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 : 20세기 최초의 코즈모폴리턴 작가 / 백민석 / 북21아르테 / 2018

‘하드보일드 문학’의 선구자로 불리는 미국의 대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그의 인생과 문학 세계를 돌아본 문학여행 에세이.

그가 여행하고 머물렀던 명소들을 찍은 컬러 사진과 매끄럽게 잘 읽히는 문장이 원활한 독서를 돕는다.

평생에 걸쳐 영광과 고통이 끊임없이 교차했던, 누구보다 극적인 삶을 살다간 이 강렬한 마초 문학가의 삶과 죽음, 그리고 그가 남긴 작품들의 의미를 저자의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고 분석한 책이다.

일찍이 자살한 아버지를 미워했고, 엄격하고 냉정했던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자살에 대한 책임이 있다고 여겨 역시나 증오했으며, 평생 ‘남자답고 대단한 자신’을 과시하려 과격한 언사를 일삼은 탓에 주위와의 충돌이 끊이지 않았고, 만년에는 알콜 중독과 우울증을 끼고 살며 정신병원을 드나들다 끝내 아버지와 같은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사내.

‘어쩌면 그는 끊임없이 죽음을 갈망했던 것일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말은, 평생 전쟁터나 사냥터 등 죽음이 언제든 덮쳐와도 이상하지 않을 곳들만 골라서 찾아다녔던 헤밍웨이의 행보를 생각해 보면 참 유효한 말인 것 같다.

헤밍웨이 특유의 하드보일드 스타일 문학도 어쩌면 이런 그의 삶과 내면 풍경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최소한의 단어와 문장으로, 별다른 부연설명도 없이, 거창한 듯 허망한 세상사와 그 속에서 피상적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별다른 이해를 구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그저 무심하게 뱉어내는 글들.

문학사에 길이 남을 획을 그었으나 인격적인 면에서는 도저히 가까이 하기 힘든 면을 가졌던 마초 글쟁이. 종국에는 몸도 마음도 황폐해진 채로 쓸쓸하게 생을 마쳤으나 그의 문학은 고전의 반열에 들어 영원히 남았다.

저자는 이 사내의 삶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3년간 헤밍웨이를 쫓아다니고 읽고 쓰면서, 비로소 한 인간으로서 이해할 수는 없지만 사랑하게 되었다”​​(17쪽)라고.

by 해피의서재 2019. 1. 3. 10:42
서명 : 늑대를 구한 개

저자 : 스티븐 울프

출판사 : 처음북스

출판연도 : 2014

 

한 중년 남자의 좌절과 재기를 담담하게 적은 이 수기의 제목이 왜 늑대를 구한 개가 되었냐 하면

이 수기의 내용이울프라는 성씨를 가진 한 남자가 한 마리의 개를 통해 새 삶을 되찾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개의 이름은 혜성이라는 뜻의 카밋’.

그레이하운드 종으로, 원래 경주견으로 태어나고 길러졌다가 중도에 도태된 친구다.

 

개와 만나기 전 울프 씨의 사정도 이 개의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허리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름 열심히 건실하게 잘 살던 이 미국인 변호사는

그동안 앓던 허리 상태가 어느 날 순식간에 크게 악화되면서 일어나 걷는 것조차 버거운 지경이 되고,이 때문에 결국 직장마저 잃는 상황에 처하고 만다.

깊은 절망에 빠져 있던 그는 어느 날 거리에서 웬 우아하고 당당한 자태의 그레이하운드 한 마리를

목격한 뒤 그와 같은 반려견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경주견 시장에서 도태된 그레이하운드의 복지를 위해 노력하는 단체를 통해 카밋을 만나게 된 것이었다.

 

허리 통증으로 인해 운신이 거의 불가능하다시피 한 울프 씨를 위해

카밋은 금세 문고리에 걸린 긴 끈을 물어 당겨서 문을 여는 법을 익히고,

울프 씨의 휠체어를 직접 끌고 공항을 누비기도 하며,

나중에는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견 품종이라는 한계를 넘어

본격적인 장애미 도우미견으로 인정도 받는다.

 

울프 씨가 카밋을 키우는 건지 카밋이 울프 씨의 시중을 드는 건지

알쏭달쏭해 보이기까지 한 이 두 동물(어쨌든 인간도 동물이므로)의 동거는

울프 씨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던 모양이다.

우울하고 끔찍한 과거를 지나 왔음에도 기꺼이 사람을 따르고

우아함과 평정심을 잃지 않는 이 의젓한 개를 지켜보면서

울프 씨는 지난날의 자신의 삶과, 더 나아가 인생이란 것의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 생각들을 모아 정리한 글이 바로 이 책인 것이다.

 

책 속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울프 씨가 카밋을 보며 쓴 글이다.

 

카밋을 보면서 배운 사실이 하나 있었다. 때론 의연하게 예전의 모습을 조금씩 버려야 한다는 거다. 그날 그날 새롭게 찾아오는 일들에 집중해야 한다. 우리 삶에선 원래 자기가 선택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목표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도 깨달아야 한다. 실패가 아니다. 그것이 인생이다.”

 

이 책의 주제는 이 한 문단으로 요약이 가능할 것 같다.

울프 씨는 이 문단대로 카밋과 함께 자신의 변화된 모습과 새로운 나날들을 온전히 긍정하고 받아들이며 견뎠다.

카밋이 천수를 다하고 세상을 떠난 후에도 울프 씨는 카밋이 남겨 준 그 가르침을

삶의 위로이자 힘으로 삼으며 또 꿋꿋이 살아가고 있을 터이다.

.

그리고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by 해피의서재 2017. 12. 3. 10:45

최근들어 영화에 이끌리기 시작했다언제부터 갑자기 영화에 마음이 동하고, 영화를 찾아다니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날 우연히 SNS에서 어느 영화 속 흥미로운 한 장면의 스틸컷을 보게 된 것이 본격적인 시초였던 것 같기는 하다. 어쨌든 그 이후로, 정확히는 2016년도 들어서부터 나름 영화팬 흉내를 내기 시작하고 있다.

 

최신 영화도 보지만 예전에 나온 영화들 중 네티즌들이 추천하는(SNS에서든, 블로그에서든) 영화도 조금씩 뒤적여 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보게 된 영화가 톰 포드 감독의 <싱글맨>이었다.

작년에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로 전국을 뒤흔들어 놓았던 영국 배우 콜린 퍼스가 주연한 영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살아갈 의지마저 놓아 버린 채 겨우 삶을 버티고 있는 한 남자의 무거운 하루를 말없이, 묵묵히, 오직 그 남자의 표정과 시선, 그리고 그 시선 속에 들어오는 색채만으로, 아주 감각적이고 관능적으로 표현해 낸 영화였다. 영상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는 처연하면서도 아찔한 바이올린 음악까지 얹히고 나니 그야말로 영화 속 그 아득한 슬픔의 정서에 함께 빠져들기 충분했다. 나 역시 하루하루 버티기가 너무나 힘겹고 고통스럽다고 여기고 있던 차에 이 영화를 보게 되니 실로 영화가 나를 위로하는 듯한 느낌이 크게 들었다. 이후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곧 도서관에서 동명의 원작 소설을 찾아냈다.

 

영화 속 배경이 1960년대인 이유는 바로 그 원작이 쓰여진 시기, 그리고 그 원작이 배경으로 삼은 시기 역시 1960년대이기 때문이다. 58세의 소설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는 마치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자신의 동년배인 동성애자 대학 교수 조지를 내세워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냉전이 한창인 시대, 건강한 활기와는 어딘지 거리가 있는 것만 같은 캠퍼스, 별 의욕도 없이 별 볼 일 없는 강의를 듣는 학생들과 아닌게아니라 정말 별 볼 일 없어진 것만 같은 영문학이라는 학문, 조지의 집 옆에서 요란스럽게 놀며 끊임없이 소음을 유발하는 아이들, 조지를 은근히 경멸하거나 동정하는 이웃들. 그 사이에서 그나마 조지에게 유일한 삶의 활력이자 의지였던 짐은 이제 죽고 없다.

 

여기까지는 소설과 영화가 거의 일치한다. 그런데 삶을 대하는 조지의 태도와 그 분위기는 두 작품이 서로 좀 많이 달랐다. 둘 다 관조적인 인상이 강한 작품이지만, 소설 쪽이 좀 더 날것스러우면서도 강인한 느낌을 준다. 영화는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출신 감독이 연출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소설보다는 다소 처연하고 여린 느낌이 강하다.

 

소설 속 문장은 하루 동안 조지가 하는 행동과 생각들을 그냥 주욱 기술해 나아간다. 출근길 고속도로를 달리며 동성애자를 경멸하고 혐오하는 이들을 향해 조지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테러를 벌이는 자신을 상상하고, 캠퍼스에서 테니스를 치는 청년들을 바라보며 욕망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고, 체육관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순간 그래 나는 미쳤어. 그리고 앞으로 더 미칠 생각이야라고 되뇌는 조지.

 

영화 속 조지보단 소설 속 조지가 좀 더 삶에 대한 의지가 더 강해 보인다. 짐이 없는 세상에서도, 고립된 세상 속에서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채 홀로 하루하루 겨우 버텨가는 삶이라도(그래도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한 케니가 그의 앞에 등장하긴 한다), 이제 전신의 세포가 죽고 육신이 쓰레기가 되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누구에게나 예정된 바로 그 순간이 오기 직전까지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작년에 이어 올해도, 그래도 어떻게든 삶을 버텨 갈 거라고, 조지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영화보다 좀 더 남성적이고 힘있는 인상의 이 소설에서, 나는 내 삶을 다시금 돌아본다. 누구에게나 삶은 버거울 수밖에 없다. 조지처럼, 혹은 지금의 나처럼 그 버거움이 더욱 남보다 배로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버거움과 고독, 힘겨움을 진정으로 나눠 가질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조지에겐 짐이 있었을지 모르나 이제 그는 짐 없이 살아야 한다.

 

우린 어쨌거나 제각각 다른 존재일 수밖에 없다. 정말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 일생을 함께 할 수도 있겠지만 늘 그랬듯 언젠가는 그 사람을 떠나보내고 다시 홀로 남아야 한다. 언젠가는 홀로 남겨진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른다오직 홀로 자신의 삶을 오롯이 견뎌야 하는 싱글맨, 싱글우먼.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도 어떻게든 끝까지 견뎌 볼 생각이다. 소설 속의 조지가 그렇듯이. “그래 나는 미쳤어. 그리고 앞으로 더욱 미칠 생각이야라고 그를 따라 되뇌이면서.

 

by 해피의서재 2016. 8. 2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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