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짧은 세계사 / 존 허스트 / 위즈덤하우스 / 2017

유럽 세계의 형성과 각 국가별 역사적 변화 양상을 최대한 간단하게 추려 정리한 책. 중간중간에 지도와 도표도 들어 있어 마치 이해하기 좋게 잘 집필된 역사 교과서 같은 느낌도 준다. 제목으로는 세계사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 이 책은 더도 덜도 말고 딱 유럽의 이야기만을 담고 있다. 차라리 ‘세상에서 가장 짧은 유럽사’라고 제목을 정하는 게 나을 뻔했다.

정말 최소한도의 요약 내용만 빨리 읽을 생각이라면 1장 부분만 읽어도 충분하다. (애초에 이를 염두에 둔 구성을 하고 있다) 2장은 1장의 내용을 좀 더 구체화하여, 여러 가지 주제어로 세분화된 각 챕터 안에서 연대기적 서술로 유럽 사회의 복합적인 변화를 정리하고 있다.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집필 계기에서 알 수 있듯 사실상 학교 수업 교재와 같은 성격의 책으로, 유럽 역사의 개괄적 이해에는 큰 도움이 되는 반면 세밀한 역사 서술이나 보다 깊이있는 역사적 통찰을 발견하고 싶은 독자에게는 맞지 않는 책.

<목차>

서문

1부. 단숨에 정리하는 2,000년 세계사
1. 고대와 중세: 모든 것은 그리스와 로마에서 시작되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화│기독교의 탄생│게르만족의 등장│그리스­로마 세계와 기독교의 융합│게르만족과 기독교│유럽의 중세
2. 근대: 세계를 제패한 유럽의 힘은 어디서 오는가
르네상스: 유럽의 세속화│종교개혁: 기독교 교회의 붕괴│근대과학과 진보│계몽주의: 이성의 발견│낭만주의와 민족주의│근대 유럽의 그림자
*쉬어 가기: 고전은 어떻게 최고가 되었나

2부. 조금 더 꼼꼼히 들여다본 세계사
1. 침략과 정복: 이민족과의 전쟁이 만든 기독교 세계
게르만족의 침입과 로마의 흥망│무슬림의 침입│바이킹의 등장│유럽의 팽창
2. 그리스와 로마의 정치: 군대와 세금에서 시작된 정치
그리스의 민주정치│로마의 민회와 집정관│로마공화정│로마제국과 황제
3. 중세와 근대의 정치: 민주주의를 향한 긴 여정
중세 시대의 봉건 군주│절대군주의 등장│잉글랜드의 의회정치│프랑스혁명
4. 황제와 교황: 종교와 정치가 공생하는 법
프랑크왕국의 분열과 그 이후│교황과 황제의 권력투쟁│근대 이후 종교와 정치
5. 언어: 살아 있는 송장, 라틴어
로마제국과 라틴어│이민족의 침입과 언어의 변화│라틴어가 유럽에 미친 영향
6. 서민: 묵묵히 역사를 지탱해 온 보통 사람들
유럽 서민의 삶과 농업│농노제 이후의 변화
*쉬어 가기: 유럽은 어떻게 근대성을 획득했는가

3부. 세계를 뒤흔든 사건들
들어가기 전에: 유럽을 파괴한 두 개의 힘
1. 산업화와 혁명: 참정권을 가진 노동자의 등장
잉글랜드와 차티스트운동│프랑스의 체제 변화│독일제국의 등장│러시아혁명
2. 제1차, 제2차 세계대전: 위기가 만들어 낸 괴물
제1차 세계대전│패배 이후 독일│히틀러와 나치│제2차 세계대전│전쟁 이후 새로운 유럽연합

옮긴이의 말
찾아보기

by 해피의서재 2020. 8. 6. 00:27

인스타그램에는 절망이 없다 / 정지우 / 한겨레출판 / 2020

지금 당장 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꼭 한 번씩 읽어봐야 할, 증오와 분노가 만연한 오늘날의 한국 사회를 있게 한 근본적인 문제와 그 해결 방안을 찾아가는 열쇠가 되어 줄 책.

총 3개 장에 걸쳐 청년, 여성, 공동체 문제에 관한 글들을 각각의 장에 모아 엮은 형태의 책이다.

타자혐오와 온갖 종류의 폭력으로 가득 찬 한국인의 일상을 30대 연령층의 생활인 입장에서 들여다보고 이 모든 병리현상들이 어디로부터 기원했는지에 대해 고찰한 끝에 내린 나름의 결론과 신념들을 저자는 나직하고 담담한 어조로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사라지고 오직 생존만이 삶의 지상과제이자 지향점이 되어 버린 사람들의 불안과 공포, 절망이 서로를 공격하고 스스로를 파괴하는 방향으로 표출되고 있다는 저자의 진단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단순히 법 조항 몇 가지 뜯어고치고 사법부 판사 몇 명 징계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권위적이고 반인권적이며 폭력적인 각 사회조직의 구조와 이를 부추기는 교육-경제 체제부터 하나하나 세심하게 바꿔 나가고서야 오늘날 한국 사회 전체를 망가뜨리고 있는 이 모든 병폐를 해결할 실마리가 보일 것이라는 메세지를, 이 책은 조용하면서도 힘있는 어조로 전하고 있다.

by 해피의서재 2020. 7. 21. 14:45

“우리개와 함께 살아온 삶 속에서 발견한 그들의 삶은 너무나 고귀했고 황홀했으며 날 부끄럽게 했고 그래서 때로는 너무나 슬펐다.”

(강하고 현명하고 자상한) 우리개 이야기 / 김종규 / 잼난인연 / 2019

30년간 천도농장에서 진돗개를 위시한 한국 토종견을 전문적으로 길러온 저자가 그간 길렀고 지금도 기르고 있는 견공들과의 에피소드를 쓴 글을 엮은 책이다.

제 짝을 해친 삵을 기어이 찾아내 잔혹하게 복수한 수캐 이야기, 자신이 평생 좋아하고 따르던 할아버지가 죽자 아무도 알려준 적 없는 할아버지의 무덤을 찾아가 스스로 숨을 거둔 개 이야기, 산 속에서 조난당한 사람에게 마을로 가는 길을 안내해 준 개 이야기, 아픈 주인을 위해 나름 먹을 것을 챙겨준다고 쥐를 잡아 가공(?)까지 해서 주인의 방 앞에 갖다 준 개 이야기 등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견공들의 실제 이야기가 민담처럼 또는 동화처럼 구수하게 펼쳐진다.

오랫동안 개를 지켜봐 온 저자는 말한다. 개, 특히 자생적으로 태어나고 성장하고 사람들과 교감하며 살아온 우리개들은 엄연한 자의식을 가진 주체로서 대해야 할 존재들이라고. ‘믿어주는 만큼 자라고, 아껴 주는 만큼 여물고, 인정받는 만큼 성장하는 법’이라는 코이의 법칙은 당연히 개에게도 적용되는 이야기다. 평생을 우리개에게 바친 만큼 개들을 향하는 시종일관 애틋하고 따스한 저자의 시선은, 애견인들이 염두에 두어야 할 중요한 조언들과 함께 책의 곳곳에 잘 스며들어 있다.

by 해피의서재 2020. 6. 26. 20:49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 / 이수정, 이다혜 / 민음사 / 2020

네이버 오디오클립을 통해 공개되어 네티즌들의 뜨거운 관심과 사랑을 받은 동명의 팟캐스트 방송 내용을 글로 옮긴 책.

한국을 대표하는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경기대 교수와 함께 동서고금의 주요 범죄 스릴러 영화 속 범죄와 범죄자들을 전문가의 시선으로 분석하고, 오늘날의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문제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

방송 스크립트를 그대로 옮긴 대화체로 쓰여 있어 매우 쉽고 편하게 읽히나 내용은 절대 가볍지 않다.

가정폭력과 성범죄, 디지털 범죄 및 각종 혐오범죄에 대한 안일한 대처로부터 대형 강력범죄의 상당수가 촉발되는 것을 이 책 속에서 영화 이야기와 함께 제시되는 다양한 실제 사례에서 선명히 볼 수 있다.
슬럼화된 지역과 하위 계층에서 일어나는 여성 및 아동 청소년 대상 범죄에 법과 공권력과 정계가 무심한 사이, 여전히 수많은 사회적/물리적 약자들이 범죄의 위험과 신변의 위협에 노출되고 있음을 이 책은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 책이 촉구하는 것은 무분별한 엄벌주의의 주장이나 자극적인 여론 형성이 아닌, 사회 구성원들 간의 연대와 사회 전반의 인권 감수성 확립 그리고 입법-사법-수사 기관의 합리적인 기능 수행이다.
개인은 ‘누구에게라도 일어날 수 있는’ 범죄에 대한 경계의식을 늘 가지고 피해자와 연대하며 그들을 위해 목소리를 내기를 주저하지 않아야 하며, 국가와 기관은 빠르게 변해 가는 시대에 자신들의 속도를 맞춰 가며 무엇보다 약자와 피해자의 인권에 우선하여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제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적인 메시지다.

하루가 멀다 하고 흉흉한 사건이 계속 일어나는 요즘, 어느 때보다 지금 정말 더 많은 사람들이 읽을 필요가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수정 교수가 이 방송에 나선 이유가 이 책의 주제를 충분히 함축한다.
“우리는 연대하기 위해 이 방송을 하고 있다.”

<책 속의 주요 문장>
한국에선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집을 나가야 해요. 그런데 상식적으로 봐도 때린 사람이 집을 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요? (42쪽)

인간이 인간을 사랑한다는 것은 대등한 관계에서만 성립할 수 있습니다. 너의 인격과 나의 인격을 서로 인정해 주고, 용인하고, 약점은 약점대로 수용하는 것이 정말 성숙한 사랑이죠. 한 사람은 모든 것을 제공하고 다른 한 사람은 혜택 안에서 안주하는 것은 사랑이 될 수 없습니다. (51쪽)

형사 사법 기관 종사자가 피해자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갖도록 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80쪽)

태어날 때부터 잔혹한 가해자인 사람은 없습니다. 대부분 어린 시절에 지속적인 폭력 피해를 당하다가 이런 폭력적인 경험이 나의 일상이구나, 내가 이렇게 당하지 않으려면 스스로 강자가 될 수밖에 없구나 하고 깨달으면서 본인이 가해자가 되는 지경에 이릅니다. (101쪽)

사실 피해자 입장을 생각해 보면 양심의 갈등 이전에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분명하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용기가 없던 사람도 용기를 낼 수도 있습니다. (126쪽)

힘없는 여성들을 향해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 힘없는 남자들입니다. 하층 계급은 상층 계급에 대한 불만이 있어도 폭행은커녕 접근조차 쉽지 않기 때문에 대신 만만한 하층 계급을 향해 화풀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240쪽)

경찰력과 자본을 어떻게 잘 분리할 것인가는 사실 정부에서 해결해야 할 중요한 문제입니다. (242쪽)

규범의 바탕이 되는 도덕성은 슬픔이라는 정서를 기반으로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슬픔도 있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느끼는 이타적인 슬픔도 있지요. 슬픔은 고도화된 정서고, 이를 느낄 수 있어야 동정심이나, 공감, 또는 죄의식 등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270쪽)

자신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 사람이 지배 계층이라도 그들을 공격할 수 없으니 만만한 쪽으로 눈을 돌려 자기방어력이 낮은 여성을 공격의 대상으로 삼습니다. 이들은 여성에게 무시를 당했다고 주장하는데 실제로 그런 경험이 있는지를 찾아보면 별로 없어요. 일종의 피해 의식이자 망상인 것입니다. (...) 인셀이란 백인 남성에 한정되기보다 사회로부터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피해 의식을 가진 대다수의 사람을 지칭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272쪽)

인권은 중요하지만 누구의 인권도 절대 가치가 될 수는 없습니다. 결코 한쪽만 옳고 한쪽만 틀리는 일은 없습니다. 결국 정부는 공동체가 안전하게 함께할 수 있도록 상호간의 양보를 이끌어내고 갈등을 조정해야 합니다. (279쪽)

남성 조사관이라도 사건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고 공감 능력이 있다면 얼마든지 이런 태도를 취하며 피해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별보다 고통에 대한 이해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가 더 중요합니다. (354쪽)

강간은 피해자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해자를 주목하는 태도 자체가 잘못된 것입니다. 자기 절제를 못하는 가해자의 욕망이 문제지, 피해자가 어떻게 생겼느냐, 피해자가 어떤 특성을 가졌느냐는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355쪽)

특히나 지금은 인터넷 등 기술 관련 범죄가 많은데요. 범죄 수사는 사실 체력보다 기술이 관건이다 보니 당연히 다양한 범죄에 대응할 수 있는 수사 인력 확충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수사 방식이 과학화될수록 성별은 더욱 중요하지 않을 테고요. (356쪽)

사람을 사고파는 일이 만연한 사회에 미래는 없습니다. (381쪽)

어느 나라나 성범죄는 발생합니다. 하지만 피해자의 인권을 중히 여기고 아이를 찾아 나서는 국가는 그 점에서 선진국입니다. 그저 일부 아이들의 불행이고, 부모가 아이를 돌보지 못해서 생긴 일이니 너희의 불행은 너희가 알아서 하라는 사회가 과연 선진국일 수 있을까요. (382쪽)

이런 피해를 입는 아이들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내 일이라고 생각해야 그 피해를 구제하기 위해 사회 전체가 노력할 수 있습니다. 그런 피해를 입었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고요. (389쪽)

부당한 일에 대한 분노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안다. (399쪽)

by 해피의서재 2020. 6. 24. 13:15

“이토록 문학적이며 잠언적인 물리학 에세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카를로 로베리 / 쌤앤파커스 / 2019

아인슈타인과 스티븐 호킹의 뒤를 잇는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로 통한다는 카를로 로베리 교수의 이 책은 그 외양부터가 예의 온갖 수학 공식과 계산으로 도배된 이론물리학 도서와 완전히 다르다. 작고 아담한 사이즈와 가벼운 무게, 복잡한 계산식들 대신 고금의 철학자와 문학가들 그리고 옛 고대 종교 이야기까지 인용한 지극히 인문적인 글쓰기 하며 ‘직선적이고 절대적인 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지금 현재 우리 자신이 어떻게 움직일지 선택하기에 달렸다’는, 차라리 동양철학의 중심 사상에 가까운 결론에 이르기까지.

포맷도, 내용 전개도, 주제도 과학도서답지 않게 파격적이리만치 감성적이고 문학적인 이 물리학 책을 읽다 보면, 단순히 우주와 시간에 대한 과학적 호기심의 영역을 넘어 나와 세상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고찰까지 하게 되기에 이른다. 과학을 한다는 건 곧 세상의 이치를 알아가는 일, 철학의 목적 또한 그러하기에 과학과 철학이라는 두 학문은 결국 다시 서로 통할 수밖에 없는 한 몸같은 존재인가 보다.

by 해피의서재 2020. 5. 29. 16:24

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 / 박근영 / 나무수 / 2010

이번에 새로 좋아하게 된 한 배우의 무명 시절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인터뷰집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도서관에서 찾아내 읽은 책.

내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아프고 치열하게 고뇌하고 도전한 삶의 궤적이 느껴져 그 배우가 더 좋아졌다.

여기 그를 비롯한 11명의 청춘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다. 인터뷰어의 따듯한 시선과 더불어. 통상적인 삶의 경로와 다른, 자신만의 생각과 신념과 꿈을 따라 남들이 가지 않은 거칠고 불안한 길을 걸어가기를 기꺼이 택한 아름다운 청춘들의 이야기가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반짝이고 있다.

이 책이 출판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또 어떻게 반짝이고 있을까. 최근 한 인기 드라마에서 비중 있는 역할로 나타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그 배우처럼 다른 이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그렇게 찬란하게 빛나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또 실제로도 지금 그렇지 않을까. 꼭 그러기를 바란다. 그 젊은 날의 꿈과 고뇌와 신념을 바탕으로 더욱 성숙하고, 그래서 더 아름답게 빛나는 사람들이 되어 있기를.

<목차>

여는 글
01 포토그래퍼 하덕현 : 상처 받은 자는 걷는다
02 패션 디자이너 문성지 : 아름다움은 아름답다
03 연극배우 김주헌 : 끝까지 부딪치고 넘어본다
04 화가 김민희 & 이근희 : 바람 불어오는 쪽으로 가라
05 영화감독 이종필 : 지루한 삶에 불.을.지.펴.라.
06 인테리어 잡지 에디터 임상범 : 삶은 바다로 가는 여행이다
07 만화가 김풍 : 끝까지 즐겁게 사는 게 이기는 거다
08 뮤지션 이지린 : 음악은 소소한 일상이다
09 여행작가 변종모 :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10 건축가 백지원 & 인테리어 디자이너 정연진 : 도시라는 정글을 유쾌하게 건너다
11 시인 김일영 : 슬픔도 고이면 단단해진다
맺는 글


by 해피의서재 2020. 4. 10. 12:50

역사 드라마, 상상과 왜곡 사이 / 주창윤 / 역사비평사 / 2019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사극들에는 우리가 살았던 그때의 현실과 욕망이, 그리고 시대 정신이 스며 있다. 고로, 당대의 인기 사극은 사극 속 시대의 재연이라기보다, 오히려 제작-방영 당시 시청자들의 삶을 비추는 은유의 거울이다.”

이 책의 메시지를 한 문단으로 요약하라면 아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제목만 들어도 익숙하고 반가운, 시대를 풍미한 사극들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석한 7편의 논문을 엮은 책이 지금부터 이야기할 이 책, <역사 드라마, 상상과 왜곡 사이>이다.

논문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인기 TV사극이라는 친숙한 내용을 다루고 있고 글 자체도 쉽게 쓰여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특히 일명 ‘드덕(드라마 덕후)’이라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책의 말미에는 광복 이후 2018년까지 방영된 모든 TV사극들의 목록이 첨부되어 있어 ‘한국 사극의 역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역사드라마의 정의에 대한 고찰에 관한 글을 시작으로, 역대 인기 사극에서 주로 다루어진 인물과 소재의 변천사, 시대에 따른 작법과 연출의 변화, 사극에 반영된 각 시대별 사회적 특징을 다룬 글들이 이어진다.

중국의 동북공정 논란이 한창일 때 양산되었던 고구려/고조선/발해 관련 드라마, 일본의 계속되는 역사부정에 대한 반발과 분노가 녹아든 항일 사극, 당대의 정치 양상을 과거 역사에 투영하여 표현한 정치사극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눈여겨 볼 만하다.

오늘날에 가까워질수록 거대담론보다 여성, 서민, 일상사, 생활문화, 개인의 인권을 중시하고 강조하는 경향의 사극이 많아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극은 현 시대의 반영’이라는 이 책의 주제의식은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다.

한 편의 드라마를 예시로 하여 집중 분석한 글도 있다. 예시로 제시된 작품은 바로 2018년도 최고 화제작 <미스터 션샤인>. 이 글 안에 현대 사극의 주요 특징이 모두 축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이 만약 한 장의 음악 앨범이라면 이 글은 타이틀곡쯤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시대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레퍼런스의 확장(1902~1907년 배경의 드라마에 1870~1930년대 문화 아이템을 폭넓게 사용),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들을 허구의 인물과 상상된 이야기와 한데 엮어 자연스럽게 변주한 줄거리 전개, 그 속에서 강렬하게 표현된 ‘이름 없이 용기있게 싸우다 간 위대한 이들의 단심’이라는 주제, 성격은 서로 다르지만 본질은 같은 세 남자의 순애보와 사랑 대신 대의를 선택하는 강인한 여성상을 제시한 새로운 인물상까지.

함께 실린 스틸컷 사진들이 흑백으로 인쇄되어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게 다가온다.

한국 대중문화, 특히 드라마의 변화 양상에 대해 한 걸음 더 깊이 사유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by 해피의서재 2020. 3. 12. 13:13

도서관 지식문화사 / 윤희윤 / 동아시아 / 2019

이 책은 크게 두 파트로 구분이 가능하다.

전반 파트(1~3장)에서는 세계 각국 도서관의 역사를 고대/중세/근대/현대 시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으며 중국, 일본, 아랍 지역 그리고 한국의 도서관사를 현대 시점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기술해, 이 한 권만으로도 세계의 도서관사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후반 파트(4~7장)에는 오늘날의 공공도서관들이 처해 있는 난관들과, 그 난관을 극복하기 위하여 세계 곳곳의 도서관들이 새로운 시도에 도전한 사례들, 그 장단점과 풀어야 할 과제들에 대해 논한 글들이 모여 있다.

책의 전체 내용을 꿰뚫는 하나의 주제는 이것이다.
“도서관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습득하고 활용하며 기억해야 할 지식을 정제하여 보존하고 전달하는 본질에 충실해야 하며, 단순히 시대의 유행만을 따르거나 피상적으로 겉모습의 변화에만 치중해서는 존재 의미의 상실과 도태를 피할 수 없다”는 것.

실제로 비슷한 성격의 다양한 문화기관과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는 공공도서관들이 자신들의 입지를 지킬 수 있는 길은 역시 다른 기관에는 없는 도서관만의 차별화된 성격을 지키는 것밖에 없으며, 그 길은 바로 책을 위시한 정제된 지식의 축적과 제공에 심혈을 기울여 보유한 정보의 공신력을 확보하는 데 있을 것이다.

세계 각국의 역사와 함께해 온 도서관의 과거와 오늘날의 도서관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 제기, 그리고 도서관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기본 철학 등 도서관인에게 꼭 필요한 전언들을 한데 모아 놓은 중요한 책이다. 곳곳에 각국 주요 도서관들의 외관과 내부를 찍은 컬러 사진들도 들어 있고 편집도 가독성 있게 잘 되어 있다.

다만 아무래도 학술서적에 가까운 성격의 책이라 대중적으로 많이 읽히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
<목차>
프롤로그 5

1장 고대 도서관, 신화와 역사의 경계에서
1. 도서관의 시원 17
2. 고대 문명 속의 도서관 21
3. 고대 그리스·로마의 도서관 41
4. 고대 동아시아의 도서관 56

2장 중세 도서관, 유럽 수도원부터 이슬람 모스크까지
1. 중세에 대한 오해와 편견 73
2. 수도원과 도서관 77
3. 유럽의 수도원 도서관 85
4. 이슬람 모스크와 지혜의 집 107
5. 해인사 장경판전 119

3장 근대 도서관, 혁명은 가까이에 있다
1. 중세의 가을과 근대의 봄 131
2. 인류 최고의 걸작, 인쇄술 136
3.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157
4. 근대 도서관의 파노라마 172

4장 현대 도서관, 지식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1. 공공도서관의 시작 197
2. 영미 공공도서관의 태동 200
3. 중일 공공도서관의 성립 219
4. 한국 공공도서관의 역사 243

5장 도서관의 에토스·파토스·로고스
1. 도서관의 진화와 변용 265
2. 도서관의 가치와 편익 269
3. 도서관 위기론과 해법 279
4. 도서관의 에토스·파토스·로고스 296

6장 도서관이 움직인다
1. 도서관의 고답적 정체성 315
2. 시류와 혁신의 아이콘 320
3. 장소로서의 도서관 337
4. 도시 재생과 도서관 360

7장 책과 도서관에 바치는 헌사
1. 도서관의 모태와 은유 381
2.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화 384
3.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야만적 선동 389
4. 도서관의 절대성과 상대성 400
5. 도서관의 변용 405
6. 책과 도서관의 학살 416
7. 책과 도서관에 바치는 헌사 438

주 445
찾아보기 469

by 해피의서재 2020. 2. 14. 09:14

(서명/출판사 순 표기)

키워드 1. 책과 도서관
- 책이었고 책이며 책일 무엇에 관한, 책 / 마티
- 세계의 책 축제 :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다 / 가갸날
- 도서관 지식문화사 / 동아시아
-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 글항아리
- 책꽂이 투쟁기 / 그림씨
- 한국 출판계 키워드 2010-2019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키워드 2.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 메멘토 모리 : 나이듦과 죽음에 관한 로마인의 지혜 / 교유서가
- 비관하는 힘 :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를 대비한다 / 더난
- 희망 버리기 기술 :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힘 / 갤리온
-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 메이븐

키워드 3. 세상을 해석하는 시선
- 생각의 싸움 : 인류의 진보를 이끈 15가지 철학의 멋진 장면들 / 동아시아
- 아무도 원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를 위한 니체 / 삼인
- 혐오의 시대, 철학의 응답 / 서해문집
- 소통하는 인간, 호모 커뮤니쿠스 / 인북스
- 음식 경제사 / 인물과사상사
- 지리학자의 인문 여행 / 글담

키워드 4. 청년의 삶, 노동자의 삶, 여성의 삶
- 회사가 괜찮으면 누가 퇴사해 / 바틀비
- 진상고객 갑씨가 등장했다 : 감정노동 보호매뉴얼 / 커리어북스
- 출근길의 주문 : 일터의 여성들에게 필요한 말, 글, 네트워킹 / 한겨레
- 공정하지 않다 : 90년대생들이 정말 원하는 것 / 지와인
- 9평 반의 우주 : 솔직당당 90년생의 웃프지만 현실적인 독립 에세이 / 북라이프
- 여성 안전 매뉴얼 365 / 모아북스
- 정치적인 식탁 / 동녘
- 내가 만난 여성 과학자들 / 해나무
- 우리가 과학을 사랑하는 법 / 위즈덤하우스

키워드 5. 현대사회, 쿼바디스
- 한국의 논점 2020 / 북바이북
- 래디컬 마켓 : 공정한 사회를 위한 근본적 개혁 / 부키
- 나쁜 교육 : 덜 너그러운 세대와 편협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프시케의숲
- 밀레니얼 선언 / 생각정원
- 테크놀로지의 덫 : 자동화 시대의 자본, 노동, 권력 / 웅진
- 민주주의는 만능인가? / 가갸날
-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 부키
- 아이들의 계급투쟁 / 사계절
-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 돌베개
- 세금폭탄, 부자감세, 서민증세 : 조세 담론의 정치학 / 후마니타스
- 자본주의가 대체 뭔가요? / 아날로그
- 플랜 드로다운 / 글항아리사이언스
- 반려동물을 생각한다 / 크레파스북
- 동물주의 선언 / 책공장더불어
- 큐레이션 : 정보과잉 시대의 돌파구 / 이코노믹북스
-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 웅진지식하우스

키워드 6. 과학으로 보는 세상

- 웰컴 투 사이언스 월드 / 개마고원
- 논문이라는 창으로 본 과학 / 지성사
-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 바다출판사
- 수학의 눈으로 보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 지상의책
- 익숙한 일상의 낯선 양자 물리 / 프리렉
- 식물의 책 / 책읽는수요일
- 말하는 나무들 / 매직사이언스
- 여자의 뇌 남자의 뇌 따윈 없어 / 동아시아
- 명왕성 연대기 / 사이언스북스
- 문명 건설 가이드 : 인간이 만들어낸 거의 모든 도구와 기계의 원리 / 웅진지식하우스
- 빌트, 우리가 지어 올린 모든 것들의 과학 / 어크로스
- 과학책 읽어주는 공대생 / 뜨인돌
-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쌤앤파커스
- 우주날씨 이야기 / 플루토
- 화학의 미스터리 / 반니

키워드 7. 법에 대하여
- 법의 이유 / 아르테
- 로마법 수업 / 문학동네
- 법에도 심장이 있다면 / 행성비
- 법 앞의 예술 / 안나푸르나
- 한국인의 법과 생활 / 법무부
- 김변의 방과후 법률사무소 / 뜨인돌

키워드 8. 예술의 세계
- 미술에게 말을 걸다 / 카시오페아
- 현대 미술의 이단자들 / 을유문화사
- 악기 구조 교과서 / 보누스
- 세상의 끝에서 만난 음악 / 문학동네
- 블루노트 : 타협하지 않는 음악 / 스코어
-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 을유문화사

키워드 9. 스크린/액정화면 너머의 세상
- 역사드라마, 상상과 왜곡 사이 / 역사비평사
- 나는 드라마로 시대를 기록했다 / 창비
- 식민지 조선의 시네마 군상 / 뿌리와이파리
- 질문하는 영화들 / 북트리거
-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 위즈덤하우스

키워드 10. 역사로 보는 오늘

- 내 손에 스마트폰이 있는데 왜 역사를 배워야 할까? / 휴머니스트

- 처음 읽는 바다 세계사 / 현대지성
- 1947 현재의 탄생 / 웅진지식하우스
- 무덤이 들려주는 역사와 문화 이야기 / 생각과종이
- 산업혁명으로 세계사를 읽다 / 까치
- 하룻밤에 읽는 한국 근현대사 / 페이퍼로드
- 오래된 서울을 그리다 / 초록비책공방
- 동방의 부름 : 십자군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 책과함께
- 인간의 흑역사 / 윌북
- 그때, 중국에선 어떤 일이 있었나? / 돋을새김
- 중국 근현대사 강의 / 한울아카데미
- 아무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 더봄
- 마리 앙투아네트 : 왕비의 비밀 일기 / 이숲

by 해피의서재 2019. 12. 24. 18:19

​(2020) 트렌드 모니터 / 최인수 외 / 시크릿하우스 / 2019

매년 이맘때면 내년도 사회 트렌드를 예측하는 책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는 2015년부터 출간돼 온 ‘대한민국 트렌드’ 시리즈를 가장 선호한다. 그런데 올해부터 이 시리즈의 제목이 바뀌었다. 앞으로는 전 세계 흐름까지 함께 조망할 요량인지, 올해 발매된 책의 제목은 ‘2020 트렌드 모니터’다.

목차를 통해 책이 제시하는 주요 키워드를 살펴보니, 딱 지금 현재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상황의 연장선을 보는 듯하였다. 범죄가 만연한 ‘타인지옥’이 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철저한 개인주의 생활과, 철저하게 목적-취향의 동질성에 바탕을 둔 단발성-익명성 모임 위주의 인간관계, 내 기준과 취향이 우선시되는 맞춤형 소비, 그 과정에서 수천 수만 가지로 분화되어 도저히 공통점을 찾기 어려워지는 파편적 사회, 그리고 공정성과 사회 투명성에 대한 대중의 어느 때보다 강경한 요구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일정하게 흘러온 사회 흐름을 기반으로 하여 생각해 보건대, 아마도 2020년대는 어느 때보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땅바닥에 떨어진, 그래서 오직 개인의 독자생존과 각자의 내면에 더 골몰하게 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관계단절적인 사회상이 더욱 공고해지는 시대로 기록될 듯하다.

by 해피의서재 2019. 12. 5.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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