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1년만에 블로그에 접속하는 것 같다.

한동안 만사에 의욕이 없었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진 않은 상태다.

그래도 어찌어찌 간간이 책은 읽었던 것 같다. 지금 다시 헤아려 보니 한 달에 한 권 꼴로 읽은 셈이 됐다.

2018년 들어 그간 읽은 책들의 목록과 간결한 감상을 여기에 짤막하게나마 적어 보고자 한다.


1. 지독한 하루 : 만약은 없다, 두번째 이야기 / 남궁인 지음 / 문학동네 / 2017

- 한 젊은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에세이집. 전작 『만약은 없다』의 뒤를 잇는 후속편 격의 책이다. 소설가 김훈의 문체를 쏙 빼닮은 어투로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응급실을 거쳐가는 환자와 의사, 소방관들의 여러 극적인 사연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 많은 사람과 사연들 속에서 저자가 절절히 삼키고 또 토해내는 처연한 고통과 인간에 대한 연민 역시 가감없이 담겨 있다.

2. 트립 도기(Trip Doggy) : 털북숭이 친구 페퍼와 30일 유럽여행 / 권인영 지음 / 21세기북스 / 2018

- 반려견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한 견주의 용감한 도전을 담았다. 멋진 풍경과 귀여운 강아지 사진이 시종일관 눈을 즐겁게 하고, 반려견과 함께하는 장거리 여행(비행기를 타고 여행지에서 숙소를 해결하는 방법 등)에 대한 팁도 들어 있어 반려견과의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좋은 자료 역할도 할 수 있다.

​3. 극한견주. 1-4 / 마일로 지음 / 북폴리오 / 2017~2018

- 반려견을 소재로 한 생활 웹툰. 2018년 9월 현재 4권으로 완결된 작품이다. 애견인이라면 누구든 공감할 개 키우기의 애환, 그러나 그 모든 고충을 잊게 해 주는 '개'라는 동물의 매력을 사랑스런 시선과 사랑스런 그림으로 표현한 유쾌한 작품이다.

​4. 처음 읽는 여성 세계사 / 케르스틴 뤼커, 우테 덴셀 지음 / 어크로스 / 2018

-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항상 존재했고, 어쩌면 남성보다 더 중대한 역할을 수행해 왔으며 세계사에 크고작은 파장을 남겨 왔음에도 그동안 주류 역사서에 서술되지 않았던 여성들의 삶과 자취를 최대한 찾아내어 반영한 세계사 통사.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기본 사상 아래 남과 여, 동양과 서양,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지배 계층과 피지배 계층 모두를 아우르는 균형감각 또한 뛰어난 교양 역사서이다.

5. 날씨가 만든 그 날의 세계사 / 로날트 D. 게르슈테 지음 / 제3의공간 / 2017

- 가뭄, 폭풍, 이상기온 등 이례적인 날씨와 연관된 세계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각각의 에피소드로 엮은 책. 세상 여기저기에 두서없이 흩어져 남겨진 소소한 기록과 연대기들을 적극 정리, 인용하여 해당 사건들이 일어날 당시의 배경 상황들을 생생히 재현해낸 면이 돋보인다.

6. K팝 메이커스 : K팝의 숨은 보석, 히든 프로듀서 / 민경원 지음 / 북노마드 / 2018

- K-POP씬 곳곳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음악 프로듀서 9명과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음악산업 현장의 생생하고 풍부한 에피소드를 듣고 싶어하는 독자들에겐 다소 빈약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K-POP씬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 신곡들이 만들어지는지, 그리고 각 레이블과 프로듀서들이 어떤 생각과 철학, 노하우를 가지고 곡을 만들어 내는지에 관한 궁금증을 풀기에는 충분하다.

​7. 우리가 몰랐던 세상의 도서관들 / 조금주 지음 / 나무연필 / 2017

- 세계 각국서 운영되고 있는 다양한 형태와 성격의 도서관들을 소개한 책. 크게 4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의 2장은 파격적인 운영방식과 깊이있는 정보서비스 등 도서관 서비스의 실질적인 운영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고 있는 반면 뒤의 2장은 세계의 여러 유서 깊은 도서관들의 역사와 사연을 전하는 내용 위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의 앞부분에서는 메이커스페이스 운영, 행정업무 대행, 창업지원, 청소년전용공간, 드론을 이용한 도서위치 파악과 관리, 공공도서관의 학술DB 구독, 참고사서 1시간 예약제, 조사상담 전용데스크 등을 이야기하고 있고, 뒷부분에는 바티칸의 교황청 도서관, 미국의 대통령 기념 도서관, 보스턴 회원제 도서관, 나치 독일의 분서 사건을 기억하자는 의미로 만들어진 텅 빈 지하도서관 등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8. 지도에서 사라진 종교들 / 도현신 지음 / 서해문집 / 2016

- 종교의 흥망성쇠로 본 인류의 정신문화사를 한 권의 책에 정리했다. 세계 각지의 민족과 종교 간의 상호작용이 세계사에 어떤 영향을 미쳐 왔는지를 짧고 간결한 문장의 글로 이야기하고 있다. 종교도 결국은 인간이 만들어낸 정신문화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으며,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에 따라 종교도 그 운명을 같이 해 왔음을 알게 해 주는 책이다. 세계사의 흐름과 인간의 본질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 주는 데 도움을 받을 만하다.

by 해피의서재 2018. 9. 26. 16:12

도서명 : 바링허우, 사회주의 국가에서 태어나 자본주의를 살아가다

저자 : 양칭샹

출판사 : 미래의창

출판연도 : 2017

 

중국은 언제나 알다가도 모를 나라다.

바로 옆에 있고, 많이 알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알 수 없는 것 투성이인 나라이기도 하다.

그곳에 사는 젊은이들은 우리와 같을까, 다를까.

지난 가을에 중국의 젊은 세대, 80년대생(80, 바링허우)들에 대하여 현지의 젊은 학자가 쓴 책이 번역되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다.

호기심에 얼른 구해 보았다.

 

알려진 것보다 그렇지 않은 것이 여전히 더 많은 나라, 중국.

대국굴기를 외치며 크나큰 경제시장과 강대한 군사력, 막대한 머니파워를 세계에 과시하고 있는 중국이지만 그 내부에서 곪아가고 있는 문제는 다른 여느 인근 국가들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빈부격차나 청년실업 문제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국민과 함께 해결하는 일에 중국 당국은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외부 세계는 물론이고 자국 국민들에게도 철저하기 감추고 덮기 바쁜 중국의 문제들.

그러나 2010년대 현재, 중국의 중하층 시민,

특히 80년대 이후 출생자인 바링허우들이 맞닥뜨리고 있는 취업난과 주거란,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고질적인 가난 그리고 가족해체 현상과 정서적 황폐 등의 사회 문제는

이미 너무나 심각한 상황에 다다라 있다.

 

고등 교육을 받고서도 바로 원하는 일자리를 구할 수 없고,

치안이 거의 보장되지 않는 낯선 공업도시에서 정상적인 사회 시스템의 최소한의 보호도 받지 못한 채 내일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하루하루 먹고사는 문제에 쫓기며,

기껏 꿈꾸는 목표와 희망이라곤 샤오즈즉 일명 쁘띠 부르주아로 사는 것이지만

그마저도 사실상 불가능한 사회 구조 속에 중국의 젊은이들은 짓이겨지고 있다고

이 책은 이야기한다.

 

책과 영화라는 가장 보편적인 문화생활과도 유리된 생존기계 같은 삶을 이어가고 있는 중국의 젊은이들의 실상을, 이 책의 저자는 대중문학 비평과 시민 인터뷰를 통해 독자들의 눈앞에 파헤쳐 보이고 있다.

저자인 양칭샹은 실제 광둥 성 둥관 시에 거주하는 중하층 바링허우 다수를 상대로 1:1 직접 인터뷰를 시도했고, 한한 등 유명 중국 작가들의 에세이와 대중소설을 분석하면서 그동안 중국 당국과 관영매체가 이때껏 보여준 적 없는 중국 사회의 민낯을 드러낸다.

 

빈부 계층이 고착화된 지 오래인 가운데, 폭력적인 학교 교육과 여전한 사상통제

그리고 중국의 일상 곳곳에 배어 있는 부조리와 부패 등,

세상이 총체적으로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아무 것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과 허무에 빠져들고 있는

중국의 청년 세대의 비극적인 면모를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 광경이 중국에만 존재하는 것인가?

이것은 따지고 보면 비단 중국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에도 실재하는 문제이며,

더 나아가 전세계의 젊은이들이 맞닥뜨린 문제이기도 하다.

무작정 숨기고 모르는 체 하는 것이 능사가 아닐진대,

중국은 과연 이 문제에 어떻게 대응하고 해결책을 찾을 것인지 자못 궁금하다.

 

이 책을 통해 들여다본 중국은 완전히 위험수위를 넘어가기 직전, 아니 이미 넘어선 것처럼 보였다. 언제 어떤 식으로 폭발할지 모를 시한폭탄.

 

저자 양칭샹이 다시 중국에 묻는다.

바링허우, 이들을 위해 중국은 무엇을 할 것인가?

 

그리고 나 역시 묻고 싶어진다.

한국의 젊은이들을 위해 나와 이 나라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같은 질문으로부터 한국과 중국, 양국은 전혀 자유로울 수 없을 것 같다.

 

by 해피의서재 2017. 12. 3. 10:59
서명 : 늑대를 구한 개

저자 : 스티븐 울프

출판사 : 처음북스

출판연도 : 2014

 

한 중년 남자의 좌절과 재기를 담담하게 적은 이 수기의 제목이 왜 늑대를 구한 개가 되었냐 하면

이 수기의 내용이울프라는 성씨를 가진 한 남자가 한 마리의 개를 통해 새 삶을 되찾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개의 이름은 혜성이라는 뜻의 카밋’.

그레이하운드 종으로, 원래 경주견으로 태어나고 길러졌다가 중도에 도태된 친구다.

 

개와 만나기 전 울프 씨의 사정도 이 개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허리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건실하게 잘 살던 이 미국인 변호사는

그동안 앓던 허리 상태가 어느 날 순식간에 크게 악화되면서 일어나 걷는 것조차 버거운 지경이 되고,이 때문에 결국 직장마저 잃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깊은 절망에 빠져 있던 그는 어느 날 거리에서 웬 우아하고 당당한 자태의 그레이하운드 한 마리를

목격한 뒤 그와 같은 반려견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경주견 시장에서 도태된 그레이하운드의 복지를 위해 노력하는 단체를 통해 카밋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허리 통증으로 인해 운신이 거의 불가능하다시피 한 울프 씨를 위해

카밋은 금세 문고리에 걸린 긴 끈을 물어 당겨서 문을 여는 법을 익히고,

울프 씨의 휠체어를 직접 끌고 공항을 누비기도 하며,

나중에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견 품종이라는 한계를 넘어

본격적인 장애미 도우미견으로 인정도 받는다.

 

울프 씨가 카밋을 키우는 건지 카밋이 울프 씨의 시중을 드는 건지

알쏭달쏭해 보이기까지 한 이 두 동물(어쨌든 인간도 동물이므로)의 동거는

울프 씨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던 모양이다.

우울하고 끔찍한 과거를 지나 왔음에도 기꺼이 사람을 따르고

우아함과 평정심을 잃지 않는 이 의젓한 개를 지켜보면서

울프 씨는 지난날의 자신의 삶과, 더 나아가 인생이란 것의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 생각들을 모아 정리한 글이 바로 이 책인 것이다.

 

책 속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울프 씨가 카밋을 보며 쓴 글이다.

 

카밋을 보면서 배운 사실이 하나 있었다. 때론 의연하게 예전의 모습을 조금씩 버려야 한다는 거다. 그날 그날 새롭게 찾아오는 일들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 삶에선 원래 자기가 선택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목표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한다. 실패가 아니다. 그것이 인생이다.”

 

이 책의 주제는 이 한 문단으로 요약이 가능할 것 같다.

울프 씨는 이 문단대로 카밋과 함께 자신의 변화된 모습과 새로운 나날들을 온전히 긍정하고 받아들이며 견뎠다.

카밋이 천수를 다하고 세상을 떠난 후에도 울프 씨는 카밋이 남겨 준 그 가르침을

삶의 위로이자 힘으로 삼으며 또 꿋꿋이 살아가고 있을 터이다.

.

그리고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by 해피의서재 2017. 12. 3. 10: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