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가짜 정의에 열광하는가 / 김태형 / 갈매나무 / 2025



작금의 한국 사회가 왜 서로가 서로를 혐오하고 공격하지 못해 안달인 험악한 세상으로 변했는가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고찰과, 이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를 설파한 사회심리학 서적이다.


저자는 존 롤스, 마이클 센델, 버트런트 러셀, 애덤 스미스 등 유명한 서양 학자들의 저작들과 <오징어 게임>, <폭싹 속았수다> 등 한국 인기 드라마들을 인용하며 책이 다루는 주제에 대한 독자의 이해도를 높이고 논리의 설득력을 올리고자 했다.


책의 내용에 따르면, 정의는 결국 분배의 문제다. 사람은 각자의 삶을 위해 필요한 재화가 충분히 분배 공급되어야 살 수 있다.


자본주의의 등장과 보편화 이후의 세계에서는 얼마나 많은 돈을 가졌는가에 따라 각 개인의 삶의 여유와 안전성의 정도가 달라지게 되었다. 가진 돈의 양을 기준으로 능력을 판단하고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는 방향으로 사회가 고착화되면서 재화와 사회적 여유의 분배 논리 역시 돈에 좌우되게 되었다. 돈 없는 사람은 그 천성이나 직무능력을 불문하고 능력없는 사람이자 가치가 떨어지는 사람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각자 알아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고 살아남는 게 당연하다는 논리가 상식처럼 자리잡았다.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고, 마음놓고 도움을 요청할 곳도 마음을 의탁할 곳도 없게 된 현대인들 특히 마을 공동체의 존재감을 느껴본 적이 전무한 90년대생 이후 젊은 세대는 철저히 고독한 생존투쟁자가 되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생존투쟁의 연속, 매 순간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를 공포를 안고 살얼음판을 걷듯 살아야 하는 불안의 나날 속을 살아가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서로 연대하고 도움을 주고받을 정신적 여유 따위는 없다. 막막한 생계 문제, 생계를 위한 취업과 자영업 전선에서 필연적으로 따라붙는 무한경쟁, 이 과정에서 촉발되는 폭력적인 인간 관계. 모두가 서로 경쟁적으로 불행하고 고통스럽다. 저마다 각자의 고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힘들어하고 있고 그렇다고 어디서 충분히 보상받을 길도 없는 그 고통은 각자의 불행을 앞세워 SNS 등지에서 서로를 공격하는 것으로 표출된다.


만연한 파시즘과 약자혐오는 바로 여기에서 발화한다. 생존공포에 내면적으로 몰릴 대로 몰린 사람들의 고통과 불안이 일종의 병적 증상으로 터져 나오는 현상인 것이다. 그리고 재화 분배의 키를 쥐고 있는, 학벌 인맥이나 집안 보유 기업 또는 부동산 등 사실상 지대수익에 의지해 부와 지위를 독차지한 기득권층은 자신들이 가진 것을 계속 누리기 위해 그를 부추기며 조용히 자신들의 이득을 챙긴다.


물에 빠져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는 것이나 다름없는 신세의 개인들에게 심신의 안전과 안정을 제공할 수 있는 ‘기본사회’라는 구명보트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저자의 일관된 강력한 주장이다.


기실 가족 공동체도 마을 공동체도 사라진 지금,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고 바뀌는 세상을 따라잡기조차 버거운 개인이 의지할 수 있는 곳이 이제 국가 시스템 외에 또 뭐가 있겠는가.


'사람은 살리고 봐야 한다'는 대전제는 초기 국가에서부터 늘 이어져 오던 것이며 국가의 궁극적인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당장 자기 한 몸 살아남는 데 급급해진 나머지 터널비전(tunnel vision)에 갇힌 개인들에게 이성적인 판단을 요구하는 것도 솔직히 너무나 가혹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정의의 하위 개념인 공정에 매달려 자잘한 싸움에 목을 매는 삶을 강요당하느라 큰 판을 볼래야 볼 수가 없는 상태에 빠진 개인들에게, 알아서 스스로 깨어나 세상을 바꾸라고 마냥 요구하는 것은 이제 차라리 국가와 정치권의 직무유기로 보인다.


그 점에서 현 정부의 지금 행보가 정말 중요하다. 내면에서부터 완전히 붕괴되어 가는 국민들을 국가가 책임감을 갖고 구해내 주길 바란다. 분배의 정의를 재정립하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생존공포에서 벗어나 안정된 삶을 보장받을 수 있는 제도를 갖춘 사회를 구축하는 것으로.

by 해피의서재 2026. 4. 5. 16: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