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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5.28 인문 내공, 당신의 힘으로 세상을 읽고 해석하라
한쪽에서는 인문학이 죽어간다고 한다.
한쪽에서는 인문학 붐이 일고 있다고 한다.
같은 존재를 놓고 정반대의 말들이 나오니 혼란스럽다.
공공과 민간을 막론하고 여러 기관에서 ‘인문학 콘서트’같은 강연 행사를 수시로 열고 많은 사람들이 호응하며 들으러 가는 것을 보면
인문학 붐이 이는 것 같기도 하고,
대학의 인문학 계열 학과들이 여전히 침체일로를 걷는 것이나 서점가에서 제일 잘나가는 도서들이
역시나 자기계발서나 실용서 중심인 것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어쨌든 지금 이 시대가 ‘인문학’이나 ‘인문 정신’에 목말라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기술이 고도로 발달하고, 그 기술에 기댄 온갖 상품과 놀잇거리들이 쏟아지면서 생활은 편리해지고 즐길거리도 넘쳐나지만
이것들이 정신의 공허함까지 채워 주지는 못하고 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이며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사는 것이 나와 우리, 그리고 사회를 위해 맞는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그들은 가지고 있지 않다.
스마트폰을 통해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온갖 정보들 속에서 우리는 가치 있는 것들을 얼마나 건져내고 있으며
그 ‘가치 있는 것’의 기준은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가.
아니, 지금 내가 사는 이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제대로 직시하고는 있는 것인가.
그렇기에 요즘이야말로 ‘인문 내공’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박민영의 《인문 내공》, 이 책이 특별하게 와닿은 이유도 그 때문이리라.
책에 따르면 인문(人文)은 ‘사람의 무늬’라는 뜻을 갖고 있다고 한다.
범이나 개, 양 등의 무늬와는 다른, 사람만이 갖고 있는 그 무늬를 연구하는 것이 인문학이라 한다.
단편적이고 파편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사회 현상과 인간의 본질에 대해 거시적으로 통찰하는 힘이 바로 ‘인문 내공’이라 한다.
그래서 궁극적으로는 나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동등하게 존엄한 가치를 가졌다는 것을 아는 것이 인문학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뜬구름 잡는 이야기 같지만 사실 인문학이야말로 삶과 가장 밀접한 연관을 갖고 있는 학문이기도 하다.
문학과 철학과 사학은 모두 뭔가를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일이다.
굳이 문학, 철학, 사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는 게 아니더라도 우리의 삶은 항상 뭔가를 읽고, 쓰고 생각하는 일들의 연속이다.
그리고 우리가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서 일어나는 일상적이거나 혹은 특별한 사건들에 관한 일이다.
‘왜 아까부터 저 사람은 보기에도 사용한 지 한참 된 물건을 들고 와서 가게 주인에게 환불해 달라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는 것인가’
하는 생각부터,
‘왜 요즘 뉴스는 주말 캠핑문화 소개 같은 신변잡기적인 기사들만 자꾸 방송하는가’ 같은 종류의 의문들까지.
여기서 한 꺼풀 더 깊이 들어가,
‘저 사람은 왜 그런 억지를 부리게 되었나’ 혹은
‘어쩌다가 방송국에서는 저런 류의 뉴스만 주로 내보내게 되었나’
하는 문제의 근본적인 원인들을 탐구해 나가는 것이 바로 인문학적 사고일 것이다.
인문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는 현실에 관심과 의문을 갖고,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현실에 말을 거는 것에서 인문학은 출발한다.
주변의 평범한 경험을 강렬하게 받아들이고 느끼는 것에서 인문학은 시작된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던 헬렌 켈러가 물펌프에서 쏟아지는 물을 온몸으로 흠뻑 느낀 뒤
자기 주변의 모든 사물들에 관심을 보이고 이름을 묻기 시작한 것처럼.
내공을 쌓기 위해서는 수련이 필요하다.
책은 ‘인문 내공’을 쌓기 위한 기술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다.
한 번쯤 들어 봤을 세 단어, ‘다독’과 ‘다작’과 ‘다상량’이 이 책에도 등장한다.
인문학적으로 생각하고(다상량), 인문학적으로 읽고(다독), 인문학적으로 쓰는(다작) 방법, 혹은 기술에 대한 소개가 차례로 이어진다.
지금 자신이 직면한 문제에 직간접적으로 답을 줄 수 있는 종류의 책부터 읽기 시작할 것,
번역서는 저자에 대한 애정이나 경의를 갖고 있는 사람이 성심껏 번역한 책으로 고를 것,
읽고 있는 책과 관련된 책을 함께 읽어나갈 것,
최대한 간단명료한 문장을 사용해 객관적이고 선명한 근거를 앞세운 글을 쓸 것 등
‘무엇을 어떻게 읽고 어떻게 쓰는 것이 좋을까’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들이 나와 있으니
이와 관련된 질문을 갖고 있던 분들이라면 이 책을 참고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책이 가장 우려하고 걱정하며 강조하는 바에 대해 정리하며 갈음하고자 한다.
이른바 요즘 ‘인문학의 부흥’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시각이 책의 여러 곳에 담겨 있다.
‘인문학 콘서트’ 등의 이름으로 (주로 기업을 중심으로) 대중에게 공급되는 인문학이
과연 참된 인문학인가에 대한 의문이 책 속 여기저기에서 표출된다.
현재의 인문학이 자본을 가진 대기업들의 이익을 위해 기능하는 소위 ‘기업인문학’이 된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과 함께,
‘인문학이 자본과 기업의 시녀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저자의 위기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의 주제를 가장 잘 압축한 부분이라 여겨지는 책의 서문을 통해 저자는 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 같다.
“환경과 문화의 힘은 압도적이며, 여기에 매몰되어 진짜 자신을 잃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읽고 쓰고 사유하며 자신만의 인문 내공을 키워야 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동안 쌓여 온 온갖 지식과 문화가 만들어낸 거대한 환경이다. 여기에 매몰되지 않고 독서를 통해 자신만의 힘으로 세상을 읽고 통찰하는 내공을 키우는 이들이 많아질 때 우리 사회는 더욱 인문적이고 인간다운 사회로 바뀔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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