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 대니얼 지블랫 외 지음 / 어크로스 / 2018


오늘날 형식적 민주주의는 전세계에 걸쳐 많이 보편화되었지만, 정작 민주주의 본연의 취지와 정신을 잃고 사실상 전제주의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는 실정이 세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이 책은 2016년 미국 대선 전후의 정계와 여론 동향을 중심으로 민주주의가 어떻게 변질되고 있는지, 그래서 어떻게 내부에서 붕괴하고 있는지를 상세히 들여다보고 있다. 1930년대의 독일과 스페인, 1960~70년대의 칠레와 1990년대의 베네수엘라, 2010년대의 터키 등의 사례도 주요 반면교사로서 비중있게 언급된다.

경제성장이 둔화하고 소득과 지위, 심지어 태생에 따라 사회가 양극화되고 이로 인한 대중의 불만이 가중되는 가운데 권력을 잡기 위해 정당과 정치인들조차 상호 관용과 존중보다 혐오와 폭력을 더 선호하게 되고 이를 양분삼아 독재적 성향의 포퓰리스트가 독버섯처럼 자라 사회를 장악하는 일련의 프로세스가 이 책에 잘 설명되어 있다. 이 책이 지적하고 있는 문제는 전세계 민주주의 국가가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이 책에서 꾸준히 강조하고 있는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우리 정치 지형과 여론 행방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부터 돌아보는 일이 먼저 시급할 것 같다. 비난과 복수와 일명 '사이다'라 불리는 날선 워딩에 열광하는 와중에 우리 사회는 이미 저 규범에서 너무 멀리 벗어나 버린 것은 아닌지 무척 걱정스럽다. 민주주의 본연의 정신이 우리 사회에서 부식되어 사라지지 않도록 이제부터라도 정계를 비롯하여 한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유의해야 하지 않을까.

극단적 정치 분열은 민주주의 규범에 위협이 된다. 정치판이 세계관의 차이를 넘어 사회적, 인종적, 종교적 갈등으로 배타적인 진영으로 분열될 때 그 사회는 관용의 규범을 유지하기 힘들다. (...) 정치 집단이 서로 간 공존이 불가능한 이념으로 분열될 때, 특히 구성원끼리 교류가 부족하고 고립이 심해질 때 정상적인 정당 경쟁이 사라지고 적대적인 투쟁이 시작된다. 상호 관용이 사라지면서 정치인들은 자제의 규범까지 저버리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승리하려는 유혹에 굴복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민주주의 시스템을 전면 부정하는 반체제 집단이 등장한다. 상황이 이러한 국면으로 접어들면 민주주의는 심각한 위기를 맞는다. - 148쪽
by 해피의서재 2024. 3. 23.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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