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 미치 앨봄 지음, 공경희 옮김 / 살림, 2010


죽음을 목전에 둔 한 노교수가 있다. 춤추기를 좋아했으나 루게릭병으로 몸이 점점 굳어가 이제 춤은 고사하고 혼자 힘으로 화장실에 가기조차 불가능해져 간다. 무력한 육신에 갇힌 채 죽어가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 노교수는 남은 시간 최선을 다해 ‘죽음을 가치있는 일로 승화시키’기로 마음먹는다. 자신의 죽음을 생의 마지막 연구 프로젝트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그의 제자가 있다. 피아노 연주가가 꿈이었으나 결국 하루하루 눈코 뜰 새 없이 돌아가는 스포츠 언론의 현장으로 뛰어든다. 무엇을 위해 왜 뛰는지도 모르는 채 치열한 경쟁 속에서 아득바득 살아간다. 일과 소비가 전부인 삶을 정신없이 살아가다가 어느 날 TV방송에서 옛 은사의 인터뷰를 보고 그대로 굳어 버린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은 이 교수와 제자가 14번의 화요일마다 만나 나눈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다. 교수의 이름은 모리 슈워츠, 제자의 이름은 미치 앨봄이다. 책은 죽음을 앞둔 모리와 그를 화요일마다 찾아오는 미치의 대화 사이에 미치의 대학 시절 기억들을 교차시키는데 책을 읽다 보면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교차편집을 보는 듯한 효과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이 사제의 이야기가 오랜 시간을 넘나들며 한데 연결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모리와 미치가 나누는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세상, 자기 연민, 후회, 죽음, 가족, 감정, 나이듦, 돈, 사랑, 결혼, 문화, 용서, 의미있는 삶 등. 두 사람이 나눈 대화의 주제들이다.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어린 시절 모피공장에서 노동자들이 착취당하는 현장을 목격한 모리는 ‘다른 사람을 착취하고 다른 사람의 땀으로 돈을 벌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고 결국 교수의 길을 택한다. 이러한 경험이 바탕이 되어 모리의 가르침은 더욱 진정성 있게 다가온다. 미치에게 들려주는 말들 하나하나가 삶에 대한 위로이자 새겨야 할 교훈인데, 몇 가지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우리 문화는 사람들에게 행복감을 느끼지 못하게 하네. 우린 거짓된 진리를 가르치고 있어. 그러니 스스로 제대로 된 문화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그걸 굳이 따르려고 애쓰지 말게. 그것보다는 자신만의 문화를 창조해야 해."

"인생은 밀고 당김의 연속. 그래서 마음을 상하면서도 상처받지 않아야 하는 삶. 그리고 그 속에서 이기는 건 언제나 사랑이며, 사랑이야말로 유일하게 이성적인 행동이다."


"살아가면서 현재 자신의 인생에 무엇이 좋고 진실하며 아름다운지를 발견해야 해. 뒤돌아보면 경쟁심만 생기지."


"의미있는 삶이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기를 둘러싼 지역 사회에, 그리고 자기에게 목적과 의미를 주는 일을 창조하는 데 자신을 바치는 데 있다. 거기엔 돈 따위가 끼어들 틈이 없다."


"연민을 가지고 서로에게 책임감을 느낀다면 세상은 훨씬 좋을 곳이 될 것이다.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할 것이다."


"인간관계에는 일정한 공식이 없다. 양쪽 모두가 공간을 넉넉히 가지면서 넘치는 사랑으로 협상을 벌여야 하는 것이 바로 인간관계다. 자기 상황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상황에도 마음을 쓸 때 그게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있다."


"더 마음을 열고, 광고로 인해 만들어진 헛된 가치에 유혹되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이 말할 때는 생애 마지막 이야기인 양 관심을 기울여라. 그리고... 인생에서 '너무 늦은 일' 따윈 없다.."



미치는 화요일마다 모리를 찾을 즈음, 일하던 신문사가 파업을 하면서 일손을 놓은 상태였다. 일중독자처럼 살아왔던 미치에게 ‘일이 없고’ ‘자기를 찾는 사람이 없는’ 상황이 닥친 셈인데 이때 미치는 심적으로 무척 혼란스러워한다. ‘나 없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는 사실에 경악해 버렸다’는 문장이 이를 대변한다. 그런 미치에게 모리의 말들은 마음의 위안이자 진정한 삶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주는 계기가 되었으리라 본다.


미치가 속한 스포츠 언론계는 자극적인 상업문화가 넘실거리는 곳이다. 치열한 경쟁이 상존하고, 조금이라도 밀리면 나가떨어지는 살벌한 곳이다. 인생의 참된 의미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쉽게 소비되고 버려지는 이 공간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축소판이기도 하다. 죽음이 임박할 때까지도 주택, 차, 생필품 등만 생각하며 끊임없이 소비하고 그렇게 살아간다. 한발 뒤로 물러서서 삶을 관조하며 이게 진정 내가 원하는 건지 돌아보는 습관을 갖지 못하게 하는 사회를 살고 있다. 방송국에서 모리를 찾아와 3번에 걸쳐 인터뷰를 한 것(첫번째 인터뷰 덕에 미치는 모리를 찾게 되었다), 이 책이 출간된 후에 지금까지도 큰 사랑을 받는 것은 바로 삶을 담담히 관조하고 삶의 의미에 대해 돌아볼 기회를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죽음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의미하다. 아무리 건강했던 사람도 결국은 죽는다. 살아서 부유하고 높은 지위에 오르고 어떤 화려한 삶을 누렸어도 죽고 나면 한 줌의 재와 제 이름이 새겨진 묘비 하나만이 남는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오늘도 이렇게 아등바등 살아가는가. 그리고 무엇을 위해 더 많이 가지려 하고 그래서 의미없는 크고작은 싸움을 벌이는가.


누군가가 말했다. ‘이 짧은 세상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헛된 가치에 유혹되지 말고 나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에 충실하며 사는 것, 그리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 내가 살고 있는 이 순간에, 내가 보고 또 누리고 있는 이 자연에 감사하며 그들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죽음 앞에 내 삶이 당당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아닐까.


by 해피의서재 2011. 12. 26. 1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