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8

이 책을 다 읽고 나니, 굳이 정제된 독후감을 쓰고 싶단 생각이 전혀 없어졌다.
그러니 읽고 느낀 것을 그저 내키는대로 마구 써내려가 보련다.

책 속에 길이 없고 종교에 길이 없고 국가에 길이 없고 이념에 길이 없다.
중요한 건 단지 지금 내가 살아 숨쉬는 이 순간에 얼마나 몰입하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인생의 해답도, 진리도 오직 직접 몸으로 부딪히는 삶에서 비로소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니.
남의 눈치 볼 것 없다. 그런다고 그들이 나를 구원해 줄 수도, 그럴 리도 없지 않은가.
경건한 신앙으로 치장하고 그 속내는 곪아터져 가고 있을 뿐인 산중의 정교 수도원에도 구원은 없었다.
터키와 그리스가 박터지게 싸운 끝에 크레타는 터키의 속박에서 벗어났지만 그들이 전장에서 죽인 터키인과 조르바가 찾아가 산투르를 배운 터키인은 서로 차이가 없는 다같은 인간이었다.
불교에 몰두하는 그리스의 지식인 청년이 그토록 죽어라고 읽고 쓰고 머리를 쥐어뜯어도 삶의 진리를 찾을 수는 없었다.
무엇이 인간을 종교와 국가, 이념, 그 외 모든 정신적 속박으로부터 자유롭게 할 수 있는가?
거침없이 노래하고 춤추고 산투르를 연주하고 일하고 놀고 여자와 자고 하며 끝없이 자유를 추구하는 그리스인 조르바.
지식인 청년은 '대지로부터 이어진 탯줄이 아직 끊어지지 않은' 이 야성적인 사내에게서 비로소 삶의 자유와 행복을 발견한다.
따지고 보면 역사는 골치아프게 머리 굴리고 이상한 지식을 만들어 내고 거기서 새어나온 이념이란 것으로 사람들을 옭아매고 속박한 시간의 연속인지도 모른다.
조르바는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다. 사람을 위시하여 이세상의 모든 존재를 긍휼히 여기며 사랑하고, 자신의 삶을 사랑하며 거침없이 살아가는 조르바.
우린 그 사람처럼 살 수 없을까?
어려운 것 같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엄청 쉬운 것 같은데.
자유라는 것도 사실 그렇게 누리기 어려운 것이 아닐 텐데.
그래 그냥 다 놔 버리는 거다. 모든 속박과 집착을 놔 버리고 이세상 모든 것을 난생 처음 본 것처럼 신기하게 바라보고 어울리고 같이 놀자. 세상 모든 사람과 동물과 식물과 사물이 내 친구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마음을 열고 자유롭게 노닌다. 그 외에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참 간단한 일 같은데 현실에서 이러다간 미친X 취급 받겠지?
아니 조르바는 저런 걱정 따위 일절 하지도 않을 것이다. 다만 마음 가는대로 산다. 자기만의 확고한 세계를 세우고서.
그가 참 부럽다.
그래 인생 뭐 있어?? 한 번 왔다 가는 세상, 이 공허한 세상. 철저하게 오늘을 살자. 오늘만 생각하자. 나를 사랑하고 세상 모두를 사랑하자.
그리고, 자유를 누리자. 그게 전부다!!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평생에 걸쳐 인간 영혼의 자유를 위한 투쟁을 화두로 삼았다 한다.
소설의 주인공 조르바가 그런 그에게 강렬한 가르침을 준 실존인물이고.
그의 묘에는 이런 묘비명이 새겨져 있다 한다.
'나는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그리스인 조르바》와 저 묘지명이 참으로 강렬하게 오버랩된다.


by 해피의서재 2011. 10. 23. 13: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