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들어 영화에 이끌리기 시작했다언제부터 갑자기 영화에 마음이 동하고, 영화를 찾아다니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날 우연히 SNS에서 어느 영화 속 흥미로운 한 장면의 스틸컷을 보게 된 것이 본격적인 시초였던 것 같기는 하다. 어쨌든 그 이후로, 정확히는 2016년도 들어서부터 나름 영화팬 흉내를 내기 시작하고 있다.

 

최신 영화도 보지만 예전에 나온 영화들 중 네티즌들이 추천하는(SNS에서든, 블로그에서든) 영화도 조금씩 뒤적여 보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에 보게 된 영화가 톰 포드 감독의 <싱글맨>이었다.

작년에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로 전국을 뒤흔들어 놓았던 영국 배우 콜린 퍼스가 주연한 영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살아갈 의지마저 놓아 버린 채 겨우 삶을 버티고 있는 한 남자의 무거운 하루를 말없이, 묵묵히, 오직 그 남자의 표정과 시선, 그리고 그 시선 속에 들어오는 색채만으로, 아주 감각적이고 관능적으로 표현해 낸 영화였다. 영상과 너무나 잘 맞아떨어지는 처연하면서도 아찔한 바이올린 음악까지 얹히고 나니 그야말로 영화 속 그 아득한 슬픔의 정서에 함께 빠져들기 충분했다. 나 역시 하루하루 버티기가 너무나 힘겹고 고통스럽다고 여기고 있던 차에 이 영화를 보게 되니 실로 영화가 나를 위로하는 듯한 느낌이 크게 들었다. 이후 이 영화의 원작 소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나는 곧 도서관에서 동명의 원작 소설을 찾아냈다.

 

영화 속 배경이 1960년대인 이유는 바로 그 원작이 쓰여진 시기, 그리고 그 원작이 배경으로 삼은 시기 역시 1960년대이기 때문이다. 58세의 소설가 크리스토퍼 이셔우드는 마치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자신의 동년배인 동성애자 대학 교수 조지를 내세워 자기 내면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냉전이 한창인 시대, 건강한 활기와는 어딘지 거리가 있는 것만 같은 캠퍼스, 별 의욕도 없이 별 볼 일 없는 강의를 듣는 학생들과 아닌게아니라 정말 별 볼 일 없어진 것만 같은 영문학이라는 학문, 조지의 집 옆에서 요란스럽게 놀며 끊임없이 소음을 유발하는 아이들, 조지를 은근히 경멸하거나 동정하는 이웃들. 그 사이에서 그나마 조지에게 유일한 삶의 활력이자 의지였던 짐은 이제 죽고 없다.

 

여기까지는 소설과 영화가 거의 일치한다. 그런데 삶을 대하는 조지의 태도와 그 분위기는 두 작품이 서로 좀 많이 달랐다. 둘 다 관조적인 인상이 강한 작품이지만, 소설 쪽이 좀 더 날것스러우면서도 강인한 느낌을 준다. 영화는 세계적인 패션 디자이너 출신 감독이 연출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소설보다는 다소 처연하고 여린 느낌이 강하다.

 

소설 속 문장은 하루 동안 조지가 하는 행동과 생각들을 그냥 주욱 기술해 나아간다. 출근길 고속도로를 달리며 동성애자를 경멸하고 혐오하는 이들을 향해 조지 아저씨라는 이름으로 테러를 벌이는 자신을 상상하고, 캠퍼스에서 테니스를 치는 청년들을 바라보며 욕망이 일어나는 것을 느끼고, 체육관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순간 그래 나는 미쳤어. 그리고 앞으로 더 미칠 생각이야라고 되뇌는 조지.

 

영화 속 조지보단 소설 속 조지가 좀 더 삶에 대한 의지가 더 강해 보인다. 짐이 없는 세상에서도, 고립된 세상 속에서 누구와도 소통하지 못하는 채 홀로 하루하루 겨우 버텨가는 삶이라도(그래도 어느 정도 소통이 가능한 케니가 그의 앞에 등장하긴 한다), 이제 전신의 세포가 죽고 육신이 쓰레기가 되어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누구에게나 예정된 바로 그 순간이 오기 직전까지는,

어제에 이어 오늘도, 작년에 이어 올해도, 그래도 어떻게든 삶을 버텨 갈 거라고, 조지는 그렇게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영화보다 좀 더 남성적이고 힘있는 인상의 이 소설에서, 나는 내 삶을 다시금 돌아본다. 누구에게나 삶은 버거울 수밖에 없다. 조지처럼, 혹은 지금의 나처럼 그 버거움이 더욱 남보다 배로 느껴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 버거움과 고독, 힘겨움을 진정으로 나눠 가질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다. 조지에겐 짐이 있었을지 모르나 이제 그는 짐 없이 살아야 한다.

 

우린 어쨌거나 제각각 다른 존재일 수밖에 없다. 정말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 일생을 함께 할 수도 있겠지만 늘 그랬듯 언젠가는 그 사람을 떠나보내고 다시 홀로 남아야 한다. 언젠가는 홀로 남겨진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른다오직 홀로 자신의 삶을 오롯이 견뎌야 하는 싱글맨, 싱글우먼. 나도 별반 다르지 않다. 그래도 어떻게든 끝까지 견뎌 볼 생각이다. 소설 속의 조지가 그렇듯이. “그래 나는 미쳤어. 그리고 앞으로 더욱 미칠 생각이야라고 그를 따라 되뇌이면서.

 

by 해피의서재 2016. 8. 20.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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