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만큼 경이로운 것은 없다. 오직 글쓰기를 제외하고는.
제목으로 쓰인 문구는 튀르키예의 소설가 오르한 파묵의 대표작 <검은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세상에는 많은 이야기가 있다. 끊임없이 새로 태어나고 회자되는 이야기들. 소설책으로, 영화로, 드라마로, 실제 현실에 없지만 오직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태어나 그 속에서 현실의 대중들과 공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이야기들의 상당수는 범죄와 사건, 추리와 추적으로 구성되곤 한다. 고전적인 추리소설부터 첩보물, 오컬트, 형사법정물 상업영화와 게임에 이르기까지. 심지어 SF나 역사물에도 미스터리 장르는 잘 어우러든다. 온세상이 미스터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부르주아 계층의 지적 유희와 오락으로 출발한 미스터리 문학은 왜 두고두고 이야기 콘텐츠들의 주요 작법으로 애용되는 것일까. 그리고 사람들은 왜 그토록 이야기에 탐닉할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서.
그것은 미스터리 문학이 필연적으로 품고 있는 속성 때문이 아닐까. 개인과 도시, 사회와 시대의 어두운 이면을 직시하고 사건의 근원을 향해 파고드는 그 속성이, 이해할 수 없는 심연같은 이세상의 본질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자연스럽게 나아갈 수밖에 없기 때문일 것이다.
“미스터리는 사회적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활용되는 파르마콘이 될 수 있다. 위험성을 알면서도 복용해야 하는 독이자 약, 바꾸어 말하자면 예방적 차원의 사회적 백신이다. 이러한 파르마콘의 역할은 장르문학이나 문화 콘텐츠를 포함하는 이야기 장르가 우리에게 무해하고 선한 것이기만을 기대하는 최근의 분위기를 배반한다. 오히려 만인이 만인에게 무해하고 갈등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는 무균실의 상상력을 벗어나기 위해서, 미스터리는 기꺼이 우리를 죽이지는 않는 가상적 병균이 되기를 자처해야 한다.” (본문 168쪽)
현대의 명탐정은 추리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성과 논리의 힘에서 비롯되는 추리의 위력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스터리가 다루어야 하는 다양한 사회적 갈등과 병리적 증상, 폭력적 일상을 효과적으로 다루기 위해 우선은 수많은 사연의 세계에 귀를 기울이기 위한 준비 과정이다. 미스터리는 아름답고 현란한 글래스 어니언이다. 하지만 그것이 눈속임에 그쳐서는 안 된다. 미스터리 장르는 바로 그러한 추리의 세계에 어울리는 내부의 진실까지도 예비하고 배치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 시대 한국적 미스터리가 지향해야하는 그무엇이다. (본문 250쪽)
세상의 어둠을 직시하고 파헤치는 문학장르. 대중적 인기만큼 주어진 책임도 막중한 스토리텔러. 그에 대한 라이트한 안내서이자 비평서 한 권이 올 8월 시중에 나왔다. 문학과 영화/드라마를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다양한 픽션물 속에 반영된 현실 세계의 문제점들(가치관 혼란, 도처에 만연한 폭력, 공권력-사법불신, 가족주의, 확증편향, 사이코패스 범죄 등)에 대해 고찰하고자 하는 이들이라면 만족스럽게 읽을 수 있을 만한 책이라 개인적으로 판단된다.
이것은 유해한 장르다 : 미스터리는 어떻게 힙한 장르가 되었나 / 박인성 지음 / 나비클럽 /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