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내공

저자
박민영 지음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2012-08-3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뜬구름 같은 인문학을 내 것으로 만들어주는 공력, 공감, 공명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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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서는 인문학이 죽어간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인문학 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같은 존재를 놓고 정반대의 말들이 나오니 혼란스럽다.

공공과 민간을 막론하고 여러 기관에서 인문학 콘서트같은 강연 행사를 수시로 열고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며 들으러 가는 것을 보면

인문학 붐이 이는 것 같기도 하고,

대학의 인문학 계열 학과들이 여전히 침체일로를 걷는 것이나 서점가에서 제일 잘나가는 도서들이 

역시나 자기계발서나 실용서 중심인 것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 이 시대가 인문학이나 인문 정신에 목말라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그 기술에 기댄 온갖 상품과 놀잇거리들이 쏟아지면서 생활은 편리해지고 즐길거리도 넘쳐나지만

이것들이 정신의 공허함까지 채워 주지는 못하고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이며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것이 나와 우리, 그리고 사회를 위해 맞는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그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온갖 정보들 속에서 우리는 가치 있는 것들을 얼마나 건져내고 있으며

가치 있는 것의 기준은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가.

아니, 지금 내가 사는 이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제대로 직시하고는 있는 것인가.

그렇기에 요즘이야말로 인문 내공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박민영의 인문 내공》, 이 책이 특별하게 와닿은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책에 따르면 인문(人文)사람의 무늬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범이나 개, 양 등의 무늬와는 다른, 사람만이 갖고 있는 그 무늬를 연구하는 것이 인문학이라 한다.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사회 현상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거시적으로 통찰하는 힘이 바로 인문 내공이라 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동등하게 존엄한 가치를 가졌다는 것을 아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지만 사실 인문학이야말로 삶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학문이기도 하다.

문학과 철학과 사학은 모두 뭔가를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일이다.

굳이 문학, 철학, 사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게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은 항상 뭔가를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일들의 연속이다.

그리고 우리가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이거나 혹은 특별한 사건들에 관한 일이다.

왜 아까부터 저 사람은 보기에도 사용한 지 한참 된 물건을 들고 와서 가게 주인에게 환불해 달라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것인가

하는 생각부터,

왜 요즘 뉴스는 주말 캠핑문화 소개 같은 신변잡기적인 기사들만 자꾸 방송하는가같은 종류의 의문들까지.

여기서 한 꺼풀 더 깊이 들어가,

저 사람은 왜 그런 억지를 부리게 되었나혹은

어쩌다가 방송국에서는 저런 류의 뉴스만 주로 내보내게 되었나

하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들을 탐구해 나가는 것이 바로 인문학적 사고일 것이다.

 

인문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는 현실에 관심과 의문을 갖고,

 ‘?’라는 질문을 던지며 현실에 말을 거는 것에서 인문학은 출발한다.

주변의 평범한 경험을 강렬하게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에서 인문학은 시작된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던 헬렌 켈러가 물펌프에서 쏟아지는 물을 온몸으로 흠뻑 느낀 뒤

자기 주변의 모든 사물들에 관심을 보이고 이름을 묻기 시작한 것처럼.

 

내공을 쌓기 위해서는 수련이 필요하다.

책은 인문 내공을 쌓기 위한 기술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한 번쯤 들어 봤을 세 단어, 다독다작다상량이 이 책에도 등장한다.

인문학적으로 생각하고(다상량), 인문학적으로 읽고(다독), 인문학적으로 쓰는(다작) 방법, 혹은 기술에 대한 소개가 차례로 이어진다.

지금 자신이 직면한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답을 줄 수 있는 종류의 책부터 읽기 시작할 것,

번역서는 저자에 대한 애정이나 경의를 갖고 있는 사람이 성심껏 번역한 책으로 고를 것,

읽고 있는 책과 관련된 책을 함께 읽어나갈 것,

최대한 간단명료한 문장을 사용해 객관적이고 선명한 근거를 앞세운 글을 쓸 것 등

무엇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을까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들이 나와 있으니

이와 관련된 질문을 갖고 있던 분들이라면 이 책을 참고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가장 우려하고 걱정하며 강조하는 바에 대해 정리하며 갈음하고자 한다.

이른바 요즘 ‘인문학의 부흥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시각이 책의 여러 곳에 담겨 있다.

인문학 콘서트등의 이름으로 (주로 기업을 중심으로) 대중에게 공급되는 인문학이

과연 참된 인문학인가에 대한 의문이 책 속 여기저기에서 표출된다.

현재의 인문학이 자본을 가진 대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기능하는 소위 기업인문학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과 함께,

인문학이 자본과 기업의 시녀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주제를 가장 잘 압축한 부분이라 여겨지는 책의 서문을 통해 저자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환경과 문화의 힘은 압도적이며, 여기에 매몰되어 진짜 자신을 잃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읽고 쓰고 사유하며 자신만의 인문 내공을 키워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동안 쌓여 온 온갖 지식과 문화가 만들어낸 거대한 환경이다. 여기에 매몰되지 않고 독서를 통해 자신만의 힘으로 세상을 읽고 통찰하는 내공을 키우는 이들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는 더욱 인문적이고 인간다운 사회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by 해피의서재 2013. 5. 28. 18:39


트렌드 코리아 2013

저자
김난도 지음
출판사
미래의창 | 2012-11-21 출간
카테고리
경제/경영
책소개
김난도의 2013년 트렌드 키워드는 '코브라 트위스트(COB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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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아픈 청춘들'을 위로한 책『아프니까 청춘이다』, 『천 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로 유명한 김난도 교수. 사실 그의 본업은 소비자 트렌드 분석과 연구이다. 이 포스팅에서 다룰『트렌드 코리아 2013』은 김 교수가 몸담고 있는 서울대 생활과학대학 소비트렌드 분석센터에서 올해 소비시장의 주류로 떠오를 키워드를 예측, 정리한 책이다. 매년 '트렌드 코리아 20**'이라는 제목을 달고 출간되는 시리즈물인데, 그 해의 간지(刊支)에 해당하는 동물을 소재로 메인 키워드를 제시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예 : '용의 해'였던 2012년의 키워드는 'DRAGON BALL'이었다) '뱀의 해'인 올해는 '뱀'과 관련된 단어인 'COBRA TWIST'를 메인 키워드로 제시했다. 책에서 제시한 10가지 키워드의 맨 앞 이니셜을 따서 지은 워딩인데 왠지 억지스런 느낌도 있긴 하지만 각 이니셜의 앞부분을 들어보면 이해가 갈 법도 하다.

 

City of hysterie 날 선 사람들의 도시

OTL Nonsense 넌센스의 시대

Bravo, Scandimom 스칸디맘이 몰려온다

Redefined ownership 소유냐, 향유냐

Alone with lounging 나홀로 라운징

Taste your life out 미각의 제국

Whenever U want 시즌의 상실

It's detox time 디톡스가 필요한 시간

Surviving burn-out society 소진사회

Trouble is welcomed 적절한 불편

 

정리를 해 놓고 보니 이 키워드들을 관통하는 정서가 있다. 단순히 'COBRA TWIST'라는 단어를 보았을 때 느낀 정서와도 비슷하다.

그것은 바로 "불안"이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 온통 날을 세우고 주변을 경계하다가 조금이라도 거슬리는 것이 발견되면 바로 공격 태세를 취하는 것이나, 끝장을 보고 완전히 나가떨어질 때까지 일에 미치고 노는 데 미치는 것이나, 그렇게 육체적-정신적 에너지가 전소되고 피로가 밀려들고 삶의 독성에 지쳐드는 자신을 치유하고 달래고자 자신만의 휴식 공간과 디톡스(해독) 방식을 찾는 것이나,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건이 빈번히 일어나는 현대 사회에서 감성과 찰나적 센스에 기댄 개그, 오감 중 가장 감각적이라는 미각에 열광하며 현실을 잠시 잊는 것이나 모두 현대 사회의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에서 파생되는 현상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쿨함과 똑똑함으로 대변되는 현대 소비자들의 이면에 자리잡고 있는 세상에 대한 불신과 빡빡한 삶에 대한 피로, 그리고 위로가 필요한 텅 빈 마음.

소비 트렌드라는 게 결국 현재 우리 사회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어떤 생각과 요구를 가지고 살아가는가를 대변하는 것임을 생각해 볼 때

이것은 비단 기업의 상품기획 부서들뿐 아니라 우리 사회 각 기관들이 함께 심각하고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고려할 문제인 것 같았다.

 

책에서 제시한 트렌드 중에는 한편으로는 우리 사회가 긍정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감지하게 하는 키워드도 있었다.

스칸디맘에 대한 부분이나 '소유'에 대한 의식 변화, DIY 등 소비자 자신의 직접적인 참여를 중시하고 선호하는 면 등이 그것이다.

'나도 자녀도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삶'을 추구하며 자녀와의 정서적 교감과 인성교육을 중시하는 '북유럽식 육아법'을 따르는 '스칸디맘' 세대의 등장, 그때그때 필요한 것을 빌려 쓰거나, 내가 쓰지 않는 물건을 다른 이에게 빌려 주고 함께 공유하며 합리적인 생활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증가, 가만히 앉아서 모든 것을 공급받기보다 스스로 무언가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직접 해 보면서 자신의 삶과 주변에 대한 주인의식을 키워가는 세태의 확산.

세상은 여전히 불안정하지만 그 속에서도 사람들은 나름대로 돌파구를 찾아내며 각자 가진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 같다.

 

책의 서두에 저자는 이런 말을 했다.

책표지의 메인 컬러인 노란색과 '코브라 트위스트' 모두 우리 사회에 상존하고 있는 불안과 위기를 상징하고 있다고.

그러나 그 속에서도 소비자들과 기업들, 그리고 우리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이 불안과 위기에 맞서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나가고 있고

그 결과 세상에는 새로운 생활 스타일과 유행이 명멸하고, 또 사회는 그 영향으로 조금씩 변화한다.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그 움직임들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떻게 나타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 바로 이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이다.

 

말의 해인 내년엔 '트렌드 코리아 2014'가 또다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질 것이다.

그 책에서는 2013년을 어떻게 반추하고, 2014년의 전망을 어떻게 예측할까.

부디 그 책에는 올 한 해와 내년 한 해가 모두 희망적이고 밝은 내용으로만 가득 채워져 있었으면 좋겠다.

by 해피의서재 2013. 3. 1. 11:17

 


철학이 필요한 시간

저자
강신주 지음
출판사
사계절 | 2011-02-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아파도 당당하게, 두려움 없이!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철학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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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는 순간이 또 다가왔다.

들뜨기는커녕 되려 괜히 공허해지는 마음을 달래고자 이 책을 집어들었다.

 

이 책의 69페이지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인문학은 주어진 현실과 인간의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꿈꾸려는 학문이다.

 

인문학이 그토록 강조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는 왜 살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또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보다 명징하고 가치있는 삶이 될 수 있으며, 우리가 사는 이 사회도 보다 인간적이고 자유로운 곳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문학 그 자체 못지 않게 인문학을 읽고 해석하는 방식도 매우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책의 초반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참된 인문 정신과 거짓 인문 정신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좋든싫든 현실에 안주하고 뭐가 잘못되었는지 따질 것 없이 그저 순종하는 나약한 삶을 살게 만드는 것이 거짓 인문 정신이라면,

참된 인문 정신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정직하게 대면하고 문제의 원인을 스스로 치유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라 한다.

전자가 위로를 앞세운 도피에의 권유라면, 후자는 문제의 근원과 정정당당하게 맞설 힘을 부여하는 에너지원인 셈이다. 

그래서 결국, 진정한 인문학자란 '아이 같은 눈으로' 인간과 사회의 진면목을 투명하게 꿰뚫어보며,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는 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이 책 곳곳에 선명하게 투영되어 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개인으로서의 '나'에 대한 성찰에 대한 글들이고, 2부는 다른 이와의 관계에 대하여 다루고 있으며, 3부는 한 발 더 나아가 사회 전체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다양한 철학자들의 글과 사상을 소개하는 가운데, 나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로 대략 아래의 4가지를 꼽아 보았다.

 

현실직시

주체성

자유와 책임

공존

 

"우리의 인생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총체"(p.47)라는 구절에서는 불안한 미래에 현재를 저당잡힌 채 살지 말고 오직 지금을 역동적으로 살라는 메시지를 접했다.

 

동학의 '인내천' 사상과 맹자의 '진인사대천명'에서는 '초월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김으로서 자기의 위기를 미봉하려 하기보다 자신의 성찰과 노력으로 그 위기를 정면돌파하려 하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상에 대한 촉구를 보았다.

 

칸트의 도덕 철학에서는 인간 자체의 존엄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존재를 목적이라 하며, 나 자신도 다른 사람도 모두 수단이 아닌 하나의 '목적'으로서 각자의 자유를 누리고 또 그 자유를 서로 보장해 줄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마투라나의 '관찰자주의'를 읽을 때는 "역사 속에는 거짓된 세계와 진짜 세계라는 종교적이고 허위적인 이분법이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역사는 낡은 세계와 새로운 세계라는 역동적 생성과 창조만이 숨쉬는 곳이기 때문이다"(p.97)라는 이 문장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공존하라는 가르침을 얻었다.

 

책의 3부에서 이어지는 사회에 대한 성찰들은 이 키워드들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의 여러 부분을 고찰하고 비판한다.

자본과 권력, 편가르기, '생계와 생존만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된' 세태, 소비사회의 명암, 현대 사회와 종교, 대의민주주의, 진보주의 등.

이 다양하고 광범위한 이야기들을 통해 결국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위의 네 가지 단어로 압축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하면 대략 이렇게 귀결되지 않을까.

 

"마음을 열고 사람을 존중하며, 현실에 발붙이고 매 순간 당당하게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라."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세상을 더 이롭고 인간적인 곳으로 만들어 가는 주체이자 원동력이라는 것이,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인간과 세상에 품는 낙관론일 것이다.

 

앞으로도 삶과 인생, 사랑, 그리고 현대사회에 대한 통찰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이 책을 다시 찾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견하게 된다.

아울러 이 책의 말미에는 책에 인용된 참고도서들의 목록과 그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도 실려 있으니

더 많은 책을 접하고 싶을 때 이를 참고하면 더욱 좋을 성 싶다.

 

by 해피의서재 2013. 1. 1. 21:47

 


이스탄불로부터의 선물

저자
이나미 지음
출판사
안그라픽스 | 2007-12-19 출간
카테고리
여행
책소개
이스탄불 여행기. 이 책은 혼자 떠나는 세계 도시 여행기로 『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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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작년 초여름에 터키 여행을 다녀왔었다. 생애 첫 해외 여행이었다. 

본격적인 '해외 여행'이란 걸 처음 시작한 곳이 바로 이스탄불이었다.

여러 곳을 한번에 돌아다니느라 이스탄불에 머물렀던 시간은 단 하루 정도였지만 이스탄불이란 도시는 그 짧은 시간에도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겨 주었다.

 

터키-그리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서 언젠가는 꼭 다시 이스탄불을 찾을 거라고 다짐했었다.

그러나 그 다짐은 아직까진 이루어지지 않았다. 언제 다시 이루어질지 기약도 하기 어렵다.

가끔 이스탄불에 관한 책들을 찾아 읽으며 그 허기를 달래던 차에 이 책이 내게로 왔다.

폭설이 내리던 최근의 어느 날, 마치 화사하게 장식된 크리스마스 트리처럼 빛나는 표지가 눈에 띄어 읽기 시작한 책이 바로 이 책이었다.

 

『이스탄불로부터의 선물』.

 

딸과 함께 이스탄불 곳곳을 여행하며 느낀 감상을 담은 기행문이다.

 

북디자이너가 쓴 책답게 책의 디자인부터 참 아름다웠다. 군데군데 페이지 전체를 가득 메운 이스탄불의 여러 풍경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성 소피아 성당과 돌마바흐체 궁 등 널리 알려진 문화유적들의 웅장한 자태뿐만 아니라

이스탄불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소박한 모습들도 함께 담겨 있어서 더 좋았다.

사람들로 가득 찬 거리, 재래시장의 노점상들, 클럽 안, 저자가 들렀던 카페와 식당들, 그가 묵었던 호텔 로비 등.

 

그러나 가장 내 마음을 끌었던 것은 책의 여러 군데에서 저자가 계속 이야기하던 '관용'과 '사랑'의 메시지였다.

 

그리스 정교의 본산이었으나 오스만 제국에 정복된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고 모스크가 되어 계속 살아남은 성 소피아 성당의 이야기,

(그래서 저자는 성 소피아 성당을 '두 배의 축복을 받은 곳'이라 표현했다)

'오직 사랑 그 자체로 말하라'고 강조했던 메블라나 루미의 이야기야말로 저자가 독자들에게 가장 간절히 전달하고 싶어한 선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책의 말미에 저자는 이런 말을 남겼다.

 

모자라거나 지나치지 않은, 배려깊지만 호들갑스럽지 않은, 유연하면서도 소신을 잃지 않는, 웃음 가득하면서도 진지함을 소중히 여기는, 서로 다름을 배척하지 않고 아량으로 포용해 버리는, 또한 서로 다름을 존중함으로 내버려둘 수 있는, 막연히 남을 흉내내기보다는 자신의 일부로 삼아 버리는, 전통과 현대가 서로를 아끼며 사이좋게 공존하는, 스스로 무진 갈등을 겪으면서도 여유롭고 의연한, 이들만의 흔들림 없는 삶의 방식은 천 개의 빛깔을 자랑하며 불을 밝힌 등불처럼 아름답다. 그 등불들은 저마다의 자율적인 빛을 발하며 따로 또 함께 이 도시를 밝힌다. - p.330

 

서로 다른 이들 간의 끊임없는 갈등과 충돌로 얼룩진 지금 우리 사회에 충분히 유효한 충고가 아닐까.

오랜 세월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선에서 그들 모두를 오롯이 품어 온 이스탄불처럼

나도, 내가 속한 이 세상도 그런 관용과 포용의 자세를 온전히 실천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꿈꾸어 본다.

by 해피의서재 2012. 12. 25. 13:35

 

달과 6펜스 / 서머셋 몸 / 민음사 / 2000

 

 1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마치 한 편의 전기(傳記) 같았다. 왠지 한자로 쓸 때 傳記 말고 傳奇라고 써야 할 것만 같다.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천재 혹은 소시오패스(!) 화가의 일대기. 남의 감정 하나 전혀 살필 줄 모르고, 남의 고통에 무감각하고, 안정된 직장과 안락한 가정을 버리고 험한 밑바닥 인생 속을 뒹굴면서도 그게 힘든지 어떤지 아무 느낌도 없는 듯한, 차라리 사람이 아닌 목석에 가까워 보이는 이 사내. 그의 행적은 기묘함의 연속이다.

 

 처음 《달과 6펜스》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 왠지 참 낭만적으로 들렸다.

'타히티의 화가' 폴 고갱을 모델로 했다는 점도 그렇고 꿈(달)과 현실(6펜스)을 나란히 병치시킨 제목도 그렇고

처음 내가 이 책에 대해 떠올렸던 이미지는 '닿을 수 없는 꿈과 비루한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고 고뇌하는 슬픈 화가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막상 책을 직접 읽어 보니 내가 떠올렸던 낭만적인 느낌은 없었다.

책의 막판에 나오는, 주인공이 눈이 멀어버린 상태에서 마지막 힘을 쏟아내 자기 집의 내벽에 그린 천재적인 걸작 이야기와

그 걸작을 자신의 죽음과 함께 불살라 버리라고 했다는 유언에서 강렬한 전율을 느끼기는 했지만.

 

 소설의 주인공인 '찰스 스트릭랜드'는 이 사람 소시오패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다른 사람의 배려 혹은 고통에 무관심하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멀쩡한 직장과 가정을 버리고 파리로 떠나는 것까지는 그렇다 쳐도

(이 과정에서 그는 남겨진 가족을 위해 아무것도 남겨 놓지 않는다.

작중 나레이터인 '나'가 '가족은 어떻게 살라고 그러느냐'고 묻자 '자기 능력으로 살라고 해라'고 무심하게 말한다)

그곳에서 자신의 천재성을 알아봐 주고 열심히 생활을 돌봐 주는 동료 화가의 결혼생활을 완전히 망쳐 버리고 그 아내까지 자살로 몰아가는 이 자는

차라리 남의 이해와 관심을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까지 보이기도 한다.

 

 남의 사정에 무심한 것 못지 않게 자기 자신에게도 한없이 무심하다.

외모 가꾸기는 고사하고 옷도 제대로 빨아입지 않고 한없이 누추하고 더러운 집도 전혀 개의치 않는다. 굶는 일이 예사요 심지어 열병으로 다 죽어가는 와중에도 자신의 상태에 아무 관심이 없어 보인다. 보다못한 동료 화가가 자기 집으로 데려가려 하자 무조건 욕부터 하고 본다. 타히티로 떠나기 직전 부두의 일용노동자로 구르고 급식소에서 나눠 주는 한 덩이 빵으로 연명하면서도 아무런 괴로움이나 서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아예 감정이 없는 사람 같아 보이기도 한다. 아니 그냥 영혼은 어디론가 날아가 버리고 이 사람의 허깨비만 부둣가에서 좀비처럼 휘적휘적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현실이 비루한 것까진 맞는데 그 현실에 굳이 크게 무게를 두는 것 같지를 않다. 그냥 무표정하게, 무감각하게 그 현실 속을 살아갈 뿐.

책은 반 고흐의 일생 같은 아프고도 처연한 예술혼의 이야기를 기대했던 나를 지극히 당황하게 만드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었다.

 

 소설의 화자인 '나'는 찰스 스트릭랜드의 가까운 지인도 아니고 사실 그에 대해 아주 자세히 알지도 못한다. 젊은 시절 우연히 스트릭랜드 부인을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찰스 스트릭랜드와 인연이 이어졌고 잠시 파리로 그를 찾아가 몇 번 대화를 나누고 그가 동료 화가 부부를 파탄으로 몰아가는 것까지 지켜봤을 뿐 그 후로 그가 어디서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선 숫제 다른 사람의 말을 통해 알게 된다. 파편적인 정보들을 가지고 한 사람의 일대기를 쓴 듯한 스타일 덕에 이 소설은 소설이 아니라 마치 실제 있었던 사람에 대한 객관적인 전기처럼 느껴진다. (실존하는 전기처럼 보이려고 한 작가의 의도는 성공한 것 같다)

하지만 그만큼 독자에게 불친절한 소설이기도 하다. 또는 그만큼 '찰스 스트릭랜드'에 대해 독자 스스로 판단할 여지를 많이 남겨 놓았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왜 그토록 주위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잔인할 정도로 무심했는가? 그는 무엇 때문에 느닷없이 나이 40에 모든 것을 버리고 밑바닥 인생을 전전하다가 머나먼 태평양의 타히티까지 가야 했는가? 타히티에서 그는 그가 찾아 헤매던 것을 결국 보았는가? 나병과 실명의 고통 속에서 고독하게 죽어가면서도 집안에 마지막으로 그림을 남길 때 그는 어떤 심정이었을까?

 

 흥미로운 건 등장인물 중 비단 찰스 스트릭랜드만 난해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인물들도 이해하기 힘든 구석이 참 많다. 파리에서 그를 돕다가 그 때문에 인생이 엉망이 되어 버린 스트로브도 이해불가이긴 마찬가지다. 기껏 도와 줘도 좋은 말 한 마디 못 듣고 종국에는 그에게 아내까지 빼앗기고 집까지 내주고 만다. 집을 내주는 이유도 웃기는데 '아내가 그 누추하기 짝이 없는 스트릭랜드의 집으로 들어가는 건 견딜 수 없기 때문'이었단다. 후에 스트로브의 아내 블란치가 스트릭랜드의 변심(?)에 절망하여 자살했을 때도 그는 스트릭랜드가 그려 놓은 블란치의 누드화를 보고는 모든 증오와 분노를 내려놓고 고향으로 떠나기로 결심해 버린다. 그림에서 천재의 걸작을 보았다나. 이 이해할 수 없는 생각과 행동들은 대체 다 뭐란 말인가. 그 역시 예술가였기 때문이어서일까. 사람이 예술이란 유령에 사로잡히면 다들 그렇게 되는지?

 

 그렇다고 예술가들만이 이해할 수 없는 인물들인 건 아닌 것 같다. 소설 속에 잠시 스쳐가는 인물들 중에도 그런 이들이 있다. 영국의 저명한 병원에서 창창하게 잘나갈 수 있었던 의사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매력에 반해 모든 것을 버리고 그곳에 안착하여 행복하게 산다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알렉산드리아에 정착한 의사가 버린 자리를 대신 차지한 다른 의사는 그에 대한 연민 혹은 조롱을 작중 화자인 '나'에게 털어놓지만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의아함을 느낀다. '자기가 바라는 일을 한다는 것, 자기가 좋아하는 조건에서 마음 편히 산다는 것, 그것이 인생을 망치는 일일까'(p. 259)라고.

 

 다같은 사람들인데, 같은 하늘 아래 같은 환경에서 비슷비슷한 과정을 거쳐 성장하고 사는데, 세상에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지고 다르게 사는 사람들이 참 너무도 많고, 그들을 이해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게 느껴진다. 사람들마다 저마다의 세계가 있고, 저마다의 영혼을 붙잡고 있는 전혀 다른 제각각의 무언가를 다 가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개중에는 찰스 스트릭랜드처럼 보이지 않는 어느 한 가지에, 오직 그 한 가지에 몰입한 나머지 주변의 모든 것을 허깨비로 만들어 버리고 심지어는 자신의 상태도 돌아보지 않는 무아지경으로 가 버린 이들도 있을지 모른다. 어쨌든 세상은 넓고 이해할 수 없는 것 역시 너무도 많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에서 홀로이다. 각자가 일종의 구리 탑에 갇혀 신호로만 다른 이들과 교신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신호들이 공통된 의미 가치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그 뜻은 모호하고 불확실하기만 하다. 우리는 마음 속에 품은 소중한 생각을 다른 이들에게 전하려고 안타까이 애쓰지만 다른 이들은 그것을 받아들일 힘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나란히 살고 있으면서도, 나는 남을 이해하지 못하고 남도 나를 이해하지 못한 채로 함께 어울리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갈 수밖에 없다." (p. 211) 

 

 스트릭랜드는 일찌감치 이 사실을 알고, 그랬기 때문에 주위 사람들도, 자신도, 자신의 세계에서 배제시켜 버리고 자신이 찾았고 보았던 그 한 가지에만 자신의 시선을 고정하고 살았던 것일까. 생각이 여기에 이르자 새삼 그의 삶이 갑자기 처절한 비극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낭만은 없지만 건조해서 더 아린 핏빛 비극.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자 하고 남이 찾지 않는 것을 찾아 헤매는 데 일생을 던지고 자신의 영혼을 자기만의 심해 속으로 수장시킨, 그래서 결국 누구와도 소통할 수 없었던, 아니 처음부터 누군가와 소통할 생각조차도 아예 하지 않았던 비극적인 천재의 이야기.

 

 아니, 이마저도 그의 내면을 이해 못한 제3자의 시선으로 본 결과물에 불과하다.

몸은 썩고 눈은 멀었어도 세상과 격리된 자신의 오두막 벽에 태초의 풍경을 완성하고, 그 풍경을 자신의 죽음과 함께 불살라 버리라고 말하던 그 순간에 그는 도리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그래, 난 차라리 아무도 이해하지 않으련다. 비단 예술가뿐만 아니라, 사람은 끝내 누구도 오롯이 이해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오롯이 이해받을 수 없는 존재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깊은 밤 전전반측하며 스트릭랜드가 최후에 보고 그린 것이 무엇일지를 속절없이 상상하는 것뿐이다.

by 해피의서재 2012. 6. 9. 09:00

 

 

어린왕자를 찾아서 / 김화영 / 문학동네 / 2011


1. 『어린 왕자』, 한 불행한 사내의 비유적 자서전


어떤 글이든 쓰는 사람의 삶과 마음이 투영되기 마련일 것이다. 생택쥐베리의 『어린 왕자』역시 그러하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비행사, 비행사가 추락한 사막, 어린왕자의 목에 감긴 바람에 날리는 스카프, 어린왕자와 장미의 관계, 어린왕자와 비행사의 회고 속에 등장하는 ‘어른’들의 모습 속에서 저자 생택쥐베리의 실제 삶을 보게 된다.


심지어 생의 마지막 순간조차 『어린 왕자』의 마지막을 닮은 생택쥐베리. 그는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누이들 사이에서 자랐다. 아버지의 부재는 이후에 겪게 되는 남동생의 죽음과 겹쳐 그의 마음속에 상처로 남았다. 비행사가 된 후에는 사막 한가운데서 근무하며 절대고독과 직면하기도 했으나 그는 도리어 그 사막과 절대고독을 사랑했다. 남미 출신의 콘수엘로와 결혼했으나 그 자신의 계속되는 염문과 아내와의 소통부재로 인해 그녀에 대한 책임감과 미안함을 늘 안고 살았다. 진정 사랑하고 마음으로 의지하면서도 그녀와 제대로 마음을 나누는 데 서툴렀던 탓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한가운데에서 드골의 자유 프랑스와 비씨정권 그 어느 곳에도 속하고 싶지 않아 했던 탓에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붕 뜬’ 신세가 되어 마음고생을 하기도 했다.


작가로서 세속적인 명성을 얻었고 겉으로는 화려한 삶을 누렸지만 그의 내면은 행복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자본주의가 가속화되고 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돈과 숫자로 모든 것이 재단되고 인간성이 사라져 가는 시대상은 그에게 현실 사회에 대한 거부감을 더욱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그는 유년 시절, 순수와 고독의 세계로 회귀하고 싶어했다. 가시 네 개로 자신을 지키려 했던 장미꽃은 그가 사랑한 아내 콘수엘로이기도 했지만 또한 생택쥐베리 자신이기도 했다.


한 편의 문학을 통해 그 저자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글을 통해 한 인간의 삶이 세상에 완전히 다 드러나고 세월이 흘러도 두고두고 알려진다는 점에서 문학이란 참 무서운 존재인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2. 나이들수록 더욱 강렬하게 다가오는 울림


『어린 왕자』는 환유, 즉 비유로 가득차 있다. 원래 크리스마스 시즌을 염두에 둔 어린이책으로 기획되었다고 하지만 이 책은 어린이보다는 오히려 어른들에게 더 강렬한 울림을 주는 책이다. 나이가 들수록 작품 속에 녹아든 비유를 볼 수 있게 되고 자신에게 대입하며 동감할 여지가 더 넓어지기 때문이다. 어린왕자와 장미의 관계, 여우가 일깨워준 ‘길들인다’는 것의 의미, 우물을 감춘 사막의 아름다움 등을 어린 세대는 단순히 하나의 아름다운 우화처럼 느낄 뿐 더 이상 깊은 감흥을 받기는 어렵다. 그러나 나이가 들고, 세파에 부딪치고, 사람에 상처받고, 그렇게 세상을 이해하는 눈이 깊어진 후에 읽는 『어린 왕자』는 어린 시절에 읽은 것과는 또다른 큰 감동을 준다.


문학에는 정답이 없다.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보고 듣고 경험한 만큼 문학 속에 숨은 의미들이 보인다. 따라서 같은 작품을 읽더라도 사람마다 느끼고 깨닫는 것이 다 다르다. 읽는 사람의 삶이 작품에 투영되어 마음에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것이 문학의 특징이자 본질이다.


3. 그리고 또다른 이야기


마지막으로 작품 속에 등장하는, ‘돈과 수치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어른들’을 보며 질문해 본다. 과학이란 이름의 수치 데이터가 과연 세상을 보는 전부일까? 답은 ‘아니다’. 과학 실험을 할 때 조건이나 변수, 대입하는 데이터를 조금만 바꿔도 산출되는 결과는 모두 달라지기 마련이다. 한때 진리라고 했던 과학 이론이 나중에 뒤집힌 적도 많다. 과학 데이터에 대한 맹신은 위험하다. ‘정말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던 『어린 왕자』의 한마디는, 눈에 보이는 ‘딱 떨어지는’ 데이터를 맹신하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by 해피의서재 2012. 5. 19. 06:30

 

책은 도끼다 / 박웅현 / 북하우스 / 2011


저자는 말한다. ‘책은 마음 속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라고. 단단히 굳어 있는 마음의 바다를 깨어 다시 찰랑이게 만드는 데서 창의성이 다시 솟아나 넘실거리고, 그 힘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다시 뜨이게 되며, 다시 뜨인 눈을 통해 인생의 풍요와 행복을 새삼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책이라고.

 

저자는 흔히 말하는 다독가는 아니라고 스스로 평한다. 대신 한 권을 읽어도 깊이있게 읽는다고 자부한다. (그래도 한 달에 서너 권씩 읽을 정도면 독서량 면에서도 꽤 괜찮은 스코어 같다) 아울러 그는 다독 콤플렉스를 버리라고 충고한다. 독서량에 매몰되면 쉽고 빨리 읽히는 얇은 책만 찾게 된다고. ‘인생에 울림이 있는 책을 얼마나 만났느냐가 더 중요하지 숫자는 중요치 않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나 역시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한 권을 읽어도 꼼꼼하고 세심하게 책의 가장 깊은 정수까지 흡수한 덕택인지, 그가 지금까지 읽어온 여러 책을 한 강의에 한데 버무려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그의 언변은 물흐르듯 거침이 없다. 하나의 강연 안에 이철수의 판화(미술), 김훈의 산문과 최인훈의 <광장>(문학), 불가의 선문(종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등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함께 공존한다. 얼마나 다양하게, 또 깊이있게 책을 읽으면 이런 강연이 나오는 걸까. 8회에 걸친 강독회 원고를 고스란히 글로 옮긴 책의 특성 때문인지 책을 펼치면 마치 강연 실황을 녹음한 것을 귀로 듣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나는 정말로 어느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들으며 노트 필기하듯 이 책을 읽었다.

 

프롤로그격인 시작은 울림이다편을 시작으로, 김훈의 지극히 사실적인 글들을 통해 보는 세밀한 관찰의 힘, 알랭 드 보통의 소설 혹은 인생사 연구 보고서’,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들이 그린 지중해 특유의 실존적이자 현세지향적인 내면 의식,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안나 카레니나>를 통한 인간에 대한 탐구에 이르기까지, 박웅현은 다방면의 책들을 편안하고도 흥미롭게 독자에게 소개하며 그 속에서 얻은 자기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설파한다.

 

그의 이야기를 대충 요약하면 현재를 살아라, 주위를 늘 관찰하라,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실제적인 것에 충실하라정도가 될 듯하다. 방대하다면 방대한 스케일에, 고금의 인정을 받은 책들이 대거 등장하고 다양한 인문학적 이야기가 쏟아지는 향연들로 이루어진 책이지만 이리저리 다 정리해서 추리고 나면 정말 저 정도 말이 남는다. 현학적이거나 주관적인 말을 버리고 오직 사실에 입각해서 탁탁 쳐내듯 글을 쓰는 김훈의 문장이나, ‘상대적 궁핍 혹은 궁핍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불안이 온다던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 대한 해석이나, 땅에 발을 디딘 현실적 인문학이 아닌 기계적인 이론만 갖고 사회를 파악하려는 헛똑똑이인물을 등장시키며 그를 비판하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한 대목, 그리고 여자든 꽃이든 지나가던 짐승이든 순간순간 눈에 띄는 모든 것에 경이로워하고 감탄하던 그리스인 조르바 등, 이들의 공통점을 추려 보면 정말로 현재, 실존, 있는 그대로정도로 요약되지 않는가.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이렇게 썼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

예전같은 시선에서 벗어나 새로이 세상을 보고 느끼기 위해서는 우선 알아야 한다. 알게 해 주는 매체가 바로 책이다. <책은 도끼다>의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책을 통해 세상을 더 많이 알고, 앎으로서 세상을 새로이 바라보고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느끼고 누릴 것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경쟁에 파묻혀 사는 팍팍한 삶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삶을 누리는 법을 터득하자는 것이 아니었을까. 실제로도 이 강연집에서, 저자가 내가 이 자리에서 소개하는 책을 여러분도 사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으니.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달자면, 이 책이 만들어진 계기가 된 이 강독이야말로 정말 훌륭한 북토크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토크는 문헌정보학, 특히 그 중에서도 독서지도론 쪽에서 나오는 말인데, ‘어떤 일정한 집단을 대상으로 몇 권의 도서를 선정하여 보여주면서 그 도서들과 관련된 흥미롭고 인상에 남을 만한 내용이나 에피소드를 소개하여 그들이 읽고 싶은 충동을 느끼도록 유인하는 책 소개 기술의 하나로, 서평과 소개의 중간 정도라고 볼 수 있는 집단 독서 지도의 한 형태라고 정의되어 있다. (<신독서지도방법론>/손정표/태일사/p.296) 그런데 지금 이 <책은 도끼다>를 읽고 보니, 이 책이 그 자체로 위의 정의와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북토크가 아닌가. 실제로 이 책을 통해 나 역시 제목만 알고 있을 뿐 읽지 않았던 책들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대략적인 내용도 알게 되었으며, 나아가 이 책을 직접 읽어야겠다는 마음까지 갖게 되었으니, 과연 박웅현 씨는 실로 훌륭한 북토커(book talker)라 할 것이다.

 

by 해피의서재 2012. 5. 9. 13:41

(세계사의 운명을 바꾼) 해도 / 량얼핑 / 명진 / 2011




일전에 올린 지도에 관한 책 리스트(http://readinghappy.tistory.com/19) 중에 있던 책 중의 한 권을 최근에 구입해서 읽게 되었다.
3월에 감명깊게 보았던 KBS 다큐 <지도, 문명의 기억>과 겹치는 부분도 있어서 읽기에 더욱 흥미로웠던 책이기도 하다.

책을 모두 읽고 느낀 점이라면, 해도가 세계사의 운명을 바꾸었다기보다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고 세계사의 운명을 바꾸어 가는 과정을 해도가 증언한다고 보는 게 더 이치에 맞겠다는 것이었다. 물론 새로운 지리 정보를 담은 해도가 계속 새로이 만들어지면서 사람들이 더 먼 바다로, 그 바다 건너의 새로운 대륙으로 나아갈 발판을 제공하기는 했지만 그것을 바탕으로 세계사의 운명을 바꾼 주체는 다름아닌 인간이었으며, 해도를 비롯한 모든 지도는 인간이 나아가고 세상을 인식한 딱 그 만큼씩 그려져 왔으므로. 희망봉을 발견하기 이전 제작된 지도에 아프리카 남부가 다른 대륙과 서로 붙어 있다고 표시되어 있었던 것처럼 말이다.

책의 목차는 크게 10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은 전반적으로 '지구'에 대한 인간의 인지가 점차 확대되어가는 과정 순으로 배치한 것으로 보인다.

1장 '고리 모양 물길에 둘러싸인 대륙'에는 바빌로니아 점토판 지도와 TO 지도 등 고대와 중세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지도들이 모여 있다. 바빌로니아 지도에서는 바빌론이 세상의 중심이고, TO 지도 속 세계에선 동쪽에 아시아, 북서쪽에 유럽, 남서쪽에 아프리카 대륙이 자리한 가운데 예루살렘이 세상의 중심에 위치해 있다. 아직 관념적인 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당대인들의 지리 의식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편 고대에 이미 상당한 지리학 지식과 현대에 가까운 구대륙(유럽+아프리카 및 아시아 일부) 지도를 남긴 프톨레마이오스와 그리스의 지리학에 대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2장 '얽히고설킨 세계와 나침반'부터 본격적인 해도와 항해, 그리고 탐험 이야기가 등장한다. TV에서 본 덕에 눈에 익숙한 폴리네시아의 막대 지도와 프라마우도 세계 지도 등을 다시 지면에서 볼 수 있어 반가웠다. 3장부터 7장까지는 각각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로 향하는 항로의 발견과 개척, 신대륙 아메리카의 발견, 세계 일주 항해와 경도의 발견,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발견에 관한 이야기가 다양한 지도와 함께 수록되어 있다. 유럽 각국의 해상 진출 배경과 그 성과, 그리고 탐험에 나선 인물들과 국가의 이후 행보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르네상스가 도래하면서 중세 시기 동안 묻혀 있던 고대의 자연과학이 주목을 받고, 이슬람 세계에서 아랍어로 번역된 유럽의 과학 지식이 유입되고, 나침반이 도입되고 과학의 발달에 힘입어 항해술이 발전하는 등, 세상을 객관적-과학적으로 인식하고 보다 멀리 항해할 수 있는 충분한 능력과 배경이 갖추어지면서 유럽은 대항해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이 부분을 읽고 있는데 마냥 재미있게만 읽어나가기엔 왠지 입맛이 썼다. 포르투갈과 에스파냐 그리고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이 탐험가를 후원하고 대규모 함대를 파견하며 열심히 새로운 항로를 개척한 의도가 씁쓸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을 게다. 물론 그 시대에는 그것이 최선이었을 것이고, 그 시대에 유럽 각국이 식민지를 설립하는 것이 이상하게 여겨질 이유도 없었으며, 탐험가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인간이 TO 지도 같은 막연한 관념에서 벗어나 실재하는 세계와 마주할 수 있었다는 점을 인정한다. 하지만 당대 유럽의 '항로 개척'이 더 많은 자원과 부를 얻기 위한 '욕망의 여정'이었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울러 유럽의 입장에서 이것은 '개척과 정복'이었지만 그들의 함대를 맞이하는 원주민들의 입장에서 이것은 엄연히 '침략과 착취'였다는 것 또한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유럽인들이 상세하게 그린 아프리카 서부 해안선 지도의 이면에 이 해안선을 따라 오가는 노예무역선에 실려갔던 아프리카 흑인들의 핏빛 역사도 배어 있음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책의 후반부에는 세계사에 남은 유명한 해전과 해협들, 그리고 극지방의 발견에 관한 이야기가 관련 지도들과 함께 언급된다. 지도가 그려질 당시의 국제 정세를 풍자적으로 표현한 '캐리커처 지도'도 따로 한 챕터에 모여 있다. 마치 신문 만평을 보는 듯했다. 아울러 지도 속에 이렇게 세상의 이야기가 다 들어 있구나. 하고 새삼 와닿았다. 따지고 보면 지도는 그 시대의 모든 것을 담고 있었던 것 같다. 지도에 표시된 지역에 대한 설명을 나타낸 삽화들이 곁들여져 있던 고지도들이 함께 뇌리에 떠오르면서 든 생각이다.

이제 요즘 사람들은 구글이나 포털사이트의 지도 섹션을 통해 지리 정보를 접한다. 5대양 6대주가 모두 표시된 완성된 지구본이 학교마다 비치되어 있고 비행기와 배는 GPS와 위성 신호의 안내를 받아 가며 전세계를 누빈다. 종이 위에 그려지는 지도이든 컴퓨터를 통해 작성되고 열람되는 전자 지도이든, 현대의 지도와 지리 정보가 이 땅에 살아가는 모든 인류의 상생을 위해 기능하기를 기원해 본다. 대항해 시대 유럽이 행했던 침략과 착취의 행보를 넘어선, 진정한 상생의 여정을 여는 도구가 되어 주기를.

by 해피의서재 2012. 4. 12. 06:47

검은 책 /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민음사 / 2007


이 책은 난해하다. 독자에게 불친절하다. 사실 이 책은 다른 사람에게 읽히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전적으로 작가 자신을 위해 쓴 것 같다. 소설 속에 기억의 정원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 책은 작가 오르한 파묵 자신의 기억의 정원을 재현하는 데 충실했다. 그의 기억 속 어린 시절 경험과 그 때 보았던 풍광들, 읽고 접하고 상상했던 것들을 허구의 세계에 고스란히 재구성하여 되살려 놓은 파묵의 기억 속 박물관. 그래서인지 소설 속 배경이나 등장하는 설정들 중 상당수가 작가의 자전적 성격이 강하다. 어떤 때는 자서전 <이스탄불>의 허구 버전을 읽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소설의 배경이 된 1980년대 터키의 대중문화와 이스탄불의 겨울 거리 풍경도 생생히 그려져 있어 정말 기억의 박물관 같은 느낌을 준다.

소설의 구성도 독특하다. 1권이 19, 2권이 1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홀수 장은 소설 속 사건의 진행 상황을 보여준다면 짝수 장은 오롯이 제각각 독립된 한 편의 글들이다. 좀 더 명확히 말하자면, 홀수 장은 주인공 갈립이 사라진 아내 뤼야와 그의 배다른 오라비이자 자신의 사촌형인 제랄을 찾아 나서면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다룬 메인 이야기이고, 짝수 장은 갈립이 찾아다니는 제랄이 신문 <밀리예트>에 연재하는 칼럼들이다. 갈립이 제랄을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로 여기는 것이 이 칼럼들이며 칼럼 속의 내용은 소설 곳곳에서 출몰하며 메인 이야기의 전개에 영향을 미친다. 이 칼럼 속에, 또 홀수 장의 메인 이야기 속에 나오는 다양한 비유는 옛 이슬람 문학에서 따온 것이 많아 이쪽에 사전 지식이 별로 없으면 책을 가까이 대하기가 더욱 어려울 수도 있다. 물론 나 또한 그쪽 지식은 거의 없다시피 한다. 다만 역자 주와 책의 맨 뒷부분에 나오는 역자 후기에 기대어 그럭저럭 넘기듯이 이해하며 읽었다.

어쨌든 난해한 책인 건 맞는 것 같다. 쉽게 읽히고 이해가 잘 되는 책은 분명 아니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이 책은 묘한 마력이 있다. 안 읽힐 것 같은데 자기도 모르게 계속 빠져 읽게 하는 매력이 있다. 몽환적인 매력마저 느껴지는 소설 속 제랄의 칼럼(‘보스포루스의 물이 빠져나갈 때왕자 이야기는 정말 백미다)과 눈 내리는 이스탄불의 을씨년스러운 겨울 풍경 묘사, 사라진 아내와 사촌 형(때로 우상처럼 여기던)을 찾아 헤매는 갈립의 꿈꾸는 듯한 여정은 그 자체로도 충분히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을 만하다.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듯
, 이 소설은 어느 날 갑자기 함께 사라진 아내와 사촌 형을 찾아나선 한 변호사의 이야기다. 그다지 화목하다고 할 수 없는, 어딘지 뭔가 결핍되어 있는 듯한 분위기의 대가족 틈에서 자란 변호사 갈립에게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사촌형 제랄과, 제랄의 아버지이자 갈립의 큰아버지가 나중에 재혼해서 얻은 딸인 사촌누이 뤼야가 있다. 터키는 사촌간의 결혼이 자연스러운 모양인지, 세월이 흘러 갈립과 뤼야는 부부가 되어 한 집에서 살고 있다. 제랄은 재혼한 아버지와 가정 주변을 겉돌다가 신문사 칼럼니스트가 된 후 어느 순간 완전히 독립을 한 듯 하고, 소설의 주 배경이 된 시점에서는 아무에게도 알려지지 않은 모처에 숨어 살다시피 하는 것으로 보인다. 많은 팬을 보유하고, 사회적으로도 꽤 영향력 있는 인기 칼럼니스트인 제랄은 갈립에게 동경의 대상이기도 하다.

어느 날 뤼야가 한 장의 쪽지만을 남긴 채 집을 나간다. 어디로 갔는지도, 왜 나갔는지도 알 수 없다. 그 즈음 사촌 형 제랄도 며칠째 신문사에 출근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갈립은 곧 알게 된다. 평소 비슷한 생각을 공유하는 듯했던 두 사람이 동시에 행방이 묘연해지자 갈립은 두 사람이 함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자신의 글 속에 자신만의 코드를 은근슬쩍 숨겨 놓는 특징이 있는 제랄의 칼럼 속에서 두 사람이 가 있을 곳에 대한 힌트가 있을지 모른다고 추리한 갈립은 이제 제랄의 칼럼 속에 숨은 코드들을 따라 온 이스탄불을 헤매고, 제랄이 읽었을 신문과 잡지, 스크랩을 모조리 뒤지며 제랄의 인생을, 제랄의 머릿속 기억의 정원을 파헤쳐 나가기 시작한다.

제랄이 썼던 칼럼, 그 칼럼의 소재가 되었던 사람들과 사건들, 칼럼에 인용했던 다른 사람의 문구들, 칼럼 속에 은밀히 담겨 있었던 정치적 사상이나 종교에 대한 이야기, 제랄의 집에서 발견된 스크랩 속 제랄의 관심사들, 이런 여러 텍스트를 따라 갈립이 도달한 제랄의 실체는 갈립이 기억하고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부실하고 처량하다. 갈립이나 또다른 제랄의 팬들이 생각했던 것처럼 제랄은 그리 대단하고 엄청난 사람이 아니었다. 때로는 자신의 과거를 남의 이야기 하듯 냉소적으로 칼럼에 쓰고, 때로는 다른 사람의 글을 자기 것처럼 제 칼럼의 일부에 태연하게 따서 썼으며, 자신이 탐닉하던 세계에 대한 환상을 은밀히 담은 글로 사람들의 열광을 이끌어냈던 칼럼니스트 제랄의 인생. 결국 제랄도 자신이 발붙이고 사는 현실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현학적인 텍스트의 세계로 도피하거나 혹은 매몰되어 버린 불쌍한 인생일 뿐이었던 셈이다. 갈립이 제랄의 글과 스크랩을 보고 눈물짓다가 분노의 감정을 품는 이유 역시 그 때문이라고 보았다. 나는 나 자신이 되어야 해.’라고 되뇌는 제랄과 갈립, 후에 우리들 누구도 우리 자신이 아니다라고 분노어린 말을 내뱉는 갈립의 모습에서 느낀 바가 그랬다.

그러고 보니 《검은 책》 속 에피소드들은 모두 이야기라는 화두로 결부되는 듯하다. 제랄의 칼럼, 당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 터키와 할리우드의 영화들, 제랄이 탐닉했던 후루피주의(문자에 의미를 부여하는 종단) . 사람들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읽고 보고 영향을 받는다. 소설의 후반에 등장하는 <왕자 이야기>에서 오로지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해 자기에게 영향을 미칠 만한 모든 책과 사물을 없애 버리는 왕자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그도 어쨌든 아주 사소한 것에서조차 자아에 영향을 받는다.

글을 읽는 것이 다른 사람의 기억을 서서히 취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 <검은 책> 제2권, p. 127


하늘 아래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는 없음에도
, 사람들은 여전히 이야기를 끊임없이 쓰고 읽으며, 또 그러기를 원한다.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인생에서 도피하거나, 혹은 이야기로 자신의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거나.

다른 사람이 되기 위해 안달하는 불행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것은 자신을 속박하는 몸과 영혼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유용한 속임수였다. 하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은 또다른 이야기를 얻는 방법이었다.
                                                                                                             - <검은 책> 제2권, p. 45


심하면 이야기 속 세계를 진실로 믿게 되어 현실 세계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 그 환상이 깨어지면서 깊은 절망에 잠긴 나머지 격렬한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래도 여전히 사람들은 이야기에 집착하고 탐닉한다. 이야기를 듣는 사람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아니 오히려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이 더하다. 때로는 속칭 어그로를 끌려고, 때로는 남들에게 초라해 보이지 않으려고, 때로는 외롭지 않으려고, 때로는 자신의 신세를 이해받으려고.

읽을 때마다 새롭게 난해하고 새로이 매력적인 이 책에 대해 밤낮으로 계속 생각하다 보니 이 책은 결국 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 문장이 그렇게 끝나는 게 아닐까. 인생만큼 경이로운 것은 없다. 오직 글쓰기를 제외하고는.’ 이건 글쓰기가 인생보다 더 경이롭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제랄이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의 생각과 정체성을 은연중에 감추어 암호처럼 포장한 글을 주고받으며 세상과 벌이는 두뇌게임. 파묵에게 글쓰기란 끝없는 자기고백이고, 혹은 세상과의 밀당게임이며, 혹은 차마 말할 수 없는 것을 기어이 말하고 싶은 사람의 하나뿐인 해방구일지도 모르겠다.

by 해피의서재 2012. 3. 1. 10:00

연금술사 / 파울로 코엘료 저,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01


새해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새삼 접하게 된 책이다. 삶에 대한 철학적 통찰과 위로, 꿈을 향해 나아가는 용기의 중요성과 하루하루 우직하게 내 길을 걸어가는 삶의 가치 등을 담담히 적어낸 이 책을 읽으며, 다시 새로운 꿈을 꾸고 새로운 출발을 시도할 용기를 얻었다.

<이 책의 4가지 키워드>

1. Carpe Diem (p. 172)

하루하루의 순간 속에 영원이 있다.

순간순간 겪어 왔던 일들이 모두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기에, 산티아고는 죽음의 목전에서 나는 후회없이 살았다고 의연히 말할 수 있었다. 자신의 삶을 의미있게 만들어 나가는 과정, 그것이 곧 인생의 보물을 찾는 과정이다. 결국 인생의 가장 큰 보물은 매일매일 주어지는 시간일지도.

2. 이세상에 의미없이 존재하는 것은 없다. (p. 265)

누구나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 살면서 마주치는 어느 것 하나 의미없이 스쳐가는 게 없다.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내게 영향을 미친다. 그걸 바로 표지라고 부르는 게 아닐까.

3. 마크툽, 그렇게 되리라. (p. 130)

우리의 삶과 세상의 역사가 모두 신의 커다란 손에 의해 기록되어 있음을 안다면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곧 사라질 것이다. 미래의 불행을 미리 예상하고 상상하며 두려워할 시간에,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기꺼이 지금 현실에 몰두해 보자.

4. 자아의 신화 (p. 116)

뭔가 이루고 싶고, 꿈꾸고 싶고, 싶은것을 향해 첫 발을 디딜 실행력과 용기, 그리고 중간에 가혹한 시험을 맞이하였을 때 포기하지 않을 정신력만 있다면 그 다음부터는 어떻게든 뭔가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굴러가는 것 같다.

by 해피의서재 2012. 2. 19. 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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