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느티나무도서관. 

2000년에 설립돼 어느새 개관 15년차를 넘기고 있는 사립 공공도서관이다. 

오늘을 사는 시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자유'와 '공공성'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곳이 도서관이라는 생각에 

개관을 결심하게 되었다는 느티나무도서관.

공립 도서관보다 상대적으로 운신이 자유로운 '사립'이라는 이점을 가지고 

느티나무도서관은 공공도서관 본연의 역할을 보다 충실히 하기 위한 다양한 실험을 해 왔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바로 '도서관계의 실험실'. 


그렇게 느티나무도서관이 해온 실험들과 그간의 성과, 그리고 앞으로의 발전 방안에 대한 고민 등을 담은 책들이 이제 꾸준히 나오고 있다. 

박영숙 관장이 다른 도서관에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며 그간의 활동 내용을 정리하여 책들을 펴내기 시작했는데 

『꿈꿀 권리』를 시작으로 『내 아이가 책을 읽는다』에 이어 이제 『이용자를 왕으로 모시진 않겠습니다』라는 세 번째 책이 나왔다.



이용자를 왕처럼 모시진 않겠습니다

저자
박영숙 지음
출판사
알마 | 2014-07-17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도서관의 기본가치인 공공성과 지적 자유는 삶 속에서 어떻게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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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가 매우 인상적이다. 

보통은 공공기관이건 기업이건 심지어 작은 동네 가게를 가든 요새는 '손님이 왕이다'라는 말이 철칙으로 여겨지는 상황인데 

이 책은 과감하게 '이용자를 왕처럼 모시진 않겠다'고 선언해 버린다. 


사실 바꿔 말하자면 이것은 이용자의 능동성과 자유를 존중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용자가 원하는대로 일일이 다 떠먹여 주는 것, 더 나아가 이용자의 마음 속을 먼저 다 알아채고 시종일관 따라다니며 시중을 드는 것, 

이것이 과연 실제로 이용자에게 도움이 되는 일일까?

공공도서관은 시민들이 스스로 지식을 찾고 생각을 하며 자기만의 삶을 찾아 가꿔 나갈 수 있도록 돕는,

말 그대로 '능동적인 시민을 키워내는 곳'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는 느티나무도서관에게 

위와 같은 '이용자를 왕처럼 모시기'란 도서관의 존재 가치와 배치되는 행동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들은 직접 이용자를 모시고 섬기기보다, 책(과 서가, 공간의 구성)을 가지고 무언의 말을 걸면서 

이용자, 아니 시민이 스스로 도서관으로 걸어들어와 도서관에 알게모르게 자신의 손길을 보태며 함께 어우러지도록 이끈다. 


위와 같이 다양한 컬렉션을 운영하며 책을 매개로 '소리 없는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거나 


이용자들이 읽고 놓아둔 책을 서가 군데군데 모아두어 은연중에 '함께하는 책 전시회'를 유도하는 센스 등.


이외에도 다른 공공도서관에서도 참고해도 좋을 법한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책 곳곳에 가득하다. 

'도서관은 책으로 말해야 한다'는 신념에 따른 장서 구성과 운영부터 도서관 건물 내부 각 공간의 배치에 관한 설명,

그리고 도서관 간 협력과 시민을 대상으로 한 도서관 교육에 대한 이야기까지. 

공공도서관에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곁에 두고 계속 참고해도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실제 느티나무도서관의 현판 디자인. 이 현판 하나만으로도 이 도서관의 설립 목적과 비전을 선명하게 잘 알 수 있다.

by 해피의서재 2014. 11. 17. 22:18



데미안

저자
헤르만 헤세 지음
출판사
부북스 | 2013-01-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이 소설은 1919년에 처음으로 출간되는데, 그 시기는 세계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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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함께 일하는 친구에게 이 책에 대한 이야기를 넌지시 꺼낸 적이 있었다.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 공부 때문에 이 책을 읽었으며, 보통의 고전이 그렇듯이 어렵고 공감하기 힘든 책이었다고 털어놓았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그리고 얼마 후 다시 접했을 때의 나 또한 그랬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다시 이 책이 읽고 싶다는 느낌을 받았을 때, 

다시 펴든 『데미안』은 그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느낌으로 내게 다가왔다.  


오랫동안 터키 작가 오르한 파묵에 빠져 지냈다. 지금도 오르한 파묵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이 내게 던져 주는 주요 화두가 바로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이다. 

지금도 기억나고는 한다. 파묵의 소설 『검은 책』에 나왔던 이 말. 


"난 나 자신이 되어야 해." 

"우리 중 누구도 우리 자신이 아니야."


전혀 다른 시기를 살았고 또 살아가는, 국적도 다른 두 작가 사이에서 비슷한 화두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 역시 '자기 자신으로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에밀 싱클레어는 사회가 '승인한' 밝고 도덕적이며 모든 것이 정갈하게 재단되어 있는 첫 번째 세상에만 머무르려 하지 않는다. 

그의 마음은 첫 번째 세상과 상반된 어둡고, 음침하며, 난잡하며 혼란스럽지만 분명히 실재하는 두 번째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 

날것의 세상을 인정하고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원하는 것이다. 

정갈함의 이면에 있는 날것스런 세상은 각 개인의 마음 속에도 오롯이 실재한다. 

그러나 보통의 사회는 세상의 날것스런 이면을 굳이 외면하고 쳐다봐서도 안된다고 가르친다.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고, 자신의 방식대로 세상을 이해하고 날것의 세상에서 스스로의 성숙을 이루는 길에 대해 알려 주지 않는다.

자신의 진짜 내면을 찾기 위해 정신적인 방황을 거듭하는 싱클레어에게, 위에 언급한 문제에 대한 답을 주는 이가 바로 막스 데미안이다. 

알을 깨고 나오는 새매의 환상과, 완벽한 모신(母神)의 현신처럼 묘사되는 데미안의 어머니 에바 부인의 존재는 

싱클레어가 끝내 다다르기를 원하는 이상적인 자신, 

그러니까 세상의 모든 것을 인정하고 끌어안으며 어떤 세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신념과 자유의지대로 살아가는 

성숙한 자아를 의미하는 일종의 은유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아무리 읽어도 이 책이 과연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 감이 잘 잡히지 않는다면 이 책의 프롤로그 부분을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이 책의 주제가 바로 프롤로그 부분에 이미 다 나와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는 추구하는 자였고 여전히 그러하다. 하지만 이젠 별과 책에서 추구하지 않고 내 안에서 내 피가 흐르는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나의 이야기는 유쾌하지 않다. 자신을 속이는 짓을 더는 하지 않으려는 모든 사람의 삶이 그러하듯이, 나의 이야기는 부조리와 혼란의 맛, 광기와 꿈의 맛을 낸다. 

모든 사람 하나하나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길이다. 한 번 나서 본 길, 어렴풋한 경로다. 돌이켜보면 사람은 누구나 온전히 자기 자신이었던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럼에도 누구나 자신이 되려 애쓴다. 누구는 둔하고 무겁게, 누구는 더 가볍게, 각자 할 수 있는 대로. (중략) 그러나 모든 각자는 자연이 사람이라는 목표를 향해 던진 존재다. 그리고 다들 같은 곳에서 기원한다. 우리 모두는 어머니들에게서, 똑같은 심연에서 나온다. 하지만 심연에서 기원한 시도요 던져진 존재인 각자는 자기 나름의 목표로 나아간다. 우리는 서로를 납득할 수 있지만, 해석은 각자 자신에 대해서만 할 수 있다.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 자기 자신으로 향하는 길을 가는 것(p.66)인데,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자신과 하나였던 적이 없기에 사람들은 두려워하고 서로에게 달아난다고 했다(p.183).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은 죄악이며, 사람은 거북처럼 자기 안으로 완전히 기어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p.90)고 했던가.

자연이 인간을 매개로 의지하는 바는 이런저런 패거리가 아니라 오히려 각각의 개인과 그들의 삶의 흐름 속에 존재한다(p.185)고 

데미안은 말한다.


이념이나 조직의 질서 같은 것에 자신을 일치시키고 사는 사람들이 이 사회의 대다수인 가운데 

우리 중 우리 스스로의 의지대로 사는 사람들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물론 그렇게 살려면 필연적으로 외로워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의 삶은 다른 이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법이다. 

훗날 내 삶을 돌아보았을 때 그 삶이 어쨌든 내 의지대로 온전히 살아낸 것이었음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다면 

적어도 돌이킬 수 없는 내 지난 삶에 대한 후회가 조금이라도 덜하지 않을까.

아울러 내 삶이 그러하듯 다른 이의 삶도, 다른 이의 존재도 있는 그대로 중하다는 것을 안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사람을 경시하는 풍조가 조금이나마 줄어들지 않을까.


소설의 중간에 니체가 잠시 언급되기는 하지만, 나는 이 책을 읽으며 키에르케고르의 '신 앞에 선 단독자'를 연신 떠올렸다.

우린 모두 하나의 개인, 그 자체로 가치있는 신 앞에 선 단독자가 되어야 한다.


깨어난 사람의 의무는 이것 하나뿐이다. 다른 의무는 전혀, 그 어디에도 전혀 없다. 자기 자신을 추구하기, 내적으로 견고해지기, 끝이 어디이든 자기 자신의 길을 더듬어 나아가기, 이것이 유일한 의무다. (중략) 그 사람의 몫은 아무 운명이나가 아니라 자기 고유의 운명을 발견하고 그 운명을 내면에서 온전히, 꿋꿋이, 또한 끝까지 사는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은 반쪽이요 달아나려는 시도요 뒤돌아 대중의 이상으로 도피하기, 순응이요 자기 자신의 내면을 두려워하기다. (중략) 나는 자연이 내던진 존재, 불확실성을 향해 던져진 존재, 어쩌면 새로운 것에, 어쩌면 무에 이를 존재였다. 그리고 깊디깊은 심연에서 비롯된 이 던지기가 실현되게 하기, 이 던지기의 의지를 내 안에서 느끼고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기, 오직 이것이 나의 직분이었다. 오로지 이것만이! (p.173)


by 해피의서재 2014. 8. 18. 20:56



동양고전이 뭐길래

저자
신정근 지음
출판사
동아시아 | 2012-05-23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우리 시대 대표적 인문학자 신정근 교수의 원칙적이면서도 새롭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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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권으로 시작하는 동양고전 핵심 명저 25"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논어, 맹자, 주역, 대학 등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양 고전들을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춰 해석한 본격 동양 고전 해설서라고 보면 될 듯하다.

동양고전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사서삼경'을 떠올리지만 

이 책의 저자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제자백가의 책들까지 더하여 "팔경(八經) 오서(五書) 십이자(十二子)"로 분류하여 제시했다. 

팔경과 오서와 십이자에 포함되는 책들은 각각


팔경=주역, 시경, 서경, 예기, 춘추, 악경(음악), 이아(사전류), 효경

오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 소학

십이자(제자백가)=관자(관중), 묵자, 노자, 장자, 순자, 손자, 한비자, 상군서(상앙), 전국책(종횡가), 공손룡자(개념의 구분), 양주(자아중심주의), 추연(음양오행)


이며, 이 책들을 순차적으로 하나하나 소개하고 책들의 내용과 탄생 배경 등을 풀어내는 방식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다. 
책의 맨 뒷부분에는 각 고전의 관계를 정리한 상관도(圖)와 간략한 요약문도 있어 읽는 이의 이해를 돕는다. 

저자는 아래의 자평(自評)을 통해 고전들이 저술된 시대적 배경에 대해 이렇게 피력하고 있다.
"본서는 중국 고대의 사상사이자 고대 철학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시도라고도 할 수 있다. 이 시도는 여느 철학사와 달리 학파의 분류보다는 사상가의 분류에 따라서 서술되고 있다. 고대 철학이 집단적 대응의 측면도 있지만 개인적 분투가 경쟁적으로 이루어지는 측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 분투가 제자백가라는 말처럼 선진 시대의 사상계를 풍요롭게 만들었던 것이다." (352쪽)

이 책에 따르면 팔경, 오서, 십이자의 성격은 다음과 같다. 


먼저 팔경은 고대 중국의 '현왕 시대'를 배경으로 가장 이상적이고 근본적인 사물(또는 세상)의 이치, 치국의 도리 등을 정리한 책들이다.

그래서 '세상이 움직이는 이치와 방식'을 풀어 쓴 주역이 책의 첫머리를 장식하고, 그 다음으로 사회 유지를 위해 지켜야 할 질서를 다룬 예기를 제시했으며, 순수한 인간의 감정 표출을 다룬 시경(문학)과 악경(예술, 음악), 서경(현왕들의 치세를 정리한 일종의 행정문서), 춘추(법률, 역사), 효경(윤리), 이아(언어, 사전)를 '팔경'으로 묶어 정리한 것이다. 


중국 서주 시대 후기에 들어서면서 군웅할거로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관중 등 학자관료를 중심으로 보다 현실적인 내용을 다룬 책들이 등장했는데 이 도서군(群)이 바로 오서이다. 논어, 맹자, 대학, 중용, 소학의 다섯 도서 중, 사실 대학과 중용은 팔서 중 하나인 예기의 일부에 있던 부분이 따로 떨어져 나와 독립한 것이다. 이 오서는 유학의 대표적인 도서들로 남아 국가 이념 정립과 통치 철학에 관한 지식을 후세 왕조에 꾸준히 공급하며 오랜 시간 그 생명력을 보여 주었다. 


한편 춘추전국시대, 오서가 확정되기 이전에 끊임없이 쏟아져 나왔던 수많은 사상들을 담은 책들이 바로 십이자에 해당하는 제자백가의 도서들이다. 상대적으로 잊혀진 주장과 사상이 되었지만 위 인용에 나온 대로 이 사상들은 선진 시대의 사상계, 나아가 중국의 지식 세계를 풍요롭게 만들었던 존재들이다. 그러니 이 사상을 만들어 내고 널리 퍼뜨리고자 애썼던 그 수많은 '지적 투사'들은 마땅히 잊혀지지 않고 계속 세상에 기억될 권리가 있다. 


세상을 이해하고 경영하기 위한 다양한 사상과 지식, 그리고 사례(역사 속의 다양하고 날것인 인간군상 포함)를 한데 모아 놓은 이 명저들에 대해 배워 보니, 오랜 세월 동안 동아시아 학자와 관료들이 이 책들을 항상 가까이 두고 읽어야 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by 해피의서재 2014. 5. 23. 2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