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인문학 / 홍익희 / 가나 / 2020

올해 하반기 들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것이 바로 금융 담론인 것 같다. 서점이고 웹방송이고 SNS고 온통 돈, 금융, 재테크에 관한 이야기가 넘친다. 길어지는 수명, 인공지능의 발전에 따른 기술적 실업의 도래 가능성, 코로나19 이후 각종 상업 시장의 위축과 붕괴. 더 이상 노동소득만으로는 삶을 감당하기 불가능하다는 위기의식이 사람들을 금융의 세계로 이끌고 있는 듯하다. 이른바 ‘동학개미운동’으로 대표되는 개인 투자자의 증가가 그 반증이 아닐까. 실제로 수익을 얻은 사람들도 꽤 많다고 하고.

하지만 투자도 돈의 흐름을 알고서야 성공할 수 있는 법.
주식, 채권, 환율, 금리.
금융 시스템의 주요 개념이자 구성 요소들인 이들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적재적소에 투자를 하고 수익을 올리는 게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이 금융 요소들이 서로 어떻게 작동하여 경제의 흐름을 만들어 가는지는 근세 유럽(네덜란드와 영국) 이래 이어져 온 경제사에서 파악할 수 있다.
그런데 좀 더 파고들다 보면 이 모든 것이 당대 정치사회적 지형, 특히 국제 정세와 깊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주요 금융기업/기관들의 태동과 행보, 국가 간의 알력과 함께 전개된 환율전쟁, 그에 따라 변화한 각국의 흥망성쇠와 세계 경제 지형의 현주소를 이어 미래의 금융 환경에 대한 예상으로 이어진다.

동어반복이 자주 보이는 감이 없진 않지만, 그만큼 강조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돈이 돈을 불리는 자본소득이 실물 생산과 유통에 기반을 둔 노동소득보다 3배 이상 부풀어 가는 현재 상황이 과연 온당한 것인가 하는 고뇌와 문제의식이 책의 곳곳에서 느껴진다. 아울러 소수의 ‘있는 사람들’에게로, 소위 선진국에게로만 부의 쏠림이 지속되는 현상이 장차 자본주의의 영속성에도 치명적일 수 있음을 경계하고 있다.
단순한 재테크 공부를 넘어 돈과 금융 그리고 그에 의한 사회 변화 양상에 대해 좀 더 깊이 살펴보고 싶은 이들, 혹은 새로운 시선(통화정책)으로 국제사의 흐름을 읽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책 속 주요 문장>
유엔이 예측하는 향후 최장수국가가 우리나라이다.
하지만 이러한 최장수 예측이 마냥 기쁘지만은 않은 것은 우리나라 노인의 삶의 질이 OECD 국가 중 최하위로 노인 자살률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노인 인구 절반이 인간의 마지막 인격조차 보호하기 힘든 극빈층에 속해 있다.
우리나라는 과거 여성인력을 산업화하여 경제부흥을 이루었듯이 앞으로는 노인 인구를 산업화하여야 이 절박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이렇게 구조적 장기불황이 저출산, 고령화와 겹치면서 우리나라는 이제까지 인류가 겪어보지 못했던 엄청난 어려움과 혼란에 직면할 것이다.
당장 많은 학교와 학원들이 사라질 것이고, 종국에는 인구절벽이 부동산시장을 붕괴시킬 것이다.
노동 가능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생산이 줄어들고 세수 또한 감소하여 국가의 재정지출조차 어려워지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
또한 청장년층이 줄어들면서 나라의 활력이 떨어지고 내수시장의 수축 또한 불가피하다.
이렇게 국력 문제만이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등 전반적 분야에서 엄혹한 현실과 마주해야 한다.
- 12쪽

일본은 엄청난 무역수지 흑자, 엔화의 평가절상, 금리 인하로 대규모 유동성이 발생했다.
이 돈들이 주식과 부동산시장으로 흘러들어 거품을 키웠다.
게다가 엔화 강세가 장기추세로 접어들 모양새를 보이자 대량의 핫머니가 일본으로 몰려들었다.
이 때문에 부동산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자 일본은 자만에 빠졌다.
- 71~72쪽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환율 조정으로도 미국의 무역적자는 회복되지 않았다.
미국은 작전을 바꾸었다. 제조업 수출이 아닌 달러 수출 곧 '금융'에서 승부를 보기로 했다.
미국은 다시 한 번 선진 7개국과 모임을 갖는다. 이른바 1995년의 '역플라자 합의'다.
그리고 플라자 합의와는 정반대로 달러 강세를 만드는 데 합의했다.
플라자 합의 때는 약 달러를 통한 무역적자 축소를 목표로 했지만, 역플라자 합의에서는 강달러를 통한 기축통화 지배력 증대를 목표로 했다.
'강한 달러화 → 미국으로 자본 유입 → 주가 상승, 금리 하락 → 소비 증가, 투자 증가 → 수입 증대 → 경상수지 적자 확대 → 전 세계 동반성장'
이라는 금융 중심의 글로벌 성장 패러다임을 미국이 선진국들의 협조를 얻어 공식적으로 채택했다.
- 86쪽

일본은 경제가 활황을 맞자 자이테크라는 돈놀이에 빠졌으며 여기에 미국과 중국 양쪽으로부터 심하게 환율 공격을 당해 빈사 상태에 놓였다.
게다가 내수경기를 부양한답시고 부동산담보 대출비율을 120%까지 높이며 부동산 경기를 부추겼다.
이렇게 내부적으로는 '자이테크'라 불린 돈놀이와 외부적으로는 미국과 중국의 환율공격 그리고 바젤 회의와 파생상품의 공습이 오늘날 일본 경제를 망가뜨린 주범이다.
- 88쪽

'워싱턴 컨센서스'는 1990년 전후로 등장한 미국의 경제체제 확산전략이다.
한마디로 외국의 금융시장과 외환시장 빗장을 강제로라도 열어 미국 자본의 활동무대로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외환위기 같은 위기발생을 제3국의 구조조정 기회로 삼아 미국식 시장경제체제인 신자유주의를 심겠다는 미 행정부와 IMF, 세계은행 정책결정자들 사이에 이루어진 합의다.
워싱턴 컨센서스는 '거시경제안정화, 경제자유화, 사유화, 민영화'가 그 뼈대이다.
개발도상국들의 시행해야 할 구조조정 내용은 '정부예산 삭감, 자본시장 자유화, 외환시장 개방, 관세인하, 국가 기간산업 민영화, 외국자본에 의한 국내 우량기업 합병-매수 허용, 정부규제 축소, 재산권 보호' 등이다.
그런데 이런 권고를 수용하지 않을 때는 외환위기가 발생하면 이를 방치함으로써 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관철하는 기회로 삼는다는 것이다.
이처럼 제3세계의 외환위기를 구조조정의 기회로 삼아 신자유주의를 확산시킨다는 전략이다.
조지 소로스조차 이를 '시장근본주의'라고 비난했다.
미국은 그때부터 유럽과 동남아 그리고 중남미 국가들을 대상으로 각개격파에 들어갔다.
월스트리트는 미국의 해외시장 개척의 선발대가 되었으며 특히 헤지펀드가 그 선봉장 노릇을 했다.
소로스 등 헤지펀드가 중남미를 시발로 1992~1993년 유럽통화 위기 때 핫머니로 유럽 중앙은행들을 유린하고,
1997년 7월 아시아 외환위기 때 먼저 태국을 초토화시켰다.
- 96쪽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은 유대인의 압박에 못 이겨 FRB(연방준비위원회제도) 법에 서명한 후 이렇게 토로했다 한다.
"위대하고 근면한 미국은 금융시스템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금융시스템은 사적 목적에 집중돼 있다.
결국 이 나라의 시장과 국민의 경제활동은 우리의 경제적 자유를 억압하고 감시하고 파괴하는 소수에 의해 지배된다.
우리는 문명세계에서 가장 조종당하고 지배당하는 잘못된 정부를 갖게 되었다.
자유의사도 없고, 다수결의 원칙도 없다.
소수 지배자의 의견과 강요에 의한 정부만이 있을 뿐이다."
- 139쪽

미국 정부는 국채를 발행했으면 당연히 이에 대한 이자를 지급해야 한다. 미국 연간 예산 중 이자 지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13% 정도 된다.
... 미국 정부는 연준이 보유하는 국채에도 이자를 지급할까? 정답은 '지급한다'이다.
하지만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부분이 있다.
연준은 미국정부가 지급하는 이자를 받아 주주들 곧 연준 설립시 자본금을 댄 민간은행들에게 6%의 배당금을 지급하고
연준이 쓸 경비를 뺀 다음 나머지는 다시 미국 정부에 돌려준다는 점이다.
이것이 미국 정부가 재정 적자 곧 국채 발행을 크게 무서워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 145쪽

케인즈는 당시 영국 경제가 '빈둥빈둥 놀면서 재테크를 일삼는 자산가계급'인 '지대추구 자산가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즉 인도와 이집트 등 영국 식민지 민족들을 영국계 상업회사와 금융사들이 약탈하면서 생산적 기여를 하지 않는 자산가계급이 경제를 망가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케인즈는 지대추구 자산가들이 바로 1930년대 세계 대공황을 일으킨 금융 자본주의의 주역이라고 지적하며,
이들을 엄격히 규제해 자본주의를 다시 생산적 자본, 곧 산업자본으로 환골탈태시키지 않는 한 자본주의 경제에 희망이 없다고 봤다.
- 147쪽

1차 대전 직후인 1918년 열린 파리강화회의에서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즈는 독일에 과도한 배상금을 물려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으나 거부되었다. 그는 회의에 참가한 각국 정치인들이 이기적인 자국 정치 논리를 앞세워 경제를 무시하는 무지한 행태에 충격을 받고 분노했다. 그는 독일에 물린 혹독한 배상금으로 전무후무한 인플레이션이 발생할 것이며, 이는 독일 국민들을 빈곤으로 내몰아 '극단적인 혁명'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해 히틀러 시대와 새로운 전쟁을 예감했다.
... 케인즈의 예견은 그의 표현 그대로 현실화되었다.
결국 독일에 대한 거액의 전쟁배상금은 '화폐 발행량 증가 → 초인플레이션 → 히틀러 등장'으로 연결되어 2차 대전을 불러왔다.
이 모든 사건의 원인은 인플레이션이었다. 2차 대전이라는 참화는 케인즈의 선견지명이 거부된 결과였다.
- 148~149쪽

독일의 초인플레이션은 정부의 화폐 발행량 증가와 은행들의 과도한 신용창출의 결과물이었다. 독일 정부는 과도한 전쟁배상금 지급과 경기 진작을 위해 수출을 늘려야 했다. 수출을 늘리기 위해서는 마르크화 평가절하로 수출 상품 가격겨쟁력을 높이는 게 유리해 결국 화폐 발행량 증가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독일 초인플레이션의 진정한 막후 조종자는 사실 거대한 신용창출을 일으킨 금융자본세력들과 그들에 의해 움직여진 민간 중앙은행이었다.
... 이러한 행태에 분노한 독일 국민들은 파렴치한 투기꾼들과 이를 조장한 유대인 금융가들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를 품게 되었다.
... 시민들은 두 눈 멀쩡히 뜨고 화폐 발행량을 터무니없이 늘린 정부와 금융세력에 의해 무자비하게 수탈당한 것이다.
특히 부동산 없이 현금만 보유했던 빈곤계층 서민들이 발가벗겨졌다. 부자들은 부동산, 토지, 주식, 귀금속 등으로 자신의 재산을 포트폴리오 해 놓아 어느 정도 피해 갈 수 있었지만 저소득층은 아니었다. 금융투기세력이 화폐가치 폭락 과정에서 벌어들인 거대한 이익은 바로 국민들이 몇십 년 동안 힘들게 저축해 얻은 부였다.
케인즈의 예견대로, 이 틈을 파고들어 대중을 선동해 집권한 사람이 히틀러다.
... 그는 무려 88.1%의 압도적 지지를 받고 최고 권력자가 된다. 이어 홀로코스트와 2차 대전이라는 세계 최대의 비극이 일어난다.
정치를 앞세우고 경제와 금융을 무시한 결과였다.
- 150~151쪽

케인즈가 세계화폐를 주장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이유는 통상 분쟁과 환율 문제로 3차 세계대전이 벌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케인즈의 생각은 세계화폐는 '인플레이션이나 디플레이션이 발생하지 않도록 고안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다른 이유는 특정국가의 위기가 다른 국가로 전이되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달러가 기축통화일 경우 미국 내에서 유동성 위기가 일어나면, 경제위기는 전 세계적으로 전이되지만
세계화폐를 활용할 경우, 경제위기의 전이는 제한적인 수준에 그친다는 게 케인즈의 생각이었다.
- 155~156쪽

미국의 천재 외교관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놀라운 외교성과를 연속적으로 이루어냈다.
그는 소련과의 전략무기제한협정을 체결하고, 죽의 장막 중국의 문을 열고, 베트남 전쟁을 종식시켰다.
그리고 1975년에는 OPEC 종주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의 파이살 왕과 비밀협상에 성공했다.
곧 미국이 사우디 왕권을 보호해 주는 대신 세계 최대 유통 상품인 석유의 거래를 달러로만 하도록 하는 묘수를 찾아낸 것이다.
그 뒤 석유의 달러 거래로 달러에 대한 수요가 커진 덕분에 달러가 계속 기축통화 노릇을 할 수 있었다.
- 163~164쪽

근대 이후 여태까지의 주요 공황들은 모두 통화 교란으로 발생했다.
그 출발은 유동성 공급과잉이었다.
유동성이 버블을 키우고 그 버블이 터짐으로써 경제위기가 도래한 것이다.
주식 등 자산 가격의 증가는 기업의 내재가치 증가에 비례해 커지는 것이 순리다.
그런데 시중의 유동성 확대로 주가가 내재 가치에 비해 턱없이 높아지면 그것이 바로 버블이요, 버블이 터지는 게 공황이다.
위기를 유동성으로 막는 것은 부실을 파헤쳐 시장에서 제거하지 않고 오히려 유동성으로 부실을 덮어주어 부실을 키우는 것과 같다.
각국의 유동성 확대 곧 환율전쟁이 세계 경제의 암적인 존재이자 위험한 이유이다.
- 181쪽

1920년대 후반 들어 늘어나는 생산과는 반대로 사회 전체적으로 소비가 줄어들었다. 심각한 소득불평등이 원인이었다.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을 가져가는 승자독식 시대가 전개되었다.
개인 소비에는 한계가 있기에 극소수 부호들에게 부가 집중되면 사회 전체적으로는 소비가 급감한다.
생산성이 높아져 상품은 넘쳐나는데 소비가 급감할 때 발생하는 게 바로 공황이다.
호황을 누리던 경제는 1920년대 후반에 이르러 소비가 급감하고 금리인상으로 유동성이 급격히 축소되자 불경기에 접어들어 주가가 내려앉으면서 신용경색이 왔다.
소비가 줄어들고 돈이 돌지 않자 1929년 8월을 정점으로 산업생산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1929년 9월 3일, 이날 다우존스 지수는 이 해의 최고점 381.17을 기록했다. 그리고 1929년 10월 24일, 기어이 거품이 터지고 말았다.
증시가 붕괴되면서 대공황이 시작되었다. 미국 증권시장에서 철도와 산업주가들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1주일만에 지수가 무려 37%나 급감했다.
- 200쪽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취임하자마자 통화개혁과 금융개혁을 단행했다.
대통령은 1933년 3월 4일 취임연설에서 경제위기가 자본주의적 이윤만을 맹목적으로 추구한 금융업자들 때문에 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일자리 회복을 위한 일들이 성공하려면 구질서의 병폐가 되풀이되지 못하도록 하는 두 가지 안전장치가 필요합니다.
모든 금융과 신용거래, 투자활동을 엄격하게 감독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돈을 이용하는 투기가 근절되어야 합니다.
적정량의 통화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합니다.
이것들이 우리가 싸워야 할 전선입니다."
- 205쪽

부실 규모를 파악한 루즈벨트 행정부는 은행으로부터 악성부채 30억 달러 규모의 부실 모기지를 구입했다. 최초의 공적 자금 투입이었다. 그는 맥을 잡아 집중과 선택을 택한 것이다. 그의 선택은 훗날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어 주택소유자들의 주택 차압을 막기 위해 주택자금 대출회사를 설립했다. 부실을 재빨리 도려내고 부실이 예상되는 곳에 화력을 집중한 것이다.
이런 과단성 있는 정책들의 결과로 신용위기는 1933년 3월말에 일단 마무리됐다.
2008년 신용위기와 대조되는 국면이다.
- 206~207쪽

1980년대 시작된 신자유주의와 부자감세 정책이 금융시장의 급팽창과 어우러져 '소득불평등과 부의 편중'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금융자본주의 경제를 만들었다.
원래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과 분배를 위해 교환의 매개체로 등장한 게 돈인데 돈 스스로가 자가증식을 한다.
심지어 그 성장속도는 상품과 서비스의 생산, 즉 세계 GDP 성장속도보다 몇 배 이상 빠르다.
불로소득(금융자산) 증가속도가 땀 흘려 일해 버는 근로소득 증가속도보다 훨씬 빠르며, 이것은 현대금융자본주의의 본질적 문제다.
- 211쪽

지난 400여 년간의 역사를 분석해 보면 경기침체는 매 4.75년마다 한 번씩 오고, 대공황은 67년마다 한 번씩 온다고 한다.
자유시장경제의 자유는 풍요를 안겨 주기도 하지만 위기의 원인이기도 한다.
지나친 경제적 자유는 탐욕을 낳고, 탐욕은 버블을 낳고, 버블에는 대가가 따른다.
점점 빨라지는 호황과 불황의 경기순환은 혼돈을 조장하고 소득불평등과 부의 편중은 자본주의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고 있다.
자본주의 역사에서 위기와 기회의 반복 사이클, 곧 금융자본주의의 팽창과 수축 과정에서 생기는 버블과 공황은 불행히도 계속되어 왔다.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 222쪽

"이번 신용 위기의 교훈은 시장엔 자율조정기능이 없다는 것이다. 적절한 규제를 하지 않으면 늘 선을 넘어서기 일쑤다.
2009년만 해도 우린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왜 종종 보이지 않는 건지 다시금 알게 되었다.
그 손이 거기에 없고 금융세력의 탐욕이 거기 있기 때문이다.
금융가들의 사리사욕 추구는 사회 전체의 이익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금융기관 주주들에게조차 도움이 안 된다."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이자 세계은행 부총재를 지냈던 컬럼비아대 교수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말이다.
- 238쪽

우리는 모든 권력의 최정점에 정치권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정상에 대통령이 있다. 하지만 아니었다.
현대 세계에서, 아니 최소한 현대의 미국에서는 정치권력을 움직이는 큰손들이 있다.
돈줄과 언론을 장악하고 있는 세력이 정치권을 움직이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그 전개 과정에서 자본의 탐욕으로 태어난 파생상품의 남발과 범람을 제어하지 못한 잘못도 크지만 그보다 더 나쁜 것은 금융위기가 터진 후 월스트리트 금융계의 대처 방식이었다.
미국 정부는 2008년 늦가을 신용위기가 발새하자 부실을 따로 모아 '배드뱅크'를 만들어 여기에 공적자금을 집중 투입해 부실을 처리하려 했다.
대공황 때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이 썼던 특효 처방이다.
그러한 목적으로 의회를 설득해 긴급자금도 마련했다. 그렇게 했으면 조기에 신뢰를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국 실행하지 못했다.
월스트리트의 큰손들이 극구 반대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월스트리트는 정부의 위기 수습을 위한 은행 주식담보 대출 지원, 보유 채권의 시가 평가제 등 제2, 제3의 현실적 제안을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로써 금융위기가 조기에 수습되지 못하고 전세계로 퍼져 나가면서 양적완화 정책까지 시행하게 되었다.
결국 미국 정부는 부실에 집중적으로 공적자금을 투입해 처리하지 못하고 돈을 헬리콥터에서 무차별 살포하듯 전방위로 뿌려 불을 끄려 했다.
- 238~240쪽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와중에 선진국은 천문학적인 규모로 통화량을 증가시켜 왔다. 또한 각국 금리도 사상 최저수준이었다.
그렇게 많은 돈이 풀렸음에도 물가가 안정되어 있었고, 일본과 유럽은 오히려 디플레이션을 걱정했다.
양적 완화, 곧 금융권을 통한 돈 풀기는 담보력이 있는 상위계층에게 흘러들어가 자산 가격을 올린 반면 가계부채에 시달리는 서민들에게는 흘러가지 않아 소비자 물가는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 지금은 투자 대상을 찾지 못한 돈이 중앙은행 금고나 은행에서 자고 있다. 하지만 경기가 본격적으로 좋아지면 문제는 달라진다.
잠자고 있는 돈들이 투자처를 찾아 쏟아져 나오면서 통화량의 유통 속도가 빨라진다.
그러면 시중 유동성이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여기에 놀라 중앙은행이 급격한 계단식 금리인상을 서두르면 탈이 날 수 있다.
그때는 기업부채 등의 부도사태가 터지면서 시장이 망가지거나 아니면 인플레이션의 쓰나미가 밀려올 가능성이 있다.
- 241~242쪽

미국의 금융, 외환시장 공격은 삼각편대 공습으로 유명하다. 미국 정부가 깃발을 들면 앞장서는 행동대 역할은 월스트리트의 헤지펀드들이다.
그리고 미국 연방준비이사회는 통화정책으로 그 뒷배를 봐준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의 공격 패턴이 그랬다.
미중 무역전쟁의 궁극적 목표는 궁극적으로 중국의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의 개방이다.
미국은 제조업 수출로 돈을 버는 나라가 아니다. 환율이 제조업 수출 증가에 미치는 역할은 미미하다.
그들이 궁극적으로 노리는 것은 중국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의 완벽한 개방이다.
미국은 해외에 투자한 금융자본으로 돈을 버는 나라다. 곧 '금융국가'인 것이다.
그들의 주특기로 돈을 벌기 위해서는 상대국의 금융시장과 외환시장 개방이 선결 조건이다.
- 261쪽

1980년대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되었다. 경제를 시장의 효율에 맡기자는 신자유주의 이후 소득불평등이 급증하는 상황에서도 미국인들은 그것을 개인의 능력 탓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아니었다. 돈이 돈을 불리는 '금융자본주의'의 속성이었다.
곧 땀흘려 일해야 버는 근로소득(세계총생산) 대비 돈이 돈을 불려주는 불로소득(금융자산소득)이 서너 배 더 빨리 성장한 것이다.
세계총생산액(GDP) 대비 세계 금융자산의 비중 곧 자본집적도가 1980년에 109%였던 것이 1990년에 263%로 늘어났다.
실물경제에 비해 금융자산의 증가속도가 날이 갈수록 더 가팔라진 것이다.
- 276쪽

일본과 독일이 상품 수출로 부의 획득을 도모했다면 미국은 세계 각국의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에 자본(달러)을 투자하여 그 금융수익으로 부를 긁어모았다.
... 세계에 금융자본이 넘치다 보니 자본집적도는 2000년 310%로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렇게 상품과 서비스의 증가량에 비해 유동성이 급격히 증가하다 보니 시중금리는 계속 내려갈 수밖에 없었다.
세계 금리는 자본조달 창구인 미국의 시중금리와 직접 연계되어 함께 낮아졌다.
- 277쪽

금융자산이 이렇게 많이 늘어난 것은 화폐의 본원적 기능인 거래적 동기에 의한 화폐 수요 증가보다는 투기적 수요가 많이 증가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 신자유주의 이후 등장한 주주이익을 극대화하는 주주자본주의는 부의 분배가 노동자에게서 주주 등 금융자본가에게로 쏠리게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소득불평등 심화가 단순한 최상위 집단으로의 소득집중뿐 아니라 중산층의 몰락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 문제는 이로 인해 사회의 소비수요가 팍 줄어든다는 것이다. 중산층과 서민들은 사실 버는대로 소비할 수밖에 없는 처지이다. 그러나 소득과 부가 상위 극소수계층으로 몰리면 그들은 소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사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소비가 크게 줄어드는 것이다.
- 278~279쪽

역사를 살펴보면, 과도한 통화팽창은 제국을 절단 내기도 했다.
곧 강대국이 망하는 데 패턴이 있었다.
멸망의 근본원인은 대부분 재정 적자로 인한 과도한 부채 증가와 통화팽창으로 인한 인플레이션과 그로 인한 통화붕괴였다. 이는 시장붕괴로 이어져 거대한 제국을 쓰러뜨렸다.
강대국이 쇠퇴의 절정으로 치달을 때 나타나는 공통된 현상이었다.
- 280쪽

경제가 안정되려면 상품과 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상황은 수요보다 공급이 약간 부족한 상태이다.
공급이 약간 부족하면 팔 사람보다 사려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가격은 조금씩 오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약간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 게 이상적인 경제상황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상품, 노동, 자본 등 모든 게 공급이 수요를 상회한다. 이러한 상태에서 물가는 내리고 디플레이션 위험이 상존해 있다.
공급과잉이나 디플레이션 경제하에서는 현금이 빛을 보게 된다. 공급과잉 상태에서 기업들은 투자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이 쌓이는 이유이다.
- 283~284쪽

이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적인 현상이다. 자본집적도 비중의 증가 곧 금융자산의 팽창과 부자감세로 인해 부익부빈익빈 현상이 극도로 심화되고 있다.
있는 자들이 더 많은 부를 움켜쥐어 중산층이 붕괴되고, 빈곤층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런 추세가 날이 갈수록 더 심해진다면 과연 사회가 버텨낼 수 있을까?
확실한 것은,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상위 1%의 독식 체제로는 자본주의가 버텨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국민의 90%가 하류화 물결 속에 익사당하는 사회는 더더욱 자본주의가 버텨낼 수 없다.
선거가 금권에 휘둘리는 정의롭지 못한 사회는 영속 가능하지 못하다.
불로소득 증가속도가 근로소득 증가속도보다 몇 배나 빠른 사회는 영속 가능하지 못하다.
결론적으로 지금과 같은 금융자본주의는 영원하지 못하다는 사실이다.
- 289쪽

양적완화로 인한 유동성 장세는 결과적으로 투기자본을 키워준다. 그들은 거의 제로금리로 돈을 융통하여 헤지펀드를 활용하거나 부동산 투자 등으로 재산을 증식시킨다.
유동성 장세는 실물경제와 상관없이 돈의 힘으로 주식과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키기 때문에 그들이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금융장세는 있는 자들의 재산을 더 증식시켜 주고, 있는 자들의 금융자산 증식이 일반인들의 근로소득을 훨씬 앞서게 된다.
불행하게도 불로소득이 자본주의의 정점에 서고 자본의 세습이 고착화되는 것이다.
이는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켜 소득불평등의 골을 깊게 만든다.
이렇게 미국은 부실정리 대신 무제한 유동성 공급을 취했다. 월가의 모럴해저드를 연방정부의 돈으로 덮어 줬다.
결국 이러한 유동성 조치는 또다른 형태의 위기를 잉태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미국은 극소수 금융계 부호들에게만 득이 되는 정책을 추진했다. 다시 말해 이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에게는 피해를 주었다.
- 292쪽

결론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의 부실은 파헤쳐지지 않고 유동성의 힘으로 봉합되었다.
파생상품 남발로 금융위기를 일으킨 월가는 혹독한 자기반성도 없었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 게다가 부실도 처리하지 않았다.
그 뒤에도 건전성 확보를 위해 특단의 개혁을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오지 않았다.
- 293쪽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 등 자산가격의 거품이 언제 어떻게 꺼질지 모른다.
또 무역전쟁이 환율전쟁으로 치달아 각국이 평가절하에 열을 올리게 되면 현재의 외환시장이 요동치면서 금융시장 역시 무사하기 힘들다.
- 294쪽

발터 샤이델의 책 <불평등의 역사>에 의하면,
역사적으로 소득불평등과 빈부격차를 해소한 사례를 보면 큰 규모의 인구 이동을 수반하는 전쟁, 혁명, 국가붕괴, 전염병 창궐 등이었다.
이번에도 코로나19가 금융자본주의의 판을 '포용 자본주의'로 바꾸고 있다.
소득 양극화를 해소할 불평등하고 불합리한 제도의 개선이 포용 자본주의의 핵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기득권의 진입장벽을 허무는 기회의 불공정 해소, 독점적 자본과 권력을 결탁을 끊어내는 부조리 근절이 필요하다.
- 332쪽

현대통화이론은 돈을 푸는 방식이 다른데, 기존 양적완화는 통화정책 수단으로 시중 은행들의 자금을 풍부하게 만드는 데 반해, 현대통화이론에서는 정부가 직접 돈을 적재적소에 쓴다.
정부가 서민복지와 공공사업에 돈을 쏟아붓고 노동자를 대거 고용한다는 것이다.
곧 중앙은행이 시중 은행의 마지막 대부자인 것처럼 정부는 일자리의 최종 공급자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 340쪽

미국이 결코 용서하지 못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달러에 대한 도전이고 또다른 하나는 전략자산인 석유에 대한 도전이다.
기실 이라크의 후세인이 죽은 것도 달러와 석유에 대한 도전 때문이었다. 그가 석유를 달러 대신 유로화로 팔겠다고 선언함으로써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이라크 남부 유전개발을 중국에 넘기겠다고 한 것이다.
- 354쪽

경기침체시 중앙은행의 무리한 금리인하와 양적완화는 경기의 단기적 회복을 위해 자산가격을 부풀리고 인플레이션 리스크를 감수하는 꼴이다.
더 나아가 민간중앙은행을 갖고 있는 미국의 통화정책이 금융세력들의 이익에 따라 휘둘리고, 이들의 이득을 위해 유동성을 무책임하게 늘림으로써 세계 경제를 잠재적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이로 인해 각 나라마다 피곤한 환율전쟁을 치르고 있다.
- 395쪽

중국은 디지털화폐를 추진하면서 지하 자금 양성화와 지하경제 근절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다.
대한민국의 원화도 디지털화폐가 사용되면 그 기회에 리디노미네이션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통용되는 구권을 디지털화폐 신권으로 교체할 때 1000 대 1로 교환을 단행하는 리디노미네이션의 시행이 예측된다.
- 407쪽

칼 포퍼는 '영원히 올바른 것은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모든 기존관념을 거부했다. 그에게 진리란 이성에 의해 비판될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사상은 '모든 사상은 불확실하고 인간은 반드시 잘못을 저지른다. 그러므로 잘못을 인정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수정해 가는 '열린사회'야말로 이상적인 사회다'로 요약된다.
포퍼에 따르면 열린사회와 반대편 대극 관계에 있는 것이 전체주의 사회와 공산주의 사회다.
또 포퍼는 '모든 삶은 근본적으로 문제해결이다'라고 인간의 삶을 정의했다.
- 417쪽

칼 포퍼 교수는 '열린사회를 거부하는 전제적인 이데올로기는 궁극적인 진리라고 주장하는 점에서 논리적인 오류를 가질 수밖에 없다'면서 '인류사회는 인간이 오류를 범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할 때만 진보하며 궁극적인 진리를 독점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수요와 공급에 의해 시장이 균형을 이룬다는 기존의 정설을 거부한 그(조지 소로스)의 투자 철학은 포퍼 교수의 이같은 주장에서 비롯되었다.
- 418쪽

그(조지 소로스)는 훗날 가격을
'수요와 공급이 주어졌다는 가정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이다. 시장 참여자들의 생각과 시장의 움직임은 서로 영향을 미치는 상호작용적인, 곧 재귀적인 관계를 갖는다. 가격은 수요와 공급에 따라서만이 아니라 판매자와 구매자의 기대에 따라서 좌우된다.'고 설명한다.
- 419쪽

by 해피의서재 2020. 11. 23. 22:58