당당하게 맞설 힘을 부여하는 에너지원인 셈이다. 

그래서 결국, 진정한 인문학자란 '아이 같은 눈으로' 인간과 사회의 진면목을 투명하게 꿰뚫어보며,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는 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이 책 곳곳에 선명하게 투영되어 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개인으로서의 '나'에 대한 성찰에 대한 글들이고, 2부는 다른 이와의 관계에 대하여 다루고 있으며, 3부는 한 발 더 나아가 사회 전체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다양한 철학자들의 글과 사상을 소개하는 가운데, 나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로 대략 아래의 4가지를 꼽아 보았다.

 

현실직시

주체성

자유와 책임

공존

 

"우리의 인생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총체"(p.47)라는 구절에서는 불안한 미래에 현재를 저당잡힌 채 살지 말고 오직 지금을 역동적으로 살라는 메시지를 접했다.

 

동학의 '인내천' 사상과 맹자의 '진인사대천명'에서는 '초월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김으로서 자기의 위기를 미봉하려 하기보다 자신의 성찰과 노력으로 그 위기를 정면돌파하려 하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상에 대한 촉구를 보았다.

 

칸트의 도덕 철학에서는 인간 자체의 존엄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존재를 목적이라 하며, 나 자신도 다른 사람도 모두 수단이 아닌 하나의 '목적'으로서 각자의 자유를 누리고 또 그 자유를 서로 보장해 줄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마투라나의 '관찰자주의'를 읽을 때는 "역사 속에는 거짓된 세계와 진짜 세계라는 종교적이고 허위적인 이분법이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역사는 낡은 세계와 새로운 세계라는 역동적 생성과 창조만이 숨쉬는 곳이기 때문이다"(p.97)라는 이 문장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공존하라는 가르침을 얻었다.

 

책의 3부에서 이어지는 사회에 대한 성찰들은 이 키워드들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의 여러 부분을 고찰하고 비판한다.

자본과 권력, 편가르기, '생계와 생존만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된' 세태, 소비사회의 명암, 현대 사회와 종교, 대의민주주의, 진보주의 등.

이 다양하고 광범위한 이야기들을 통해 결국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위의 네 가지 단어로 압축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하면 대략 이렇게 귀결되지 않을까.

 

"마음을 열고 사람을 존중하며, 현실에 발붙이고 매 순간 당당하게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라."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세상을 더 이롭고 인간적인 곳으로 만들어 가는 주체이자 원동력이라는 것이,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인간과 세상에 품는 낙관론일 것이다.

 

앞으로도 삶과 인생, 사랑, 그리고 현대사회에 대한 통찰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이 책을 다시 찾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견하게 된다.

아울러 이 책의 말미에는 책에 인용된 참고도서들의 목록과 그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도 실려 있으니

더 많은 책을 접하고 싶을 때 이를 참고하면 더욱 좋을 성 싶다.

 

by 해피의서재 2013. 1. 1. 21:47

 


이스탄불로부터의 선물

저자
이나미 지음
출판사
안그라픽스 | 2007-12-19 출간
카테고리
여행
책소개
이스탄불 여행기. 이 책은 혼자 떠나는 세계 도시 여행기로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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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년 초여름에 터키 여행을 다녀왔었다. 생애 첫 해외 여행이었다. 

본격적인 '해외 여행'이란 걸 처음 시작한 곳이 바로 이스탄불이었다.

여러 곳을 한번에 돌아다니느라 이스탄불에 머물렀던 시간은 단 하루 정도였지만 이스탄불이란 도시는 그 짧은 시간에도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터키-그리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언젠가는 꼭 다시 이스탄불을 찾을 거라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그 다짐은 아직까진 이루어지지 않았다. 언제 다시 이루어질지 기약도 하기 어렵다.

가끔 이스탄불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으며 그 허기를 달래던 차에 이 책이 내게로 왔다.

폭설이 내리던 최근의 어느 날, 마치 화사하게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빛나는 표지가 눈에 띄어 읽기 시작한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이스탄불로부터의 선물』.

 

딸과 함께 이스탄불 곳곳을 여행하며 느낀 감상을 담은 기행문이다.

 

북디자이너가 쓴 책답게 책의 디자인부터 참 아름다웠다. 군데군데 페이지 전체를 가득 메운 이스탄불의 여러 풍경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성 소피아 성당과 돌마바흐체 궁 등 널리 알려진 문화유적들의 웅장한 자태뿐만 아니라

이스탄불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한 모습들도 함께 담겨 있어서 더 좋았다.

사람들로 가득 찬 거리, 재래시장의 노점상들, 클럽 안, 저자가 들렀던 카페와 식당들, 그가 묵었던 호텔 로비 등.

 

그러나 가장 내 마음을 끌었던 것은 책의 여러 군데에서 저자가 계속 이야기하던 '관용'과 '사랑'의 메시지였다.

 

그리스 정교의 본산이었으나 오스만 제국에 정복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모스크가 되어 계속 살아남은 성 소피아 성당의 이야기,

(그래서 저자는 성 소피아 성당을 '두 배의 축복을 받은 곳'이라 표현했다)

'오직 사랑 그 자체로 말하라'고 강조했던 메블라나 루미의 이야기야말로 저자가 독자들에게 가장 간절히 전달하고 싶어한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모자라거나 지나치지 않은, 배려깊지만 호들갑스럽지 않은, 유연하면서도 소신을 잃지 않는, 웃음 가득하면서도 진지함을 소중히 여기는, 서로 다름을 배척하지 않고 아량으로 포용해 버리는, 또한 서로 다름을 존중함으로 내버려둘 수 있는, 막연히 남을 흉내내기보다는 자신의 일부로 삼아 버리는, 전통과 현대가 서로를 아끼며 사이좋게 공존하는, 스스로 무진 갈등을 겪으면서도 여유롭고 의연한, 이들만의 흔들림 없는 삶의 방식은 천 개의 빛깔을 자랑하며 불을 밝힌 등불처럼 아름답다. 그 등불들은 저마다의 자율적인 빛을 발하며 따로 또 함께 이 도시를 밝힌다. - p.330

 

서로 다른 이들 간의 끊임없는 갈등과 충돌로 얼룩진 지금 우리 사회에 충분히 유효한 충고가 아닐까.

오랜 세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선에서 그들 모두를 오롯이 품어 온 이스탄불처럼

나도, 내가 속한 이 세상도 그런 관용과 포용의 자세를 온전히 실천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꿈꾸어 본다.

by 해피의서재 2012. 12. 25. 13:35

 

달과 6펜스 / 서머셋 몸 / 민음사 / 2000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마치 한 편의 전기(傳記) 같았다. 왠지 한자로 쓸 때 傳記 말고 傳奇라고 써야 할 것만 같다.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천재 혹은 소시오패스(!) 화가의 일대기. 남의 감정 하나 전혀 살필 줄 모르고, 남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안정된 직장과 안락한 가정을 버리고 험한 밑바닥 인생 속을 뒹굴면서도 그게 힘든지 어떤지 아무 느낌도 없는 듯한, 차라리 사람이 아닌 목석에 가까워 보이는 이 사내. 그의 행적은 기묘함의 연속이다.

 

 처음 《달과 6펜스》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왠지 참 낭만적으로 들렸다.

'타히티의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했다는 점도 그렇고 꿈(달)과 현실(6펜스)을 나란히 병치시킨 제목도 그렇고

처음 내가 이 책에 대해 떠올렸던 이미지는 '닿을 수 없는 꿈과 비루한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슬픈 화가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막상 책을 직접 읽어 보니 내가 떠올렸던 낭만적인 느낌은 없었다.

책의 막판에 나오는, 주인공이 눈이 멀어버린 상태에서 마지막 힘을 쏟아내 자기 집의 내벽에 그린 천재적인 걸작 이야기와

그 걸작을 자신의 죽음과 함께 불살라 버리라고 했다는 유언에서 강렬한 전율을 느끼기는 했지만.

 

 소설의 주인공인 '찰스 스트릭랜드'는 이 사람 소시오패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른 사람의 배려 혹은 고통에 무관심하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멀쩡한 직장과 가정을 버리고 파리로 떠나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이 과정에서 그는 남겨진 가족을 위해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는다.

작중 나레이터인 '나'가 '가족은 어떻게 살라고 그러느냐'고 묻자 '자기 능력으로 살라고 해라'고 무심하게 말한다)

그곳에서 자신의 천재성을 알아봐 주고 열심히 생활을 돌봐 주는 동료 화가의 결혼생활을 완전히 망쳐 버리고 그 아내까지 자살로 몰아가는 이 자는

차라리 남의 이해와 관심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까지 보이기도 한다.

 

 남의 사정에 무심한 것 못지 않게 자기 자신에게도 한없이 무심하다.

외모 가꾸기는 고사하고 옷도 제대로 빨아입지 않고 한없이 누추하고 더러운 집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굶는 일이 예사요 심지어 열병으로 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자신의 상태에 아무 관심이 없어 보인다. 보다못한 동료 화가가 자기 집으로 데려가려 하자 무조건 욕부터 하고 본다. 타히티로 떠나기 직전 부두의 일용노동자로 구르고 급식소에서 나눠 주는 한 덩이 빵으로 연명하면서도 아무런 괴로움이나 서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아예 감정이 없는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한다. 아니 그냥 영혼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이 사람의 허깨비만 부둣가에서 좀비처럼 휘적휘적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현실이 비루한 것까진 맞는데 그 현실에 굳이 크게 무게를 두는 것 같지를 않다. 그냥 무표정하게, 무감각하게 그 현실 속을 살아갈 뿐.

책은 반 고흐의 일생 같은 아프고도 처연한 예술혼의 이야기를 기대했던 나를 지극히 당황하게 만드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소설의 화자인 '나'는 찰스 스트릭랜드의 가까운 지인도 아니고 사실 그에 대해 아주 자세히 알지도 못한다. 젊은 시절 우연히 스트릭랜드 부인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찰스 스트릭랜드와 인연이 이어졌고 잠시 파리로 그를 찾아가 몇 번 대화를 나누고 그가 동료 화가 부부를 파탄으로 몰아가는 것까지 지켜봤을 뿐 그 후로 그가 어디서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선 숫제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 알게 된다. 파편적인 정보들을 가지고 한 사람의 일대기를 쓴 듯한 스타일 덕에 이 소설은 소설이 아니라 마치 실제 있었던 사람에 대한 객관적인 전기처럼 느껴진다. (실존하는 전기처럼 보이려고 한 작가의 의도는 성공한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독자에게 불친절한 소설이기도 하다. 또는 그만큼 '찰스 스트릭랜드'에 대해 독자 스스로 판단할 여지를 많이 남겨 놓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왜 그토록 주위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잔인할 정도로 무심했는가? 그는 무엇 때문에 느닷없이 나이 40에 모든 것을 버리고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다가 머나먼 태평양의 타히티까지 가야 했는가? 타히티에서 그는 그가 찾아 헤매던 것을 결국 보았는가? 나병과 실명의 고통 속에서 고독하게 죽어가면서도 집안에 마지막으로 그림을 남길 때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흥미로운 건 등장인물 중 비단 찰스 스트릭랜드만 난해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인물들도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참 많다. 파리에서 그를 돕다가 그 때문에 인생이 엉망이 되어 버린 스트로브도 이해불가이긴 마찬가지다. 기껏 도와 줘도 좋은 말 한 마디 못 듣고 종국에는 그에게 아내까지 빼앗기고 집까지 내주고 만다. 집을 내주는 이유도 웃기는데 '아내가 그 누추하기 짝이 없는 스트릭랜드의 집으로 들어가는 건 견딜 수 없기 때문'이었단다. 후에 스트로브의 아내 블란치가 스트릭랜드의 변심(?)에 절망하여 자살했을 때도 그는 스트릭랜드가 그려 놓은 블란치의 누드화를 보고는 모든 증오와 분노를 내려놓고 고향으로 떠나기로 결심해 버린다. 그림에서 천재의 걸작을 보았다나. 이 이해할 수 없는 생각과 행동들은 대체 다 뭐란 말인가. 그 역시 예술가였기 때문이어서일까. 사람이 예술이란 유령에 사로잡히면 다들 그렇게 되는지?

 

 그렇다고 예술가들만이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인 건 아닌 것 같다. 소설 속에 잠시 스쳐가는 인물들 중에도 그런 이들이 있다. 영국의 저명한 병원에서 창창하게 잘나갈 수 있었던 의사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매력에 반해 모든 것을 버리고 그곳에 안착하여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알렉산드리아에 정착한 의사가 버린 자리를 대신 차지한 다른 의사는 그에 대한 연민 혹은 조롱을 작중 화자인 '나'에게 털어놓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의아함을 느낀다.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p. 259)라고.

 

 다같은 사람들인데, 같은 하늘 아래 같은 환경에서 비슷비슷한 과정을 거쳐 성장하고 사는데, 세상에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참 너무도 많고,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사람들마다 저마다의 세계가 있고, 저마다의 영혼을 붙잡고 있는 전혀 다른 제각각의 무언가를 다 가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개중에는 찰스 스트릭랜드처럼 보이지 않는 어느 한 가지에, 오직 그 한 가지에 몰입한 나머지 주변의 모든 것을 허깨비로 만들어 버리고 심지어는 자신의 상태도 돌아보지 않는 무아지경으로 가 버린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어쨌든 세상은 넓고 이해할 수 없는 것 역시 너무도 많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홀로이다. 각자가 일종의 구리 탑에 갇혀 신호로만 다른 이들과 교신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신호들이 공통된 의미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 뜻은 모호하고 불확실하기만 하다. 우리는 마음 속에 품은 소중한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고 안타까이 애쓰지만 다른 이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힘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나란히 살고 있으면서도, 나는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p. 211) 

 

 스트릭랜드는 일찌감치 이 사실을 알고, 그랬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도, 자신도, 자신의 세계에서 배제시켜 버리고 자신이 찾았고 보았던 그 한 가지에만 자신의 시선을 고정하고 살았던 것일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새삼 그의 삶이 갑자기 처절한 비극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낭만은 없지만 건조해서 더 아린 핏빛 비극.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자 하고 남이 찾지 않는 것을 찾아 헤매는 데 일생을 던지고 자신의 영혼을 자기만의 심해 속으로 수장시킨, 그래서 결국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었던, 아니 처음부터 누군가와 소통할 생각조차도 아예 하지 않았던 비극적인 천재의 이야기.

 

 아니, 이마저도 그의 내면을 이해 못한 제3자의 시선으로 본 결과물에 불과하다.

몸은 썩고 눈은 멀었어도 세상과 격리된 자신의 오두막 벽에 태초의 풍경을 완성하고, 그 풍경을 자신의 죽음과 함께 불살라 버리라고 말하던 그 순간에 그는 도리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그래, 난 차라리 아무도 이해하지 않으련다. 비단 예술가뿐만 아니라, 사람은 끝내 누구도 오롯이 이해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오롯이 이해받을 수 없는 존재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깊은 밤 전전반측하며 스트릭랜드가 최후에 보고 그린 것이 무엇일지를 속절없이 상상하는 것뿐이다.

by 해피의서재 2012. 6. 9. 09:00

 

 

어린왕자를 찾아서 / 김화영 / 문학동네 / 2011


1. 『어린 왕자』, 한 불행한 사내의 비유적 자서전


어떤 글이든 쓰는 사람의 삶과 마음이 투영되기 마련일 것이다. 생택쥐베리의 『어린 왕자』역시 그러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비행사, 비행사가 추락한 사막, 어린왕자의 목에 감긴 바람에 날리는 스카프, 어린왕자와 장미의 관계, 어린왕자와 비행사의 회고 속에 등장하는 ‘어른’들의 모습 속에서 저자 생택쥐베리의 실제 삶을 보게 된다.


심지어 생의 마지막 순간조차 『어린 왕자』의 마지막을 닮은 생택쥐베리. 그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누이들 사이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부재는 이후에 겪게 되는 남동생의 죽음과 겹쳐 그의 마음속에 상처로 남았다. 비행사가 된 후에는 사막 한가운데서 근무하며 절대고독과 직면하기도 했으나 그는 도리어 그 사막과 절대고독을 사랑했다. 남미 출신의 콘수엘로와 결혼했으나 그 자신의 계속되는 염문과 아내와의 소통부재로 인해 그녀에 대한 책임감과 미안함을 늘 안고 살았다. 진정 사랑하고 마음으로 의지하면서도 그녀와 제대로 마음을 나누는 데 서툴렀던 탓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한가운데에서 드골의 자유 프랑스와 비씨정권 그 어느 곳에도 속하고 싶지 않아 했던 탓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붕 뜬’ 신세가 되어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작가로서 세속적인 명성을 얻었고 겉으로는 화려한 삶을 누렸지만 그의 내면은 행복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자본주의가 가속화되고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돈과 숫자로 모든 것이 재단되고 인간성이 사라져 가는 시대상은 그에게 현실 사회에 대한 거부감을 더욱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그는 유년 시절, 순수와 고독의 세계로 회귀하고 싶어했다. 가시 네 개로 자신을 지키려 했던 장미꽃은 그가 사랑한 아내 콘수엘로이기도 했지만 또한 생택쥐베리 자신이기도 했다.


한 편의 문학을 통해 그 저자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글을 통해 한 인간의 삶이 세상에 완전히 다 드러나고 세월이 흘러도 두고두고 알려진다는 점에서 문학이란 참 무서운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2. 나이들수록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울림


『어린 왕자』는 환유, 즉 비유로 가득차 있다. 원래 크리스마스 시즌을 염두에 둔 어린이책으로 기획되었다고 하지만 이 책은 어린이보다는 오히려 어른들에게 더 강렬한 울림을 주는 책이다. 나이가 들수록 작품 속에 녹아든 비유를 볼 수 있게 되고 자신에게 대입하며 동감할 여지가 더 넓어지기 때문이다. 어린왕자와 장미의 관계, 여우가 일깨워준 ‘길들인다’는 것의 의미, 우물을 감춘 사막의 아름다움 등을 어린 세대는 단순히 하나의 아름다운 우화처럼 느낄 뿐 더 이상 깊은 감흥을 받기는 어렵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세파에 부딪치고, 사람에 상처받고, 그렇게 세상을 이해하는 눈이 깊어진 후에 읽는 『어린 왕자』는 어린 시절에 읽은 것과는 또다른 큰 감동을 준다.


문학에는 정답이 없다.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만큼 문학 속에 숨은 의미들이 보인다. 따라서 같은 작품을 읽더라도 사람마다 느끼고 깨닫는 것이 다 다르다. 읽는 사람의 삶이 작품에 투영되어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것이 문학의 특징이자 본질이다.


3. 그리고 또다른 이야기


마지막으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돈과 수치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어른들’을 보며 질문해 본다. 과학이란 이름의 수치 데이터가 과연 세상을 보는 전부일까? 답은 ‘아니다’. 과학 실험을 할 때 조건이나 변수, 대입하는 데이터를 조금만 바꿔도 산출되는 결과는 모두 달라지기 마련이다. 한때 진리라고 했던 과학 이론이 나중에 뒤집힌 적도 많다. 과학 데이터에 대한 맹신은 위험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던 『어린 왕자』의 한마디는, 눈에 보이는 ‘딱 떨어지는’ 데이터를 맹신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by 해피의서재 2012. 5. 19.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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