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그리는 무늬

저자
최진석 지음
출판사
소나무 | 2013-05-06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소크라테스와 한나절만 보낼 수 있다면...스티브 잡스는 인간의 ...
가격비교


예전에 이 책과 비슷한 내용과 성격의 책을 다룬 포스팅을 올렸던 기억이 나는데, 

그 책의 내용과 궤를 같이 하면서도 좀 더 강하고 직설적인 어조의 책을 발견하여 여기에 한 번 간단하게 정리해 보고자 한다. 

'지금, 당신만의 무늬를 그리고 있습니까'라는 메시지가 워낙 강하게 다가오기도 했고. 


다른 대중인문학 책에서도 본 얘기지만, 인문(人文)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 즉 인간의 본성과 본질을 뜻한다. 

'사람'이란 존재가 가진 날것의 기질과 본성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그것을 굳이 억압하거나 포장하기보다 그 날것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인간이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길을 찾는 것. 

그것이 바로 인문학의 존재 이유이자 가치일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인문학의 가치', '인문학의 존재 이유'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풀어 간다. 

인문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왜 인문학을 해야 하는가 라는 물음과 나름의 답변이 이 책의 주 내용이라 할 수 있겠다. 


앞에 서술한 바와 같이, 책은 "인문이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직시하고 있는 그대로 행복해지기 위한 학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인문학을 통해 "자유롭고 관용적인 사고의 소유자, 나 자신에 충실하며 후회없이 사는 사람"이 될 것을 권한다. 

글줄 좀 읽었다고 그 지식에, 이념에, 관습에 자신과 남의 인생을 우겨넣을 것을 강요하는 사람은 인문적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다. 

책의 저자는 '교조주의에 물든' 사람을 경계한다. 그것은 가짜 인문학이기 때문이다. 

'날것'으로 태어나 어디까지나 '날것'일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온갖 속박을 가하고 자유로운 본성을 누를 것을 강요하는 인문학은 

절대 살아있는 인문학일 수 없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EBS 인문학 특강'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저자가 강의해 온 내용을 엮어 정리한 이 책에서 꾸준히 이야기하는 '인문적인 인간'이란 

이 자리에서 정리해 보건대 바로 이런 사람이 아닐까 한다. 


"애써 정의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직시하는 사람. 

나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고 남의 주체성 역시 존중하는 사람. 

맹목적인 사람이 아닌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 

나에게도, 남에게도 달리 생각할 자유를 인정하는 사람. 

앵무새가 아닌 자신만의 언어와 질문을 가진 사람."


그 어떤 이념이나 물리적 속박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신만의 자유로운 사고와 행동을 펼치며 원하는 삶을 사는 것. 
그 자신의 '있는 그대로'를 살면서, 마찬가지로 다른 이의 '있는 그대로' 역시 기꺼이 인정하는 것. 
'지식'보다 '행동'을, '추상'보다 '현실'을 중시하고 기꺼이 그쪽을 먼저 선택하는 것.
한마디로 남의 시선이 아닌 나의 시선을 가지고 나 자신의 주인으로 사는 것.  
이것이야말로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자신만의 무늬를 그리는' 행위일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삶을 사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야말로 진정으로 '인문적인' 사회일 것이다. 

나 자신에게 물어 본다. 
나는, 지금 나만의 무늬를 그리고 있는가?

.
.
.

<Remarks>
"상상력이란 것도 별반 다른 게 아니에요. 즉 인간이 움직이는 동선의 방향이 어디로 움직일지 꿈꿔 보는 능력이지요. (...) 인문이란 인간이 그리는 무늬 혹은 결이라고 했지요? 다른 말로 하면 바로 인간의 동선입니다. (...) 우리가 인문학을 배우는 목적은 무엇인가요? 바로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지요. 인간이 그리는 무늬의 정체를 독립적으로 알아내기 위해서 인문학을 배우는 것입니다." (62~63쪽)

"지속적인 성공을 하려면 자기를 지배하던 이전의 성공 기억을 벗어나서 새로운 상황을 새롭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세계를 보고 싶은 대로 봐서도, 세계를 봐야 하는 대로 봐서도 안됩니다. 오직 텅 빈 마음을 가지고 보이는 대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념이나 가치관이 강하면 강할수록 자신으로 하여금 세계를 봐야 하는 대로 보게 하는 강제성도 강해지지요. 이념가들이 변화하지 못하다가 실패하는 이유 역시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념가들이 선명성 경쟁만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요." (66쪽)

"한국 사회는 걱정하지 마세요. 간곡히 말하건대, 제발 그러지 마세요. 자기는 자기 일만 잘 해결하면 돼요. 자기만 잘하면 됩니다. 그러면 한국 사회는 저절로 잘 되게 되어 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자기 욕망을 들여다보지 않고 왜 스스로를 사명의 완수자가 되어야 하는 존재로 규정하는지요?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가 중심이 되어서 움직여야 합니다. '자기'가 없는 곳에서는 어떤 성취도 이룰 수 없습니다. '자기'의 자리를 '사회'나 '국가'에 양보하면 안 됩니다. 각자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튼실한 개인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진 사회라야 건강합니다. 사회를 위해서 자기 욕망을 소외시키는 개인들의 총합으로 이루어진 사회는 결국 부조화스럽고 비틀어집니다." (75쪽)

"자신이 하는 일과 자신의 욕망 사이의 거리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사람은 더 헌신적이고 더 창의적일 수 있습니다. 윤리적 힘도 바로 거기서 나옵니다." (78쪽)

"욕망은 '이곳'에 있는 자기를 '저곳'으로 끌고 가려는 힘이고 의지이며 충동이고 생명력이에요. 욕망이 거세된 인간은 '내'가 아닙니다. '내'가 아닌 인간은 사람이 아니에요! '나'를 '우리'라는 우리에 가두지 마세요! 그것이 인문적 태도가 여러분에게 주는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82쪽)

"인문학을 한다는 것은 사실 버릇없어지는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거에요. 익숙한 것, 당연한 것, 정해진 것들에 한번 고개를 쳐들어 보는 일이에요. 왜? 익숙하게 하는 것, 편안하게 하는 것들은 자기가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럼 무엇이냐? 관습이거나 이념이거나 가치관이거나, 뭐, 그런 것들이죠." (103쪽)

"철학은 사실 인간이 신을 벗어난 사건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인간의 독립과 관계되지요. 철학은 신화를 벗어나는 일입니다. 믿음을 벗어나서 생각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입니다. 신의 세계에서 벗어나서 인간의 세계로 진입하는 일입니다." (105쪽)

"독립적 주체의 확립 없이 창의성은 불가능합니다. 창의성은 주체가 대상을 외압 없이 독립적으로 대면했을 때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독립적 주체가 확립되었을 때만이 창의성과 같은 차원에서 작동되는 인격적 성숙, 미학적 삶, 행복, 자유 등도 가능합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일반'이 아니라 '개별'로써의 자아에게만 확인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116쪽)

"우리가 인문적 통찰을 한다는 것은 뭡니까? 시멘트 콘크리트처럼 굳어져 있는 상태를 부드러운 상태로 볼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입니다. 명사적으로 세계를 보는 습관을 동사화하는 거지요. 점점 굳어가면서 명사화되어 가는 자신을 율동감이 있는 동사로 되살리는 거에요. (...) 이념 따위는 잘근잘근 씹은 다음에 과감히 뱉어 버리세요. 이념 같은 딱딱한 명사들이 목울대에 걸려 있는 한 말캉한 동사들이 입을 통해 나오기 어렵습니다. 몸속에 들끓는 욕망의 꿈틀거림이 이념과 개념의 필터에 막혀 터져 나오지 못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이념 따위의 명사들을 몸 밖으로 뱉어 버리세요. 핏발 서린 이념의 눈빛은 얼마나 촌스러운지요?" (121쪽)

"자기가 가지고 싶은 만큼, 가질 수 있는 만큼 잡고 빠져 나가는 것은 포기하고 손에 남겨진 것을 생각의 형태로 저장한 것, 이것이 바로 개념이에요. 그러니까 개념은 출발부터 세계를 전면적으로 반영하기에 부족한 것이고, 출발부터 소유적 상태이고, 출발부터 제한된 상태이고, 출발부터 딱딱한 거에요. (...) 개념은 실재하는 세계와 살아 움직이는 '나'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 마름 같은 것인데, 이 마름이 오히려 실재하는 세계를 제어하거나 '나'를 규정한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나'가 주인의 자리를 다시 회복하는 것, 바로 이것이 중요합니다." (122~123쪽)

"이념이 강하면 강할수록 사회는 경색되고, 이념 간에 무한충돌을 빚을 수밖에 없어요. 이념은 항상 순교자를 원하니까요. 철저한 수행자만 원하니까요. 순교자와 수행자에게 타협이란 없습니다. 이념의 과도한 사용으로 인간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습니까? 경화된 이념과 신념은 우리를 억압합니다. 그리고 광기와 폭력을 부릅니다. 이 광기와 폭력의 가장 근본적인 지점에 개념이 있습니다. 세계를 개념으로 파악하는 데 익숙한 인간의 습관과 더불어 그 개념과 세계의 진상을 관련시킬 능력을 상실한 점이 인간을 나약하게 합니다." (130~131쪽)

"세계를 발전시키고 움직이게 하는 것은 이론가들이 아니라 실천가들이고 행동가들입니다. 전문가들이 자기만의 경색된 이론 틀로 실천가와 행동가들의 발목을 잡으면 아 ㄴ됩니다. 지식으로 무장한 이론가들이 쉽게 지위가 높아져서도 안 됩니다. 전문가들은 행동가와 실천가들에게 사용되고 이용되어야 합니다. 실천가나 행동가들은 사건에 집중해요. 수준 높은 이론가들이 나오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수준 높은 행동가, 수준 높은 실천가들이 나오는 겁니다. 세계는 지식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미묘합니다. 그래서 '내공'있는 실천가와 행동가들이 역사에서는 더욱 중요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지식인들에게 휘둘리지 않으면서 미래 지향적으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46쪽)

"지식과 이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지식인은 예측을 할 수 없고,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150쪽)

"우리가 세계를 하나의 기준으로 구분하는 순간 세계는 자기한테 반쪽밖에 안 열립니다. 나머지 반쪽은 자기와 아무 관련이 없는 것으로 처음부터 배제되어 버리는 거지요. 우리가 이 반쪽의 세계만 가지고 만족하면 다행인데, 그렇지를 않아요. 반쪽의 세계를 가진 다음에는 다른 반쪽을 비난하고 억압하지요. 나머지 반쪽을 자기와 다른 것 혹은 자기가 의존해 있는 것으로 인정하지 않고, 잘못되거나 비진리인 것으로 치부합니다. 심지어는 악으로 규정해 버립니다.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규정해 버리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렇게 되면 자신의 불행이 시작될 뿐만 아니라 사회의 혼란도 커집니다." (155쪽)

"여러분은 지식이 증가하고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서 더 유연해졌습니까? 왜 유연해지지 못합니까? 지식에 제한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경험을 관념으로 가두기 때문에 그래요. 이것을 벗어나서 자기 안에서만 비밀스럽게 활동하는 생명력, 욕망, 충동을 살려내야 합니다. 이 충동이 여러분을 인문적 통찰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156쪽)
"지식은 무엇을 이해하는 데 머물러 있는 것이 되어선 안 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지식은 '아는 것을 바탕으로 하여 모르는 것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까지여야 합니다.

아는 것을 근거로 하여 우리에게 아직 열려 있지 않은 곳으로 들어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지식은 우리에게 뿌리로 기능하지 않고 날개로 기능할 것입니다.

한 곳에 머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날아갈 수 있게 해 주어야 합니다.

지식이 명사가 아니라 동사여야 하는 이유입니다. 세계는 명사가 아니라 동사이기 때문입니다." (147쪽)


by 해피의서재 2014. 2. 1. 13:25


인문내공

저자
박민영 지음
출판사
웅진지식하우스. | 2012-08-3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뜬구름 같은 인문학을 내 것으로 만들어주는 공력, 공감, 공명의...
가격비교

 

한쪽에서는 인문학이 죽어간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인문학 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같은 존재를 놓고 정반대의 말들이 나오니 혼란스럽다.

공공과 민간을 막론하고 여러 기관에서 인문학 콘서트같은 강연 행사를 수시로 열고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며 들으러 가는 것을 보면

인문학 붐이 이는 것 같기도 하고,

대학의 인문학 계열 학과들이 여전히 침체일로를 걷는 것이나 서점가에서 제일 잘나가는 도서들이 

역시나 자기계발서나 실용서 중심인 것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 이 시대가 인문학이나 인문 정신에 목말라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그 기술에 기댄 온갖 상품과 놀잇거리들이 쏟아지면서 생활은 편리해지고 즐길거리도 넘쳐나지만

이것들이 정신의 공허함까지 채워 주지는 못하고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이며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것이 나와 우리, 그리고 사회를 위해 맞는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그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온갖 정보들 속에서 우리는 가치 있는 것들을 얼마나 건져내고 있으며

가치 있는 것의 기준은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가.

아니, 지금 내가 사는 이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제대로 직시하고는 있는 것인가.

그렇기에 요즘이야말로 인문 내공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박민영의 인문 내공》, 이 책이 특별하게 와닿은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책에 따르면 인문(人文)사람의 무늬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범이나 개, 양 등의 무늬와는 다른, 사람만이 갖고 있는 그 무늬를 연구하는 것이 인문학이라 한다.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사회 현상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거시적으로 통찰하는 힘이 바로 인문 내공이라 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동등하게 존엄한 가치를 가졌다는 것을 아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지만 사실 인문학이야말로 삶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학문이기도 하다.

문학과 철학과 사학은 모두 뭔가를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일이다.

굳이 문학, 철학, 사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게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은 항상 뭔가를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일들의 연속이다.

그리고 우리가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이거나 혹은 특별한 사건들에 관한 일이다.

왜 아까부터 저 사람은 보기에도 사용한 지 한참 된 물건을 들고 와서 가게 주인에게 환불해 달라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것인가

하는 생각부터,

왜 요즘 뉴스는 주말 캠핑문화 소개 같은 신변잡기적인 기사들만 자꾸 방송하는가같은 종류의 의문들까지.

여기서 한 꺼풀 더 깊이 들어가,

저 사람은 왜 그런 억지를 부리게 되었나혹은

어쩌다가 방송국에서는 저런 류의 뉴스만 주로 내보내게 되었나

하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들을 탐구해 나가는 것이 바로 인문학적 사고일 것이다.

 

인문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는 현실에 관심과 의문을 갖고,

 ‘?’라는 질문을 던지며 현실에 말을 거는 것에서 인문학은 출발한다.

주변의 평범한 경험을 강렬하게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에서 인문학은 시작된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던 헬렌 켈러가 물펌프에서 쏟아지는 물을 온몸으로 흠뻑 느낀 뒤

자기 주변의 모든 사물들에 관심을 보이고 이름을 묻기 시작한 것처럼.

 

내공을 쌓기 위해서는 수련이 필요하다.

책은 인문 내공을 쌓기 위한 기술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한 번쯤 들어 봤을 세 단어, 다독다작다상량이 이 책에도 등장한다.

인문학적으로 생각하고(다상량), 인문학적으로 읽고(다독), 인문학적으로 쓰는(다작) 방법, 혹은 기술에 대한 소개가 차례로 이어진다.

지금 자신이 직면한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답을 줄 수 있는 종류의 책부터 읽기 시작할 것,

번역서는 저자에 대한 애정이나 경의를 갖고 있는 사람이 성심껏 번역한 책으로 고를 것,

읽고 있는 책과 관련된 책을 함께 읽어나갈 것,

최대한 간단명료한 문장을 사용해 객관적이고 선명한 근거를 앞세운 글을 쓸 것 등

무엇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을까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들이 나와 있으니

이와 관련된 질문을 갖고 있던 분들이라면 이 책을 참고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가장 우려하고 걱정하며 강조하는 바에 대해 정리하며 갈음하고자 한다.

이른바 요즘 ‘인문학의 부흥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시각이 책의 여러 곳에 담겨 있다.

인문학 콘서트등의 이름으로 (주로 기업을 중심으로) 대중에게 공급되는 인문학이

과연 참된 인문학인가에 대한 의문이 책 속 여기저기에서 표출된다.

현재의 인문학이 자본을 가진 대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기능하는 소위 기업인문학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과 함께,

인문학이 자본과 기업의 시녀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주제를 가장 잘 압축한 부분이라 여겨지는 책의 서문을 통해 저자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환경과 문화의 힘은 압도적이며, 여기에 매몰되어 진짜 자신을 잃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읽고 쓰고 사유하며 자신만의 인문 내공을 키워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동안 쌓여 온 온갖 지식과 문화가 만들어낸 거대한 환경이다. 여기에 매몰되지 않고 독서를 통해 자신만의 힘으로 세상을 읽고 통찰하는 내공을 키우는 이들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는 더욱 인문적이고 인간다운 사회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by 해피의서재 2013. 5. 28. 18:39

 


철학이 필요한 시간

저자
강신주 지음
출판사
사계절 | 2011-02-1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아파도 당당하게, 두려움 없이!강신주의 인문학 카운슬링『철학이 ...
가격비교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는 순간이 또 다가왔다.

들뜨기는커녕 되려 괜히 공허해지는 마음을 달래고자 이 책을 집어들었다.

 

이 책의 69페이지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인문학은 주어진 현실과 인간의 삶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면서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꿈꾸려는 학문이다.

 

인문학이 그토록 강조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나는 왜 살며,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또 앞으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보다 명징하고 가치있는 삶이 될 수 있으며, 우리가 사는 이 사회도 보다 인간적이고 자유로운 곳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문학 그 자체 못지 않게 인문학을 읽고 해석하는 방식도 매우 중요한 일인 것 같다.

책의 초반에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참된 인문 정신과 거짓 인문 정신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고.

좋든싫든 현실에 안주하고 뭐가 잘못되었는지 따질 것 없이 그저 순종하는 나약한 삶을 살게 만드는 것이 거짓 인문 정신이라면,

참된 인문 정신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정직하게 대면하고 문제의 원인을 스스로 치유하도록 요구하는 것이라 한다.

전자가 위로를 앞세운 도피에의 권유라면, 후자는 문제의 근원과 정정당당하게 맞설 힘을 부여하는 에너지원인 셈이다. 

그래서 결국, 진정한 인문학자란 '아이 같은 눈으로' 인간과 사회의 진면목을 투명하게 꿰뚫어보며,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는 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러한 저자의 생각은 이 책 곳곳에 선명하게 투영되어 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는 개인으로서의 '나'에 대한 성찰에 대한 글들이고, 2부는 다른 이와의 관계에 대하여 다루고 있으며, 3부는 한 발 더 나아가 사회 전체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다양한 철학자들의 글과 사상을 소개하는 가운데, 나는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 키워드로 대략 아래의 4가지를 꼽아 보았다.

 

현실직시

주체성

자유와 책임

공존

 

"우리의 인생은 '지금 그리고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삶의 총체"(p.47)라는 구절에서는 불안한 미래에 현재를 저당잡힌 채 살지 말고 오직 지금을 역동적으로 살라는 메시지를 접했다.

 

동학의 '인내천' 사상과 맹자의 '진인사대천명'에서는 '초월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맡김으로서 자기의 위기를 미봉하려 하기보다 자신의 성찰과 노력으로 그 위기를 정면돌파하려 하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인간상에 대한 촉구를 보았다.

 

칸트의 도덕 철학에서는 인간 자체의 존엄함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는 존재를 목적이라 하며, 나 자신도 다른 사람도 모두 수단이 아닌 하나의 '목적'으로서 각자의 자유를 누리고 또 그 자유를 서로 보장해 줄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마투라나의 '관찰자주의'를 읽을 때는 "역사 속에는 거짓된 세계와 진짜 세계라는 종교적이고 허위적인 이분법이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역사는 낡은 세계와 새로운 세계라는 역동적 생성과 창조만이 숨쉬는 곳이기 때문이다"(p.97)라는 이 문장을 통해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고 공존하라는 가르침을 얻었다.

 

책의 3부에서 이어지는 사회에 대한 성찰들은 이 키워드들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의 여러 부분을 고찰하고 비판한다.

자본과 권력, 편가르기, '생계와 생존만이 모든 가치의 기준이 된' 세태, 소비사회의 명암, 현대 사회와 종교, 대의민주주의, 진보주의 등.

이 다양하고 광범위한 이야기들을 통해 결국 저자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위의 네 가지 단어로 압축되는 것 같다.

그리고 이것을 다시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하면 대략 이렇게 귀결되지 않을까.

 

"마음을 열고 사람을 존중하며, 현실에 발붙이고 매 순간 당당하게 자기 자신의 주인으로 살아라."

 

그리고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 하나하나가 세상을 더 이롭고 인간적인 곳으로 만들어 가는 주체이자 원동력이라는 것이,

철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인간과 세상에 품는 낙관론일 것이다.

 

앞으로도 삶과 인생, 사랑, 그리고 현대사회에 대한 통찰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이 책을 다시 찾게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예견하게 된다.

아울러 이 책의 말미에는 책에 인용된 참고도서들의 목록과 그에 대한 간략한 소개글도 실려 있으니

더 많은 책을 접하고 싶을 때 이를 참고하면 더욱 좋을 성 싶다.

 

by 해피의서재 2013. 1. 1. 21:47

 

책은 도끼다 / 박웅현 / 북하우스 / 2011


저자는 말한다. ‘책은 마음 속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라고. 단단히 굳어 있는 마음의 바다를 깨어 다시 찰랑이게 만드는 데서 창의성이 다시 솟아나 넘실거리고, 그 힘으로 세상을 보는 눈이 다시 뜨이게 되며, 다시 뜨인 눈을 통해 인생의 풍요와 행복을 새삼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그리고 그 가장 강력한 무기가 바로 책이라고.

 

저자는 흔히 말하는 다독가는 아니라고 스스로 평한다. 대신 한 권을 읽어도 깊이있게 읽는다고 자부한다. (그래도 한 달에 서너 권씩 읽을 정도면 독서량 면에서도 꽤 괜찮은 스코어 같다) 아울러 그는 다독 콤플렉스를 버리라고 충고한다. 독서량에 매몰되면 쉽고 빨리 읽히는 얇은 책만 찾게 된다고. ‘인생에 울림이 있는 책을 얼마나 만났느냐가 더 중요하지 숫자는 중요치 않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나 역시 그 말이 옳다고 생각한다.

 

한 권을 읽어도 꼼꼼하고 세심하게 책의 가장 깊은 정수까지 흡수한 덕택인지, 그가 지금까지 읽어온 여러 책을 한 강의에 한데 버무려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그의 언변은 물흐르듯 거침이 없다. 하나의 강연 안에 이철수의 판화(미술), 김훈의 산문과 최인훈의 <광장>(문학), 불가의 선문(종교),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등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함께 공존한다. 얼마나 다양하게, 또 깊이있게 책을 읽으면 이런 강연이 나오는 걸까. 8회에 걸친 강독회 원고를 고스란히 글로 옮긴 책의 특성 때문인지 책을 펼치면 마치 강연 실황을 녹음한 것을 귀로 듣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나는 정말로 어느 대학 강단에서 강의를 들으며 노트 필기하듯 이 책을 읽었다.

 

프롤로그격인 시작은 울림이다편을 시작으로, 김훈의 지극히 사실적인 글들을 통해 보는 세밀한 관찰의 힘, 알랭 드 보통의 소설 혹은 인생사 연구 보고서’, 지중해를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들이 그린 지중해 특유의 실존적이자 현세지향적인 내면 의식,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안나 카레니나>를 통한 인간에 대한 탐구에 이르기까지, 박웅현은 다방면의 책들을 편안하고도 흥미롭게 독자에게 소개하며 그 속에서 얻은 자기 나름대로의 깨달음을 설파한다.

 

그의 이야기를 대충 요약하면 현재를 살아라, 주위를 늘 관찰하라,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발견하는 것이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실제적인 것에 충실하라정도가 될 듯하다. 방대하다면 방대한 스케일에, 고금의 인정을 받은 책들이 대거 등장하고 다양한 인문학적 이야기가 쏟아지는 향연들로 이루어진 책이지만 이리저리 다 정리해서 추리고 나면 정말 저 정도 말이 남는다. 현학적이거나 주관적인 말을 버리고 오직 사실에 입각해서 탁탁 쳐내듯 글을 쓰는 김훈의 문장이나, ‘상대적 궁핍 혹은 궁핍해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 불안이 온다던 알랭 드 보통의 불안에 대한 해석이나, 땅에 발을 디딘 현실적 인문학이 아닌 기계적인 이론만 갖고 사회를 파악하려는 헛똑똑이인물을 등장시키며 그를 비판하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의 한 대목, 그리고 여자든 꽃이든 지나가던 짐승이든 순간순간 눈에 띄는 모든 것에 경이로워하고 감탄하던 그리스인 조르바 등, 이들의 공통점을 추려 보면 정말로 현재, 실존, 있는 그대로정도로 요약되지 않는가.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이렇게 썼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예전과 같지 않으리라.’

예전같은 시선에서 벗어나 새로이 세상을 보고 느끼기 위해서는 우선 알아야 한다. 알게 해 주는 매체가 바로 책이다. <책은 도끼다>의 저자가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결국, 책을 통해 세상을 더 많이 알고, 앎으로서 세상을 새로이 바라보고 지금 이 순간 우리가 느끼고 누릴 것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깨닫고, 미래에 대한 불안과 경쟁에 파묻혀 사는 팍팍한 삶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삶을 누리는 법을 터득하자는 것이 아니었을까. 실제로도 이 강연집에서, 저자가 내가 이 자리에서 소개하는 책을 여러분도 사 보셨으면 좋겠다고 말하기도 했으니.

 

마지막으로 사족 하나 달자면, 이 책이 만들어진 계기가 된 이 강독이야말로 정말 훌륭한 북토크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토크는 문헌정보학, 특히 그 중에서도 독서지도론 쪽에서 나오는 말인데, ‘어떤 일정한 집단을 대상으로 몇 권의 도서를 선정하여 보여주면서 그 도서들과 관련된 흥미롭고 인상에 남을 만한 내용이나 에피소드를 소개하여 그들이 읽고 싶은 충동을 느끼도록 유인하는 책 소개 기술의 하나로, 서평과 소개의 중간 정도라고 볼 수 있는 집단 독서 지도의 한 형태라고 정의되어 있다. (<신독서지도방법론>/손정표/태일사/p.296) 그런데 지금 이 <책은 도끼다>를 읽고 보니, 이 책이 그 자체로 위의 정의와 그대로 맞아 떨어지는 북토크가 아닌가. 실제로 이 책을 통해 나 역시 제목만 알고 있을 뿐 읽지 않았던 책들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대략적인 내용도 알게 되었으며, 나아가 이 책을 직접 읽어야겠다는 마음까지 갖게 되었으니, 과연 박웅현 씨는 실로 훌륭한 북토커(book talker)라 할 것이다.

 

by 해피의서재 2012. 5. 9. 13:41
|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