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여성 과학자들 / 펜드리드 노이스 / 다른 / 2019



인류 과학 문명의 발달에 기여한 여성 과학자 16명의 일생과 그들의 업적을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의 형태로 정리하여 엮은 책.

책은 중세 프랑스 궁정에서 일하며 임상 산부인과 의학을 발전시킨 루이제 부아지에 이야기로 시작된다. ‘최초의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불리는 어거스타 에이다 바이런 러브레이스의 파란만장한 일생과, 라듐을 발견한 최초의 여성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마리 퀴리의 신산했던 삶, ‘등불을 든 천사’ 이미지에 가려진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의 공중보건학자이자 의료행정가로서의 진면목이 이어서 펼쳐지고, 근세의 천문학자 마리아 쿠니츠, 대다수의 여성이 과학과 학문으로부터 괴리되어 있던 근세 시대에 직접 ‘여성을 위한 쉬운 화학책’을 쓴 마리 뫼르드라크, 미국 해군 소속 장교로서 컴퓨터 언어 번역 프로그램인 컴파일러의 고안과 발달을 이끈 그레이스 머레이 호퍼, 2차대전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으며 원자핵의 베타붕괴 반응을 실험으로 입증한 우젠슝, 수많은 항암제와 백혈병 치료제를 개발해 내며 많은 이들의 생명을 살린 거트루드 벨 엘리언에 이르기까지 아직 대중들에게 낯선 여러 여성 과학자들의 이름들이 세심한 설명과 함께 소개되고 있다.

전반적으로 청소년 교양도서에 적합한 성격의 책으로, 여성 지성사와 더불어 물리학/수학/화학/의학의 발전사도 함께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여성 과학자들의 이름 중엔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이름도 있고, 다소 낯선 이름도 있다. 비록 책의 제목대로 ‘사라진’ 혹은 흔적도 없이 ‘지워진’ 적은 없지만. ‘잊혀진’ 혹은 ‘우리가 기억하지 못한’ 이름들이 이토록 많았다는 점은 반성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이제부터라도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여성 과학자들의 업적이 적극적으로 발굴되고 기억되며 널리 회자되게 하는 것이, 불리한 환경 속에서도 꿋꿋이 정진하여 인류 문명의 발전에 기여한 그녀들에 대한 합당한 대우일 것이다.

PS.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elara1020&logNo=130169405047
마리아 쿠니츠의 일대기에 대한 블로그 포스팅 주소. 추가 참고자료로 올려 본다.

by 해피의서재 2019. 8. 19. 20:19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 / 박재용 / 행성B / 2017

EBS 다큐프라임 <생명: 45억 년의 비밀> 3부작의 출판본을 집필한 과학 저술가 박재용이 과학사와 인문학(역사)을 한데 연결한 융합적 글쓰기를 선보인 책, <(인문학도에게 권하는) 나의 첫 번째 과학 공부>를 읽었다.

사실 아주 쉽게 술술 읽힌다고는 할 수 없다. 인문학도를 대상으로 최대한 쉽게 풀어 썼다지만 자연과학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거의 문외한이다시피 한 사람에게는 여전히 어렵게 다가올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곳곳에 자꾸 눈에 띄는 오타와 비문이 매끄러운 책읽기를 방해한다. 출판사에서 교정 작업을 꼼꼼하게 안 했나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이다. 예를 들자면 쭉 ‘~습니다’체를 쓰다가 중도에 갑자기 ‘~다’체가 끼어든다든지, 같은 단어가 연달아 두 번 반복된다든지(00이 ​있이 있었습니다) 조사가 잘못 사용된 문장이 나온다든지.

앞서 언급한 단점 탓에 이 책에 마냥 높은 점수를 주기엔 다소 애매하지만, 생물학-천문학-지질학-물리학 순으로 각 과학분야의 발달사를 인류 문명사의 흐름과 연계하여 서술한 점은 이 책의 가장 높이 평가할 만한 포인트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과학자들이 세계의 구조를 이해하고자 관찰과 실험과 계산을 거듭한 끝에 나온 대표적인 이론들 그리고 오래된 이론과 새로운 이론이 각축을 벌이다 결국 새로운 이론이 대체되며 세상에 대한 지식이 축적되는 일련의 과정들이 시간의 흐름에 맞춰 정리-서술되어 있다. 이렇게 자리잡은 과학적 업적들이 인류사에 끼친 영향도 이 책은 함께 기술하고 있다. 당대의 왜곡된 사회 의식이 투영된 골상학과 우생학 같은 유사과학이 세계사에 남긴 끔찍한 부작용도 함께.

특히 이 책의 에필로그인 <과학을 한다는 것>만큼은 모두에게 꼭 일독을 권하고 싶은 명문이다. 과학이 인류에게 주는 교훈과 과학자의 사회적 책임을 이야기하고, 인류가 과학의 성과를 활용하는 데 있어 매사 신중할 것을 힘주어 부탁하는 이 글에는 심지어 절박함마저 느껴진다.

오랜 시간 수많은 과학자들이 밝혀낸 자연과 우주, 지구의 성질은 모두 한결같이 “인간이 세상의 중심이며 인간(특히 유럽 백인)만이 특별하고 고귀하다고 생각하는 오만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어쩌면 자연과학 연구란 ​자연의 본질은 어떤 인위적인 이념에 의해 왜곡되고 갇힐 수 없는 것이며 인간은 다른 모든 존재와 더불어 이 우주 한가운데서 지극히 평범하고 동등한 존재임을 자각하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 기억할 만한 문장들 -

“만약 인간이 다른 동물 모두와 다르다면, 그것은 생물학 이외의 영역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밝히는 것은 생물학의 영역이 아니라 인문학의 영역일 것입니다. (...) 인간은 다양한 지구 생물 중 하나일 뿐입니다. 따라서 다른 모든 생물이 그런 것만큼만 인간도 특별합니다. 우리가 인간이기 때문에 다른 동물에 비해 인간을 더 특별하게 느낍니다. 그러나 다른 생물종 모두와 비교해서 인간을 더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생물학적으로는 없습니다. 따라서 이 질문은 과학에게 해야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층위에서 다른 학문이나 대상에게 행해져야 합니다. 그곳에서 인간이 특별하다는 답을 들을 수 있을지는 알 수 없겠지만요.” - 116~117쪽

“사실 지동설을 반대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마음 속 깊은 곳의 인간중심주의였습니다. 세상이 인간을 위해 존재한다는 오래된 암묵적인 믿음에 배치되는 이론은 그 자체로 사람들에게 불쾌하게 다가왔고, 이치를 따지기 전에 배척당했습니다.” - 141쪽

“주인공인 줄만 알았던 우리는 우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합니다. 인간은 우주라는 무대의 주인공이 아니라 잠깐 스쳐가는 ‘지나가는 행인 3’ 정도였던 것입니다. (...) 인간은 우주의 변방에 있는 평균보다 약간 규모가 큰 은하의 나선형 팔에 위치한 평범한 항성의 세 번째 행성에서 진화의 과정에서 우연히 만들어진 ‘지성체’일 뿐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인간이 지니는 가치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 210~211쪽

“내가 남보다 고귀하지 않다는 것은 절대 수치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타인과 동등한 권리를 향유하며 같은 의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야말로 무엇보다도 자랑스럽고 고귀한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우주의 중심에서 내려와 우주의 모든 동료들과 동등한 권리를 가지는 평범한 우주 시민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달은 것 또한 자랑스러워할 일입니다. 스스로 자신의 진정한 위치를 찾아내는 일은 이 광대한 우주 전체에서도 쉽게 일어날 수 없는 매우 특별한 일입니다. 고작 우주 전체 나이의 1만 분의 1 정도의 시간을 살았으며, 문명의 역사도 겨우 1만 년에 불과한 우리가 그러한 발견에 도달한 것은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만한 일입니다.” - 211~212쪽

“대항해 시대는 유럽의 입장에서는 전세계를 정복하고 보물을 얻는 꿈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전세계가 유럽의 식민지가 되는 암흑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사실 대항해 시대라는 말 자체가 유럽의 입장일 뿐입니다. 유럽을 제외한 세계에서 그 시기는 대수탈의 시기였습니다. 그건 과학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식민지의 수탈을 통해 들어오는 수많은 재화가 과학자들이 돈 걱정 없이 과학에만 몰두할 수 있게 제공되었습니다. 유럽에는 과학자들이 늘어났고, 과학 연구에 많은 돈이 투자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럽의 과학은 이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성장합니다. (...) 그러나 이 시기의 과학 발달은 온전히 유럽인만의 것이었고, 그 열매도 유럽인들만이 향유했습니다. 물론 유럽인 모두가 향유한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도 왕실, 귀족, 부자 같은 지배계급이 독점한 것이었습니다.” - 226~227쪽

“과학은 이제 모든 사람이 유전자 차원에서 앞산의 침팬지 집단과 뒷산의 침팬지 집단의 차이보다도 더 적은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걸 밝혀냈습니다. (...) 과학은 인간을 나누는 그 어떤 기준도 과학적 근거가 없음을 명명백백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 274쪽

“당시 유럽의 과학자들이 이룬 성과는 무기의 혁신으로 이어졌고, 이를 통해 식민지를 점령할 수 있는 무력을 선사합니다. 과학자들의 역할은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과학자들은 지질학에서, 유전학에서, 또 진화론에서 유럽이 전세계를 지배해야 하는 이유를 만들어냅니다. (...) 과학자들만의 잘못은 아닙니다. 시대적 한계라는 것은 시대를 초월한 진리를 추구하는 과학자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당시의 과학자들에게 ‘보편적 인류’라는 인식은 너무도 먼 일이었을지 모릅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현재의 시점에서 그들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의 역사는 성, 장애, 피부색을 벗어나 보편적 인류라는 이상을 향해 나아갔고, 이제 우리는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 278쪽

“우리는 별도 태양도 지구도 모두 같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또한 동일한 기본 입자들로 구성되어 있음을 압니다. 우주 어디에도 특별한 원소, 특별한 힘은 없습니다. 모두가 동일한 입자로 구성되고, 모두가 같은 힘의 원리로 존재합니다. 심지어 현재 밝혀진 네 가지 근본적인 힘(중력, 전자기력, 약력, 강력)도 하나의 힘으로 통일될 것이라고 물리학자들은 생각합니다.” - 349쪽

by 해피의서재 2018. 10. 21.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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