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에 출간된 이 책의 저자는 10여 년 전 저술한 <불안증폭사회>를 비롯해 <자살 공화국>, <트라우마 한국사회>, <싸우는 심리학> 등의 저서를 통해 한국사회에 적체된 각종 병리가 어떻게 한국인의 삶을 황폐화시키는지 고찰하고 분석해 왔다.
극도로 세분화되고 하층으로 쉽게 추락하기 쉬운 위계 질서에 갇혀, 개개인이 모두 파편화된 채 남에게 짓밟히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며 돈과 지위에 집착하고 정신적 여유와 기본적 사회성까지 상실하고 있는 현 시대의 한국인들.
저자는 현재 한국인들의 내면을 이렇게 진단하고 있다. 20세기 말 이후 몰아닥친,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강자독식형 정글자본주의의 정신적 인질이 되어 능력주의로 포장된 자기착취 가스라이팅과 자기혐오, 약자혐오에 갇혀 있는 사람들. ‘사회적 생존을 위해 영원히 지속해야 하는 불안한 고지전’을 치르며 자신의 우위를 끊임없이 확인받고자 하는 정신병리에 빠져 있는 사람들.
그나마 1980년대 이전까진 적어도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끼리는 서로 돕고 다독이고 소통하며 지냈으니, 정 힘들어지면 도와 주는 이들이 있을 거란 최소한의 심리적 안정감이라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마저도 없이 모두가 적이자 경쟁자일 뿐인 세상이 도래했다. 소득수준과 보유 자산에 따라 세밀하게 위계가 쪼개지고 그 위계에 따라 누릴 수 있는 권리와 대우의 차이가 너무나 커져 버렸다. 이런 환경에서 자기계발이란 이름의 자기학대와 남보다 뒤처져선 안되고 반드시 우위에 서야 한단 강박에서 유래된 나르시시즘 및 자기과시, 갑질이 횡행하는 것은 필연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돈을 불리는 데 집착하며 SNS에 명품 구입 인증 사진 등 과시성 포스팅을 올리는 세태,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악용하여 범죄를 자행하는 사람들의 끝없는 출몰, 사는 집의 규모에 따라 어린이들이 서로 멸칭을 부르며 따돌리는 작태, 타인에 대한 우월감을 확인받는 데 집착하는 자들의 터무니없는 갑질에 홀로 고통받다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사람들의 속출. 그 근본적 원인은 모두 한 곳으로 향한다.
저자는 이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 중 하나로 기본소득 제도의 도입과 정착을 제시한다. 기본소득 지급을 통해 개인의 생존불안을 획기적으로 경감시키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이 해결된다는 것이다. 소모적인 생존경쟁에서 벗어나 좀더 각자의 적성에 맞는 자유롭고 생산적인 활동에 나서도록 유도할 수 있고, 이웃간의 동질감을 회복시켜 사회공동체의 복원도 가능할 것이며, 덩달아 사회 신뢰도도 올라가니 저신뢰 사회에서 사기 등을 피하기 위해 지출해야 하는 온갖 시간과 금전적 비용도 절약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인의 정신건강 문제와 직결되는 문제이자, 한 국가의 지속가능성과도 연관되는 사안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끊임없이 서로를 경계하고 물어뜯고 최후의 1인만 남을 때까지 사생결단을 내도록 강요하는 정글사회는 종국엔 지력을 다한 농경지처럼 아무도 살 수 없는 폐허로 남을 것이 자명하다. 한국전쟁이 남긴 오랜 트라우마 때문에 쉽진 않겠지만, 이제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상상하고 실현해야 할 때가 왔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위 링크에 있는 글은 2019년에 썼던 것이다. 나 역시 이 강아지의 SNS 계정을 알고 있었고, 항상 밝고 사랑스러우며 낯가림 없이 모두에게 친근하게 다가서는 모습을 무척 흐뭇하게 바라보며 좋아했었다. 책을 읽게 된 것도 SNS로 출간 소식을 접한 덕에 가능했다. 자연스럽고도 귀여운 강아지 사진과 개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는 에피소드를 담은 글들을 좋게 평했었다.
강아지는 작년에 희귀병을 얻어 투병생활을 하다 올 5월에 8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진짜 문제는 그 후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급기야 TV 방송국이 취재에 나설 정도로 커져 버린 의혹들과 쏟아지는 충격적인 폭로들. 어느 날 문득 SNS 유명세를 타면서 얻게 된 대중의 사랑을 세상의 다른 모든 동물들에게 나눠 주겠다며 기부를 위해 진행했던 굿즈 판매, 그게 결국은 동물을 앞세워 자신의 인정욕과 경제적 사익을 채우려는 한 개인의 이기적 행각에 불과했던 것인가.
저 글을 지워 버려야 할지 한참 고민했다. 그러나 이 또한 하나의 기록이며 어떤 사건에 대한 하나의 증거로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하여 그대로 남겨 두기로 했다. 다만 이 글을 해당 포스팅에도 링크하여 경계로 삼고자 한다. 마치 도핑 전력이 있는 운동선수의 이름에 * 표시를 두는 것처럼.
이제 앞으로 누가 기부니 후원이니 하는 것에 기꺼이 나설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사람들의 선의를 악용한 자들이 얼마나 많았을 것이며 그렇게 상처받고 세상에 대한 선의를 버린 이들은 또 얼마나 많을 것인가.
나는 이번에 또 한 번의 거대한 배신을 목격했다. 그리고 이전부터도 그랬지만 앞으로는 더 그 어떤 것도 믿을 수도 정을 줄 수도 없을 것 같다.
2011년 초판되어 많은 사랑을 받은 후 다시 2017년에 개정판이 출간된 유시민의 ‘국가학개론’.
국가가 존재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입을 여는 이 책은 ‘힘으로 대내외 치안을 통제한다’에 방점을 둔 국가주의와 ‘국가 내부 거주자의 모든 자유를 보장한다’에 방점을 둔 자유주의 국가관을 먼저 설명한다. 뒤이어 ‘억압받는 자에게 국가 따윈 무의미하다’는 취지의 마르크스주의와 여기서 파생되는 국가에 대한 냉소주의에 대해서도 논한다. <월든>으로 유명한 조지 데이비스 소로의 ‘시민 불복종’에 대한 언급도 등장한다.
저자는 앞서 논한 여러 이론들을 바탕으로 하여 현대 국가와 정치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점들을 피력한다. 수많은 분쟁과 유혈사태를 거치며 확립된 현대 국가의 의무사항을 현 대한민국 헌법을 읽어내려가며 설파하고, 무턱대고 신념만을 내세우며 무리하고 독선적인 행보를 보이기보다 정치행위의 결과를 중시하는 책임윤리를 견지할 것을 정치 지도자에게 요구한다. 이때 반면교사로 제시된 사례가 독일의 바이마르 공화국이다.
스스로를 ‘진보자유주의자’라 칭하는 저자는 오늘날의 대한민국 정치인과 시민들에게 ‘국가다운 국가 만들기’를 위해 다음을 요구한다. 정치인에게는 법을 제 도구처럼 휘두르지 말고 법이 명시한 권한 한도에서 책임있게 정치활동을 하며 정직하게 시민과 소통할 것을, 시민에게는 자기 자신은 물론 동료 시민에게도 동등한 존엄성이 있음을 인정하고 시대에 늘 깨어 있으며 기꺼이 타인과 연대하여 행동할 것을 말이다.
노동은 신성시의 대상도 혐오와 기피의 대상도 아니다. 신분 구별의 근거는 더욱 아니다. 노동은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생산하거나 필요한 일을 해 주고 그 대가로 생활 자금을 받는 모든 종류의 일을 의미한다. 여기에 그 이상의 의미를 굳이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노동을 도외시하는 행위다.
로봇과 드론, AI기술이 무서운 속도로 발달하면서 인간의 노동력이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일하지 않으면 생활비를 확보할 수 없다는 인식 아래 취업준비자들의 무한경쟁은 더 심해지고 사용자들은 얼마 안 되는 일자리 TO를 인질 삼아 노동자들의 기본적인 권리(일한 만큼 버는 것, 안전한 작업환경을 제공받는 것 등)를 무시하고 노동자 사용하길 마치 일회용 소모품 쓰듯 한다. 여기에 노동의 형태도 특수고용, 하청, 일회성 계약 등 다각화되어 노동자들이 한 목소리로 제 권리를 주장하기도 어려워지고 있다. 뿌리깊은 사농공상 의식에 따른 직업 및 직위 귀천 따지기, 여기에서 기인한 현장직 천대와 소위 ‘사짜’ 직업 및 학벌에 대한 집착도 한국 노동자들의 권익 신장을 시민 스스로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책은 사용자이자 노동자인 자영업자와 프랜차이즈 가맹점주, 플랫폼 일자리, 기술의 발전에 따른 일자리 소멸, 시험만능주의라는 뒤틀린 공정주의로 대표되는 노동자들 간 계층 분화와 상호 반목, 끊이지 않는 산업재해, 현행 임금 책정 방식의 문제점 등 한국 노동현장 곳곳에서 불거지고 있는 주요 문제를 상세히 살펴보고 기록한다.
소수의 자본가를 제외하고 우리 사회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모두 남의 사업체에서 일을 하고 임금을 급여받는 노동자들이다. 우리 자신의 문제임을 인식하지 못하고 마냥 남의 일처럼 치부했던 노동 문제에 대하여 이참에 자세히 들여다보는 게 어떨까. 어느 순간 이것은 남의 일이 아니라 다름아닌 나 자신의 일상, 내가 처해 있는 환경에 대한 이야기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2년 전, 노동의 종말과 노동자의 예정된 궁핍에 대해 심란한 심정을 감추지 못해 위와 같은 글을 쓴 일이 있었다. 그리고 2년이 지난 최근, 한 공공도서관에서 이런 북큐레이션 컬렉션을 만났다.
아무리 세상의 변화가 가속화되고 노동의 입지가 약화되고 있어도 여전히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각처에서 땀흘려 일하는 노동자들의 손길이고 이들의 권리는 당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아울러 노동의 형태 역시 다양해지고 또 변화무쌍해지고 있는 만큼 변한 세태에 대응하여 노동자의 권리를 찾는 것 역시 어렵고도 중한 일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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