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아워. 1-2 / 이국종 / 흐름출판 / 2018

이국종 아주대 외상외과 과장의 에세이 <골든 아워>가 최근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이 포스팅에 올린 사진은 바로 이 책의 뒷표지를 찍은 것이다. 두 권으로 나뉘어 출판된 이 책은 이 교수와 그가 이끄는 중증외상 팀이 2002년부터 2018년까지 생과 사의 경계에서 처절하게 버텨 온 사투의 기록이다. 긴 말 필요없이 이 뒷표지에 새겨진 글귀만으로도 이 책의 내용을 설명하기 충분하다.

16년이라는 그 긴 시간 동안 수많은 환자들이 밀려오고 밀려갔으며 살아남는 이도, 끝내 숨을 거두는 이도 있었다. 아덴만 여명 작전과 세월호 참사, 귀순 북한병사 사건 등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건도 있었다. 그 속에서 중증외상외과라는 분야가 새삼 세상의 주목을 받고 관련 정책이 쏟아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실제로 중증외상을 둘러싼 구조적인 문제는 해결된 게 없었고 아주대 중증외상 팀의 스태프들과 소방 구조대원들은 과로와 사고 등으로 하나 둘 무참히 쓰러져 갔다. 그 모든 이야기들을 간결한 어조로(저자 자신이 밝혔듯 김훈의 <칼의 노래>와 흡사한) 적어 내려간 이 교수의 글 속엔 차마 미처 숨기지 못한 분노와 슬픔이 오롯이 어려 있어, 읽는 이로 하여금 아무 말도 꺼낼 수 없게 한다.

​“한국 중증외상센터의 직원 고용 수준은 영미권의 3분의 1에 불과했고, 적은 인력이 과도한 업무를 감당하느라 과로로 쓰러져 나갔다. 수술방의 모든 의료진이 감염의 위험을 감수하고 환자의 피를 뒤집어썼다. 전담간호사들이 다치거나 유산해 대열에서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이 현실은 무관심 속에 외면받고 있었다. 이곳의 노동자들은 무슨 이유로 희생을 기본 값으로 감수해야만 하는가. 거대 담론만이 존재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중증외상센터의 지속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 국민들이 아는 사실은 실제 상황의 100만 분의 1도 되지 않는다. 한국 사회는 약육강식의 정글과 같고, 그 안에서 각자도생하며 사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이 사회는 영화 <매트릭스>와 흡사하고, 사회가 움직이는 시스템의 근간은 모르는 채 사는 것이 좋다.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는 정부나 사회 시스템을 개선해 보려는 시도는 하지 않는 게 낫다. 일부 ‘선수’들만이 그런 시스템을 이용해 개인의 이윤을 극대화할 뿐이다. 나는 이 사회 안에서 평범하게 자영업자로서의 의사직을 유지하지 못하고, 주제넘게 시스템에 접근한 탓에 바싹 타들어가고 있었다.”
- 281~282쪽


이 말에 더 이상 무슨 얘기를 더 보탤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스스로 이제 이렇게 하루하루 버티는 게 지치고 지겹다고 토로하는 지경이 되어 있다. 떠나라면 언제든 떠날 마음을 늘상 품고 살아 왔다는 저자. 그럼에도 지금껏 떠나지 못하고 지옥같은 사선을 지키고 있는 이유는 여전히 곳곳에서 생계를 위해 분투하다 육체가 으깨지고 부서진 채 실려오는 수많은 환자들과, 그들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동료와 후배들을 위한 마지막 불씨라도 지키고 남기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리라.

모두가 번지르르한 겉치레에 집착하고 모든 것이 기계적인 경제논리로 재단되는 세상에서 말도 안되는 수준의 박한 지원과 그보다 더 야박한 사회상(닥터헬기에서 나오는 소음조차 견디지 못하고 민원을 퍼붓는 등)을 견뎌내며 자신의 건강과 생명마저 제물로 바친 이들의 일대기를 읽어 나가고 있자면 대체 이 나라와 이 사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며, 부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되물을 수밖에 없게 된다. 소수의 희생에 기반하고 안주하며 버티고 있는 조직과 사회에 무슨 미래가 있을 것인가를 되뇌면서도, 이 땅에 제대로 된 중증외상 치료 시스템을 이끌어갈 마지막 희망을 남겨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모든 희생을 감수하고 있는 이국종 교수와 그의 스태프들에게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 ‘이루어지지 않을 꿈 속에서 피울 수 없는 꽃을 키우는’ 심정으로 생사의 경계를 지키고 있는 사람들의 고통과 절망을 조금이라도 덜어내 줄 의무를 이 사회가 이제 자각할 때도 되었다. 실은 많이 늦었지만, 지금부터라도 그래야 한다.

by 해피의서재 2018. 11. 5. 1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