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록 문학적이며 잠언적인 물리학 에세이”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카를로 로베리 / 쌤앤파커스 / 2019

아인슈타인과 스티븐 호킹의 뒤를 잇는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로 통한다는 카를로 로베리 교수의 이 책은 그 외양부터가 예의 온갖 수학 공식과 계산으로 도배된 이론물리학 도서와 완전히 다르다. 작고 아담한 사이즈와 가벼운 무게, 복잡한 계산식들 대신 고금의 철학자와 문학가들 그리고 옛 고대 종교 이야기까지 인용한 지극히 인문적인 글쓰기 하며 ‘직선적이고 절대적인 시간은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것은 지금 현재 우리 자신이 어떻게 움직일지 선택하기에 달렸다’는, 차라리 동양철학의 중심 사상에 가까운 결론에 이르기까지.

포맷도, 내용 전개도, 주제도 과학도서답지 않게 파격적이리만치 감성적이고 문학적인 이 물리학 책을 읽다 보면, 단순히 우주와 시간에 대한 과학적 호기심의 영역을 넘어 나와 세상의 의미에 대한 철학적 고찰까지 하게 되기에 이른다. 과학을 한다는 건 곧 세상의 이치를 알아가는 일, 철학의 목적 또한 그러하기에 과학과 철학이라는 두 학문은 결국 다시 서로 통할 수밖에 없는 한 몸같은 존재인가 보다.

by 해피의서재 2020. 5. 29. 16:24

다만, 이것은 누구나의 삶 / 박근영 / 나무수 / 2010

이번에 새로 좋아하게 된 한 배우의 무명 시절 이야기가 담겨 있는 인터뷰집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도서관에서 찾아내 읽은 책.

내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아프고 치열하게 고뇌하고 도전한 삶의 궤적이 느껴져 그 배우가 더 좋아졌다.

여기 그를 비롯한 11명의 청춘들의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 있다. 인터뷰어의 따듯한 시선과 더불어. 통상적인 삶의 경로와 다른, 자신만의 생각과 신념과 꿈을 따라 남들이 가지 않은 거칠고 불안한 길을 걸어가기를 기꺼이 택한 아름다운 청춘들의 이야기가 이 책 속에 고스란히 반짝이고 있다.

이 책이 출판된 지 10년이 지난 지금, 이들은 어떤 모습으로 또 어떻게 반짝이고 있을까. 최근 한 인기 드라마에서 비중 있는 역할로 나타나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한 그 배우처럼 다른 이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그렇게 찬란하게 빛나고 있으리라 믿고 싶다. 또 실제로도 지금 그렇지 않을까. 꼭 그러기를 바란다. 그 젊은 날의 꿈과 고뇌와 신념을 바탕으로 더욱 성숙하고, 그래서 더 아름답게 빛나는 사람들이 되어 있기를.

<목차>

여는 글
01 포토그래퍼 하덕현 : 상처 받은 자는 걷는다
02 패션 디자이너 문성지 : 아름다움은 아름답다
03 연극배우 김주헌 : 끝까지 부딪치고 넘어본다
04 화가 김민희 & 이근희 : 바람 불어오는 쪽으로 가라
05 영화감독 이종필 : 지루한 삶에 불.을.지.펴.라.
06 인테리어 잡지 에디터 임상범 : 삶은 바다로 가는 여행이다
07 만화가 김풍 : 끝까지 즐겁게 사는 게 이기는 거다
08 뮤지션 이지린 : 음악은 소소한 일상이다
09 여행작가 변종모 : 여행도 병이고 사랑도 병이다
10 건축가 백지원 & 인테리어 디자이너 정연진 : 도시라는 정글을 유쾌하게 건너다
11 시인 김일영 : 슬픔도 고이면 단단해진다
맺는 글


by 해피의서재 2020. 4. 10. 12:50

역사 드라마, 상상과 왜곡 사이 / 주창윤 / 역사비평사 / 2019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사극들에는 우리가 살았던 그때의 현실과 욕망이, 그리고 시대 정신이 스며 있다. 고로, 당대의 인기 사극은 사극 속 시대의 재연이라기보다, 오히려 제작-방영 당시 시청자들의 삶을 비추는 은유의 거울이다.”

이 책의 메시지를 한 문단으로 요약하라면 아마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제목만 들어도 익숙하고 반가운, 시대를 풍미한 사극들을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석한 7편의 논문을 엮은 책이 지금부터 이야기할 이 책, <역사 드라마, 상상과 왜곡 사이>이다.

논문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인기 TV사극이라는 친숙한 내용을 다루고 있고 글 자체도 쉽게 쓰여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특히 일명 ‘드덕(드라마 덕후)’이라면 더 즐겁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책의 말미에는 광복 이후 2018년까지 방영된 모든 TV사극들의 목록이 첨부되어 있어 ‘한국 사극의 역사’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역사드라마의 정의에 대한 고찰에 관한 글을 시작으로, 역대 인기 사극에서 주로 다루어진 인물과 소재의 변천사, 시대에 따른 작법과 연출의 변화, 사극에 반영된 각 시대별 사회적 특징을 다룬 글들이 이어진다.

중국의 동북공정 논란이 한창일 때 양산되었던 고구려/고조선/발해 관련 드라마, 일본의 계속되는 역사부정에 대한 반발과 분노가 녹아든 항일 사극, 당대의 정치 양상을 과거 역사에 투영하여 표현한 정치사극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눈여겨 볼 만하다.

오늘날에 가까워질수록 거대담론보다 여성, 서민, 일상사, 생활문화, 개인의 인권을 중시하고 강조하는 경향의 사극이 많아진다는 점이 흥미롭다. ‘사극은 현 시대의 반영’이라는 이 책의 주제의식은 바로 여기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다.

한 편의 드라마를 예시로 하여 집중 분석한 글도 있다. 예시로 제시된 작품은 바로 2018년도 최고 화제작 <미스터 션샤인>. 이 글 안에 현대 사극의 주요 특징이 모두 축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책이 만약 한 장의 음악 앨범이라면 이 글은 타이틀곡쯤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시대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레퍼런스의 확장(1902~1907년 배경의 드라마에 1870~1930년대 문화 아이템을 폭넓게 사용), 실존 인물과 실제 사건들을 허구의 인물과 상상된 이야기와 한데 엮어 자연스럽게 변주한 줄거리 전개, 그 속에서 강렬하게 표현된 ‘이름 없이 용기있게 싸우다 간 위대한 이들의 단심’이라는 주제, 성격은 서로 다르지만 본질은 같은 세 남자의 순애보와 사랑 대신 대의를 선택하는 강인한 여성상을 제시한 새로운 인물상까지.

함께 실린 스틸컷 사진들이 흑백으로 인쇄되어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아쉽게 다가온다.

한국 대중문화, 특히 드라마의 변화 양상에 대해 한 걸음 더 깊이 사유하고 싶은 사람들에게 좋은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by 해피의서재 2020. 3. 12. 13:13

도서관 지식문화사 / 윤희윤 / 동아시아 / 2019

이 책은 크게 두 파트로 구분이 가능하다.

전반 파트(1~3장)에서는 세계 각국 도서관의 역사를 고대/중세/근대/현대 시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했으며 중국, 일본, 아랍 지역 그리고 한국의 도서관사를 현대 시점에 이르기까지 상세히 기술해, 이 한 권만으로도 세계의 도서관사를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후반 파트(4~7장)에는 오늘날의 공공도서관들이 처해 있는 난관들과, 그 난관을 극복하기 위하여 세계 곳곳의 도서관들이 새로운 시도에 도전한 사례들, 그 장단점과 풀어야 할 과제들에 대해 논한 글들이 모여 있다.

책의 전체 내용을 꿰뚫는 하나의 주제는 이것이다.
“도서관은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습득하고 활용하며 기억해야 할 지식을 정제하여 보존하고 전달하는 본질에 충실해야 하며, 단순히 시대의 유행만을 따르거나 피상적으로 겉모습의 변화에만 치중해서는 존재 의미의 상실과 도태를 피할 수 없다”는 것.

실제로 비슷한 성격의 다양한 문화기관과 무한경쟁을 벌이고 있는 공공도서관들이 자신들의 입지를 지킬 수 있는 길은 역시 다른 기관에는 없는 도서관만의 차별화된 성격을 지키는 것밖에 없으며, 그 길은 바로 책을 위시한 정제된 지식의 축적과 제공에 심혈을 기울여 보유한 정보의 공신력을 확보하는 데 있을 것이다.

세계 각국의 역사와 함께해 온 도서관의 과거와 오늘날의 도서관에 대한 진지한 문제의식 제기, 그리고 도서관 운영에 반드시 필요한 기본 철학 등 도서관인에게 꼭 필요한 전언들을 한데 모아 놓은 중요한 책이다. 곳곳에 각국 주요 도서관들의 외관과 내부를 찍은 컬러 사진들도 들어 있고 편집도 가독성 있게 잘 되어 있다.

다만 아무래도 학술서적에 가까운 성격의 책이라 대중적으로 많이 읽히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
<목차>
프롤로그 5

1장 고대 도서관, 신화와 역사의 경계에서
1. 도서관의 시원 17
2. 고대 문명 속의 도서관 21
3. 고대 그리스·로마의 도서관 41
4. 고대 동아시아의 도서관 56

2장 중세 도서관, 유럽 수도원부터 이슬람 모스크까지
1. 중세에 대한 오해와 편견 73
2. 수도원과 도서관 77
3. 유럽의 수도원 도서관 85
4. 이슬람 모스크와 지혜의 집 107
5. 해인사 장경판전 119

3장 근대 도서관, 혁명은 가까이에 있다
1. 중세의 가을과 근대의 봄 131
2. 인류 최고의 걸작, 인쇄술 136
3.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157
4. 근대 도서관의 파노라마 172

4장 현대 도서관, 지식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
1. 공공도서관의 시작 197
2. 영미 공공도서관의 태동 200
3. 중일 공공도서관의 성립 219
4. 한국 공공도서관의 역사 243

5장 도서관의 에토스·파토스·로고스
1. 도서관의 진화와 변용 265
2. 도서관의 가치와 편익 269
3. 도서관 위기론과 해법 279
4. 도서관의 에토스·파토스·로고스 296

6장 도서관이 움직인다
1. 도서관의 고답적 정체성 315
2. 시류와 혁신의 아이콘 320
3. 장소로서의 도서관 337
4. 도시 재생과 도서관 360

7장 책과 도서관에 바치는 헌사
1. 도서관의 모태와 은유 381
2.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조화 384
3. 참을 수 없는 가벼움과 야만적 선동 389
4. 도서관의 절대성과 상대성 400
5. 도서관의 변용 405
6. 책과 도서관의 학살 416
7. 책과 도서관에 바치는 헌사 438

주 445
찾아보기 469

by 해피의서재 2020. 2. 14. 09:14

(서명/출판사 순 표기)

키워드 1. 책과 도서관
- 책이었고 책이며 책일 무엇에 관한, 책 / 마티
- 세계의 책 축제 : 새로운 세상을 상상하다 / 가갸날
- 도서관 지식문화사 / 동아시아
- 도서관의 삶, 책들의 운명 / 글항아리
- 책꽂이 투쟁기 / 그림씨
- 한국 출판계 키워드 2010-2019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키워드 2. 인생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
- 메멘토 모리 : 나이듦과 죽음에 관한 로마인의 지혜 / 교유서가
- 비관하는 힘 : 생각대로 되지 않을 때를 대비한다 / 더난
- 희망 버리기 기술 : 엉망진창인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나아가는 힘 / 갤리온
-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 메이븐

키워드 3. 세상을 해석하는 시선
- 생각의 싸움 : 인류의 진보를 이끈 15가지 철학의 멋진 장면들 / 동아시아
- 아무도 원하지 않는, 그러나 모두를 위한 니체 / 삼인
- 혐오의 시대, 철학의 응답 / 서해문집
- 소통하는 인간, 호모 커뮤니쿠스 / 인북스
- 음식 경제사 / 인물과사상사
- 지리학자의 인문 여행 / 글담

키워드 4. 청년의 삶, 노동자의 삶, 여성의 삶
- 회사가 괜찮으면 누가 퇴사해 / 바틀비
- 진상고객 갑씨가 등장했다 : 감정노동 보호매뉴얼 / 커리어북스
- 출근길의 주문 : 일터의 여성들에게 필요한 말, 글, 네트워킹 / 한겨레
- 공정하지 않다 : 90년대생들이 정말 원하는 것 / 지와인
- 9평 반의 우주 : 솔직당당 90년생의 웃프지만 현실적인 독립 에세이 / 북라이프
- 여성 안전 매뉴얼 365 / 모아북스
- 정치적인 식탁 / 동녘
- 내가 만난 여성 과학자들 / 해나무
- 우리가 과학을 사랑하는 법 / 위즈덤하우스

키워드 5. 현대사회, 쿼바디스
- 한국의 논점 2020 / 북바이북
- 래디컬 마켓 : 공정한 사회를 위한 근본적 개혁 / 부키
- 나쁜 교육 : 덜 너그러운 세대와 편협한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프시케의숲
- 밀레니얼 선언 / 생각정원
- 테크놀로지의 덫 : 자동화 시대의 자본, 노동, 권력 / 웅진
- 민주주의는 만능인가? / 가갸날
- 가짜 민주주의가 온다 / 부키
- 아이들의 계급투쟁 / 사계절
- 진실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 돌베개
- 세금폭탄, 부자감세, 서민증세 : 조세 담론의 정치학 / 후마니타스
- 자본주의가 대체 뭔가요? / 아날로그
- 플랜 드로다운 / 글항아리사이언스
- 반려동물을 생각한다 / 크레파스북
- 동물주의 선언 / 책공장더불어
- 큐레이션 : 정보과잉 시대의 돌파구 / 이코노믹북스
- 도시는 어떻게 삶을 바꾸는가 / 웅진지식하우스

키워드 6. 과학으로 보는 세상

- 웰컴 투 사이언스 월드 / 개마고원
- 논문이라는 창으로 본 과학 / 지성사
- 나는 과학책으로 세상을 다시 배웠다 / 바다출판사
- 수학의 눈으로 보면 다른 세상이 열린다 / 지상의책
- 익숙한 일상의 낯선 양자 물리 / 프리렉
- 식물의 책 / 책읽는수요일
- 말하는 나무들 / 매직사이언스
- 여자의 뇌 남자의 뇌 따윈 없어 / 동아시아
- 명왕성 연대기 / 사이언스북스
- 문명 건설 가이드 : 인간이 만들어낸 거의 모든 도구와 기계의 원리 / 웅진지식하우스
- 빌트, 우리가 지어 올린 모든 것들의 과학 / 어크로스
- 과학책 읽어주는 공대생 / 뜨인돌
-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쌤앤파커스
- 우주날씨 이야기 / 플루토
- 화학의 미스터리 / 반니

키워드 7. 법에 대하여
- 법의 이유 / 아르테
- 로마법 수업 / 문학동네
- 법에도 심장이 있다면 / 행성비
- 법 앞의 예술 / 안나푸르나
- 한국인의 법과 생활 / 법무부
- 김변의 방과후 법률사무소 / 뜨인돌

키워드 8. 예술의 세계
- 미술에게 말을 걸다 / 카시오페아
- 현대 미술의 이단자들 / 을유문화사
- 악기 구조 교과서 / 보누스
- 세상의 끝에서 만난 음악 / 문학동네
- 블루노트 : 타협하지 않는 음악 / 스코어
- 클래식, 비밀과 거짓말 / 을유문화사

키워드 9. 스크린/액정화면 너머의 세상
- 역사드라마, 상상과 왜곡 사이 / 역사비평사
- 나는 드라마로 시대를 기록했다 / 창비
- 식민지 조선의 시네마 군상 / 뿌리와이파리
- 질문하는 영화들 / 북트리거
- 영화는 두 번 시작된다 / 위즈덤하우스

키워드 10. 역사로 보는 오늘

- 내 손에 스마트폰이 있는데 왜 역사를 배워야 할까? / 휴머니스트

- 처음 읽는 바다 세계사 / 현대지성
- 1947 현재의 탄생 / 웅진지식하우스
- 무덤이 들려주는 역사와 문화 이야기 / 생각과종이
- 산업혁명으로 세계사를 읽다 / 까치
- 하룻밤에 읽는 한국 근현대사 / 페이퍼로드
- 오래된 서울을 그리다 / 초록비책공방
- 동방의 부름 : 십자군전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 책과함께
- 인간의 흑역사 / 윌북
- 그때, 중국에선 어떤 일이 있었나? / 돋을새김
- 중국 근현대사 강의 / 한울아카데미
- 아무 것도 사라지지 않는다 / 더봄
- 마리 앙투아네트 : 왕비의 비밀 일기 / 이숲

by 해피의서재 2019. 12. 24. 18:19

​(2020) 트렌드 모니터 / 최인수 외 / 시크릿하우스 / 2019

매년 이맘때면 내년도 사회 트렌드를 예측하는 책들이 속속 등장하기 시작한다. 개인적으로는 2015년부터 출간돼 온 ‘대한민국 트렌드’ 시리즈를 가장 선호한다. 그런데 올해부터 이 시리즈의 제목이 바뀌었다. 앞으로는 전 세계 흐름까지 함께 조망할 요량인지, 올해 발매된 책의 제목은 ‘2020 트렌드 모니터’다.

목차를 통해 책이 제시하는 주요 키워드를 살펴보니, 딱 지금 현재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상황의 연장선을 보는 듯하였다. 범죄가 만연한 ‘타인지옥’이 된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철저한 개인주의 생활과, 철저하게 목적-취향의 동질성에 바탕을 둔 단발성-익명성 모임 위주의 인간관계, 내 기준과 취향이 우선시되는 맞춤형 소비, 그 과정에서 수천 수만 가지로 분화되어 도저히 공통점을 찾기 어려워지는 파편적 사회, 그리고 공정성과 사회 투명성에 대한 대중의 어느 때보다 강경한 요구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일정하게 흘러온 사회 흐름을 기반으로 하여 생각해 보건대, 아마도 2020년대는 어느 때보다 인간에 대한 신뢰가 땅바닥에 떨어진, 그래서 오직 개인의 독자생존과 각자의 내면에 더 골몰하게 되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관계단절적인 사회상이 더욱 공고해지는 시대로 기록될 듯하다.

by 해피의서재 2019. 12. 5. 14:09

“예술은 삶의 가장 빛나는 순간의 포착이다.”
“경험과 기억의 덩어리가 삶인 것이다.”

최근(9.20~10.3) 총 4부에 걸쳐 KBS1에서 방영된 실크로드 문화기행 다큐 <매혹의 실크로드>에서 가장 인상깊게 기억된 문장들이다.

길 위의 몸짓(춤), 소리(음악), 재주(기예) 이렇게 세 가지 테마를 중심으로 실크로드 문화를 다룬 이번 다큐에서 춤 테마는 무용가 차진엽이, 음악 테마는 작곡가 원일이, 기예 테마는 밥 장이 맡아 함께 여행길에 올랐다.

옛 신라 수도 경주에서 중국 북서부 신장위구르 자치구와 북인도를 거쳐 중동 한복판에 자리한 옛 페르시아, 즉 현재의 이란에 이르는 여정을 거치면서 세 예술가는 ‘길’과 ‘교류’를 통한 문화의 전파와 융합에 대해 이야기하고, 여행을 마친 후 여기서 얻은 영감을 바탕으로 각자 나름대로의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 냈다. 다큐의 마지막 장면, 경주 황룡사지 유적 위에서 펼쳐진 원일의 음악 <바람의 길>과 차진엽의 춤은 4부작짜리 다큐의 대미를 장식하는 가장 아름답고 장엄한 단상으로 남았다.

일러스트레이터 밥 장은 비록 무거운 곤봉을 직접 휘두르거나, 서커스를 하거나, 말을 타고 격구나 마상무예를 직접 할 수는 없지만 대신 그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섬세한 선과 강렬한 색으로 화폭에 구현해 냈다. 이 기록을 엮어 출간된 책이 바로

여행, 작품이 되다 / 밥 장 / 시루 / 2019.09.16




세월은 흐르고 옛 영화는 스러졌으며 번화했던 도시는 사막같은 폐허로 변했지만 한때 그 영광스런 시간 속에서 함께 반짝이던 ‘가장 찬란하던 한순간의 포착’, 예술만큼은 시공을 넘어 공기 속에 스며든 채 오늘까지 그 빛을 내고 있다. 이 책과 다큐가 바로 그에 대한 기록이자 증거가 아닐까 한다.

원일의 <바람의 길>을 들으며 이 책을 읽으면 다큐를 보면서 느꼈던 그 감동을 다시 불러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곡은 음원이 나올지 안 나올지 감이 안 온다...


by 해피의서재 2019. 10. 19. 21:31

https://readinghappy.tistory.com/m/64

올 1월에 주요 출판사들의 출간 예정작 목록을 포스팅한 적이 있었다. 8개월이 지난 현재, 이 중 어떤 책들이 어떤 제목을 달고 세상에 나왔는지 한 번 살펴보았다. 목록을 서로 대조해 보면, 가제와 실제 출간된 제목이 서로 다른 경우가 거의 대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만큼 책의 제목을 짓는 일이 출판사에게 매우 어렵고도 중요하다는 뜻이리라.

<출간완료도서> (출판사 / ​서명 / 저자 / 출간일)

​1. 개마고원 / ​금융과 회사의 본질 : 재산권과 계약권의 이종교배 / 김종철 / 2019.3.4

​2. 김영사 / ​대변동 : 위기, 선택, 변화 / 재레드 다이아몬드 / 2019.6.10

​3. 남해의봄날 / ​우리가 글을 몰랐지 인생을 몰랐나 / 권정자 외 / 2019.2.1

​4. 돌베개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 / 권보드래 / 2019.3.1

​5. 동아시아 / ​아름다움의 진화 : 연애의 주도권을 둘러싼 성 갈등의 자연사 / 리처드 프럼 / 2019.4.17

​6. 마음산책 / ​프리모 레비의 말 : 아우슈비츠 생존 화학자의 마지막 인터뷰 / 프리모 레비, 조반니 테시오/ 2019.4.25

​7. 알마 / ​모든 것은 그 자리에 : 첫사랑부터 마지막 이야기까지 / 올리버 색스 / 2019.4.23

​8. 반비 / ​생각을 빼앗긴 세계 : 거대 테크 기업들은 어떻게 우리의 생각을 조종하는가 / 프랭클린 포어 / 2019.7.15

9. 사회평론 / ​난생 처음 한번 들어보는 클래식 수업. 2 : 베토벤, 불멸의 환희 / 민은기 / 2019.3.8

​10. 세종서적 / ​인간화된 신 / 레자 아슬란 / 2019.2.25

11. 어크로스 / ​다가오는 말들 : 나와 당신을 연결하는 이해와 공감의 말들 / 은유 / 2019.3.7

12. 을유문화사 / ​그들은 왜 극단적일까 : 사회심리학자의 눈으로 본 극단주의의 실체 / 김태형 / 2019.1.20

​13. 창비 /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중국편. 1-2 / 유홍준 / 2019.4.25

​14. 청림출판 / ​도요타 이야기 : This is Toyota / 노지 츠네요시 / 2019.3.15

​15. 푸른역사 / ​내 안의 역사 : 현대 한국인의 몸과 마음을 만든 근대 / 전우용 / 2019.1.19

​16. 휴머니스트 / ​3.1운동 100년. 1-5 / 한국역사연구회 3/1운동100주년기획위원회 / 2019.3.1

​17. 흐름출판 / ​깃털 도둑 : 아름다움과 집착, 그리고 세기의 자연사 도둑 / 커크 월리스 존슨 / 2019.5.3

by 해피의서재 2019. 9. 7. 12:07

역사의 쓸모 / 최태성 / 다산초당 / 2019

스타 역사 강사 최태성이 역사 속 수많은 사람들의 일생과 선택을 들여다보며 깨달은, 진정으로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한 지침과 교훈들을 22개의 이야기 속에 녹여 엮은 책이다.

각자 다르면서도 서로 연결되어 있는 이야기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하는 한국사 속의 여러 결정적인 장면들이 읽는 이에게 깊은 통찰과 울림을 준다.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이런 말을 전하고 있다. 역사는 과거의 박제가 아니라 여전히 우리 삶 속을 흐르고 있는 현재라고. 현재 처한 세상의 부조리에 지레 포기하지도, 눈앞의 이익에 쉽게 자신을 팔지도 말라고. 자신의 존엄함을 지키며 자신과 세상을 진정으로 가치있게 하는 삶을 살아가라고. 그런 삶이 비록 당사자에겐 지난하고 보는 이에겐 어리석어 보일지도 모르나 역사는 결국 그런 이들의 편이었고 끝내 그들이 추구하는 방향으로 변해 갔노라고. ​

역사를 찬찬히 살펴보면요, 그 갈망의 힘으로 새로운 세상이 열립니다. 한 시대의 꿈이 이루어져서 다음 시대가 와요. 이걸 알게 되면 굉장히 설렙니다. 그렇다면 우리 시대의 꿈은 뭘까? 우리가 꿈꾸는 세상은 언제 오게 될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역사학자 E.H.카의 유명한 말처럼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면서 미리 벽을 세워버려요. 역사 속 인물은 과거의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냥 이름을 외우고 업적을 외우는 게 끝이죠. 하지만 역사를 제대로 공부하면 과거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됩니다. -32~33쪽

역사 속에서 위인으로 평가받는 사람들은 정상에서 배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물러나야 할 때 물러날 줄 알고, 잘 내려온 사람들이지요. 우리는 역사를 통해 ‘잘 내려오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를 통해 나의 존재, 나의 격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59쪽

창조나 창의력을 말하면 사람들은 자꾸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해요. 그러나 아무리 새로워도 사람들이 선택하지 않으면, 열광하지 않으면 널리 쓰이지 않습니다. 저는 소수를 위한, 소수의 권익을 대변하는 기술은 역사의 흐름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는 자유의 확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어요. 폭발력을 지닌 창조적 발명은 소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다수를 대변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진정한 창조인가 생각해 봐야 할 때입니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려고 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더 자유로워지고 편안해질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고민을 바탕으로 한 창조만이 오랜 시간 생명력을 가지고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 세상을 바꿔나갈 테니까요. -116~117쪽

저는 사람들이 명사가 아닌 동사의 꿈을 꾸면 좋겠습니다. 이왕이면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지요. 그 꿈에서 삶의 의미를 찾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자신만의 자리를 발견하길 바랍니다. 그 힘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거든요. -214쪽

우리는 모두 언젠가는 죽습니다. 한 번뿐인 인생, 한 번뿐인 젊음을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하지 않는다면 역사라는 무대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어요? 저는 늘 사람들에게 역사에 무임승차하지 말자고 이야기합니다. 우리가 앞선 시대의 사람들에게 선물을 받은 만큼 뒤이어 이 땅에서 살아갈 사람들을 위한 선물을 준비해 주고 싶어요. 그리하여 훗날 눈을 감는 순간,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에 일생으로 답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26쪽

자기에게 주어진 시간을 ‘잘’ 살아낸 인물들의 삶을 들여다보면 세부적으로는 다를지 몰라도 그 궤적은 같아요. 자기만의 중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나갔던 사람들이거든요. (...) 물질만능주의가 판을 치고 있지만, 예나 지금이나 돈이 많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일 수는 없어요. 아무리 가진 게 많은 사람이라도 인격이 부족하고 그 사람만의 무언가가 없으면 진정한 ‘인싸’가 되지 못합니다. 손에 쥔 것이 없어지면 전부 사라질 인기이고 인연인 것이죠. -240쪽

시민의식이 다른 게 아닙니다. 불의에 저항하고 합리적인 사고를 추구하는 정신, 법과 도덕을 준수하며 민주주의를 지지하는 태도를 이릅니다. 될 대로 되라고 포기한다면, 권리만 찾고 의무는 나 몰라라 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도 정치에 참여히지 않는다면 과연 우리에게 시민의 자격이 있는 것일까요? 시민사회가 탄생한 지 100년, 이제 시민으로서 우리의 자세를 돌아볼 시간입니다. -282쪽

by 해피의서재 2019. 8. 30. 16:13

요즘들어 ‘이성적, 과학적 사고’의 필요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온갖 과잉정보와 가짜뉴스와 루머로 가득찬 세상에서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력이야말로 절대적인 생필품이 아닐까 해서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키우는 데는 수학만한 게 없다고들 하는데, 도대체 알아볼 수조차 없는 별의별 수식과 도형으로 점철된 옛 수학 교과서와 문제집, 참고서 등을 떠올리면 역시나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되고 만다.
다행히도 최근 들어 이런 수포자들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교양 수학 서적이 많이 발간되었다. 일상 생활과 정보산업 등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제시한 책이 다수이다.

나름대로 추려본 목록을 여기 제시해 본다.

1. 수학으로 세상을 바꾸다 : 삶의 지혜와 변화를 주는 수학 / 양영오 / 청문각 / 2019
2. AI, 빅데이터에 숨어 있는 수학의 아름다움 / 우쥔 / 세종서적 / 2019
3. 수학이 필요한 순간 / 김민형 / 인플루엔셜 / 2018
4. 수학의 감각 : 지극히 인문학적인 수학 이야기 / 박병하 / 행성B / 2018
5. 수학에 관한 어마어마한 이야기 / 미카엘 로네 / 클 / 2018
6. 내가 사랑한 수학 이야기 / 야나기야 아키라 / 청어람e / 2018
7. 세상을 바꾼 위대한 오답 : 수학짜 수냐의 오답으로 읽는 거꾸로 수학사 / 김용관 / 궁리 / 2017
8. 박경미의 수학N / 박경미 / 동아시아 / 2016
9. 수학에서 꺼낸 여행 : 프랑스, 영국, 미국으로 떠나는 수학문화 기행 / 안소정 / 휴머니스트 / 2016
10. 세상을 움직이는 수학 개념 100 / 라파엘 로젠 / 반니 / 2016

by 해피의서재 2019. 8. 27. 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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