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나는 요즘 ​<우주를 계산하다>(이언 스튜어트/ 흐름출판/ 2019)라는 두꺼운 천체물리학 책을 읽고 있다. 이언 스튜어트의 간결하고도 매끄러운 글 솜씨에도 불구하고 이전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는 온갖 수학/물리학 용어와 맞닥뜨리니 좀체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책머리에 실려 있던 <수학이 필요한 순간>의 김민형 저자가 한 말처럼 어디 이과학 관련 독서모임이라도 찾아 들어가서 매주 한 챕터씩 함께 읽고 문답을 주고받는 방식의 강독회라도 제안해야 하나 싶을 정도다. 언뜻 <수학용어사전>이라는 책을 서점에서 본 기억이 나는데 그런 사전이라도 하나 옆에 끼고 읽어야 할지.

하지만 확실히 보람은 있다. 예전에는 있는지조차 몰랐던 지적 세계에 과감히 한 걸음 내밀었다는 근거없는 뿌듯함과 더불어, 두껍고 어려운 책이라도 계속 집중해서 읽어내려가다 보면 어느새 읽어야 할 부분이 읽어온 부분보다 줄어 있다는 데서 오는 모종의 성취감, 그리고 어렴풋이나마 이 과학 분야가 어떤 과정을 거쳐 어떻게 구축되어 왔는지에 대한 이해를 얻게 된다는 점에서, 이것은 분명 허망한 시간 낭비가 아니다.

모든 과학은 수학을 기반으로 발전한다는 말을 이 <우주를 계산한다>를 읽으며 실감하게 된다. 수많은 사람들이 관찰과 사색과 연구를 거쳐 발견하고 고안해 낸 수학 수식과 법칙들을 활용해 각종 천체들의 궤도를 알아내고 이전엔 알지 못했던 우주의 온갖 물질, 성분, 발달과정까지도 밝혀내는 과정은 실로 경이롭기까지 하다. 미신이나 환상이 아닌 검증된 사실과 수학 이론을 정밀하게 살피고 활용해 이렇게 물질과 우주의 원리를 찾아내고 또 그걸 가지고 까마득한 우주 공간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기술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시대에서 가장 필요한 덕목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봤다.

과연 이 책의 에필로그에도 내 생각과 상통하는 문장이 있었다.

“수학은 천문학을 비롯해 핵물리학, 천체물리학, 양자론, 상대성 이론, 끈 이론 같은 관련 분야들과 함께 나란히 발전해 왔다. 과학은 질문을 던지고, 수학은 그 답을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때로는 그 반대가 되기도 하며, 수학적 발견은 새로운 현상을 예측한다.” - 477쪽

“과학자들은 우주에 대한 이해를 끊임없이 수정하면서 개선하고 있고, 새로운 발견이 일어날 때마다 새로운 질문을 낳는다. ... 이것은 진짜 과학이 발전하는 방식이다. 세 걸음 전진했다가 두 걸음 후퇴하는 식이다. ... 과학은 항상 잠정적이고, 현재의 증거가 뒷받침하는 만큼만 옳다. 그런 증거에 대해 과학자들은 ‘마음을 바꿀’ 권리를 유보한다.” - 480쪽

by 해피의서재 2019. 3. 9. 13:55

​천문학 콘서트 / 이광식 / 더숲 / 2018(개정증보판)

​“지금 이 순간에도 우주는 빛의 속도로 무한 팽창을 계속해 가고 있다. 수많은 별들이 탄생과 죽음의 윤회를 거듭하고, 수천억 은하들이 광막한 우주공간을 비산한다. 그 무수한 은하들 중 한 조약돌인 우리은하 속에서 태양계는 초속 220km로 그 변두리를 순행하며, 지구라는 행성은 또다시 초속 30km로 태양 주위를 순행하고 있다. 원자 알갱이 하나도 제자리에 머무는 놈 없는, 그야말로 일체무상의 대우주다.”(394쪽)

지구의 모양과 크기를 재고, 지구로부터 태양-달까지의 거리를 계산하며, 항해와 역법 계산을 위해 별들의 위치를 파악하는 데서 시작한 천문학은 점차 수학과 물리학, 관측술의 발달에 힘입어 점차 태양계와 그 너머의 천체, 그리고 우주 전체의 구조와 성질 그리고 기원에 대한 규명을 시도하는 학문으로 나아갔다.

코페르니쿠스, 케플러, 갈릴레이, 뉴턴을 거쳐 아인슈타인과 허블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과학자들이 일생을 바쳐 이뤄나간 천문학 이론의 발달 연대기가 책 속에서 그들의 인생 이야기와 함께 흥미롭게 펼쳐진다.

이제 현대에 이르러 우주는 태초의 대폭발과 계속되는 팽창 속에서 수소와 헬륨 등 화학 원소들의 결합과 핵융합으로 생성되고 타오르며 거대한 허공 속을 날아가는 별들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윤회로 가득한 공간으로 기술되고 있다.

내용의 이해를 돕는 여러 컬러 사진과 과학 전문 저술가의 유려한 필체로 완성도를 더욱 높인 이 아름다운 천문학 대중서는, 영겁의 시간 너머 쓸쓸하고도 장엄한 마지막을 향해 도도히 날아가는 광막한 우주와, 그 우주의 은총으로 태어나 찰나를 살아가는 하찮고도 아름다운 지구와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해 준다.

​“​적색거성이나 초신성이 최후를 장식하면서 우주공간으로 뿜어낸 별의 잔해들은 성간물질이 되어 떠돌다가 다시 같은 경로를 밟아 별로 환생하기를 거듭한다. 말하자면 별의 윤회다. 은하 탄생의 시초로 거슬러 올라가면 수없이 많은 초신성 폭발의 찌꺼기들이 태양과 행성 그리고 우리 지구를 만들었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원소들 곧, 피 속의 철, 이빨 속의 칼슘, DNA의 질소, 갑상선의 요오드 등 원자 알갱이 하나하나는 모두 별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비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 실화다. (...)

그러므로 우리는 어버이 별에게서 몸을 받아 태어난 별의 자녀들인 것이다. 말하자면 우리는 메이드 인 스타(Made in star)인 셈이다. 이처럼 우주가 태어난 이래 오랜 여정을 거쳐 당신은, 우리 인류는 지금 여기 서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주의 오랜 시간과 사랑이 우리를 키워온 셈이다. 물질에서 태어난 인간이 자의식을 가지고 대폭발의 순간까지 거슬러올라가 자신의 기원을 되돌아보고 있다는 것은 진정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랴. (...)

창 밖에는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흔들리고 새들이 우짖는다. 별들이 빛나는 전 생애를 걸쳐 원소를 만들고, 그것들을 자신의 죽음과 함께 우주로 아낌없이 뿌리지 않았다면 나도, 저 새도 없었을 것이다.” (270~2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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