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들어 ‘이성적, 과학적 사고’의 필요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온갖 과잉정보와 가짜뉴스와 루머로 가득찬 세상에서 냉정하고 객관적인 판단력이야말로 절대적인 생필품이 아닐까 해서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키우는 데는 수학만한 게 없다고들 하는데, 도대체 알아볼 수조차 없는 별의별 수식과 도형으로 점철된 옛 수학 교과서와 문제집, 참고서 등을 떠올리면 역시나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되고 만다.
다행히도 최근 들어 이런 수포자들에게 먼저 손을 내미는 교양 수학 서적이 많이 발간되었다. 일상 생활과 정보산업 등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과의 직접적인 연관성을 제시한 책이 다수이다.

나름대로 추려본 목록을 여기 제시해 본다.

1. 수학으로 세상을 바꾸다 : 삶의 지혜와 변화를 주는 수학 / 양영오 / 청문각 / 2019
2. AI, 빅데이터에 숨어 있는 수학의 아름다움 / 우쥔 / 세종서적 / 2019
3. 수학이 필요한 순간 / 김민형 / 인플루엔셜 / 2018
4. 수학의 감각 : 지극히 인문학적인 수학 이야기 / 박병하 / 행성B / 2018
5. 수학에 관한 어마어마한 이야기 / 미카엘 로네 / 클 / 2018
6. 내가 사랑한 수학 이야기 / 야나기야 아키라 / 청어람e / 2018
7. 세상을 바꾼 위대한 오답 : 수학짜 수냐의 오답으로 읽는 거꾸로 수학사 / 김용관 / 궁리 / 2017
8. 박경미의 수학N / 박경미 / 동아시아 / 2016
9. 수학에서 꺼낸 여행 : 프랑스, 영국, 미국으로 떠나는 수학문화 기행 / 안소정 / 휴머니스트 / 2016
10. 세상을 움직이는 수학 개념 100 / 라파엘 로젠 / 반니 / 2016

by 해피의서재 2019. 8. 27. 12:23

​세상을 바꾼 위대한 오답 / 김용관 / 궁리 / 2017

​"오답을 지적하면서 다른 방법들이 출현했고, 전혀 다른 관점의 시도를 하게 되었다. 그런 오답들이 있어 수학은 전복되며 확장됐다. 오답이 있었기에 가능한 이야기였다." (234쪽)

이 책은 고대 시기로부터 전해 내려온 수학적 화두가 세대를 거듭하고 다양한 수학자들의 손을 거치며 새로운 원리와 증명을 찾아가며 수학이라는 학문이 발전해 가는 과정을 12가지 주요 문제를 소주제 삼아 전개한 수학사 소개서이다.

작도 문제나 도형의 면적 및 둘레를 구하는 문제를 풀어나가는 이야기에서 시작하여 미적분과 로그 등의 다양한 수학적 개념과 계산법, 원리와 법칙들은 어떻게 고안되고 활용되어 왔는지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은 어디까지 인식하고 생각할 수 있는가'의 지평이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까지 다다랐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수식과 그림이 많이 나오긴 하지만 크게 어렵지는 않다. 쉬운 이야기 형식으로 쓰여진 글이 내용의 이해를 돕는다. 홀린 듯이 글을 읽어나가다 보면 유명한 수학자들의 이름과 수학 용어, 기하학에서 대수학과 해석학을 향해 나아가는 근현대 수학의 발전 양상을 알게모르게 파악할 수 있다.

수학이 단순한 문제풀이 이야기가 아닌, 세상의 이치와 구조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철학의 영역에 있음을 다시금 깨닫게 해 주는 이 책은, 수학의 발달 과정을 다룸으로써 은연중에 인간 지성의 확장사도 함께 다루고 있다.

책의 말미에는 ‘오답으로 읽는 수학사 연대표’를 수록하여 수학의 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했다.

by 해피의서재 2019. 5. 6. 21:15

역시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나는 요즘 ​<우주를 계산하다>(이언 스튜어트/ 흐름출판/ 2019)라는 두꺼운 천체물리학 책을 읽고 있다. 이언 스튜어트의 간결하고도 매끄러운 글 솜씨에도 불구하고 이전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온갖 수학/물리학 용어와 맞닥뜨리니 좀체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책머리에 실려 있던 <수학이 필요한 순간>의 김민형 저자가 한 말처럼 어디 이과학 관련 독서모임이라도 찾아 들어가서 매주 한 챕터씩 함께 읽고 문답을 주고받는 방식의 강독회라도 제안해야 하나 싶을 정도다. 언뜻 <수학용어사전>이라는 책을 서점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그런 사전이라도 하나 옆에 끼고 읽어야 할지.

하지만 확실히 보람은 있다. 예전에는 있는지조차 몰랐던 지적 세계에 과감히 한 걸음 내밀었다는 근거없는 뿌듯함과 더불어, 두껍고 어려운 책이라도 계속 집중해서 읽어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읽어야 할 부분이 읽어온 부분보다 줄어 있다는 데서 오는 모종의 성취감, 그리고 어렴풋이나마 이 과학 분야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구축되어 왔는지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된다는 점에서, 이것은 분명 허망한 시간 낭비가 아니다.

모든 과학은 수학을 기반으로 발전한다는 말을 이 <우주를 계산한다>를 읽으며 실감하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관찰과 사색과 연구를 거쳐 발견하고 고안해 낸 수학 수식과 법칙들을 활용해 각종 천체들의 궤도를 알아내고 이전엔 알지 못했던 우주의 온갖 물질, 성분, 발달과정까지도 밝혀내는 과정은 실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미신이나 환상이 아닌 검증된 사실과 수학 이론을 정밀하게 살피고 활용해 이렇게 물질과 우주의 원리를 찾아내고 또 그걸 가지고 까마득한 우주 공간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시대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과연 이 책의 에필로그에도 내 생각과 상통하는 문장이 있었다.

“수학은 천문학을 비롯해 핵물리학, 천체물리학, 양자론, 상대성 이론, 끈 이론 같은 관련 분야들과 함께 나란히 발전해 왔다. 과학은 질문을 던지고, 수학은 그 답을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때로는 그 반대가 되기도 하며, 수학적 발견은 새로운 현상을 예측한다.” - 477쪽

“과학자들은 우주에 대한 이해를 끊임없이 수정하면서 개선하고 있고, 새로운 발견이 일어날 때마다 새로운 질문을 낳는다. ... 이것은 진짜 과학이 발전하는 방식이다. 세 걸음 전진했다가 두 걸음 후퇴하는 식이다. ... 과학은 항상 잠정적이고, 현재의 증거가 뒷받침하는 만큼만 옳다. 그런 증거에 대해 과학자들은 ‘마음을 바꿀’ 권리를 유보한다.” - 480쪽

by 해피의서재 2019. 3. 9. 13:55

​수학의 감각 / 박병하 / 행성B / 2018

이 책의 저자 박병하는 처음부터 수학을 하던 사람은 아니었다. 원래 경영학을 전공했으나 대학원에 다니던 중 수학의 매력에 이끌려 ‘수학의 세계로 이민’을 했다고 한다. 현재의 전공은 수리논리학인데, 사회과학과 수학을 모두 경험해 보았기에 이렇게 문과와 이과가 자연스럽게 연결된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은 2009년에 출간된 <수학 읽는 CEO>의 개정판 격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인문학적 메시지가 다분한 글 위주로 다시 모아 엮은 책이라고 저자 스스로 서문에서 밝혔다. 무한과 0의 개념, 숫자의 표기, 계산의 발달 과정, 유클리드 기하학 및 절대기하학, 함수, 좌표, 그래프, 오일러 산책, 리만 가설, 페르마의 정리 등 수학 분야의 대표적인 개념들이 인생과 직결된 철학적인 교훈들과 자연스럽게 엮여 제시된다.

최대한 쉽게 풀어 쓴 책임에도 역시 위에 나온 여러 수학 개념에 완전히 문외한인 사람이 읽기엔 다소 어려운 게 사실이지만,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나 생각 다이어트, 관계성의 인식 등 작금의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지적-정신적 덕목을 일깨우는 데는 어려움이 없을 책이다.

​<책 속 주요 문장>

수 없이 셈 없고, 셈 없이 수 없다. 떼어내려 해도 뗄 수 없다. 상호 관계 속에 있다. ... 내가 있는 것은 네가 있기 때문이고, 너는 내가 있기 때문에 있다. 좋건 싫건 그 관계망 속에 내가 있다. 나는 관계 자체이며 관계의 ‘사이’에 있기도 하다. 점과 직선, 수와 셈은 악기와 손의 관계처럼 따로 있어서는 소리를 못 낸다. -41~42쪽

중요한 것은 ‘그래야만 하는가?’라고 묻고 그렇게 했을 때 가장 좋다면 고정관념을 과감히 버리고 ‘그래야만 한다!’고 순응하는 것이다. ...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요구하는 방식으로 나를 채우는 것이 아름답다. 내 안에서 지금 어떤 것을 원한다면 그것을 채우라. 바로 지금 형식적으로 결핍된 곳을 채우는 것은 선호와 익숙함에 우선한다. -62쪽

유클리드 시스템은 좁고 평평한 공간에 더 맞고, 로바쳅스키 시스템은 광활하고 휘어 있는 공간에 더 맞다. 모든 공간을 설명할 절대적인 기하학이 하나 있는 것이 아니라 공간에 따라 기하학들이 상대적으로 존재한다. -88쪽

아무리 해도 어떤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시스템 자체의 결함에서 기인한 것일 수 있다. 그것을 직시하고 과감하게 껴안아야 한다. 시스템을 새로 정립하는 방법은 개인이나 기업처럼 단위의 크기, 그리고 문제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렇지만 시스템 자체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면 문제 해결은 요원하기만 하다. -93쪽

수학은 0과 무한의 학문이다. 궁극의 없음인 0과 있음의 궁극적 확장인 무한 위에 서 있다. 수학이 다른 무엇이 아니라 수학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들 때문이다. -171쪽

계산은 필요 이상의 노력을 덜어 내도록 도와 준다. 그리고 남은 힘을 필요한 곳에 집중하게 한다. ... 계산은 가장 비창조적인 행위로 취급된다. 스위스 시계처럼 그 맞물림은 엄정하고 차갑다. 맞물림에 이상이 생겨 어딘가에서 삐긋하면 결과는 무용지물이 된다. ... 그러나 세상의 모든 계산은 한때 치열한 상상력의 결정체였다. 계산이 스스로를 혁신해 가는 과정을 보면 한 편의 대서사시를 방불케 한다. -230~231쪽

계산이 제자리를 잡고 계산이 제 기능을 할 때 상상의 공간은 넓어지고 창조의 향기는 오래 퍼질 것이다. -239쪽

실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삶의 본원적인 것이기도 하다. 실수 없이 사는 건 실은 사는 게 아닌 것이다. 실수 없이는 삶의 진화도 없기 때문이다. 실수는 삶의 주춧돌이다. 가장 끔찍한 것은 실수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데 있다. 실수는 배우고 발전할 좋은 기회다. 실수는 발전의 디딤돌이다. 맹수 같은 기상으로 배우라. 틀려도 좋다. 아니, 잘 틀리면 더 좋다. -259쪽

직관은 ‘당연하다, 그냥 받아들이라’고 속삭이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직관이 시키는 대로, 그래 당연해, 하다 보면 현실은 고착된다. 딱딱한 땅에 상상력은 뿌리내릴 수 없다. 동양 수학이 고대와 중세의 높은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변방의 변방으로 퇴보한 원인도 여기에 있다. 의심을 허락하지 않고 실용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만 수학을 쓰려고 했기 때문이다. 상상력의 열쇠가 있어야 한다.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정말?’과 ‘왜?’에 붙어 있는 물음표, 그것이 창조의 광맥을 찾는 열쇠다. -277~278쪽

by 해피의서재 2019. 2. 11.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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