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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4에 해당되는 글 5건
- 2026.04.26 무속의 사회학
- 2026.04.25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 2026.04.19 한 권으로 읽는 대중음악사
- 2026.04.18 지역언론에서 “언론의 본질”을 읽다
- 2026.04.05 <불안증폭사회> 그 후 14년, 세상은 달라졌는가
방치된 믿음 / 손영하 외 / 바다출판사 / 2025
많은 사람들이 때로는 절박한 소망을 품고, 때로는 스낵컬처 소비하듯 점집을 찾고 무당을 만난다. 어쩌면 고대 국가 태동기부터 한국인의 일상과 함께 해 왔던 무속. 그러나 어디에도 없는 듯 어디에든 뻗어 있는 무속에 대해 그동안 우리 사회와 정부는 지극히 무지하고 무심했던 것이 사실이다. 종교인지 그냥 서비스업인지 법적 정의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이 회색지대의 모호성을 이용해 사기와 성범죄 등을 저지르고 정재계를 휘어잡아 농락하는 무속인의 범법 사례도 이미 뉴스에 차고넘치는 실정이다.
책은 세 명의 일선 기자가 무속에 대한 기획 심층취재를 진행하고 작성한 본격 르포다. 무속인의 가스라이팅에 걸려들어 몸도 마음도 삶도 온통 만신창이가 된 한 부부가 경찰의 도움으로 힘겹게 그 마수를 벗어난 사연으로 포문을 연다. 이어서 무속인 범죄의 연간 발생 현황과 유형, 적발과 처벌 실태를 밝히고, 무속인들이 활동하는 신당들이 주로 모여 있는 지역의 특징과 SNS시대 젊은 무속인들의 영업활동 패턴을 분석하며 한국 사회가 무속을 통해 무엇을 갈망하고 추구하는지를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진실되게 영성을 추구하는 만신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무속이 진정으로 지향해야 할 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정부의 체계적인 관리를 통한 무속의 본질 보존과 무속 범죄 예방을 촉구하며 책을 마무리한다.
“어쩌면 인류사에 있어 지금은 불확실성이 가장 큰 시기일 수 있다. (…) 진학, 취직, 승진, 사업 등 선택에 따른 책임을 개인이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점복을 통해 위로를 받고 있다. (…) 현대 사회는 평생 직장의 개념이 사라지고 개인이 모든 책임을 지는 구조로 바뀌면서 불안이 커졌으며 (…) 승자 독식 사회에서는 누구나 패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지울 수 없다.“ (170쪽)
결국 무속의 체급과 부작용을 키운 것은 개개인의 안정된 삶을 보장하지 못하고 모두를 무한의 각자도생 생존투쟁으로 내몬 사회안전망의 부재와 사법정의의 실종일지도 모른다. 바르고 일관되며 합리적인 국가 시스템이 제 역할을 해내고 무속이 인간의 마음을 치유하는 역할에 충실히 전념하는 분야로 남을 때 지금까지와 같이 무속에 의해 개인의 삶이 파괴되고 급기야 국가 단위 스캔들까지 터지는 일련의 사태를 비로소 근절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 당신의 도시는 지금 어떻습니까? (1) | 2026.05.10 |
|---|---|
|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0) | 2026.04.25 |
| 한 권으로 읽는 대중음악사 (0) | 2026.04.19 |
| 지역언론에서 “언론의 본질”을 읽다 (0) | 2026.04.18 |
| <불안증폭사회> 그 후 14년, 세상은 달라졌는가 (0) | 2026.04.05 |
|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0) | 2024.03.23 |
예술의 희망과 두려움 / 윌리엄 모리스 / 미술문화 / 2026
20세기 아르누보 미술, 바우하우스로 대표되는 현대 산업디자인 태동의 단초가 된 생활공예운동을 이끌었던 영국 ‘모던 디자인의 아버지’ 윌리엄 모리스(1834~1896)의 강연 원고를 모아 엮은 책.
19세기에 나온 책임에도 마치 최근 출판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오늘날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책이다.
기계를 활용한 공산품 대량생산이 보편화되고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발달하며 신흥 자본가들이 대폭 증가하던 19세기 영국, 한켠에선 투박한 공산품들이 강과 대기를 오염시키며 공장에서 무미건조하게 찍혀나와 팔리고 한켠에선 떼부자가 된 주인의 부를 과시하듯 쓸데없이 사치스런 디자인의 건물과 인테리어 소품 그리고 생활용품들이 시민들의 눈을 어지럽히던 시공간.
집이고 건물이고 도시 경관이고 모든 것이 본연의 아름다움을 잃어가던 당대의 풍토를 모리스는 강도높게 비판하며 자연을 닮은 소박하고 정갈한 생활공예의 보편화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예술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서도 모리스는 단호하게 ‘하루하루 일하며 세상을 지탱해 나가는 민중들이 누려야 할 기본적인 행복으로서의 예술’을 이야기한다. 가치있는 것을 사람의 힘으로 직접 생각해서 만들어내는 노동이야말로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욕구이자 행복의 완성이라고, 그 노동의 가치를 후려치지 말고 모든 생산직 노동자들의 수고와 작업물을 인정하라고. 이 점에서 모리스는 예술가를 넘어 사회운동가이자 노동운동가로서의 면모도 보여준다.
사람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이 자연의 정갈함과 예술성을 잃어버리면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서 역시 황폐화를 면치 못한다는 것이 모리스의 견해였다. 난해한 미술품들이 박제되듯 수장된 미술관에서 몇몇 부유한 식자들만 뜬구름 잡듯 예술을 논하는 그게 무슨 소용이냐고, 자연과 도시, 일상생활 속에서 숨쉬듯 접하게 되는 생활용품과 건물들 사이에서 매 순간 대중이 자연스럽게 예술과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역설한 모리스의 주장은 오늘날까지도 생생한 생명력을 발하고 있다. 지금 현직에 있는 예술, 산업, 도시계획 관련 행정가들도 귀기울여 듣고 새겨야 할 정도로.










| 당신의 도시는 지금 어떻습니까? (1) | 2026.05.10 |
|---|---|
| 무속의 사회학 (0) | 2026.04.26 |
| 한 권으로 읽는 대중음악사 (0) | 2026.04.19 |
| 지역언론에서 “언론의 본질”을 읽다 (0) | 2026.04.18 |
| <불안증폭사회> 그 후 14년, 세상은 달라졌는가 (0) | 2026.04.05 |
|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0) | 2024.03.23 |
대중음악 히치하이킹하기 / 권석정 외 / 탐 / 2015
블루스, 록, 포크, 흑인음악(재즈, 알앤비, 소울 등), EDM. 현대 대중음악의 주 문법이 되어 온 장르들의 태동부터 발전과정까지 쉽게 풀어 해석한 대중음악 소개서.
미국 남부 흑인 노예들의 한풀이 음악에서 태동한 블루스는 삶의 고단함과 우울, 애환을 리듬감에 담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블루스에서 재즈가, 재즈에서 록앤롤이, 록앤롤에서 파워풀한 록과 그루브한 롤(소울, 알앤비 음악)이 나왔다. 서정적인 포크 음악이 블루스에서 또 한 번 뿌리를 뻗었고, 밴드 사운드로 빠르게 연주되던 댄스음악이 디스코 장르로 정립되어 한 시대 전체를 휩쓸었다. 1980년대 이후 신디사이저가 보편화되고 전자 사운드가 폭발적인 속력으로 대중음악에 편입되면서 EDM과 여러 하위 장르들이 계속 발명되었다. 힙합으로 대변되는 흑인음악은 EDM 장르들과 결합하면서 더욱 화려하고 다양해졌다. 그렇게 현대 대중음악은 풍성해졌다.
음악은 예로부터 사람들의 삶에서 늘 함께했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음악은 계속 사람들의 곁에 머물며 생명력을 품고 성장하고 발전했다. 비결은 간단했다. 갖고 놀기 좋았으므로. 자유롭게 갖고 놀며 삶의 희노애락을 표출하기 좋았으므로.
"록음악이든 흑인음악이든 민속음악이든, 음악은 애들 장난에서 비롯됐다. 힙합 음악을 만들고 싶은가? 의외로 간단하다. 그것은 말하자면 자기 나름의 '토핑'을 얹고 '소스'를 뿌린 피자를 친구들에게 내놓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드럼 샘플을 반죽하고 잘라 만든 비트를 피자 도우로 해서, 인터넷으로 다운받은 컴퓨터 악기로 만든 소리들을 토핑처럼 비트 위에 얹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실로 여러 종류의 피자가 만들어진다." (본문 중)
세상 모든 문화가 그러하듯, 자유롭게 만들고 즐기고 향유하는 것이야말로 문화의 가장 강력한 발전 동력일 것이다. KPOP이 억지로 정부의 지원하에서 육성된 게 아니라 대중의 자생적인 향유를 거쳐 지금과 같은 생명력을 얻었듯이.
"슈퍼스타가 출연하는 방송, 수만 명이 모여드는 록 페스티벌, 전국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이 음악을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그것들은 단지 만들어진 음악의 전달자일 뿐이다. 음악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그런 것들을 꿈꾸기 전에 먼저 떠올려야 할 장면들이 있다. 예컨대 이런 것들이다. 킬킬거리며 친구들의 동작을 잡아주는 비보이들, 끝내주는 음악을 발견했다며 자랑하는 친구들, 그리고 그런 친구들과 해보는 유치한 방구석 합주 한 판. 인간과 인간의 교감. 당신의 음악 역시 그렇게 '애들 장난'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다." (본문 중)
| 당신의 도시는 지금 어떻습니까? (1) | 2026.05.10 |
|---|---|
| 무속의 사회학 (0) | 2026.04.26 |
|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0) | 2026.04.25 |
| 지역언론에서 “언론의 본질”을 읽다 (0) | 2026.04.18 |
| <불안증폭사회> 그 후 14년, 세상은 달라졌는가 (0) | 2026.04.05 |
|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0) | 2024.03.23 |
전국 언론자랑 / 윤유경 / 사계절 / 2025
지역언론 하면 어떤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는가? 정언유착? 지자체 기관지? 기자들의 비리 행각?
지역민들조차 서울 위주 중앙언론을 주로 보게 되는 언론환경에서, 일반 시민들 입장에선 지역언론에 대한 이미지는 중앙언론으로 보도되는 정재계 유착 비리 같은 부정적 이슈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터이다.
하지만 과연 그게 지역언론의 디폴트일까.
여기, 저널리즘의 본령에 충실한 전국의 지역언론을 찾아 동행하며 보고 들은 기록이 있다.
2년간 총 19곳의 건강한 지역언론을 만난 현장 목격담을 엮었다. 개중에는 초등학생 기자가 이끌어가는 학교 어린이 신문도 있다.
• 사례1 : 심부름센터, 시민 글쓰기 교실 등 시민들의 일상 속으로 스스로 스며드는 지역언론들
• 사례2 : 해안가 기름 유출 사고 관련 18년간의 장기 탐사보도
(잊혀지고 배제되기 쉬운 지역 현안에 대한 끈질긴 공론화)
자기 역할에 충실한 좋은 언론에는 반드시 든든한 지지자가 따른다. 대구경북 지역의 독립언론 <뉴스민> 후원담이 대표적인 사례다.
"지역언론에게 독자란 매일 일상적으로 서로 소통하는 생동감 있는 존재"라고 <뉴스민> 관계자는 말한다.
언론의 본질이란 뭘까. 오늘의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족적을 성실히 기록하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공론의 장에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일이리라. 이것이 2년 반 동안 전국의 지역언론을 찾아다니며 얻은 저자의 깨달음이다.
하여, 지역소멸은 없다, 실패한 지방분권과 서울중심주의만이 있을 뿐.
서울중심주의를 넘어, 전국 각 지역의 생생한 삶을 기록하는 지역언론에 주목하자. 그리고 그들의 적극적인 독자이자 후원자가 되자.
언론 역시 기자가 이끌어 가는 것 같아도, 결국은 독자가 이끄는 것이므로.
| 무속의 사회학 (0) | 2026.04.26 |
|---|---|
|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0) | 2026.04.25 |
| 한 권으로 읽는 대중음악사 (0) | 2026.04.19 |
| <불안증폭사회> 그 후 14년, 세상은 달라졌는가 (0) | 2026.04.05 |
|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0) | 2024.03.23 |
| 처음 엮어진 책에 담긴 그 시대 사람의 마음 (0) | 2024.02.13 |
작금의 한국 사회가 왜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고 공격하지 못해 안달인 험악한 세상으로 변했는가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고찰과, 이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를 설파한 사회심리학 서적이다.
저자는 존 롤스, 마이클 센델, 버트런트 러셀, 애덤 스미스 등 유명한 서양 학자들의 저작들과 <오징어 게임>, <폭싹 속았수다> 등 한국 인기 드라마들을 인용하며 책이 다루는 주제에 대한 독자의 이해도를 높이고 논리의 설득력을 올리고자 했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정의는 결국 분배의 문제다. 사람은 각자의 삶을 위해 필요한 재화가 충분히 분배 공급되어야 살 수 있다.
자본주의의 등장과 보편화 이후의 세계에서는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는가에 따라 각 개인의 삶의 여유와 안전성의 정도가 달라지게 되었다. 가진 돈의 양을 기준으로 능력을 판단하고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고착화되면서 재화와 사회적 여유의 분배 논리 역시 돈에 좌우되게 되었다. 돈 없는 사람은 그 천성이나 직무능력을 불문하고 능력없는 사람이자 가치가 떨어지는 사람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각자 알아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살아남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가 상식처럼 자리잡았다.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고, 마음놓고 도움을 요청할 곳도 마음을 의탁할 곳도 없게 된 현대인들 특히 마을 공동체의 존재감을 느껴본 적이 전무한 90년대생 이후 젊은 세대는 철저히 고독한 생존투쟁자가 되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생존투쟁의 연속, 매 순간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를 공포를 안고 살얼음판을 걷듯 살아야 하는 불안의 나날 속을 살아가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서로 연대하고 도움을 주고받을 정신적 여유 따위는 없다. 막막한 생계 문제, 생계를 위한 취업과 자영업 전선에서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무한경쟁, 이 과정에서 촉발되는 폭력적인 인간 관계. 모두가 서로 경쟁적으로 불행하고 고통스럽다. 저마다 각자의 고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하고 있고 그렇다고 어디서 충분히 보상받을 길도 없는 그 고통은 각자의 불행을 앞세워 SNS 등지에서 서로를 공격하는 것으로 표출된다.
만연한 파시즘과 약자혐오는 바로 여기에서 발화한다. 생존공포에 내면적으로 몰릴 대로 몰린 사람들의 고통과 불안이 일종의 병적 증상으로 터져 나오는 현상인 것이다. 그리고 재화 분배의 키를 쥐고 있는, 학벌 인맥이나 집안 보유 기업 또는 부동산 등 사실상 지대수익에 의지해 부와 지위를 독차지한 기득권층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계속 누리기 위해 그를 부추기며 조용히 자신들의 이득을 챙긴다.
물에 빠져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는 것이나 다름없는 신세의 개인들에게 심신의 안전과 안정을 제공할 수 있는 ‘기본사회’라는 구명보트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강력한 주장이다.
기실 가족 공동체도 마을 공동체도 사라진 지금,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바뀌는 세상을 따라잡기조차 버거운 개인이 의지할 수 있는 곳이 이제 국가 시스템 외에 또 뭐가 있겠는가.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한다'는 대전제는 초기 국가에서부터 늘 이어져 오던 것이며 국가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당장 자기 한 몸 살아남는 데 급급해진 나머지 터널비전(tunnel vision)에 갇힌 개인들에게 이성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것도 솔직히 너무나 가혹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정의의 하위 개념인 공정에 매달려 자잘한 싸움에 목을 매는 삶을 강요당하느라 큰 판을 볼래야 볼 수가 없는 상태에 빠진 개인들에게, 알아서 스스로 깨어나 세상을 바꾸라고 마냥 요구하는 것은 이제 차라리 국가와 정치권의 직무유기로 보인다.
그 점에서 현 정부의 지금 행보가 정말 중요하다. 내면에서부터 완전히 붕괴되어 가는 국민들을 국가가 책임감을 갖고 구해내 주길 바란다. 분배의 정의를 재정립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생존공포에서 벗어나 안정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를 갖춘 사회를 구축하는 것으로.
| 예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0) | 2026.0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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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권으로 읽는 대중음악사 (0) | 2026.04.19 |
| 지역언론에서 “언론의 본질”을 읽다 (0) | 2026.04.18 |
| 민주주의의 위기 앞에서 (0) | 2024.03.23 |
| 처음 엮어진 책에 담긴 그 시대 사람의 마음 (0) | 2024.02.13 |
| 경제학 논문에서 복지국가의 길을 찾다 (1) | 2023.1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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